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은 라면특식입니다.” “아니 벌써 한국음식이 먹고 싶다 이건가?” “빵만 먹다보니 입안이 개운치가 않아서요.” “누가 말리는 사람이 있겠소. 사실은 나도 그래. 하하.” 렘브란트 하우스에서 유스호스텔로 돌아와 아내는 라면물을 끓이로 부엌으로 가고 나는 라면을 꺼내기 위해 방으로 갔다. 컵 라면 두개를 들고 부엌으로 오니 금 새 물이 지글지글 끓고 있다. 스타드스도엘렌 호스텔의 부엌은 매우 지저분하다. 그릇은 여기저기 널려져 있고, 테이블에는 낙서 천지다. 그래도 다운타운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호스텔은 항상 와글거리고 방값도 더럽게 비싸다. 글쎄, 20명이 함께 자는 도미토리가 1인당 25유로면 이 배낭여행자에게는 무지무지 비싼 방이다. 그런데 어찌하랴. 유럽의 대부분 대도시가 그런한데.... 중이 절보기 싫으면 빨리 유랍을 떠나는 수밖에 없다. “이 애들 먹고 나서 설거지를 제대로 하지 않는군.” “글쎄, 넘 지저분해요. 물이 다 닳지 않아요. 하여튼 얼른 라면이나 넣어요.” 라면은 금방 끓는다. 아내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을 퍼들고 온다. “와~ 이 라면!” “냄새가 기가 막히지요?” “한국라면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이 맛!”
식사는 주로 현지의 대형슈퍼마켓에서 시장을 봐 와서 호스텔의 부엌에서 해 먹는 것으로 해결하고 있지만, 비상식량으로 가져온 라면 을 먹는 날은 아주 특별한 식사시간이다. “여보?” “응? 왜 그리 빤히 쳐다 보신단가?” “나… 풍차가 보고 싶어요.” “흠, 풍차라…. 지금은 돌지 않는 풍차들만 있는데.” “그래도 보고 싶은걸요.” 내가 북유럽으로 가는 길목에서 암스테르담을 택한 이유를 오직 고흐와 렘브란트의 발자취를 찾아보는 것. 네덜란드가 낳은 두 거장의 작품을 본 것만으로도 내게는 암스테르담에 머문 시간이 대 만족이지만, 풍차를 보고 싶다는 아내의 소원을 어찌 그냥 접어 두고 간단 말인가.
“와, 신난다! 여보 고마워요.” “허~ 고맙긴… 내가 되레 고맙지. 이 여행은 마마를 위한 여행이 아니겠소?” "여보, 그만 그만.... 잠이나 자로 가요." 아내는 신이 나는 모양. 어린애 처럼 좋아하는 아내를 바라보는 것은 나의 즐거움 중에서도 양질의 즐거움이다. 라면 국물을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몽땅 마시고 나니 느긋한 포만감이 잠을 부른다. 집에서는 라면 국물을 다 마실 엄두도 낼 수없지 만 여행을 떠나오면 그 국물 맛이 왜 이리 매콤하고 맛이 있을까? 이는 한국의 라면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맛이다. 우리는 누에고치 침대의 1, 2층 보금자리로 가서 세상모르게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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