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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역사문화공원]잉카의 성벽을 연상케하는 서울성곽과 이간수문

찰라777 2010. 2. 5. 10:55

 

잉카의 성벽을 연상케하는 서울성곽과 이간수문(二間水門)

-일본 왕세자의 결혼기념식으로 사라졌던 서울 성곽의 화려한 복원

 

 

 ▲구 동대문운동장에서 발견 복원된 이간수문. 뒤의 사람과 비교하여 보면 돌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있다.. 

 

▲돌을 쌓아 올리는 축조기술이 촘촘하고 정교하여 잉카의 성벽을 연상케한다.

 

 

서울시 초청으로 블로거 기자단과 함께 동대문 운동장에 새로 복원된 이간수문(二間水門)과 서울 성곽 등을 둘러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새로 복원된 이간수문과 성곽의 거대한 돌과, 축조 기술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거대한 돌을 연마하여 촘촘히 쌓아 올린 모습을 보는 순간 잉카의 마추픽추 성벽을 연상케 한다. 일설에 의하면 우리 한민족들은 고대에 베링해협을 건너 북아메리카를 거쳐 남미로 갔다고 한다. 고인돌을 만든 북아메리카 인디언들과 남미의 잉카, 마야 문명인들은 바로 우리 한국인들이라는 것이다.

 

남미의 원주민들에게서 발견된 몽고반점 등이 이를 유전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라는 것. 또한 북남미의 원주민들이 사용했던 절구, 방아, 짚신, 망태, 대금, 피리 등이 우리 한민족이 사용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백두산 여행 시 돌아본 집안과 환인에 남아있는 촘촘하게 쌓아올린 "ㄷ"자 형의 고구려 성과 장수왕릉은 고대부터 우리민족의 성곽 축조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히로히토 왕세자의 결혼식기념으로 사라진 서울 성곽 복원의 의미

  

▲복원된 123m의 서울 성곽. 서울 도심에서 가장 가까지 볼 수 있는 성곽이다. 

 

▲히로히토 왕세자의 결혼식기념으로 경성운동장이 건설되는 바람에 사라졌다가 복원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의 성곽 

 

 

서울시는 2006년부터 동대문디자인프라자(Dongdaemun Design Plaze & Park, DDP)를 짓기 위해 동대문운동장을 허물다가 서울성곽을 비롯하여 문화재를 대거 발굴하게 되자, 공원설계를 변경하여 역사문화공원으로 변경하기에 이르렀다.

 

조선시대 태조 때부터 수도방위를 위하여 축성된 서울성곽 중 동대문운동장구간은 군사훈련과 치안을 담당하던 하도감(下都監)과 훈련원이 있던 지역이었다. 그런데 이 성곽은 일제가 조선침략을 본격화하던 1926년 히로히토 일본 왕세자의 결혼식을 기념하기 위하여 조선시대의 성곽을 허물고 경성운동장(동대문운동장 전신)을 세우면서 중요한 역사적 유물이 사라져 버렸다.

 

 

 

 

▲공사중 발굴괸 조선시대의 도자기, 아구잉 등유물

 

 

다행히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공사를 하던 중 문화재발굴조사를 통해 이간수문과 치성 등 매몰되었던 서울성곽일부가 드러났다. 또한 야구장 및 축구장 부지에서는 하도감 터를 비롯한 조선전기와 후기 건물지 유구 44기와 조선백자와 분청사기 등 조선 전기에서 일제강점기에 때의 도자기 등 주요 유물 1,000여점이 출토되었다.

 

태조 때부터 시대별로 쌓아올린 성곽 흔적을 알 수 있어

 

특히 동대문운동장구간에서 발굴된 서울 성곽은 265m로서 이 중에는 도성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물을 빼기 위한 홍예 구조의 이간수문(二間水門)과 서울성곽에서 최초로 확인된 방어시설인 치성(稚城) 1개소가 포함돼 있는 142m 구간을 정비복원하고 성곽이 멸실된 123m구간은 추정성곽선이 지적도에 있어 이를 기준으로 사라진 성곽을 복원하였다.

 

 

▲서울 성곽과 서울 4대문 흔적  

 

 

 

▲ 서울 성곽은 총 18.2km 중 약 13km가 남아 있다.

 

 

서울성곽(사적 제10호)은 조선 태조 때 수도방위를 위해 축성돼 부분적 개축과 보수를 통해 대한제국 때까지 이어져 왔으나, 일제 강점기때 많은 부분이 훼손되어 총 18.2km 중 약 13km만 남아있다.

 

이번에 복원된 성곽부분은 태조, 세종, 숙종이후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시대에 지어진 부분들이 섞인 채로 발굴되어 각 시대별 축성기법을 살려 복원되어, 시민과 관광객들은 조선 전기부터 후기 시대적 상황과 역사성, 조상들의 지혜를 한눈에 보고 체험하는 유익한 기회를 갖게 되었다.

