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영평사 구절초의 미소
공주 영평사 구절초가 너무 창초하고 아름다웠다. 영평사에서는 구절초 축제가 9월 26일부터 10월 18일까지 열린다. 밤도 줍고 구절초도 구경하고, 구절초 차에 연밥도 먹는다. 구절초 꽃 축제는 주지 환성스님이 구절초가 좋아 심은 것이 산야를 가득 메우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현재는 매년 7만 명 이상이 찾는 가을철 대표적인 사찰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영평사는 축제의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 구절초 꽃차 시음회와 국수 공양, 사진 전시회, 천연비누 만들기, 108배 참회, 밤줍기 이벤트, 템플스테이 등을 진행한다. 또 10월10일에는 마당극과 11일 공주 지역의 음악 동호인들이 공연을 펼피고, 특히 축제기간 동안 구절초 꽃차 무료시음과 조미료를 넣지 않고 죽염수로만 간을 한 웰빙국수가 무료로 제공된다.
구절초! 구절초는 불가에선 어머니의 사랑이 깃든 식물이라고 하여 선모초(仙母草)라고도 부른다. 영평사 주변은 물론이고 장군산 기슭 1만여 평을 수놓은 그 구절초들은 자생적으로 피어난 꽃이 아니라 주지 환성 스님이 구절초의 청아한 순수에 반해 사찰 주변에 10여년 전부터 가꾸었다. 눈물의 시인 박용래(1925∼1980)도 구절초를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이라고 노래했다.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 내 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 뿌리를 대려서 약으로도 먹던 기억/ 여학생이 부르면 마아가렛/ 여름 모자 차양이 숨었는 꽃/ 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아/ 여우가 우는 秋分 도깨비불이 스러진 자리에 피는 사랑아/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매디매디 눈물 비친 사랑아” (박용래, ‘구절초’ 전문)
23일 찾아간 영평사 좁은 길에는 구절초가 막 피어나고 있었다. 아직 봉오리진 구절초들이 많지만 다음주에는 만개할 것이라고 환성 주지스님은 말한다. 구절초 핀 초막에서 연밥에 구절초차를 마시며 구절초의 향기에 흠뻑 취했던 영평사는 다시가고 싶은 곳이다. 하얀 그리움을 피어나게 하는 구절초! 욕심없이 살아가라고 구절초는 말한다. 깊어가는 가을, 때묻지 않는 순백의 꽃에게 인생의 길을 물어보는 것도 좋으리라.
유안진 시인은 순백의 구절초를 보고 비구니를 닮은 꽃이라고 했다. 세속을 떠나 한을 누르고, 죽 끓듯이 일어나는 번뇌망상을 끊어 도를 찾아 산야를 만행하는 비구니의 모습이 구절초라는 것. 마침 향운사 여승님들과 함께했던 영평사 구절초 길은 유안진 시인를 더욱 간절히 생각케 했다. 가사장삼입은 비구니의 걸음걸음, 욕심없이 살아가는 구절초 같은 미소에서 밤하늘에 떠오르는 성자의 미소를 연상케 한다. 구절초여! 사바세계의 묵은 때를 씻어 주소서.
“들꽃처럼 나는/ 욕심 없이 살지만/ 그리움이 많아서/ 한이 깊은 여자/ 서리 걷힌 아침나절/ 풀밭에 서면/ 가사장삼(袈娑長衫) 입은/ 비구니의 행렬/ 그 틈에 끼여든/ 나는/ 구절초/ 다사로운 오늘 별은/ 성자(聖者)의 미소” (유안진, ‘구절초’ 전문)
(2009.9.23 공주 영평사 구절초 밭에서 글/사진 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