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우리강산/서울

[길상사]나타샤와 흰 당나귀-내 사랑 백석

찰라777 2010. 1. 8. 10:05

눈이 푹푹 내리던 날, 길상사에서

  

▲눈이 푹푹 내리는 길상사 일주문 

 

 

정말 이렇게도 눈이 펑펑 쏟아지다니 서울생활에 처음 있는 일이다. 아파트의 베란다 너머로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다가 나는 문득 백석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시가 떠올랐다. 눈 내리는 날이면 문득 떠오르는 시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눈 내리는 날 나타샤를 기다리는 천재시인 백석, 그리고 "내 사랑 백석"으로 죽는 날까지 "백석"을 그리워 하다가 조용히 눈을 감은 "자야". 백석과 자야는 저 흰 눈처럼 고귀한 사랑을 하면서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

 

눈 내리는 날이면 떠오르는 두 사람. 여행자는 카메라 한대를 메고 그들의 흔적을 찾아 성북동 길상사를 찾아 나섰다. 아침 9시에 강변역에서 지하철을 타는데 무려 30분도 넘게 기다렸다. 역사는 몰리는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눈보라가 창문을 뚫고 역사 안까지 휘날렸다. 지연된 전동차가 도착을 하자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며 우르르 전동차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사람의 홍수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몸을 움직이기조차 어려웠다. 성북동으로 가기 위해서는 동대문운동장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갈아타는 역은 더욱 혼잡하다. 서로 엇갈리는 인파로 10m를 빠져나가는 데도 한참을 걸려야 했다.

 

 

▲길상사로 들어가는 언덕 

 

 

가까스로 4호선으로 갈아타고 한성대역에서 내렸다. 밖으로 빠져나가니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다. 버스와 자동차가 거의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다. 길상사 쪽으로 가는 버스는 운행이 중단되었는지 오지를 않는다. 할 수 없이 눈 쌓인 거리를 걸어서 갔다. 눈이 푹푹 빠지는 거리를 걸으며 나는 다시 백석의 시를 떠올렸다. "눈은 푹푹 내리고/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여기서 "나타샤"는 바로 "자야"를 말한다. 자야는 백석이 지어준 고 김영환 보살의 아호다.

 

 

 

▲천재시인 백석과 자야

  

 

천재시인 백석과의 운명적인 만남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여인 자야. 자야는 아버지가 금광을 한다는 친척에게 속아 가정이 파산하게 되자 1932년 16세의 꽃다운 나이에 '진향'이라는 이름으로 조선권번의 일원이 되어 기생에 입적한다. 그녀는 한국정악계의 대부였던 금하 하규일 선생의 지도로 여창 가곡, 궁중무 등을 전수 받아 일대 명인기생으로 성장한다.

 

자야는 공부하는 기생이었다. 1935년 자야는 조선어학회 회원이던 해관 신윤국 선생의 후원으로 일본유학의 길을 떠난다. 독립운동가 해관은 영특한 자야를 일본과 하와이로 유학을 보내어 여성 독립운동가로 키울 심산이었다. 일본에서 유학을 하던 중 자야는 해관선생이 붙잡혀 함경남도 홍원 형무소에 수감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 소식을 들은 자야는 일본 유학을 중단하고 해관 선생이 수감되어 있다는 함경도 홍원 형무소로 찾아 간다. 그러나 그녀는 해관선생을 만나지 못한다. 어디론가 다른 곳으로 보내버린 것이다. 대신 그녀는 우연히 어느 요정에서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인 백석과의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단번에 사랑에 빠지고 만다.

 

"나 당신에게 아호를 하나 지어 줄 거야. 이제부터 '자야(子夜)'라고 합시다!" 자야는 당나라 이태백의 시 '자야오가(子夜五歌)'에 나오는 여인이다. 백석은 중국 동진 시절 변경의 전쟁터로 나간 남편을 그리는 내용을 담은 이 시구에서 인용하여 자야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 후 백석은 북쪽 땅 함경남도에, 자야는 서울에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두 사람의 사랑은 뜨겁게 달구어만 갔다.

