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Patagonia)는 ‘발(Pata)’이 ‘큰(Gon)'이란 뜻을 가진 남미 의 땅 끝이다. 1520년 이곳에 도착한 마젤란은 해변에서 구아나코 털 모피를 걸치고 모카신(인디오의 뒤축이 없는 신)을 신은 원주민이 껑충껑충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구릿빛 피부를 한 그 거인의 발이 어찌나 크던지 마젤란은 ‘오! 파타곤!’하고 외쳤다. 그것이 유래가 되어 이 지역은 파타고니아라고 불리게 되었다. 당시 이곳에는 셀쿠남족, 오남족, 야강족 등의 원주민이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전멸하고 대신 이민자들의 발자국으로 채워져 있다.
마치 거대한 공룡의 꼬리처럼 생긴 파타고니아는 남위 40도 이남 지역으로 남미의 땅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바람이 많은 대지’다. 사계절 바람이 강하게 부는 까닭에 너도밤나무를 비롯한 나무들은 바람에 버틸 수 있는 자세로 자라며, 식물들도 줄기가 작아지면서 땅에 납작하게 업드리다시피한 모습을 하면서 꽃을 피운다.
파타고니아의 북부는 광활한 팜파스(평원), 남부는 건조한 불모의 대지, 그리고 태평양 연안에는 피오르드가 복잡하게 얽혀 산과 호수를 이루고 있다.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란 영화에도 잠깐 비쳐지는데 바람이 강하게 부는 대지는 황량하기 그지없다.
오래전,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을 읽으면서 파타고니아를 처음으로 알게 된 나는 칠레의 저항 문인 루이스 세풀베다의 ‘파타고니아 특급’을 접하면서 미지의 황무지를 밝고야 말겠다는 막연한 동경을 하게 되었다. ‘파타고니아 특급열차’는 아르헨티나의 엘 투르비오에서 출발하여 리오가예고스까지 240km에 달하는 철도다. 주로 파타고니아 목동들이 이용하는 철도였는데, 지금은 운행되지 않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남극의 철마다.
세풀베다의 자전적 여행기인 ‘파타고니아 특급열차’에는 황당하면서도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다.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의 감시망을 따돌리며 별이 가득한 밤하늘로 전파를 쏘아 보냈던 무선라디오 방송사, 소작농들을 향해 정부군의 발포가 시작된 밤 9시28분의 시각에 70년 넘도록 멈춰서 있는 히라미요 역의 시계. 고래와 대화를 나누는 소년 판치토, 황금으로 가득한 ‘트라파난다’ 왕국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고 파타고니아로 간 칠레 총독 아리아스의 이야기 등....
아리아스는 “트라파난다엔 괴물과 역병이 가득하다”는 보고서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는데, 일설에 의하면 아리아스는 트라파난다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다른 이들이 오지 못하도록 이런 보고서를 남겼다고도 한다. 세풀베다는 “아리아스와 함께 라틴 아메리카의 희한한 상상력과 그것을 바탕으로 환상문학이 태어난다”고 말한다.
- 파타고니아 토레스 델 파이네 그레이 빙하 탐험을 하기 위해 보트를 탄 여행자들.
최근에는 영국 기자 출신의 작가 브루스 채트윈의 ‘파타고니아’를 읽으면서 파타고니아에 푹 빠져들게 되었다. 채트윈은 1972년 ‘선데이 타임스’ 기자로 일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6개월간 파타고니아로 떠난다’란 전보를 남기고, 실제로 파타고니아를 여행 한 뒤 이 책을 썼다.
채트윈에 의하면 파타고니아는 은둔과 낭만의 땅이다. 수세기 동안 유럽과 미국의 과학자, 탐험가를 불러들인 신비의 땅이면서 망명자, 죄수, 몽상가들이 몰려든 은신처이자 해방구였다. 미국 서부시대의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 나오는 은행 강도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는 볼리비아에서 죽은 게 아니라, 파타고니아에 은둔하며 은행을 계속 털었다고 전한다.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변호사 오렐리 앙트완 드 투냉은 파타고니아에 ‘나 홀로 왕국’을 건설했다가 감옥에 갔다.
그가 세운 ‘신 프랑스’ 왕국의 망명 왕실이 아직도 파리에 남아있다고 채트윈은 전한다. 채트윈은 파타고니아를 찾은 시인과 모험가들의 유랑 기질을 보들레르의 시에 빗대 ‘고향을 꺼리는 위대한 고질병’이라고 말한다.
ㅁ파타고니아는 바람이 많은 대지다. 눈을 뜨기 힘들정도로 바람이 강하게 부는 그레이 빙하지대
파타고니아는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거인의 모델을 제공한 땅이자 셰익스피어가 ‘템페스트’의 영감을 얻은 땅이며, 찰스 다윈의 마음을 사로잡은 땅이기도 하다. 채트윈에 눈에 비친 파타고니아는 빙산과 바람 부는 초원에 사는 구아나코와 귀여운 펭귄들이 사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방랑자들의 마지막 종착지이자 갈 곳 없는 사람들의 은신처였다.
지구 최나단에 도착한 방랑자
하여간… 우리는 꿈에 그리던 파타고니아에 왔다! 남미여행이 끝나갈 시기에 당도한 파타고니아! 몽상가처럼 바람의 대지에 선 감회는 깊다. 북극으로 가는 노르웨이 최북단 나르빅에서 대각선을 긋는 긴 여정 끝에 남극으로 가는 전진기지에 도착한 둘만 떠나온 여행! 아내와 나는 바람 부는 대로 길을 걸어 바람의 대지에 선 방랑자였다.
발은 퉁퉁 부어 마치 마젤란이 발견한 원주민의 발처럼 커져 있었고, 미처 깎지 못해 텁수룩하게 긴 수염은 도망자나 은둔자를 방불케 했다. 남미의 강열한 햇볕에 검게 탄 구릿빛 피부는 영락없는 인디오 원주민의 모습 그대로였다.
“당신 그 꼴이 영락없이 방랑자 모습 같군요.”
“하하, 그래, 원래 우린 방랑자가 아니겠어.”
아메리카 원주민과 우리는 한 가족이다. 우랄알타이야 종족이 베링 해를 건너 이곳까지 오지 않았겠는가? 지구의 반대편 북극으로 가는 노르웨이 최북단 나르빅에서 대각선을 그으며 지구의 최남단 파타고니아로 표류해온 우리들은 글자 그대로 방랑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