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텃밭일기

숨은그림찾기보다 더 어렵네!

찰라777 2013. 5. 7. 07:31

 

숨은 그림찾기보다 더 어렵네!

-잡초를 베어내고 고추정식을 배우다

 

 

5월 6일 맑음

<꽃받이꽃>의 미소

 

 

잡초의 자라는 속도는 매우 빠르다. 3일전에 깎은 잡초가 벌써 오크상추의 키를 넘기고 있다. 잡초는 가꾸어 주지도 않고 거름도 주지 않는데 왜 이렇게 무성하게 잘 자랄까? 인간이 저 잡초들을 그냥 먹을 수 있다면 구태여 힘들여 농사를 짓지 않아도 될 텐데…

 

 

 

 

"잡초를 좀 더 바짝 잘라 주셔야겠습니다. 요즈음 잡초가 자라는 속도가 점점 빨라져서요."

"네, 그렇군요. 그끄저께 너무 바짝 자른다고 하셔서 중간허리를 잘랐는데 벌써 이렇게 커버렸네요."

"그래서 잡초를 자를 때 마다 지금도 항상 갈등이 생깁니다. 바짝 자를 것인가, 아니면 중간 쯤 자를 것인가 하는 것 때문에 항상 망설이게 됩니다. 장마가 진다거나 성장시기에는 좀 더 많이 잘라주고 가물거나 성장이 느린 시기에는 중간쯤 잘라주고 있어요. 지금은 가끔 소나기가 내리는데다 성장이 빠른 시기이니 좀 더 많이 잘라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잡초를 너무 많이 자르면 보습효과가 나빠진다. 주 작물 곁에 잡초가 어느 정도 남아 있어야 이슬을 머금고 있다가 땅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어느 정도 그늘을 가려서 땅에 적신 물방울을 오래도록 보존할 수 있다. 그러니 잡초를 자르는 것도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오전에는 양파와 오크상추를 심어놓은 이랑에서 잡초를 베어냈다. 3일전에 베어냈던 잡초도 너무 많이 자라 다시 손질을 하여 풀을 잘라주었다. 풀을 자르다가 잡초그늘에서 빵긋 웃고 있는 꽃받이를 발견하였다. 녀석을 자세히 보니 가지와 잎 전체에 잔털이 많이 나있다. 어긋나는 잎겨드랑이에서 5장의 연한 하늘색 꽃이 곱게 피어나고 있다. 꽃받침에 혹 같은 돌기가 촘촘히 나 있는 것이 신기하다. 야, 넌 혹을 달고 다니나?

 

하루 종일 풀을 자르다 보니 풀 속에 피어있는 야생화들을 정말로 자세히 살펴보게 된다. 그냥 바라보면 하찮은 꽃들인데도 오랜 시간 자세히 들여다보니 자생으로 피어나는 야생화들은 참으로 아름답고 위대하다.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아도 이렇게 자생하여 스스로 피어나지 않는가?

 

 

 

 

해땅물농장에서 가장 많은 잡초들은 쇠뜨기, 쑥, 개망초, 크로버, 냉이 들이다. 그 억척스런 잡초들 사이에서 하나씩 발견되는 귀한 꽃들이 나를 즐겁게 한다. 붉은 들현호색도 가끔 보인다. 홍자색 입술모양의 꽃이 옆으로 역이듯 피어있는 자태란 참으로 매혹적이다. 이 세상에 꽃들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나 또한 이 아름다운 야생화를 바라볼 수가 없다면 잡초를 베어내는 일에 금방 지치고 지루해 지고 말 것이다.

 

오후에는 적경치커리, 봄배추를 심어놓은 이랑에서 잡초를 베어냈다. 풀 속에 묻혀 있는 적경치커리를 가려내는 일은 정말 힘들다. 풀인지 치커리인지 여간 분간하기가 어렵다. 적경치커리를 찾아내는 일이 숨은 그림을 찾아내기보다 더 어렵다.

 

그리고 너무나 연해서 조금만 스쳐도 잎이 떨어져 나가고 만다. 이건 정말 수행하는 마음이 아니면 가려내기가 힘들다. 왼손으로 적경치커리에 둘러싸여 있는 잡초를 하나하나 골라내서 주변을 자르지 않으면 몽땅 자르고 만다. 그렇게 조심을 했는데도 간혹 한두 개의 잎을 자르게 된다.