 

그러나 그 사랑은 명문가인 백석의 아버지의 반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한다. 어느 날 백석은 기별도 없이 자야의 집을 찾아와 자야와 함께 뜨거운 밤을 지낸다. 자야는 명문가의 백석에게 피해를 주지않기 위해 그와 헤어져 숨어 살던 때였다.

  

하룻밤을 자야와 함께 지낸 다음 날 함흥으로 떠나면서 백석은 미농지 봉투 하나를 남긴다. 미농지봉투를 뜯어보니 백석이 친필로 쓴 한 편의 시 '나와 나탸샤와 흰 당나귀'가 들어있었다. 그것을 단숨에 찬찬히 읽고 자야는 몸과 마음이 야릇한 감격에 오싹 자지러질 지경이었다. 자야를 위해 쓴 백석의 시는 자야를 더욱 사로잡았다. 백석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나타샤를 자야에 빗대어 이 시를 썼다고 한다. '나와 나탸샤와 흰 당나귀'란 시는 이렇게 탄생한다.

 

 

법정스님과의 인연

 

성북동 거리는 자동차가 뜸했다. 길상사까지 가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은 집 앞에 나와 눈을 치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눈은 쓸어도 쓸어도 소용이 없었다. 내리는 눈의 양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정말 사정없이 내린다. 길상사 정문에 도착을 하니 흩날리는 눈 때문에 일주문 현판이 흐려 보인다. 인적은 없고 자동차는 길가에서 눈을 뒤집어쓰고 졸고 있다. 일주문 사이로 길상사의 하얀 정원이 보인다. 일주문을 들어서니 극락전이 흰 눈에 덮인 체 고색창연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아름답다!

 

 

 ▲눈 덮인 길상사 극락전. 전에는 요정 대원각 건물이었다.

 

 ▲극락전으로 올라가는 길

 

 ▲길상사 뜰에 쌓인 눈

 

백석과의 사랑을 못다 이룬 자야는 일찍이 성북동에 배밭골을 사들여 청암장이라는 한식당을 운영했다. 그리고 이곳은 뒤에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제3공화국 시절 국내 3대 요정의 하나였던 '대원각'이 되었다.

 

노년이 된 자야는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크게 감명 받아 스님을 친견을 한 뒤에 아름다운 회향을 생각했다. 그녀는 대원각을 시주를 하겠으니 절로 만들어 주기를 스님께 청하였다. 그러나 무소유의 삶을 몸소 실천하시는 법정스님은 이를 쉽게 받아드리지 않았다. 

 

자야는 10년에 걸쳐 끈질기게 법정 스님께 받아주시기를 거듭 청했다. 이에 법정스님께서도 시절인연이 다 한것으로 생각을 하고 자야의 뜻을 받아들였다. 1995년 자야는 당시 시가 1000억원에 해는 7000여평의 부지를 선뜻 보시를 한다. 무주상 보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조건없는 보시였다.

 

 

무소유를 실천하는 아름다운 회향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는 법정스님께 무소유의 삶을 실천 하는 자야의 아름다운 회향이었다. 대원각은 일부 개보수를 거쳐 1997년 12월 14일 길상사란 이름으로 도심 속에서 마음닦는 도량으로 탄생을 한다. 극락전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설법전이 지어지고, 왼쪽에는 지장전이 지어졌다.

 

지장전으로 가는 길에는 커다란 보호수가 한그루 있다. 그 보호수 앞 개울 건너에는 오래된 집이 한 채가 있다. 자야가 거쳐했다는 집, 길상헌(吉祥憲)이다. 그 집 뒤로 개울을 따라 작은 요사들이 언덕에 들어서 있다. 이 요사들은 전에 음식점으로 사용하던 움막들이다.

