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방이 한 칸뿐인 가난한 통나무집에서 태어난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18개월 동안 순회 교사로부터 수업을 받은 것이 정식교육의 전부였다. 그는 대부분 스스로 홀로 공부를 하여 24세에 변호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31세에 파산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는 선거에서 패했다.

 

 

34세에 그는 다시 파산했고, 35세에는 첫사랑의 여인을 땅에 묻어야 했다. 44세, 46세, 48세에 선거에 연속 도전했으나 패했다. 그는 누가 보아도 한심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52세에 대통령에 당선되어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이름은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이다.

 

 

그가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삶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도 위대해지기 전까지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비난에 상처를 입었을 것이고, 칭찬에 마음이 들뜨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삶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과거와 비교하여 언제나 자기 자신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며 ‘하고 싶은 일’을 기꺼이 해냈다.

 

 

그 누구의 비난도 아랑곳 하지 않고 줄 곳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냈다. 그는 아무리 어려운 난관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지속 했다. 그리고 마침내 노예해방이란 위대한 일을 해내고 대통령 임기 중에 암살당했다.

 

 

내 주변에는 자기가 좋아 하는 일을 70이 넘도록 하시는 분들이 있다. 청년시절 한국산악회 마칼루 학술원정대의 학술요원 참여했다가 네팔과 인연이 되어 30년이 넘도록 매년 네팔에 의료봉사를 하는 분이 있다. 그리고 17년동안 네팔 화가들을 한국에 초청하여 전시회를 열고 있다. 또한 <네팔문화시리즈>를 네팔 민화와 함께 책으로 엮어 매년 출판도 하고 계신다. 선생님은 이 시리즈를 5권까지 펴냈는데, 10권원까지 출판을 할 계획이다. 이 일들은 결코 돈이 되는 일은 아니다. 그냥 그 일이 좋아서 할 뿐이다. 그분이 바로 가족아카데미아 네팔캠프를 이끌고 있는 이근후(이화여대 명예교수)이다.

 

 

또 한 분 여인이 있다. 그녀는 초등학교 교단에 38년간 근무를 하고 명예 퇴임을 한 후 60을 넘긴 나이에 <섬진강 소견>이란 시조로 뒤 늦게 시조시인으로 등단을 했다. 그녀는 빠르게 지나가고 있는 여생을 붙잡을 수 없어 백년의 긴 숨결을 꿈구며 노래로 엮어냈다고 했다.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그녀는 70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하동송림>이란 작은 카페를 열어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있다. 회원들이 카페에 올린 글을 모아 <하동송림>이란 카페문집을 내기도 했다. 그녀의 이름은 오영희 선생님이시다.

 

 

달리는 기차에 홀로 앉아 나는 왜 갑자기 링컨의 생애를 생각하고, 이근후 선생님과 오영희 선생님을 생각하게 되었을까? 그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며 내 인생을 달려왔을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사람들은 매년 연말연시가 되면 무엇인가를 해보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한다. 그러나 그 일이 진심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남을 의식해서, 남도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으로 하다간 금방 싫증이 나서 집어치우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작은 일'을 하고 싶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나는 지칭 오지여행가이다. 어쩌다가 피할 수 없는 사유로 10년이 넘게 배낭 하나 걸머지고 아픈 아내와 함께 지구촌의 오지를 쏘아다녔다. 나는 지구촌의 오지를 카메라에 담아 여기 블로그에 올려댔다. 그냥 내가 좋아서 올린 것들이다. 그 여행기를 보고 대리 만족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고 보니 나는 오래 전에 사진기 하나를 들고 세계 오지를 여행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것이 우연치 않게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나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표정을 담기 위해 호남선열차에 몸을 싣고 있다. 여러가지 자질구레한 연말연시 행사가 있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을 물리지치고 목포로 가고 있다. 그런 모임들은 의례 매년 있는 일이고, 체면과 걷치례로 힘만 빼는 행사들이다.

 

 

거기에 비해 아이들의 티없는 표정을 카메라에 담는 일은 얼마나 에너지가 넘치고 흥분되는 일인가! 나는 내 작은 재능을 아이들을 담는 봉사를 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있는 것이다. 재잘거리는 아이들을 생각하니 작은 흥분과 설렘이 인다. 나는 앞으로도 남을 의식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나는 늘 낯선곳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 늘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 이슬처럼 싱그러운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 내일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작은 흥분을 느끼며 아침해를 맞이하고 싶다. 나는 그러기 위해서 지금 목포로 가는 기차를 타고 홀로 여행을 떠나고 있다.

