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 서울은 풍수지리가 간택한 최고의 길지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경복궁과 창덕궁은 도성 안에서도 최상지로 꼽히는 곳이다. 북촌은 이 두 궁 사이에 위치하여 궁과 자웅을 겨룰 만큼 길지로 친다. 북고남저(北高南底)의 지형을 유지하고 있는 북촌은 배수가 원활하고, 남쪽을 향하고 있어 겨울엔 따뜻하다. 높은 건물이 없다보니 남쪽을 아래로 굽어볼 수 있어 경관이 좋다.
조선시대에는 제왕남면(帝王南面)의 법도에 따라 백성은 왕을 등지고 남향으로 집을 지을 수 없었다. 백성은 왕을 마주 보아야 했고, 궁을 등지고 집을 지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북향을 따르는 것이 법도였다. 그러나 북촌만은 예외였다. 북촌은 남쪽을 향해 대문을 내고, 왕의 궁궐처럼 남면(南面)을 했다. 남산을 마당으로 끌어들여 정원으로 삼는 호사(?)까지 누리는 곳이 북촌이다. 지리적 이점과 현실권력을 만나면서 북촌은 도성 최고의 귀족 촌을 형성했다.
조선후기 북촌 외에 지금의 충무로일대는 남인이 살던 남촌이었고, 혜화동과 동숭동 일대의 낙산 언저리를 동촌이라 일컬었으며, 서대문일대는 서촌이라 불렀다. 남인들과 무반이 살았던 남촌은 권력의 주변으로 편입되지 못해 양반대접을 받지 못했다. 따라서 18세기 한양은 남주북병(南酒北餠)이란 말까지 있었다.
이는 서울 남산아래 살던 가난한 무반(武班)들은 정치권의 불만을 술로 달래고, 살림이 넉넉한 북촌의 고관대작들은 쌀로 떡을 빚어 사시사철 떡이 넘쳐났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이처럼 남주북병이란 말 속에는 권력의 속성과 상징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북촌은 그런 곳이었다.
북촌이 길지요, 권력을 잡는 터라는 상징성은 지금도 찾아볼 수 있다. 이른바 가회동 대권명당 집이 바로 그 집이다. 영국의 어느 성처럼 높다랗게 벽을 둘러치고 있는 이준구 가옥에서 남쪽 샛길로 접어들면 임금"王"자처럼 생긴 꽃이 그려진 기와지붕이 보인다. 이 집이 바로 MB가 대권도전을 할 때 잠시 전세를 들었던 집이다.
풍수 지리학상으로 아주 터가 좋은 집이라고 알려진 집이라는 것. 좋은 터라고는 하지만 역시 접근성은 좋지 않다. 구불구불 한데다 공간이 좁아 주차하기도 어렵다. 마침 골목에는 눈 덮인 차량이 몇 대 서 있다. 이렇게 차량이 서 있으면 지나가기도 힘든 골목이다.
신앙이 돈독하기로 이름난 MB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서울시장을 퇴임한 후 대권도전을 시작하면서 강남 논현동 집에서 가회동 한옥마을로 이사를 했다. 가회동 한옥마을로 이사를 한 후 뜻밖에도 MB의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대권 레이스에서 승리를 했다. 이를 두고 풍수전문가들은 가회동 한옥 터가 대통령을 배출할 정도로 최고의 명당이라고 입을 모은다. 과연 그럴까?
가회동은 한 때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대권 후보시절 살았던 동네이기도 하다. 그는 2002년까지 이곳에서 살다가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그해 4월 옥인동으로 이사를 했다. 또한 MB가 가회동에 집을 구할 시기에 대권주자의 반열에 올랐던 손학규 전 경기지사도 가회동에 집을 구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가회동에 집을 구하지 못하고 마포의 어느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어찌되었던 가회동을 떠난 이회창과 이사를 오지 못했던 손학규는 대권도전에서 실패를 하고 가회동 집에서 선거를 치른 MB는 대권도전에 승리를 했다. 왕을 남면했던 북촌의 기운을 받아서 승리를 한 것일까? 만약에 MB가 아닌 다른 대권 도전자가 가회동의 이 집으로 이사를 했다면 대권구도가 바뀔 수 있었을까?
대통령 자리는 개인의 능력과 자질을 넘어 “천운”이 있어야 한다고들 말 한다. 역술가들은 그 천운을 풍수지리와 연관을 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제행(諸行)은 무상(無常)이요, 권불 십년(權不十年)이란 말이 있다. 모든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민주화 시대의 권력은 짧다. 절대왕권을 휘두르던 시대처럼 권력은 영원하지가 않다.
그것은 과거 이승만 독재정권과 18년 유신정치로 권좌에 머물러 있다가 자신을 가장 보호해 주어야 할 최측근 부하의 손에 사라져간 박정희 정권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천운을 타고 대권을 잡았다 하더라도 정부는 민중의 소리를 귀담아 듣는 겸손이 있어야 한다.
MB가 살지않는 가회동 집은 비어 있는지 대문앞에 쓰래기만 어지럽게 널려 있다. 대권명당 터도 가꾸지 앟으면 이렇게 변하는 것이다. 대권은 하늘이 내린 “천운”도 “풍수”도 아닌 민심의 힘에 의해 결정된다. 민심(民心)은 곧 천심(天心)이다. 정치는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법은 권력한테 지고, 권력은 하늘한테 지는 법이다. 오는 새해부터 정부는 민심의 소리에 더욱 귀를 기우려 나라를 다스려야할 것이다.
(북촌에서 뉴스게릴라 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