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중국간 공중 실크로드에서 만난 한국인
시드니로 가는 란칠레 점보기에서 만난 30대의 한국여인은 산티아고-오클랜드-시드니-상하이를 오가며 현대판 남미~중국간 공중 실크로드를 통해 대물림을 하여 20년 동안 무역을 하고 있었다.
▲우리들의 잃어버린 여행가방은 어디로 갔지? (산티아고 공항에 쌓아놓은 여행가방)
23시 25분 시드니 행 란칠레 801호 점보기의 육중한 기체가 태평양을 향해 솟아올랐다. 컴컴한 밤,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산타아고는 점멸하는 은하계의 별처럼 무수한 불빛이 반짝거린다.
안데스 산맥을 뒤로하고 태평양 상공으로 날아가는 거대한 점보기의 좌석은 만원이다. 이번 원 월드 세계일주 항공권을 이용하는 동안 가장 좌석을 받기 어려운 노선이 바로 산티아고-시드니노선이다. 이유를 알고 보니 미국 비자를 받기 어려운 동양인들이 모두 이 노선을 이용하기 때문이란다.
한국에서 남미는 물론이거니와 동양에서 남미까지는 거의 직항노선이 없다(아마 지금쯤은 대한항공이 상파울루로 취항을 한다고 하는데 아직 정확한 정보는 모르겠다). 그래서 대부분의 항공노선이 미국의 LA나 다른 미국도시를 경유하여 비행기를 갈아타고, 남미로 오게 된다. 그런데 911 사태이후 미국 경유비자가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렵다는 것.
옆 좌석에는 동양인으로 보이는 어여쁜 30대 여인이 앉았다. 갸름한 타원형의 얼굴에 날씬한 몸매를 가진 그녀는 전형적인 한국 미인처럼 보였다. 혹시 한국 사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내가 먼저 눈인사를 건냈다. 그러자 그녀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하고 반색을 하지 않는가! 난데없이 들려오는 한국말에 아내 역시 반색을 한다. 그녀는 아까부터 한국말로 주고받는 우리들을 보았단다.
사실 남미노선에서 한국인을 만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산티아고에서 시드니로 가는 노선에서 한국인을 만나니 반갑지 않겠는가. 이야기를 하는 도중 그녀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중국 상해까지 간다고 했다. 공중에서 만난 아름다운 한국 여인! 알고 보니 그녀는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중국 상해까지 공중항로를 이용하여 무역을 하고 있는 현대판 남미 공중실크로드 무역상이다.
그녀는 미국경유비자가 까다로워 산티아고-오클랜드-시드니-서울-상하이로 연결되는 소위 공중실크로드(필자생각)를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상하이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5시간이나 달려가 이후라는 생산도시에서 잡화상품을 골라 구입하여 배편으로 산티아고로 보내고 다시 왔던 노선을 이용하여 산티아고로 날아간다는 것.
20년동안 대물림으로 이어온 사업
한 번 왕복하는데 10일정도 소요되는데, 보통 2~3개월마다 한 번씩 상품을 구입하러 온다고 했다. 이렇게 길고 비싼 항공료를 지불하고도 장사가 되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그냥 씩 웃었다. 장사가 된다는 대답이다. 그녀의 아버지가 20년 동안 해왔던 사업을 아버지가 연로하여 그녀가 대물림으로 이어받아 하고 있다는 것.
이 머나먼 길을 왕래하며 장사를 하는 그녀의 용기가 참으로 가상했다. 이건 서역으로 가는 실크로드가 아니라 남미로 통하는 현대판 공중 실크로드다. 하기야 21세기는 전 세계에 중국의 물건을 실어 나르는 실크로드가 다 있는 샘이지만, 태평양 상공에서 만난 이 한국여인은 특별히 가상해 보인다.
“앞으로 큰 무역상이 되어 부자가 되시길 기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야지요. 두 분께서도 남은 여행기간 동안 건강하세요.”
뉴질랜드의 오클랜드를 거쳐 시드니 공항에서 우린 그녀와 헤어졌다. 그녀는 칠레산 고추장과 과자를 우리에게 건네주며 상하이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손을 흔들며 사라져 갔다. 다부진 몸매에 야무진 그녀의 표정에서 무언가 이룰 것 같은 예감을 느낀다. 현대판 공중 남미실크로드를 날아다니는 한국여인이여, 굳세어라!
시드니로 가는 태평양 상공에서 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