칠레 알티플라노 기행(3)
미스칸티 호수에서 보내는 편지
해발 4300미터에 위치한
아름다운 미스칸티와 미니케 호수
여보, 여긴 해발 4300미터가 넘는 곳이라오. 산 페드로 아타카마에서도 안데스 산맥으로 90킬로미터나 떨어진 알티플라노의 깊숙한 고원지대. 이곳엔 두 개의 아름다운 호수가 나란히 놓여있는데, 미스칸티와 미니케스라고 불리는 쌍둥이 같은 호수랍니다. 이마를 맞댄 듯 놓여 있는 모습이 마치 다정한 부부호수처럼 보이기도 해요. 미스칸티 호수는 탁 트이고 넓은 반면, 미니케스 호수는 작고 앙증맞게 보이는군요. 그래서 나는 미스칸티를 남자 호수, 미니케스를 여자호수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호수의 물이 어찌나 맑던지 만년설을 이고 있는 안데스의 봉우리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호수 속에 담겨 있군요.
이 호수는 안데스 산맥에서 아타카마 소금평원Atacama Salt Flat으로 흐르던 물길이 화산 폭발로 막히면서 만들어진 호수입니다. 호수 주위에는 5600미터의 미스칸티 화산, 미니케 화산 등 5개의 화산이 만년설을 인 채로 둘러싸여 있고, 호숫가는 샛노란 황금색풀로 덮여 있소. '코이로아'라는 사막의 풀이 마치 고슴도치처럼 대지를 덮고 있는데 모두가 노란색 일색이군요.
황금색 코이로아 카펫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두 개의 호수
두 개의 파란 호수는 황금빛 코이로아 카펫 사이에 우유 빛 나는 하얀 은가락지를 끼고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얀색으로 테를 두르고 있는 것은 물론 흰 소금입니다. 코이로아는 척박한 땅을 뚫고 자란 만큼 억세고 아주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고산지대에서 산소를 풍풍 품어내는 고마운 식물이랍니다. 오늘따라 당신이 호수처럼 맑고 코이로아처럼 강열하게 보이는군요.
당신은 마침내 해냈어요. 안데스의 알티플라노 고산지대를 오르내리느라 엉덩이에 피멍이 들고, 몽땅 토해내고, 강도와 도둑을 만나는 어려운 여정이었지만 당신은 그 힘든 여정을 잘 견디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한 때 당신은 지푸라기 하나도 들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 하지 않았소. 당신은 하얀 병실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며 "나는 언제나 저 사람들처럼 걸을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하곤 했지요. 당신은 그 땐 정말 아침 이슬방울 같았습니다. 금방 떨어져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아침 이슬….
병실에 누워있는 당신의 유일한 소원은 배낭을 메고 지구촌의 곳곳을 돌아보는 것이라고 말했지요. 그리고 겨우 걸을 수 있을 정도의 기력이 회복 되었을 때, 가다가 길에서 쓰러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은 여행을 떠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처음엔 나는 그건 너무 위험발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위험해, 너무 위험해! 혼자 속으로 몇 번이나 지껄였지만 결국 나는 배낭을 메기로 결정했지요. 사람이 살다가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한 번 죽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결론에 도달 한 것이오. 되 치든 엎어 치든 인생은 단 한번 만의 삶이라는 것을….
살아있는 인생은 아름다워!
그리고 우리는 여행을 떠났지요. 주변의 잡다한 모든 것을 접어버리고, 배낭 하나 떨렁 걸머지고, 그냥 댕강 여행을 떠난 거였소. 서울-홍콩-암스테르담… 그리고 북유럽 노르웨이 최북단까지 올라간 우리는 지구를 돌아 돌아 마침내 남미까지 오게 되었지요. 남미 땅을 밟은 당신은 벌써 안데스의 50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의 육로를 벌써 세 번이나 넘었어요. 무려 세 번이나! 이건 건강한 사람들도 하기 어려운 여정입니다. 난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 사실이 믿기지가 않아요. 이건 정말 기적이라고 생각을 할 수밖에 없어요. '여행'이라는 묘약이 당신에게 준 선물일까?
