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 우리는 국회는 여의도로 떠나고 서울대학교는 관악산 밑으로 떠났을 뿐인데 그것을 어떻게 서울에서 떠났다고 말씀하십니까?”
이런 질문에 대하여 육관은 자세한 설명을 계속했다.
“그대가 말하는 행정구격상으로 볼 때는 영등포와 강남‧강서 등이 모두 서울이라 하지만 풍수지리상으로는 한강 북쪽만을 서울이라 하고 있어. 왜냐하면 풍수지리에서는 산줄기를 그 기준으로 삼는데 한강 북쪽은 저 백두산에서 뻗어내린 산맥이 함경도를 거쳐서 삼각산으로 내려온 줄기라 이 말이요.
그러나 한강 남쪽에 있는 관악산이나 청계산은 저 속리산 천왕봉에서 뻗어내려서 북쪽으로 올라온 차령산맥의 끝이여. 그러니 강북과 강남은 전혀 그 산줄기가 딴판인 것이여. 이런 까닭에 풍수지리상으로 논할 때에는 강남은 서울이 아니라고 취급하지. 그러므로 국화와 서울대학교는 서울을 떠난 것이 되는 것이여.”(‘터’ 196페이지)
재학생 28,018명
교원 5551명
어학연수생 2,629명
외국대학생 293명
16개 단과대학
1개 일반대학원
9개 전문대학원
211개 건물
세입 4159억원
세출 7054억원
130만여평의 관악산 자락에 자리 잡은 서울대학교는 하나의 거대한 대학도시를 이루고 있다. 육관도사의 말처럼 서울대학교는 서울에서 밀려나 활활 불타오르는 관악산 자락에 둥지를 틀었다. 동숭동에 위치한 서울대문리대생들의 잦은 반정부 데모로 유신정권에 치명타를 입히는 학생들긍 잠재우기 위해 풍수사들을 동원하 관악산 자락에 터를 잡고 1975년 3월 이전을 한 서울대학교는 속리산 천황봉에서 출맥한 한남정맥이 마무리 짓는 종단처에 위치하고 있다. 관악산 끝자락 계곡수를 껴안고 들어선 서울대 터는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서울대생들의 김을 빼기 위해 지리적으로 불편한 서울의 안산(案山)인 관악산 자락을 마구 파헤치고 깎아 난개발을 하여 서울의 구석에 처박아 놓은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건물이 북향, 또는 서향을 취하고 있어 음산하게 보이며, 관악산과 삼성산 사이의 계곡에서 발원한 신림천은 서울대 서쪽을 휘돌아 도림천으로 흡수된다. 이러한 터는 풍수지리상으로 구성원들의 이기심을 조장한다는 것. 왕관바위능선에서 바라본 서울대는 양 계곡에 답답하게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서울대를 뒤로 하고 연주대를 향해 서서히 발길을 옮겼다.
왕관바위능선을 따라 올라가는 등산로는 기기묘묘한 바위들로 자연적인 갤러리를 이루고 있다. 묘한 바위들의 모습에 비루하 않게 등산을 할 수 있는 길이다.
처음에 편안하게 시작된다
돌탑이 여기저기 보인다.
여기서부터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잠시 숨을 고르고...
바로 암반을 타게 된다.
침묵의 바위?
토끼바위
멋진 분재
깃대봉
태극기를 꼽지않으면 안될까?
글로브
시루떡
녹지않는 눈
드디어 관악산 정상에 오르다.
'국내여행 > 찰라의세상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악산 정상에 웬 축구공이? (관악산 기상레이더) (0) | 2012.03.26 |
---|---|
죽순바위 위에 세워진 연주대 (0) | 2012.03.25 |
관악산 자운암과 미륵마애불 (0) | 2012.03.23 |
강남세브란스병원 <작은 음악회> (0) | 2012.03.23 |
베란다의 봄 (0) | 2012.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