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프의 보우강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의 촬영지
▪ 마릴린 몬로가 노래를 불렀던 강
거기 강이 있었다. 아름답고 푸른 밴프의 보우 강!
몸에 착 붙는 청바지에 긴 금발 머리, 빨간 루즈를 짙게 바른 입술, 터질 것만 같은 풍만한 가슴..... 마릴린 몬로가 전성기를 구가 할 때 출연했던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의 로케 장소가 바로 이 보우강이다.
캐네디언 로키의 설경이 그림처럼 펼쳐진 밴프의 중심에는 아름다운 보우 강이 수정처럼 맑게 흘러가고 있었다.
‘돌아오지 않는 강’이란 이름은 흐르는 물살이 너무 거세 다시는 거슬러 올라 갈수 없어 인디언들이 붙인 것.
이 강을 따라 흘러 내려가며 사랑이 점점 무르익어 가는 낭만이 깃든 영화. 마릴린 몬로가 긴 금발머리를 휘날리며 어디선가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만 같은데 도도히 흐르는 강은 이를 허락 않는다.
알파인의 도시 캘거리를 거쳐 캐나다 제일의 국립공원 밴프에 도착한 것은 오후 5시. 스프링 호텔의 로비에 선 아내와 나는 말없이 흘러가는 보우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밤새 싸움을 한 부부라 할지라도 이 스프링 호텔의 로비에서 아름다운 보우 강을 바라본다면 따뜻한 봄볕에 눈이 녹아내리듯 낭만적이 사랑이 움터 오르리라!
처녀림으로 둘러싸인 강을 끼고 그림처럼 펼쳐진 스프링 골프장의 부드러운 잔디, 꽃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거리,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설경……. 이러한 아름다움을 보고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들은 정말로 냉혈 인간들이리라!
“백구를 날려도 저런 곳에서 날려야 하지 않을까?”
“당신 손이 근질근질 하겠군요?”
“나도 사람인 이상…….”
“그럼, 내일 시간도 쫀쫀하니 한번 날려보세요.”
“진정으로 하는 말이요?”
“내가 언제는 마음에 없는 말을 하던가요?”
“그럼 오늘 저녁에 로지로 돌아가서 전화를 한번 해봐야 겠군.”
골프를 치는 사람이라면 저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보며 어찌 만년설봉을 향해 백구를 날려보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지 않으랴!
“그럼, 일단 로지로 가서 밥을 지어 먹지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우리는 밴프 시내의 식료품점에 가서 3일간 해먹을 찬거리를 잔뜩 사왔다. 그래도 다 해 봐야 30불도 안되었다. 쌀도 샀다.
“나는 호화로운 스프링 호텔보다는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는 이 로지가 더 좋아요!”
“쌀밥을 해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이거지?”
“그도 그렇고, 이 숲 속의 통나무집이 훨씬 더 운치가 있어요.”
우리들의 숙소는 시내에서 스프링 호텔 건너편의 산속을 한참을 들어가 산 중턱에 있었다. 셔틀버스가 캐나다 돈으로 단 1불이면 마음대로 시내를 오갈 수 있어서 교통 상으로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우리나라 설악산의 어느 콘도에 와 있는 기분. 주방용품, 그릇, 가스렌지 등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었다. 심지어 도마까지 있었다.
“아, 쌀밥을 먹고 나니 세상에 아무것도 부러운 것이 없네!”
“원이 없다 이거지? 이제 쌀밥타령은 아니해도 되겠구려.”
“그래도 매콤한 된장찌개나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요.”
“안내서를 보니 서울옥이라는 한식집이 있던데, 그럼 내일저녁은 그 집에서 김치찌개를 한번 먹어볼까?”
“좋지요!”
서울옥으로 전화를 하니 마침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한국말이 정겨웠다.
“서울옥이지요?”
“네, 누구십니까?”
“저는 서울에서 온 여행자 입니다. 김치찌개를 하시나 해서요?”
“물론 합니다. 언제 오실건대요?”
“내일 저녁이요. 아, 그리고 혹시 한인들이 치는 골프에 조인을 할 수 있나요?”
