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80일간의티벳일주

돈을 뭉치로 가져와서 나누어주는 사람들

찰라777 2011. 12. 13. 21:04

 

 

돈을 뭉치로 가져와서 나누어주는 사람들

 

-티벳에서는 부처님오신 날 선업을 베풀면

 보통 때보나 십만배의 공덕을 쌓는다고 여겨지고 있다.

 

 

 

▲뭉치돈 가져와서 스님들에게 보시를 하는 티벳 할머니(라싸 조캉사원 부처님 오신날)

 

 

 

▲티벳의 부처님오신 날(라싸 조캉사원)

 

 

오늘은 티벳의 부처님오신날이다. 아침을 먹고 조캉사원으로 나가보니 순례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오고 있다. 라싸에 머무는 동안 조캉사원은 거의 매일 하루에 한 번 정도는 갔다. 라싸의 심장인 조캉사원은 언제나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특히 티벳에서 4월은 부처님오신 달로 한 달 내내 여러 가지 행사를 하며 보내는데, 조캉사원은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드는 곳이다.  티벳의 부처님 오신 날은 티벳력으로 4월 15일(양력 5월 중순경)이다. 티벳 사람들은 4월 중에서도 초하루에서 보름까지를 중요하게 여겨 이 때 가장 많은 순례자들이 라싸 땅에 입성을 한다. 그 중에서도 부처님오신 날인 4월 15일은 그 절정에 달한다.

 

 

 

▲스님들에게 공양물을 바치는 티벳 사람들

 

 

 

티벳에서 부처님오신 날은 부처님께서 정각(깨달음)을 얻으신 날이기도 하고, 열반(돌아가신 날)일로 여겨지고 있다. 티벳에서는 음력 4월 달을 '사까 다와'라고 하여 한 달 내내 부처님 탄생을 축하하는 행사를 한다.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은 부처님오신 날을 음력 4월 8일로 정하고 있지만, 티벳과 인도, 스리랑카, 태국, 인도, 부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보름달이 뜨는 음력 4월 15일(Full Moon Day)을 부처님오신 날로 정하고 있는 것 같다.

 

 

 

▲부처님 오신날 법회광경(라싸 조캉사원)

 

 

어찌 되었던 라싸에서 부처님오신 날을 맞이하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우리는 티벳의 부처님오신 날을 <D-Day)로 정하고 머나먼 순례길을 떠나왔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출발하여 육로로 중국 국경을 통과하여 윈난성, 스촨성, 간쑤성, 칭하이성을 거쳐 긴 여정 끝에 라싸에 어렵게 입성한 보람이 헛되지 않는 것 같다. 이 길은 지금까지 여행을 한 곳 중에서도 가장 힘들 길인 동시에 가장 보람 있는 길이기도 했다.

 

 

"오늘은 스님들이 더 많이 오신 것 같네요!"

"오늘이 티뱃력으로 부처님 오신날이래."

 

 

조캉사원 안으로 들어가니 법당 중앙 홀에는 많은 승려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중앙 통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스님들이 앉아있고, 법상에는 그들의 큰 스승인 듯한 스님이 정좌를 하고 있다. 스님들은 티벳 라마승 특유의 굵은 목소리 톤으로 불경을 독송하며 불탄일을 축하하고 있다.

 

 

 

 

"저길 좀 봐요. 돈을 포대에 담아 와 다발로 나누워 주는 보살님도 있어요."

"와아, 정말이네!"

 

 

노파는 돈이 많은 보살처럼 보였다. 신도들이 입구에서부터 스님들께 공양을 바치기 위해 공양물을 들고 줄을 서 있다. 신도들은 갖가지 공양물을 들고 공양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어떤 신도는 돈을 포대로 들고 와서 돈 다발을 하나하나 스님들에게 나누어 바친다. 우리나라는 부처님오신 날에 보통 절에 가서 등불을 밝히고 기도를 올리고 봉축 법회를 한다.  그리고 시주금은 봉투에 넣어서 혹은 그대로 시주함에 넣거나 법상에 놓아둔다. 

 

그러나 이곳 티벳에서는 스님들은 법당에 앉아 그저 조용히 불경을 독송하고 있다. 그러면 신도들은 그 스님들께 직접 돈과 공양물을 바친다. 돈은 봉투에 지않고 그대로 건넨다. 스님에게 돈뭉치를 건네 대신 나누어 주게도 한다.

