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Australia

라스트 크리스마스

찰라777 2008. 12. 11. 22:49

 

시드니의 샌드라로부터 금년에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 카드가 왔다. 시드니의 멋진 풍경이 그려진 칼렌다, 페인팅 타올, 북마크, 그리고 장문의 편지를 동봉한 그녀의 카드와 선물은 눈물결도록 정성이 담겨있었다.

 

언젠가 한번 글을 올린적이 있지만 샌드라와 우리들과의 관계는 1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니까 1999년 6월 미국 로키마운틴 여행 길에서 우리는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  우리는 그녀의 남편 맥스와 함께 한달 동안 미국로키와 카나다 로키를 여행을 하게되었다.

 

그 때 우리는 서로 위로하고 위로를 받으며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아픈 아내에 대한 두 부부의 관심과 보살핌은 너무나 헌신적이고 감동적이었다. 아내가 여행중에 저혈당으로 쓰러 진것을 맥스가 먼저 발견을 하고 사진을 찍고 있는 나에게 뛰어 와 알려주었고, 그들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아내의 안부를 물었다.

 

그 이후 우리는 매년 카드를 주고 받으며 서로 연락을 취해왔었다. 그러다가 2002년 시드니 올림픽이 치루어졌던 해  크리스마스 날 저녁 샌드라의 남편 맥스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자동차에 앉은 채로 타계를 했다. 시드니 야경을 구경하다가 당한 일이었다. 그 해에  맥스는 전화로 우리부부를 시드니 올림픽에 초청을 하고 우리가 묵을 방을 손수 도배를 하고 핑크 빛 페인트를 칠해 놓았다고 전했다.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맥스의 [라스트 크리스마스]였다. 샌드라의 편지엔 맥스가 운전석에 마치 잠을 잔듯이 평온하게 앉아있었다고 했다.

  

직장에 관계로 우리는 2002년도에 시드니 여행을 가지 못하고, 그 다음 해인 2003년 7월 시드니로 가서 샌드라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졸지에 미망인이 되어버린 샌드라는 홀로 직장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샌드라는 맥스가 도배를 한 핑크 빛 방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 핑크빛 방은 그 때가지도 신방처럼 비어 있었다. 샌드라는 시드니에 오거들랑 언제든지 우리들한테 이 방에 머물라고 말했다. 그 방을 보는 순간 우리는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물이 핑 돌았다. 맥스의 핑크 빛 영혼을 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샌드라는 맥스와의 추억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맥스가 쓰던 지팡이, 모자, 가구, 책... 모두가 그대로였다. 우리의 풍습으로는 고인의 유물을 태우거나 버리는데 그들은 오히려 더 가까이 고인의 유물을 곁에두고 고인을 추억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샌드라는 고인의 유물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카우보이 모자 두개를 우리에게 선물을 했다. 생시에 두 부부는 이 모자를 쓰고 말을 즐겨 탔다고 한다. 그 카우보이 모자는 거실의 전화기 옆에 놓여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들은 고인의 유물 중 가장 아끼는 물건을 선물로 주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니 우리는 그들의 가장아끼는 소장품을 선물로 받은 셈이었다.

 

이번 편지에 그녀는 25년동안 다니던 파이자회사를 권고사직을 받았다고 말했다. 호주에도 예외없이 감원열풍이 불어 닥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5년전에 남편을 잃고, 작년에는 어머니를 잃고, 그리고 금년에는 직장마져 잃게 되어 집안에 외톨백이로 남게 된 그녀는 더욱 고독하다고 고백했다. 그런데다가 심장마져 좋지를 않아 더욱 힘든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홀로 정원 가꾸고, 인터넷으로 채팅을 하기도 하고, 가끔은 여행을 하기도 하지만, 맥스와 함께 했을때처럼 신나지를 않고 언제나 외롭다고 했다.  금년 9월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여행하게 되었는데, 몸이 약해서 감기가 들어 한 동안 고생을 했다고 한다. 짝을 이루고 살다가 홀로 남게 되면 인간은 외롭고 고독하다. 이는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태계의 만물들이 다 그렇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외로움은 더해진다. 외로움을 덜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일 것이다.

 

 

샌드라는 집에만 있기가 너무 무료하여 파트타임 일자리를 찾아보고 있다고 했다. 심장으로 통하는 혈관 하나가 작동을 제대로 하지 않아 몸을 추스르는데 힘이 들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몇 번이라도 직장에 나가 활동을 하는 것이 그녀의 소원이라고 한다.