 

 

 

 ▲태조 때부터 시대별로 알아볼 수있는 서울성곽. 자연석-태조시대, 장방형-세종시대, 정사각형-숙종 이후

 

태조 5년(1396년)의 성벽은 토성과 함께 큰 메주만한 크기의 자연석을 다듬어 쌓았고, 세종 4년(1422년)의 성벽은 장방형 돌을 기본으로 하면서 사이사이에 잔돌을 섞어 쌓았으며, 토성을 모두 석성으로 교체를 하였다. 한편 숙종 30년(1704년)의 성벽은 2자x자의 석재를 정사각형에 가깝게 규격화하여 성곽 전 구간 성벽을 개축하여 튼튼하게 쌓아올렸다.

  

 

복원된 123m 성곽, 서울 도심에서 보행체험 가능

 

흔적 복원한 멸실 구간 123m은 보행이 가능하도록 하여 조선의 역사를 체험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이간수문(二間水門)은 보는 사람마다 놀라움과 감탄사를 연발한다. 남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두 개의 수문을 통해 흘러가게 가도록 돌로 축성을 하여 놓았는데, 그 돌의 크기가 엄청나게 크다.

 

 

 ▲문 가운데는 뱃머리 모양으로 유연하게 다듬어져 물이 잘 흘러가게 만들어 놓았다.

 

▲돌의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돌 사이에 뚫어 놓은 구멍. 이 사이에 나무를 끼어 문을 만들었다.

 

 

 

▲복원된 이간수문에 물이 흘러가게 복원을 한다면 역사적인 가치를 더욱 현장감있게 느끼게 될 것이다.

 

 

양쪽 문 가운데는 물의 마찰을 최소화하여 유연하게 흘러가도록 선박모양으로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어 우리조상들의 우수한 건축기법을 엿볼 수 있다. 돌의 크기와 축조 방법은 마치 고대 잉카의 공중도시인 마추픽추의 성곽을 연상케 할 정도로 정교하다. 복원한 성곽 중 진한 회색 돌은 조선시대부터 원래 있었던 돌이고, 옅은 부분은 새로이 만들어 축조한 것이다.

 

중요한 역사적인 체험지로 부상한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일본인들이 신처럼 받들던 히로히토 천황은 1989년 1월 7일 피를 토하고 죽었다. 당시 천황의 <토혈사태>는 일본인들에게는 1946년 1월 맥아다 장군의 지시로 히로히토가 <나는 신이 아니고 인간입니다>라고 했던 대국민 방송에 맞먹는 제2의 충격적인 인간선언이었다고 한다.

 

 

▲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이제 일본인들이 신처럼 떠받들던 히로히토와 그의 결혼식 기념으로 건설된 치욕의 동대문운동장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원래의 있었던 서울성곽이 일부나마 복원된 것은 퍽 다행한 일이다. 동대문은 지금 공사가 한창이다. DDP가 새로 완성이 되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은 서울의 중요한 역사 체험의 현장이 될것이다.

  

마침 동대문문화역사공원 이벤트 홀에서는 지난 해 12월 23일부터 <칠백년 동안의 말걸기>란 제목으로 서울성곽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회에서는 시대별로 서울성곽의 구조와 축성기법을 사진과 함께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어, 성곽을 통해 정도 서울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서울성곽은 서울의 동서남북에 낙산, 인왕산, 남산, 북악산 등 네 개의 산을 끼고 축조되었다. 낙산은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할 당시 좌청룡의 상징으로 삼은 산으로 그 끝자락에 어질 "仁"을 상징하는 흥인지문(興仁之門)이 있다.

 

인왕산은 조선 초에 서산이라고 불렀으나 세종 때부터 인왕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도성을 세울 때, 인왕산을 우백호로 삼았다. 남산은 본이름이 목멱산(木覓山)인데, 목멱산이란 옛말의 '마뫼'로 곧 남산이란 뜻이다. 조선 초 왕도의 위곽을 이루어 그 능선을 따라 성벽이 쌓여졌으나, 오늘날은 서울 중앙에 있으면서 서울에서 가장 넓은 공원역할을 하고 있다.

 

북악산은 조선의 주산으로 경북궁 북쪽에 솟아있고, 일명 백악산이라고도 한다. 성벽이 능선을 따라 잘 보존되어 있고, 4소문의 하나인 창의문이 서쪽 산기슭과 인왕산 사이에 있다.

 

 

▲주변의 재래상가와 함께 세계 디자인 허브와 역사체험현장으로 새롭게 부상하는 동대문문화역사공원

 

 

시간과 공간을 넘어 우리의 삶 속에 공존하는 서울 성곽은 역사 도시서울, 생태도시 서울, 문화도시 서울의 정체성을 살리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훼손된 흥인지문~광희문 등 나머지 구간을 복원을 하고 동대문의 이간수문 등 도성에 물이 흐르게 하여  옛 자취를 완전히 복원한다면, 서울은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페루의 마추픽추 못지않게 성곽을 따라 트레킹을 할 수 있는 세계적인 관광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