힘들지 않느냐고? 아픈 사람과 함께 여행을 다니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고? 솔직히 말하자면 힘이 들어요. 힘이 들고말고. 내 몸뚱이도 간수하기 힘든 여정인데 여행코스를 정하고, 교통과 숙박지를 마련하고, 낯선 땅, 낯선 사람들, 낯선 언어, 낯선 문화, 음식, 거지, 도둑, 사기꾼…… 이런 낯선 것들과 대하는 하나하나가 다 쉬운 일은 결코 아니지요. 그러나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세상에 힘들지 않는 일은 하나도 없어요. 더구나 집을 떠난 여행은 트러블의 연속이지요. TAVEL=TROUBLE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러나 우리의 앞길에는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보다도 더 험한 길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세상은 힘든 만큼 아름답고 보람이 있지 않겠소. 역시 살아있다는 건 아름다워요! 저 두 개의 아름다운 호수처럼 말이요……
( 미스칸티 호수에서)
*****************************************
동화 속 같은 두개의 호수
▲미스칸티 호수로 느리게 걸어가는 여행자들
건조한 구릉에는 고슴도치 같은 코이로아 풀 뭉치들이 잔뜩 도사리고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런 고원지대를 한참을 달려 구릉의 정상에 오르자 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 버스는 구릉의 정상에서 멈춘다. 구릉너머에는 융단을 덮어 놓은 것 같은 산 아래 그림 같은 두 개의 호수가 펼쳐져 있다. 정상에는 오두막처럼 생긴 통나무집 하나가 외롭게 서 있고, 머플러를 뒤집어 쓴 어떤 여인이 오두막에서 나온다. 호수로 가는 입장료를 받는 여인이다.
호수에는 우리일행 말고 한 떼의 다른 여행자들이 버스에서 내려 동화 속 같은 호숫가로 흐느적거리며 걸어가고 있다. 그들의 동작은 달나라에 착륙한 우주인처럼 느리다. 모두가 슬로비디오 같은 느린 동작이다. 고산지대라 숨이 차서 빨리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걸어서 호수로 가야만이 제대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단다. 아내는 다시 고산병증세가 심해져 그냥 버스에 있겠다고 한다. 나는 아내를 버스에 남겨두고 마치 호수로 빨려 들어가 듯 느릿느릿 호수 쪽으로 걸어갔다.
죽기 전에 이런 경치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경이롭지 않소?
▲살아있는 인생이 경이롭기만 하다는 프랑스 노인 일행
우리보다 먼저 내려갔던 사람들은 프랑스에서 왔다고 한다. 그들의 머리에는 안데스의 산에 내려앉은 눈발처럼 희끗희끗한 백발이 성성하다. 느릿느릿 걸어가는 그들은 별로 말이 없다. 그 중에 어떤 노인이 홀로 걸어가는 내가 이상하게 보였는지 말을 걸어온다.
“여보, 젊은이, 당신은 어느 나라에서 왔지요?”
“아, 네… 저는 코리아라는 동방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오, 코리아! 참, 멀리서도 왔네! 그런데 혼자서 왔소?”
“아니요. 아내랑 함께 왔는데 고산병으로 너무 힘들어 버스에 쉬고 있지요. 힘들지 않으세요?”
“이 나이에 왜 힘이 들지 않겠소. 그러나 죽기 전에 이런 경치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경이롭지 않소?”
“그렇고말고요!”
그의 말이 맞다. 그 나이에 이렇게도 힘든 고역을 치르며 바라보는 경치가 경이롭다고 말하는 그 노인이 나는 더 경이롭게 보인다. 그들은 모두 70대를 전후한 넘어 보이는 실버세대로 보인다. 나에게 말을 건 노인은 부인의 손을 꼭 붙잡고, 아주 천천히 느리게 걸어가고 있다. 온통 흰 머리 일색인 그는 73세라고 했다. 그는 검은 머리를 유지하고 있는 내가 아마 젊은 청년으로 보였든 모양이다.
미스칸티와 미니케스 두개의 호수는 지척에 있는 가까운 거리이지만 느린동작으로 걷다보니 너무 아득한 세월을 보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강열한 햇빛, 건조한 바람으로 목이 더욱 탄다. 가지고 간 물도 바닥나고 없다. 호수의 물은 마치 “나를 마셔주세요.” 하고 유혹을 하지만 마실 수 없는 물이다. 미스칸티 호수의 물은 가까이서 보면 유리알처럼 맑다. 정말 마시고 싶은 유혹을 강하게 받지만 소금물이라 먹을 수 없는 물이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함부로 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
▲미스칸티 호수를 느리게 걸어가는 여행자들
▲미니케 호수
미스칸티 호수에서 내려온 우리는 토코나오Toconao라는 작은 마을에 들려 잠시 휴식을 취했다. 산 페드로 남쪽 40km지점에 있는 이 마을은 중앙에 산 루카스 San Lucas 교회가 있고 하얀 종탑이 이색적으로 보인다. 이 작은 마을에는 포도, 석류, 사과, 허브 등을 진열해 놓은 상점이 있다. 이곳에는 마실 수 있는 물이 나오고, 근처에 있는 농장과 과수원에서 농작물을 생산해내고 있다. 포도와 석류, 사과를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 우리는 저녁 늦게야 산 페드로 마을로 돌아왔다. 정멀로 길고도 멋진 하루다. 내일은 산티아고로 떠나야 한다.
▲Toconao마을의 하얀 종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