“운이 좋으면 할 수 있습니다. 마침 내일 저도 스프링 골프장에서 세 사람이 함께 라운딩을 하기로 되어 있는데, 괜찮으시다면 오시지요. 시간은 아침 7시 30분입니다.”
“아, 네! 제 아내하고 상의를 한 다음에 다시 전화를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막상 전화를 끊고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니 혼자 골프를 치러 간다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아내가 함께 간다면 문제가 없지만, 영어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아내를 홀로 두고 어찌 나 혼자 즐기러 골프를 가겠는가? 아무리 골프가 좋다고 하지만 도리가 아닌 듯싶었다.
“여보, 저, 정말 괜찮아요. 다녀오세요.”
“으음, 골프는 다음에 칠 수 있는 기회가 또 오겠지.”
저녁을 먹은 다음 우리는 다시 1불짜리 버스를 타고 밴프 시가지로 갔다. 밴프의 시가지를 둘러본 다음 우리는 보우강변의 산책로로 갔다. 푸른 잔디가 융단처럼 깔려 있는 강변에는 드문드문 벤치가 놓여 있었고, 연인들이 서로 포옹을 하며 앉아있기도 하였다. 강가를 거닐다가 우리도 어느 벤치에 어깨동무를 하고 앉았다.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아름다운 강가를 걸어볼 수도 없었을 거예요.”
“무시게 그런 말씀을…….”
“정말이이예요.”
“나보다 훨썽 존 사람을 만났을 것인디.”
“저 농담 아니라구요.”
“그럼 다시 태어나도 날 또 만나고 싶다 이거지?”
“정말 그렇다니까요. 그런 당신은요?”
“흐음~ 난 한번 생각을 혀 바야 것는디…….”
“몰라요!”
보우강에 흐르는 강물에 달빛에 부서지고 있었다. 나는 대답대신 아내를 포옹하며 아내의 얼굴에 내 얼굴을 팍팍 비벼주었다.
“사람들이 봐요.”
“할일도 디게 없는 사람들이 있나 보지. 중년의 사랑을 훔쳐보게.”
흐르는 강물이 달빛에 반짝이며 자연의 오케스트라를 연주하고 있었다. 강은 돌아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다시 돌아 올 것이다. 바다로 흘러가며 증기가 되고, 증기는 구름이 되고, 구름은 다시 빗방울이 되어 이 로키산맥에 내리면 강물은 그 때 우리들 곁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 서울옥의 김치찌개
“자 , 나가볼까?”
“골프를 안쳐도 되겠어요?”
“골프가 문제요. 사랑하는 정희 씨가 옆에 있는데. 하하”
“피이~”
오늘 아침엔 7시에 이른 아침을 먹고 카메라를 챙겨들고 보우강으로 다시 갔다. 보우강변 위에는 캐스케이드라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다.
이름도 모를 아름다운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고, 그 꽃들은 밴프 시내의 중앙도로를 향해 정면으로 서 있었다.
“자아~ 꽃들의 정원에서 멋진 모델이 되어 주세요.”
“모델료는 얼마나 줄 건대요?”
“달라는 대로 줍니다.”
정원의 호수에서 보우강의 다리를 향해 포즈를 취하면 누구나 아름다운 모델이 아니 될 수 없는 멋진 풍경이었다.
우리는 일명 ‘캐나다 캐슬’이라고 부르는 스프링 호텔로 가서 고딕스런 호텔경내를 둘러 본 뒤, 설파 마운틴으로 가는 곤돌라를 탔다.
“입장료가 넘 비싸네요!”
1인당 24불을 받는 요금에 아내는 얼굴을 찡그리며 불평을 했다. 그러나 설파 마운틴에 올라야 밴프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곤돌라는 일본의 후지산을 오르는 하꼬네와 비슷했다.