 

극락전은 원래 대원각 요정의 본체로 사용하던 것을 개보수를 하여 아미타부처님을 봉안하였다. 아미타불을 모신 것은 도심 가운데서 보다 많은 불자들이 이고득락(離苦得樂), 즉 고통을 여위고 안락의 길로 이끄는 터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고 한다.

 

 

 ▲자야(길상화 보살)이 머물곤 했던 길상헌

 

 ▲길상헌으로 들어가는 다리

 

 ▲언덕에 들어선 요사. 전에는 대원각의 움막이었다.

 

▲ 극락전으로 들어가는 아치문. 

 

 ▲찻집 앞의 오래된 보호수

 

극락전으로 가는 왼쪽 편에는 아치형의 문이 하나 있다. 이 문은 전에는 기생들이 고관대작들의 술시중을 들기 위해 곱게 한복을 차려 입고 드나들던 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스님들이 수행과 기도를 하기위해 드나드는 문으로 변했다. 때마침 사시기도 시간인지라 스님들이 극락전 뒤의 처소에서 내려와 아치문을 통해 극락전으로 들어간다. 스님의 염불소리가 낭낭하게 들려온다. 요정이었을 때에는 노래와 가무가 날마다 계속되었겠지만, 지금은 목탁소리와 스님들의 염불소리, 종소리와 북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다.

 

극락전에서 내려와 '나눔의 기쁨'이란 이름을 가진 찻집을 지나면 우람한 지장전이 버티고 있다. 지장전은 최근에 새로 지은 듯하다. 미륵부처님이 출현할 때까지 육도의 일체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대원력을 세운 지장보살을 모신 지장전.  대원각에서 일했던 기생들의 마음과 영혼을 달래기위해서도 지장전은 필요할 것 같다.

  

 ▲일체중생을 구하겠다는 지장보살을 모신 지장전

 

 

 ▲길상화보살(자야)의 공덕비

 

 

▲길상헌 다리에서 바라본 계곡

 

 

지장전 옆에 길상화보살이 머물렀다는 길상헌 뒤에는 작은 탑이 하나 있다. 공덕주 길상화 보살을 기리는 탑이다. 1997년 12월 14일 대원각이 길상사가 되던 날, 법정스님은 법석에서 자야에게 염주 하나와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 하나를 지어준다. 시가 1000억 원이 넘는 재산을 시주한 공덕주에게 내려준 것은 이것이 전부였다. 그날 그녀는 수천의 대중 앞에서 단 두어 마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저는 죄 많은 여자입니다.

저는 불교를 잘 모릅니다만…,

저기 보이는 저 팔각정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소원은 저곳에서 맑고 장엄한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진실하게 울려 나오는 그녀의 이 한 마디에는 인생의 슬픔을 넘어선 위대한 비원이 담겨있었다. 그녀의 소원대로 길상사가 세워지고 난 후, 1999년 11월 14일 그녀는 육신의 옷을 벗었다. 죽기 하루 전날 그녀는 목욕재계하고 절에 와서 참배하고, 길상헌에서 생애 마지막 밤을 묵었다. 세속의 옷을 벗은 그녀의 육신은 다비를 하여 49재를 지낸 후 그녀의 유언대로 첫눈이 도량을 순백으로 장엄하던 날 길상헌 뒤쪽 언덕바지에 뿌려 졌다. 오늘 같이 눈이 펑펑 내리던 날에…

 

길상사에서는 그녀의 유골을 뿌린 자리에 작은 돌로 만든 소박한 공덕비를 세워 그녀의 뜻을 기리고, 매년 음력 10월 7일에는 기재를 모셔 그녀를 추모한다. 그녀의 영정은 극락전의 한 구석에 작은 사진과 함께 모셔져 있다. 모든 것을 버리고 홀연히 떠난 자야. 아니 길상화 보살을 바라보자니 마음이 숙연해진다.(▶극락전에 모셔진 자야의 작은 영정)

 

 

"나누는 기쁨" 찻집에 앉아

 

눈 덮인 공덕비가 추워 보인다. 추위에 떨면서 그녀는 지금도 백석을 기다리고 있을까? 공덕비를 바라보는 여행자 역시 갑자기 추워진다. 무릎까지 빠진 바짓가랑이 사이로 눈이 들어가 발도 시리다. 눈은 여전히 푹푹 내린다.