 

나는 매년 샌드라의 편지를 받기 전에 내가 먼저 편지를 해야지 하고 벼르기를 몇 년을 해왔지만, 금년에도 역시 샌드라의 카드가 먼저였다. 벌써 10년 째다. 사실 11월에 편지를 이미 써 놓았지만, 그녀에게 보낼 선물을 사지 못해 미루고 있는 참이었다. 아내가 병원에 간다는 핑게, 고향에 갔다온 핑게, 제주도에서 심장이식환자들의 모임 핑게... 핑게는 많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샌드라의 정성에 비하면 형편없이 부족한 사람이다. 아마 샌드라는 10월부터 편지를 쓰고, 선물을 고르고, 미리미리 준비를 해온 모양이었다.

 

12월 10일 날 우리는 남대문시장에 가서 우리나라 고유 무늬가 새겨진 앞치마 한 개, 식탁보 한 장을 사서 샌드라에게 부쳤다. 3만원 정도 되는 작은 선물이었다. 그리고 우리부부가 살아온 지난 1년간의 사연을 장문으로 타이핑을 해서 동봉을 했다. 물론 아내가 심장이식을 했다는 이야기도 썼다. 우리도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들을 보내는 한 해 였다고 고백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힘든 시간들을 극복을 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다시 태어난 아내의 생명의 삶을 소중하고 값지게 살아가고 있다는 말도 덧 붙였다. 묘하게도 샌드라부부와 아내는 심장병이라는 같은 병을 않게 되는 운명의 선을 타고 있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일부러 쓰고 있는 것은 홀로 외롭게 심장병을 앓고 있는 그녀에개 용기를 주기 위함도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었다. 우체국 직원의 말로는 12월 15일이면 아마 시드니에서 소포를 받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포를 부치며 선물을 받고 즐거워할 샌드라를 생각하니 늦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뿌듯하고 편해졌다.

 

 

 2008년 한해도 이제 다 저물어 간다. 신문과 방송은 갈수록 경제, 경제 하며 세상이 금방 어떻게 되어버릴 것처럼 온통 불안한 뉴스만 전한다. 날씨도 그렇고, 사람들의 표정도 그렇다. 물가는 오르고 장사는 안 되고, 모두가 마치 시한부 인생처럼 전전긍긍하고 있다. 나 역시 매일 나쁜 뉴스만 접하다보니 어쩐지 불안하고 움츠려드는 심산한 날들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샌드라로부터 따뜻한 카드 한장과 선물을 받고나서부터 나는 괜히 마음이 행복해지고 부자가 된 기분이다. 모든 걱정이 햇빛에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리고 호주로부터 전해온 샌드라의  포근한  휴매니티가 흐르는 카드와 편지, 그리고 선물에 흠뻑 젖어있다. 카드 한 장이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행복하게 감싸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힘들고, 어려운 때일수록  누군가 그리운 사람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라도 한 장 써서 보낼 수 있는 마음을 낼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가 얼마나 행복한가! 아무리 인터넷으로 메일을 주고 받는 초스피드 시대라고는 하지만, 육필로 글씨를 써서 작은 선물이라도 함께 동봉을 하여 주고 받는 마음에야 어떻게 비길 수가 있겠는가?

 

글을 쓰는 정성, 선물을 사는 정성, 부치는 즐거움과 받는 기쁨....  그것은 매우 신선하고 행복한 일이다. 보내는 사람이는 받는 사람에게나... 신문이나 방송에도 어두운 뉴스보다 따뜻한 희망을 주는 뉴스가 더 많이 채워졌으면 좋겠다. 

 

아무리 어둡고 추운 겨울이라고하지만, 찬란한 아침의 태양을 포기할 수는 없다! 캥거루와, 쿠알라, 오페라하우스가 그려진 멋진 벽걸이 페인팅을 바라보며,  2009년도에는 정말 내가 먼저 샌드라에게 카드를 보내야 겠다는 다짐을 해보며 나는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본다. 그녀의 외롭고도 정성이 깃든 마음이 서려 있는 선물꾸러미들은 그 어떤 선물보다도 값지고 소중하다.

 

우리가 이렇게 매년 크리스카스 카드를 주고 받는 한, 샌드라와 우리들은 [라스트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