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Myanmar

[미얀마기행12] 아아, 아웅산이여!

찰라777 2005. 1. 6. 21:10
□ 아아, 아웅산이여!


- 쉐다곤 대탑 바로 건너편에 있는 아웅산 묘지. 죽어간 인재들이 아깝다!

회랑 끝으로 내려오니 아웅산 묘지가 바로 가까이 보인다. 아아, 아웅산 묘지! 1983년 10월 9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미얀마를 방문했을 때, 북한 공작원들의 폭탄 테러로 서석준 총리를 비롯하여 이범석 장관 등 우리나라 주요 정부요인들이 17명이나 사망한 역사의 현장이다. 나는 맨발인 채로 뜨거운 도로를 건너 아웅산 묘소 쪽으로 갔다.

그러나 그곳에는 총을 든 경비원이 접근을 막았다. 공식허가를 받아야만 참배가 가능하다는 것. 도대체 이 나라는 국립묘지도 허가를 받아야 참배가 가능하다니 답답하기만 하다. 내가 사진만 좀 찍자고 하니 총을 들어올리며 험악한 표정을 지으면서 안 된다고 한다.

산디마 스님이 멀리서 잰 걸음으로 다가왔다. 나는 스님에게 그저 밖에서 사진 한 컷만 찍게 해달라고 부탁 좀 하라고 간청하였다. 산디마 스님이 미얀마 말로 뭐라고 하자 그는 겨우 승낙을 하였다. 적어도 미얀마에서는 군인도 스님을 존경하고 스님 말이라면 무시를 하지 못한다.

군인과 스님. 이는 미얀마를 다스리는 대표적인 단체다. 군인은 정권을, 스님은 민중의 마음을 어루 만져주는 마약이다. “군대가 강해야 국민이 잘 산다.”...“군인은 죽으면 지옥에 가지 않는다.” 미얀마의 거리에는 이런 말을 담은 현수막을 곳곳에 볼 수 있다.


어쨌든 스님의 간청으로 군인으로부터 양해를 받은 나는 겨우 아웅산 묘소를 찍고, 뜨거운 아스팔트길을 건너 다시 사원으로 돌아왔다. 아스팔트길을 건너오는 마음이 어쩐지 무겁다.

미얀마를 방문하는 국빈들은 종교를 불문하고 예외 없이 쉐다곤 대탑을 참배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불교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쉐다곤 대탑 대신 아웅산 묘소 참배를 고집하였다고 한다.

그는 아침에 요인들과 함께 아웅산 묘소 참배를 위해 영빈관에서 미리 나와 있었는데, 미얀마 의전 실장이 약속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전 대통령은 다시 숙소로 돌아가 버렸다고 한다.

마침 일요일이었던 그 날 의전실장은 집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약속시간을 깜박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것.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의전실장이 영빈관으로 달려갔을 때에는 전두환 대통령을 제외한 수행원들은 모두 아웅산 묘소로 떠나고 난 뒤였다.


이 때 북한 공작원들은 주변의 극장에서 크레모아 무선 격발기를 손에 들고 전두환 대통령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태극기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차량행렬속에는 틀림없이 머리가 벗어진 전두환 대통령이 그들의 망원경에 포착 되었다는 것. 그런데 공교롭게도 당시 한국대사가 이마가 벗겨진데다 전 대통령과 아주 흡사한 외모를 가졌다고 한다.

한국대사를 전 대통령으로 오인한 공작원들은 드디어 참배 행사가 진행 중인 홀을 폭파하여 암살을 시도했다. 그러나 숙소를 늦게 출발한 전 대통령은 아직도 영빈관에서 묘소로 오는 중이어서 아슬아슬하게 암살을 모면했다니…. 이 웃지 못 할 아이러니를 어찌 해석해야 할 것인가?


□ 죽은 자는 말이 없는데...

문득 언젠가 통일로 ‘자유의 다리’ 부근에 아웅산 폭파로 이명을 달리한 요인들의 위령탑을 방문했던 일이 생각났다. 그 때는 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날이었다. 흐르는 눈물처럼 내리는 빗방울을 맞으며 허공을 향해 말없이 서 있는 위령탑. 그리고 지금 눈앞에 이글거리는 수풀 속에 가려진 아웅산 묘지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억울하게 죽어간 요인들의 혼백이 그 햇볕에 괴로워하며 아직도 구천을 헤매는 것만 같다. 암살을 모면한 전두환 대통령이 쉐다곤 파야를 참배했더라면 이러한 회괴한 역사의 아이러니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 아닌가?


불교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아웅산 묘소를 참배했던 사람은 기구하게도 백담사로 귀양 아닌 귀양을 가더니… 그리고 백담사에서 한 철 칩거(?)를 하더니... 한소식이라도 득도했다는 듯 설법까지 하고 있다니... 하늘이 웃을 일이다.

미얀마는 지금 “아웅산”이라는 말만 들어도 정권을 잡은 자는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고 한다. “아웅산“”이라는 말을 잘 못 뻥끗했다가는 비밀경찰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붙들려 간다고 한다.

나라를 구한 아웅산 장군은 믿는 동지의 총에 맞아 죽고, 그의 딸 아웅산은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서도 십 수년 째 연금되어있다. 그리고 살아서 말을 해야 할 자는 죽어서 말이 없고, 살아서 입을 다물어야 할 자는 입을 열고 설법까지 하여든다.... 어지럽다.


"말을 하지마. 말은 오해의 근원이니까...."


쎙떽쥐빼리의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한 이 말이 생각난다. 이 동화를 읽은 권력자들이 세상에 몇명이나 될까?... 아웅산 묘지를 내려다 보고 있는 쉐다곤의 부처님은 그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중생의 오해를 불러 일으킬까바 침묵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허공을 향해 머리를 흔들며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하는 산디마 스님의 뒤를 쫓아 다시 쉐다곤 파야의 긴 회랑 속으로 들어갔다. -계속-


(2004.10 미얀마 양곤에서) [http://cafe.daum.net/skyearthto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