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Europe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성으로 떠나는 여행

찰라777 2009. 8. 23. 19:49

바그너의 오페라가 숨 쉬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가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백조의 성-독일 퓌센

 

 

 

 

맥주의 본고장 뮌헨에서 기차를 타고 두 시간 만에 도착한 로만티크 가도의 종점 퓌센. 기차역에서 내리니 동화처럼 아름다운 성이 오색 단풍으로 물든 알프스 자락에 한 마리 백조처럼 우아하게 서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이다.

 

일명 ‘신(新) 백조의 성’이란 뜻을 가진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디즈니랜드의 상징 판타지 랜드의 모델이 될 정도로 신비감이 넘치는 성이다. 늦가을, 낭만의 서정이 흐르는 로만티크 가도를 달려가다 보면 주변의 빼어난 풍광에 사로잡히며 저절로 사색의 물결에 젖어들고 만다.

 

로만티크 가도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남동쪽으로 약 100㎞ 떨어진 곳에 있는 뷔르츠부르크에서 시작되어 알프스의 산기슭에 자리 잡은 도시 퓌센까지 약 350km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이 가도는 원래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이어지는 길이였기 때문에 로만티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퓌센역에서 내려 10여분을 걸어가니 성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나온다. 입구에는 중세기 복장을 한 마부가 두 마리의 말이 이끄는 마차를 대기시켜놓고 있었다. 걸어서 올라갈 수도 있지만 덜거덕 거리는 마차를 타고 중세의 정취를 물씬 느껴보는 것 또한 멋진 추억을 남길 것 같아 마차에 올랐다. 딸가닥거리는 마차를 타고 낙엽이 휘날리는 숲길을 올라가니 드디어 백색의 대리석 건물이 우아한 자태로 다가온다. 그야말로 동화 속에서나 꿈꿀 수 있는 신비한 모습이랄까?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3면에 반발트 씨에, 알펜지, 호프낭제 등 세 개의 호수가 그림처럼 둘러싸여 있다. 이 세 개의 호수에는 예부터 백조들이 많이 날아든다고 한다. 푸른 호수에 둘러싸인 성은 더욱 환상적인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아름다운만큼이나 애달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성이다. 이 성을 건축한 사람은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2세다. 아버지 막시밀리안 2세로부터 약관 18세의 나이에 왕위를 이어 받은 그는 어릴 때부터 감수성이 예민하고, 시와 음악, 그리고 미술과 건축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16세 되던 해에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처음으로 관람하면서부터 인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체질적으로 정치에는 소질이 없는 그는 수도 뮌헨을 떠나 알프스 부근의 전원에서 생활을 하며 바그너의 음악에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간다.

 

 

 

 

오페라 ‘로엔그린’에 나오는 백조의 기사와 백조를 너무도 좋아하게 된 왕은 마침내 1869년부터 자신이 직접 설계를 하고 진두지휘를 하며 로엔그린의 배경을 닮은 성을 알프스 자락에 짓기 시작한다. 그는 백조들이 날아드는 호수 언덕에 백조처럼 아름다운 성을 지어 오페라 로엔그린의 주인공 '백조의 기사'처럼 살기를 원했다.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은 10세기 전반 독일 앤트워프 부근에서 전해 내려오는 ‘성배의 기사’의 대한 전설을 담은 내용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바그너가 왕을 매혹시킨 것은 음악가 바그너보다도 시인 바그너였다. 바그너의 격정적인 언어와 강렬한 시, 그리고 쉼표가 없는 음악은 젊은 루트비히 2세를 사로잡았다.

 

‘오, 은혜로 충만하신 왕이시여! 천상의 감동에서 솟아난 눈물을 당신께 바칩니다. 그리도 비천하고 애정에 굶주렸던 제 가련한 인생에 품고 있던 시적 경이감이 드디어 현실이 되었음을 당신께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이제 이 인생의 마지막 한 단어, 마지막 한 음계까지, 저의 인생은 당신께 속해 있습니다.’

 

바그너가 왕에게 현란한 문체로 보낸 서신의 한 단면이다. 어린이처럼 천진한 면이 있는 왕은 바그너를 조언자이자 친구로 대했다. 덩치는 거인처럼 크나 여성스러운 면이 있는 왕은 호탕한 성격의 바그너에게 부성애까지 느끼며 더욱 깊이 빠지게 된다.

 

그러나 17년이란 긴 세월 동안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 초호화판으로 성을 짓다보니 국가재정은 물론 왕의 전 재산까지 성을 짓는데 탕진하게 된다. 결국 루트비히 2세는 성이 완성된 지 3개월 만에 정적에 납치되어 인근 호수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고 만다. 평생을 바그너의 음악과 예술에 빠져 독신으로 살다간 왕의 슬픈 최후였다.

 

성의 내부로 들어가니 내부 구석구석까지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과 탄호이저에 등장하는 배경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왕이 죽기 전까지 사용했던 거실과 공간들이 그대로 남아있고, 내부 장식은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하인들의 방(Servant)'에 진열된 오크로 만든 가구에서부터, 북유럽의 신화 ‘에다’를 배경으로 한 홀, 성 소피아 성당을 모방한 왕실, 호수가 바라보이는 음악실에 이르기까지 왕의 손길이 하나하나 섬세하게 남아있다.

 

성안의 문고리와 벽화, 커튼에도 수많은 백조의 문양이 그려져 있어 왕이 백조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느낄 수 있다. 키가 1미터 90센티를 넘는 왕의 침대는 2미터 10센티나 되고, 문고리는 보통 사람의 눈높이에 닿을 정도로 높이 달려 있다.

 

성 내부를 돌아보는 내내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가 쉼표도 없이 낮게 흐르고 있었다. 성 밖으로 나오니 알프스 자락에는 옅은 안개가 드리워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오색 단풍으로 둘러싸인 백조의 성은 안개의 베일 속에 서서히 가려지며 더욱 신비감을 자아내고 있다. 

 

성을 뒤로하고 낙엽이 불타는 오솔길을 걸어서 내려오는데 갈색의 단풍잎이 늦가을 바람에 포물선을 그으며 떨어진다. 낙엽은 자신의 갈 길을 알고 있는 듯 추호의 미련도 없이 떨어지고 있다.

 

떨어진 낙엽은 발밑에서 사각사각 영혼의 소리를 내며 운다. 새들의 날개 소리처럼, 여자의 옷자락 소리처럼…. 그러나 황혼에 지는 낙엽들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고 있다.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다시 만날 것임을…….

 

낙엽이 진 자리에는 봄이 오면 다시 새로운 생명의 싹의 틔어 날 것이다. 그러나 갈바람에 떼굴떼굴 굴러가는 낙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괜히 서글퍼진다. 마치 루트비히 2세의 영혼이 아직도 성을 떠나지 못하고 성 주위를 떠도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