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밀월여행, 우도를 닮은 항가로아

찰라777 2008. 1. 10. 10:39

항가로아, 우도를 닮은 마을

 

 

 

△이스터 섬의 낯익은 돌담, 마치 제주도의 우도에 와 있는 착각이...

 

 

 

△섬의 은행에서도 마스타카드를 넣으면 지폐가 우르르 기적처럼 쏟아진다.

 

△길거리의 시장

 

 

 

△돌 하루방을 닮은 모아이 석상들 

 

 

원두막처럼 생긴 나무파라솔에서 한 잠을 자고 나니 해가 벌써 많이 기울어 있었다. 우리는 해변을 따라 항가로아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 어귀에는 돌 하루방을 닮은 모아이 석상이 먼 하늘을 쳐다보고 서 있다. "어쩌면 제주도 돌하루방과 비슷하게 닮았지요?" 정말 돌하루방과 사촌이라도 된듯 닮아있다. 이스터 섬에는 오직 이 항가로아 마을에만 사람들이 모여 산다. 마을이라고 해 보아야 한가롭기 그지없는 조그마한 동네에 지나지 않지만 이스터 섬의 수도(?)이자, 유일한 쇼핑지역이다.

 

그래도 마을에는 슈퍼마켓, 선물가게, 학교, 우체국, 교회, 은행, 병원 등 있을 것은 다 있다. 우리는 마치 제주도의 어느 낯익은 동네를 돌아다니듯 마을 동네 집들을 기우거리며 돌아다녔다. 섬의 유일한 교회의 벽에는 이상한 새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토착신앙을 점목시킨 선교사들의 절묘한 유인책일까? 그래서 섬 사람들은 예배를 보는 날에는 입추의 여지 없이 교회를 가득 메웠다. 제주도의 돌담처럼 둘러쳐진 집, 작은 화단, 예쁜 꽃들, 라파누들의 웃는 얼굴…

 

풍경들은 마치 자신들을 훔쳐가라는 듯 우리들을 유혹을 했다. 우리는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슬금슬금 훔치며 걷고 있었다. 다운타운의 모습은 우도 중앙동의 마을을 연상케하여 어쩐지 모든 게 낯설지가 않았다.

 

"여긴 제주도의 우도 같기도 해."

"전 김녕 마을처럼 느껴지는데요?

"그럼, 우린 여기로 다시 허니문을 온 건가?

"허니문 보다 더 한, 우리들의 밀월여행이지요."

"하하, 우리들의 밀월여행? 거 멋진 말이네."

 

제주도 김녕은 아내와 내가 신혼여행을 밤을 보낸 곳이었다. 아내와 내가 만나 최초로 둘만 떠났던 여행. 그리고 세월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 우린 다시 둘만 떠나는 우리들의 밀월여행을 하고 있었다.

 

은행에 들려 마스터 카드로 돈을 인출하니 CD기에서 지폐가 기적처럼 쏟아져 나왔다. 문명의 이기는 이스터 섬에서도 안방처럼 제공되고 있었다. 우리는 우체국에 들어가 아이들에게 엽서를 부치고 이스터 섬의 기념스탬프를 찍었다. 500페소를 주면 이스터 섬 방문 기념 스탬프를 찍어준다. 기념스탬프에는 모아이 석상이 먼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선물가게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목각으로 새겨진 모아이 석상을 하나 골라 샀다. 이곳 이스터 섬에서 우리들의 유일한 쇼핑이었다. 돌로 만들어진 것은 너무 무겁고, 나무로 새겨진 모아이는 가벼웠다. 25cm 정도 되는 목각 모아이는 긴 귀에, 굳게 다문 입술, 배꼽 밑으로는 다소곳이 두 손이 모아져 있다. 투박하고 못생겼지만 어쩐지 듬직한 믿음이 간다.

 

 "저 긴 귀, 굳게 다문 입술이 영원토록 비밀을 지켜줄 것만 같아요."

"무슨 비밀을?"

"우리들의 밀월여행에 대한 비밀…."

"허허, 우리가 뭐 부정한 사이라도 되는가?"

"당신도… 허지만 저 모아이는 긴 귀로 모든 소리를 다 들어주고 침묵하며 누군가를 지켜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요."

"아하, 그래. 그럼 이 목각 모아이에게 당신의 소원을 매일 빌어봐."

 

그러고 보니 나 역시 목각 모아이가 어쩐지 정감이 들었다. 아내는 목각으로 새겨진 모아이 상을 포장지에 싸서 신주를 모시듯 조심스럽게 배낭에 집어넣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어쩐지 모아이가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내를 지켜 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거리에는 라파누이들이 식료품들을 길바닥에 늘어놓거나 자동차를 세워 놓고 팔고 있었다. 아내가 시장을 보는 동안 나는 슈퍼마켓에 들려 포도주를 한 병 샀다. 오늘밤은 그냥 잠이 들기엔 너무 아쉬울 거만 같았기 때문이다.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해가 바다로 가까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