곤돌라를 탄지 15분이 지나니 나무로 된 길이 정상에 있는 휴게소까지 쭉 이어지고 있었다. 로키의 산에는 사람들이 많이 걷는 장소에는 반드시 이렇게 등산로를 나무로 설치해 놓고 있었다. 이는 인간의 발길로 자연훼손을 막고 야생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우리나라도 북한산이나 설악산 등 인간의 발길이 끊임없이 닿는 곳에는 나무로 된 길을 설치하는 것을 고려해 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휴게소의 정상에 오르니 3000m 이상의 설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과연 캐나다 최초의 국립공원답게 빼어난 경치였다.
“헤이 초이! 당신도 왔구려!”
“하이, 마이클! 또 만났네.”
이스라엘에서 홀로 온 마이클을 정상의 휴게소에서 만났다.
“점심 먹었나요?”
“아니요. 조금 있다가 먹으려고 해요.”
“우리와 함께 합시다. 여기 마침 충분한 음식을 준비해 왔소.”
“잠시만 기다려요. 햄버거를 하나 사올 깨요.”
‘이 친구야, 우리 마누라가 준비한 음식 솜씨를 난 자랑하고 싶다 이거여.’ 그러나 외국인들은 거의 절대로 남이 준비한 음식에 손을 대지 않는다. 별도로 초대해서 대접을 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마이클은 콜라와 햄버거를 사가지고 우리 곁으로 왔다.
“마이클! 이것도 좀 먹어봐. 이건 와이프가 준비한 특별요리야.”
“오, 이걸로 충분한데…….”
어제 사온 햄과 야채를 듬뿍 넣은 빵을 그에게 한 조각 내밀었다.
“한국인의 정을 좀 맛 보 시게나.”
“오! 원더풀! 당신 아내는 최고의 요리사요!”
“진따?”
이 애들은 칭찬 하나는 아기지 않고 잘했다. 그는 혼자 산다고 했다. 유일한 취미는 여행. 돈 벌어서 여행 하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라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세계 방방곡곡 아니 간 곳이 없었다.
“담에 한국에도 한번 와봐. 내가 공짜로 재워주고 먹여 줄 깨.”
하여간 그렇게 여행을 많이 한 사람들도 한국을 가 봤다는 사람들은 만나기 어려웠다. 일본, 중국, 태국, 싱가폴……. 아시아는 대강 이렇게들 가보는 것 같았다.
“너무 고맙소! 초이. 다음에 한국에 가게 되면 꼭 초이를 찾으리라.”
다음에 보자는 사람 별 볼일 없는데…….
설퍼 마운틴에서 내려와 우리는 산중턱에 위치한 엎어 핫 스프링 온천(Upper Hot Spring)으로 갔다. 1인당 7불. 야외온천장으로 되어있는 풀장에서 오랜만에 몸을 푹 담갔다. 피로가 뼈 속까지 풀리는 기분.
온천 풀장에서 한국인 목사 부부를 만났는데, 그들은 시애틀에서 그곳까지 차를 몰고 왔다고 했다. 교회의 교인들 10여명과 함께 2박 3일로 왔다는 것.
“돈은 한국에서 벌고, 여행은 선생님처럼 배낭여행을 저렴하게 다니시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이 곳 한인들의 생활은 생각보다는 무척 힘들답니다.”
온천을 한 후 우리는 밴프 중심가에 있는 서울옥으로 갔다. 김치찌개가 생각나서였다. 마침 서울옥 사장이 있었다.
“어제는 전화 미안 했습니다. 오늘 골프는 잘 치셨나요?”
“아, 네. 함께 하셨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아내 혼자 두고 갈 수가 없어서요.”
우거지 국에 김치찌개! 실로 오랜만에 먹어보는 한국음식. 아내는 먹다 남은 김치찌개를 싸달라고 했다. 내일 아침에 재탕을 해서 먹겠는 것.
‘아이고! 마누라야, 재탕은 맛이 없어. 어이 하려고 그걸 다 싸나.’
아내는 그 김치찌개 국물을 랩으로 싸오더니 다음날 아침, 점심, 저녁까지 먹었다. 적당히 신 김치로 끓여서 찌개 맛은 있었다.
“아하, 역시 김치찌개 맛이 최고야!”
행복은 김치찌개로부터 오는가? 지금도 밴프에 있는 서울옥의 김치찌개를 생각하면 입에 군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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