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KTX에서 만난 멋진 명품남
아이 안은 엄마에게 선듯 자리를 양보하는 아름다운 선행
▲KTX를 타고 고향 가는 길
설날 연휴가 끝난 다음 날인 25일 오후 5시 30분, 아내와 나는 목포에서 용산으로 오는 KTX 기차를 탔습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목포역에는 고향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귀경객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열차 좌석을 보니 18호차 1B, 1C석으로 맨 뒤쪽 끝이었습니다. 설날 일 주일 전에 예약을 했는데 마지막 턱걸이로 좌석을 잡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드디어 열차가 출발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만원이 된 열차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찼는데, 이상하게 내 옆 좌석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앞서 22일 오후 9시 40분, 용산에서 목포로 가는 KTX를 탔을 때에도 옆자리 두 좌석이 비어 있었습니다.
우연치고는 희한한 우연... 누가 기차를 놓쳐 버렸을까?
용산역에서는 기차가 막 출발했는데 아이를 안고 달려오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목포까지 오는 내내 그 자리가 비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 자리는 기차를 놓쳐 버린 그 부부의 자리임이 틀림없는 것 같았습니다. 기차를 놓친 그 부부 마음이 얼마나 안타깝고 애석했을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저려오는 것 같습니다.
▲설 연휴 만원이 된 KTX열차에 빈 좌석 두개. 누가 기차를 놓쳤을까?
그런데 목포에서 서울로 가는 열차에서도 옆자리가 비어 있다니, 우연치고는 좀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역에서 승객이 탈 좌석이거니 생각을 했는데, 송정리역에 도착을 했는데도 그 자리에는 승객이 앉지를 아니했습니다. 누군가 또 기차를 놓쳐 버렸을까?
그때 어린아이를 안은 젊은 부부가 우리 쪽으로 오더니 열차 밖 난간에 신문지를 깔고 앉았습니다. 아마 좌석을 확보하지 못하고 입석표를 산 모양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바닥에 앉기가 싫었는지 울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부부는 우는 아이를 번갈아 가며 안아주고 있었습니다. 사실 열차에서 장시간 아이를 안고 가기란 쉽지가 않은 일입니다.
"여보시오. 여기 좌석이 하나 비어 있는데 우선 좀 앉으시지요."
나는 문을 열고 난간에 있는 젊은 부부에게 옆자리에 앉기를 권했습니다. 한사코 괜찮다는 엄마에게 비어 있는 자리이니 앉으라고 재차 권하자 엄마는 아이를 안고 내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미처 예약을 하지 못하신 모양이지요?"
"네, 갑자기 서울에 갈 일이 생겨서요."
"아, 그렇군요. 급한 볼일이라도 생긴 모양이지요?"
"네, 시아버님이 갑자기 수술을 하게 되어 부랴부랴 올라가는 길이거든요. 아무튼 고맙습니다."
"아, 네. 거 참 안됐군요. 뭐 내 자리도 아닌 데요. 좌석 주인이 올 때까지 편히 앉아 가십시오."
▲열차에서 바라본 풍경
장성역을 지났지만 옆자리에 승객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내와 나는 도시락을 시켜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하는 동안 열차는 정읍을 지나 김제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앞쪽에서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승객이 성큼성큼 걸어왔습니다. 나는 그가 좌석의 주인이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는 좌석표를 들고 우리 앞에 서서 자리를 비워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큼성큼 나타난 빈자리 주인... 그의 선택에서 시작된 아름다운 풍경
"미안하지만 제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만 좀 기다려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요."
아기는 잠을 자고 있었는데 아기의 엄마가 안쪽에 앉아 있어 식사 도중에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내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잠시 기다려 주라는 부탁을 했더니 그는 쾌히 승낙을 하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내가 식사를 마치자 아기의 엄마는 자청해서 황급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습니다. 좌석의 주인은 자리에 앉더니 노트북을 꺼내 들었습니다. 아마 무언가를 검색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잠시 미안했습니다. 내가 식사 도중이어서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런데 한 가족이 아니었던가요?"
"네, 아마 갑자기 서울에 일이 생겨 가느라 좌석표를 사지 못한 것 같더군요."
"아, 네…."
그는 나에게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펼치려고 했던 노트북을 다시 접어서 가방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를 부르더니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습니다. 괜찮다고 극구 사양하는 엄마를 그는 기어코 앉으라고 누차에 권해서 아이 엄마를 다시 그 자리에 앉도록 했습니다.
"참, 이거 고맙군요."
"아니요. 저도 저만한 아이가 있거든요."
"아, 그래요. 그래도……."
▲열차에서 바라본 풍경(김제평야)
옆에 앉은 나도 고맙다는 인사를 하자 그는 웃으며 난간으로 나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잠이 곤하게 든 아이를 안고 미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이의 아빠가 어디론가 가더니 손에 과일과 음료수를 사 들고 왔습니다.
"여기 앉아서 식사를 하시지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계속 앉기를 권하자 아이의 아빠는 내 자리에 앉아 잠시 요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다시 어디론가 가더니 '칸OO'란 캔 커피를 몇 개 들고 왔습니다.
"선생님, 커피 한잔하시지요."
"아니,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아이의 아빠는 밖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자리의 주인에게도 캔 커피를 건넸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훈훈하게 느껴보는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나는 갑자기 인도에서 탔던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붐비는 기차를 떠올렸습니다. 그 기차에 비하면 얼마나 여유롭고 고급스러운 기차인가!
"여보, 저 분과 좀 교대해서 앉아요."
"그렇지 않아도 생각 중이었는데."
나는 캔커피를 들고 밖으로 나가 그에게 자리에 앉기를 권했습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내가 훨씬 젊은데요. 상관 마시고 편히 앉아서 가십시오."
"아니, 그래도 한 20~30분씩만 교대해서 앉아 가면 훨씬 낫지 않겠소? 나도 앉아만 있으니 허리가 아파서 그래요."
그러나 그는 자리에 앉기를 극구 사양하며 그냥 그대로가 편하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와 잠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다시 열차 안으로 들어와 아이의 아빠에게 자리에 좀 앉기를 권하려고 했는데, 아이의 아빠는 그곳에 없었습니다. 아마 미안해서 다른 곳으로 피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 사이에 기차는 어느덧 서울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기차가 광명역에 정차하자 그 젊은이는 아무 말 없이 내리더니 표표히 어둠 속이 사라져 갔습니다. 아이의 엄마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했으나 기차는 이미 출발을 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훈훈한 사람의 정... 그 젊은이가 고맙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훈훈한 사람들의 정을 느끼는 여행이었습니다. 사람은 가진 것을 남에게 줄 수는 있으나, 몸과 마음을 손수 바쳐 함께 고통을 나누기는 힘든 일입니다. 그 젊은이는 자신이 편하게 앉아서 올 수 있는 자리를 아이를 안은 엄마에게 양보하고 2시간 동안 난간에 쪼그리고 앉아 온 것입니다.
이런 일은 말은 쉽지만 사실 행동으로 옮기기는 썩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몸과 마음으로 고통을 분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어둠 속으로 표현히 사라져간 그 젊은이의 따뜻한 가슴이 생각이 나서 빙그레 웃고 있습니다.
자리를 양보한 그는 아무렇지도 않는 듯 사라져 갔고, 아이의 엄마는 고맙다는 말을 전하지는 못했지만 내내 고마운 마음을 안고 살아가겠지요. 아름다운 선행이란 이렇게 대가를 바라지를 않고 그냥 주는 마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