 

 ▲"나누는 기쁨"이란 찻집에서 바라본 풍경

 

여행자는 잠시 추위를 녹이기 위해 '나누는 기쁨' 찻집으로 들어갔다. 찻집에는 아무도 없고 봉사를 나온 보살님 혼자 계신다. 눈을 털고 찻집 안으로 들어가니 방안이 뜨끈뜨끈하다. 여행자는 따듯한 유자차를 한 잔 주문하고 창밖을 바라본다. 창밖에는 여전히 눈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린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유자차가 나온다. 홀로 앉아 유자차를 마시자니 다시 백석의 시가 떠오른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가난이라는 구절이 마치 가슴을 바늘로 꼭꼭 찔러대는 듯한 이 대목이야말로 순진무구한 그 사랑의 시적 감각아 아니던가('내 사랑 백석' 중에서)." 이 시를 백석으로부터 받던 날 자야는 밤을 새며 시를 읽고 또 읽었다.

 

나타샤는 나를 사랑을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당신은 때로 '나타샤'가 없는 덩그런 부인방에서 혼자 쓸쓸히 소주를 마시곤 했다. 당신은 술을 그다지 잘 마실 줄 모르는 분이었는데,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얼떨결에 흥분해서 마음을 가라앉히느라고 난생 처음 과음을 해서 몹시 대취해 보았다고 했다('내 사랑 백석' 중에서)." 자야는 백석의 시를 읽으면서 그만 사랑의 족쇄에 채인 포로가 되어버렸다.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자야는 이 시를 읽으며 순간적으로 대기(大期)를 뚫을 듯, 날을 듯, 곧장 백석이 있는 곳으로 쫓아간다. 그녀는 사랑의 흰 당나귀를 함께 나란히 타고 출출히 우는 깊은 산골로 가서 마가리(오두막의 북한 말)에 살고 싶은 충동이 왈칵 들었다. 

  

여행자는 소주 대신 뜨거운 차를 홀로 마시고 있는 데 젊은 스님이 우산을 받고 눈길을 총총히 지나간다. 눈에 푹푹 빠지며 휘적휘적 걸어오는 모습이 마치 흰 당나귀를 타고 자야를 찾아오는 백석을 연상케 한다. 백석은 스님으로 환생하여 자야가 있는 이곳으로 오지 않았을까? 

 

백석의 연보를 보면 그는 1963년 52세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 사망은 1995년 84세로 밝혀졌다. 자야는 그 몇년 뒤인 1999년에 타계를 했다. 우연하게도 이들의 입적 나이는 84세로 동일하다. 정말 기구한 운명이 아닐 수 없다. 1963년 이후 백석은 연금중인 고당 조만식 선생을 적극적으로 도왔고, 해방 후에는 우익문인으로 활동을 하다가 곤욕을 치렀으며, 북한의 문인 인명록에 조차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1987년 출판금지가 되었던 백석의 시가 우리나라에서 해금이 되자 영남대 국문학 교수인 이동순이 창작과 비평사에 '백석 시선집'을 펴냈다. 이 시집을 본 노인 자야는 이동순 교수에게 연락을 하여 자신과 백석과의 관계를 밝혔다.

 

그녀는 이교수의 권유로 "내 사랑 백석" 이라는 산문집을 1995년에 문학동네에서 발간하였다. 또한 그녀는 1997년 창작과 비평사에 2억 원을 출연하여 백석문학상을 제정하도록 하였다. 백석문학상은 1999년부터 2년 내에 출간된 시집을 선발하여 매년 8월에 상금 1000만원을 시상을 하고 있다. 백석을 그리며 문인들을 위한 아름다운 회향이 아닐 수 없다.