 

 

 

기차를 타고 홀로 여행을 떠나다

 

 

12월 20일. 월요일. 용산역 9시 20분 발 목포행 KTX에 홀로 몸을 실었다. 기차가 용산역을 스르르 미끄러져 나간다. 곧 이어 한강철교가 나오고 여의도의 빌딩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모습이 잠깐 비추이더니 곧 사라지고 만다.

 

 

나는 의자에 기대어 차창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본다. 기차를 타면 어쩐지 마음이 차분해 진다. 홀로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면 생각의 산파가 스멀스멀 열린다. 수많은 생각들이 강물처럼 밀려온다. 그러나 그 생각들은 곧 풍경 소에 묻히어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기차여행은 좋은 것이다.

 

 

나는 의좌를 뒤로 제치고 비스듬히 누워 창밖에 어리는 풍경을 바라본다. 아파트와 빌딩이 지나가고 이내 하늘이 보인다. 도심을 벗어나자 눈 덮인 시골풍경이 아름답게 밀려온다. 눈 덮인 나무와 산, 그리고 들판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작은 흥분에 휩싸인다.

 

 

이동식 매점에서 진한 커피와 쿠키를 샀다. 달리는 기차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은 참으로 커피의 맛을 한껏 더해준다. 진한 커피냄새를 코로 깊숙이 들어 마시며 한 모금 입에 담았다가 목으로 넘긴다. 나는 차창에 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고 내 인생에 다가올 미래를 생각해 본다.

 

 

지나간 한 달은 나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1년 반 동안 살았던 지리산 섬진강변 집에서 DMZ근처 임진강으로 이사를 했다. 정들었던 섬진강변을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집주인이 이사를 오는지라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또 임진강변에 새로운 보금자리가 생겼다.

 

 

세상의 이치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과감히 버리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다. 섬진강에서 쫓겨나다시피 이사를 하게 된 소식을 듣고 블로그의 독자가 임진강에 있는 집을 선 듯 나에게 빌려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섬진강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다시 임진강으로 이사를 했다. 세상에는 이런 일이 나에게도 있다니! 그래서 세상은 또 살맛이 나는가 보다.

 

 

나는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철로의 이음새를 달리는 덜컹거리는 기차바퀴 리듬소리를 듣다가 그만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기차여행은 여행은 무거운 것들을 내려놓고 마음을 가볍게 해서 좋다. 특히 리드미컬하게 덜컹거리는 기차 바퀴 소리는 아스라하게 들리는 자장가 역할을 톡톡히 한다.

 

 

눈을 떠 보니 익산 어디쯤인 것 같다. 꽤 오래시간을 잔 것이다. 아마 지난 주 내내 이사를 하느라 피곤했던 모양이다. 날이 흐리다. 구름이 잔뜩 낀 모습은 곧 눈이라도 내릴 기세이다. 눈 내리는 들판을 기차를 타고 겨울여행을 떠나는 것은 겨울여행의 백미이다. 더구나 혼자 떠나는 여행은 더욱 그렇다.

 

 

내가 목포로 홀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처남의 유치원 행사에 사진과 비디오를 찍기 위해서이다. 유치원에서는 3일간의 영어 뮤지컬과 1일간의 크리스마스 행사를 한다. 나는 그 아이들의 공연을 카메라와 캠코더에 담아주는 봉사를 하러 가고 있다. 아이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역시 작은 흥분과 설렘이 인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표정을 카메라에 하나하나 담는 것은 매우 큰 즐거움이다.

 

 

유치원에는 원어민 선생이 몇 명 있다. 이번에는 아르헨티나에서 새로 온 원어민 선생에 있는데 그 원어민에 대한 비자 문제와 거소도 해결해 주어야 한다. 사진을 찍는 것은 나의 취미이자 내 작은 재능이다. 원어민 선생을 관리하는 것도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내 작은 재능이다. 이 일들은 내가 좋아 하는 일이다.

 

 

내가 좋아 하는 일들을 한다는 것은 내 인생에 작은 기쁨이다. 비록 링컨 대통령이 했던 것처럼 위대한 일은 아닐지라도 내 작은 재능을 봉사할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나를 즐겁게 한다. 호남선의 종점 목포역에서 내린 나는 택시를 타고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들려오는 유치원으로 도착했다. 아이들이 재잘거림이 가슴으로 흘러 들어온다. 아아, 나는 아이들의 표정을 담는 즐거움에 가볍게 흥분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