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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4] 민중의 피와 뼈로 세운 도시

찰라777 2005. 3. 6. 11:46



민중의 피와 뼈위에 세운 도시, 상트페테르부르그

에르미타즈 박물관에서 내려다 본
에르미타주 광장. 혁명의 산실역할을 해 왔음.


바로 이곳에 우리는 도시를 건설 하리라.
적개심에 불타 오만불손한 이웃을 향해.
우리는 이미 운명지어져 있도다.
여기 바닷가에 굳건히 발을 딛고 일어서서
유럽으로 나아가는 창문을 이곳에 내도록.

-푸슈킨, ‘청동의 기사’에서



19세기 러시아를 빛낸 위대한 시인 푸슈킨은 ‘청동의 기사’란 제목의 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성 이삭성당 뒤의 데카브리스트 광장에는 이 시의 제목을 딴 청동기사의 동상이 우뚝 세워져 있다. 물론 동상의 주인공은 표트르 대제다. 청동 기마상은 유럽을 향해 돌지니하고 있다.

표트르 Peter 대제. 스웨덴과 북방전쟁에서 승리한 그는 처음엔 이곳에 요새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유럽 콤플렉스에 시달린 그는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도 가장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하여 수도를 천도하기로 작정하고 네바강 하류 델타지역에 후보지를 선정했다. 이는 곧 발트해와 유럽으로 나아가기 위한 출구를 확보 하기위한 수단이었다.

표트르 대제의 청동 기마상이 유럽을
향하여 네바강을 내려다 보고 있다.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 정교의 성자 베드로의 이름을 따 도시의 이름을 상트페테르부르크라고 지었다. 베드로는 예수의 제자가 되기 전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가 아닌가?

로마 바티칸의 언덕에 ‘반석(베드로)’이라는 뜻의 베드로 성당을 세웠듯이 표트르는 지반이 약한 네바강의 석호에 반석처럼 단단한 새로운 수도를 짓기를 원했다. 그리고 1712년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옮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1918년 수도가 다시 모스크바로 옮겨질 때까지 약 200년 동안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정치, 경제, 문화, 예술의 중심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이 도시는 ‘피와 뼈 위에 세운 도시’다.

1년의 절반은 장마와 홍수로, 나머지 절반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이는 혹독한 기후 조건 속에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야망은 수많은 노동자, 농민들을 추위와 굶주림, 과로와 질병으로 내몰았다. 공사기간 중 도시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피를 흘리며 네바강의 물에 빠져 죽어갔다고 하니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표트르 대제의 신도시 건설을 향한 집념은 집요하다 못해 과히 발광적이었다. 표트르는 그의 러시아식 이름을 네덜란드 식 이름인 피터로 바꿀 만큼 유럽의 선진 문물을 흠모하고 있었다. 그는 황제에 즉위하기 전 왕자라는 신분을 감춘 채 운하의 도시 암스테르담의 어느 조선소에 잠입하여 유럽의 선진 건축 기술을 터득할 정도였다고 한다. -chal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