 

 

 

 

봄배추는 구멍이 숭숭 나있다. 벌레들이 배추를 뜯어 먹고 있는 것이다. 배추에서 서식하는 벌레의 종류도 여러 가지가 있다. 전형적인 배추벌레는 푸른색을 띠고 있다. 그런데 오늘 발견한 벌레는 적갈색 벌레이다. 녀석은 진드기처럼 잎에 달라붙어 즐거운 식사를 하고 있다.

 

 

 

 

"농약을 치지 않고는 벌레들을 도저히 다 잡아 낼 수 없어요. 그래서 벌레 잡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러다 보니 절반은 벌레에게 보시를 하고 나머지 절반을 사람이 먹는 거죠."

"하기야 벌레도 먹지 못하는 배추를 사람이 어떻게 먹을 수 있겠어요. 그래도 배추들이 싱싱하게 자리를 잡고 있군요."

 

해땅물 농장은 어떤 농약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배추 같은 채소는 벌레가 절반을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벌레들이 절반을 먹어도 배추는 싱싱하게 자라나고 있다.

 

 

고추정식을 배우다

 

풀을 베고 있는 내 옆에서 홍 선생님은 고추모종을 하고 있다. 고추를 정식하는 방법은 가지를 정식하는 방법과 비슷하다. 호미자루 한 자루 반 길이로 구멍을 파고 오줌을 부은 다음 고추를 심고 풀로 덮어주고 있다. 홍 선생님은 채소 종자를 고르고, 육묘를 하고, 정식을 하는 작업은 남을 시킬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홀로 그 작업을 다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텃밭에 고추 10본을 5월 2일날 심었다. 요즈음은 고추를 심는 계절이라 연천군 곳곳에는 농부들이 고추를 심느라 부산하다. 고추는 연천의 특산물의 하나이기도 하다.

 

 

 

 

 

 

 

 

고추모종 역시 매우 튼튼하다. 파종에서부터 정식까지 60일 정도를 파종-이식과정을 거쳐 큰 포트에 육묘를 해서 정성껏 키워냈기 때문이다. 1년 중 10개월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했다. 2월부터 어떤 종자를 심을지 고민을 하며 종자를 선택해야 하고, 2~3월경에 육묘를 하거나 직파를 해야 하고, 4~6월경까지는 채소의 정식과 모내기를 한다. 7~8월경 장마철에는 매일 잡초를 베어내야 한다. 9~11월까지는 수확을 하느라 바쁘다. 그러고 나면 12월과 1월 두 달 동안 시간이 좀 나는데 이때에는 한해의 농사를 정리하고 다음해에 지을 농사에 대하여 연구를 하느라 쉴 새가 없다고 한다.

 

"처음에 농사를 지을 때에는 일의 양을 정하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계획했던 대로 진도가 나가지를 않을뿐더러 마음이 조급해지고 빨리 지치고 말더군요. 4~5년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절대로 서두르지 않게 되었어요. 다만 천천히 해도 꾸준히 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지요."

 

겨우 적경치커리와 봄배추 한 이랑의 풀을 베는데 나는 오후 한나절을 다 소비하고 말았다. 그러나 홍 선생님 말대로 5월 1일부터 풀을 베기 시작했는데 벌서 몇 이랑을 베어내고 있었다. 문득 어린 시절 어머님 말씀이 생각났다.

 

"사람의 눈은 게으로고 손과 발은 부지런하단다. 그러니 일을 쳐다보지 말고 그냥 손발로 천천히 일을 해야 하느니라."

 

뒷산에서 뻐꾸기가 "뻐꾹 뻐꾹"하고 울었다. 뻐꾸기가 울면 들깨를 심을 시기라고 연이 할머니가 말씀하셨는데 전화를 해볼까? 나는 좀 무료 하던 차에 이리 연이 할머님께 전화를 해서 뻐꾸기가 우니 들깨를 심어야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뻐꾸기도 가끔 울면 아직 아녜요. 자주 울어야 들깨를 심는 시기라오."

 

하하, 그러고 보니 뻐꾸기가 가끔 우는 것 같다. 농사는 역시 경험이다. 다년간 경험에 의해서 새소리를 듣고도 언제 무엇을 심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으니 말이다. 작년에 우리텃밭에도 5월 20일 경에 들깨를 파종을 해서 6월에 정식을 했던 기억이 난다.

 

(2013.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