 

자야를 닮은 관음보살

 

계곡을 따라 극락전 뒤로 거슬러 올라가면 '누구나 자유로이 명상을 할 수 있는 '침묵의 집"이 나온다. 침묵의 방은 작은 방이다. 아무것도 없고 방석만 있다. 벽을 향해 침묵의 참선을 하는 곳이다. 침묵의 집 위에는 '길상선원'이 있다. 재가자들을 위한 시민선방이다. 이렇게 눈이 폭폭 내리는 날 좌선을 하면 삼매경에 들 법도 하다. 언덕배기에는 작은 통나무집으로 된 암자들이 눈을 뒤집어쓰고 서 있다. 행지실(行持室)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대나무들이 눈을 이기지 못하고 한껏 휘어져 고개를 숙이고 있다.

  

 ▲침묵의 집

 

 

▲침묵의 집 내부 

 

▲시민들을 위한 선방 길상선원 

 

▲스님들의 처소. 예전에는 대원각 누각들이었다. 

 

 ▲눈을 이기지 못하고 휘어져 있는 대나무

 

 ▲행지실

 

 ▲행지실에서 바라본 설경

 

▲스님들이 묵으며 수행을 하는 요사 전각. 전에는 요정 움막이었다.  

 

 ▲대나무발로 만든 울타리에도 눈이 쌓여있다.

 

극락전 뒤뜰을 돌아 내려오니 송풍각(松風閣)이란 작은 나무 대문이 보인다. 대문에는 주걱이 새겨져 있다. 아마 이 집도 예전에는 요정이었으리라. 지금은 이 절 주지스님이 머물고 계시는 처소다. 송풍각 대문을 살짝 열어보니 소나무 한 그루가 우산처럼 눈을 머리에 이고 있다. 솔향기가 상큼하다.

  

송풍각에서 내려오니 '맑고 향기롭게' 사무실이 있고, 그 밑에는 최근에 지은 설법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언덕에서 내려오는데 눈이 푹푹 빠진다. 극락전의 지붕이 눈에 덮여 거의 보이지 않고 처마만 겨우 보인다. 바람이 불면 나무에 얹힌 눈들이 스르르 떨어진다. 극락전 좌측에는 커다란 법고가 있고, 그 앞에는 범종이 중생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다. 자야가 대원각에 울려 퍼지기를 원했던 범종이다.

  

 ▲극락전 앞마당

 

▲ 법고

 

 ▲송풍각 문. 주걱이 걸려있다.

 

 ▲송풍각 안의 소나무

 

 ▲눈 속에 파묻힌 극락전 지붕

 

설법전 밑에는 허리가 가느다란 '관음보살상'이 도량을 지켜보며 홀로 서 있다. 다른 절에서 보아왔던 두툼한 보살상과는 영 딴 모습이다. 머리에는 연꽃을 쓰고, 가녀린 얼굴에 작은 얼굴, 그리고 긴 치마를 입고 있다. 길상사 개산당시 천주교 신자인 조각가 최종태가 만들어 봉안을 하였다는 석상이다.

 

이 보살상은 종교간 화해의 염원을 담긴 관음상이라고 한다. 눈을 머리에 뒤집어 쓴 관음보살의 모습은 하얀 연꽃을 머리에 쓴 성모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여쁜 자야를 닮아 보이기도 하다. 자야는 석상으로 변하여 아직도 백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의 시처럼 자야는 이렇게 눈이 쏟아지는 날 어데서 흰 당나귀라도 타고 백석이 나타나면 좋아서 응앙응앙 울면서 백석의 품에 앉기고 말 것이다. "내 사랑 백석!" 하면서 말이다. 여행자는 자야를 닮은 관음보살님께 합장을 하고 폭폭 빠지는 눈밭을 걸어 길상사에서 내려왔다.  (▶자야를 닮은 관음보살상)

 

 

*참고자료:내 사랑 백석(김자야, 문학동네)/길상사 홈페이지)

 

(눈이 지독히도 내리던 날 길상사에서 글/사진 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