 

 

▲주문을 외우며 적선을 받고 있는 티벳거지. 티벳에서는 적선을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같은 주문을 외우며 기도를 한다. 적선을 하는 사람은 복을 베풀 수 있는 대상인 거지가 있어서 오히려 고맙게 생각을 한다.

 

 

티벳 사람들은 부처님오신 날에는 평상시보다 더 많은 공덕을 쌓고자 애를 쓴다고 한다. 부처님오신 날에 선행을 베풀면 보통 때보다 십만 배나 더한 공덕을 짓게 된다고 여겨지고 때문이다. 때문에 부처님오신 날 라싸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순례자들과 거지들로 초만원을 이룬다. 순례자들은 자신의 형편에 맞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과 음식을 나누어 준다.

 

 

인도나 네팔, 다른 나라의 거지들과는 달리 이곳 티벳의 거지들은 조용히 앉아서 불경을 열심히 독경하며 기도를 한다. 그러면 순례자들은 그들에게 자신의 사정에 맞게 적당한 보시를 한다. 거지들 앞을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드물다. 또 양쪽의 공통점은 보시를 하는 사람들도(보시자) 받는 사람들도(거지) 주문(주로 옴마니반메훔)을 외우며 기도를 한다는 것이다.

 

 

 

또 보통 사람들은 거지들을 무시하거나 무관심 하는 경향이 있지만 티벳 사람들은 적선을 행할 때도 자신이 누군가를 돕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보시를 실천할 수 있는 대상이 나타나 준 것에 오히려 고마워한다.

 

 

그들은 적선을 하거나, 절을 하면서 무엇인가 한 가지씩을 자신의 마음에 다짐을 한다고 한다.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 남을 미워하지 않겠다, 화를 내지 않겠다,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 등. 부처님오신 날에 이런 다짐을 하면서 자신이 살아온 길을 뒤돌아보며 참회를 하며 선업을 쌓는 것이다.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가난해 보이는 노인도 보시를 하고 있다.

 

 

귀부인 옷차림을 하고 부유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돈을 포대로 가지고 와서 스님들에게 돈 다발을 건넨다. 거지행각을 한 노인도 스님들에게 보시를 한다. 다리를 절며 몸이 불편한 사람들도 스님들에게 보시를 한다. 아이를 업은 시골의 부녀자로 보이는 아주머니도 스님들께 보시를 한다. 보시 공양물도 가지 각색이다. 스님들 앞에는 돈이 쌓이고 뒤에는 공양물이 쌓인다.

 

보시란 무엇인가?

나는 아이를 등에 업고 보시를 하는 여인을 보자 부처님 당시 구걸을 하여 생명을 연명하던 여인이 동전 두 닢을 얻어 부처님을 위해 등불을 켰던 <가난한 여인의 등불>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리는 이 가난한 여인의 등불에서 보시으 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사밧티에 가난한 여인이 살고 있었다. 그 여자는 가족도 친척도 없이 혼자 사는 외로운 처지였다. 너무나 가난해서 이 집 저 집을 다니면서 밥을 빌어 겨우 목숨을 이어가곤 했다. 하루는 온 성안이 떠들썩해지며, 사람들이 들떠 있었다.  

 그녀는 한사람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오늘 부처님께서 이 성으로 오신답니다. 오늘밤에는 파사익 왕과 백성들이 수많은 등불을 밝혀 연등회를 배풀고 부처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래서 온 성안이 이렇게 붐비고 있답니다."  


 이 말을 들은 가난한 여인은 슬픈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등에 업고 부처님과 스님께 보시를 하는 가난한 시골 여인

 


 '왕은 많은 복을 쌓고 있구나. 부처님처럼 만나 뵙기 어려운 복 밭을 만나면서도 나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어 뿌릴 씨앗이 없으니 어쩌면 좋을까? 나도 등불을 밝혀 부처님께 공양하고 싶은데...'  

 
 이렇게 자신의 가난을 한탄하던 여인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동전 두 닢을 겨우 구걸하여 기름집으로 갔다. 얼핏 보기에도 가난에 찌든 늙은 여인의 모습을 보고 기름집 주인은 기름의 쓰임새를 물었다.  

 
 "이 세상에서 부처님을 만나 뵙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나는 다행하게도 부처님께서 계신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가난하여 지금까지 아무것도 공양하지 못했습니다. 거리에서 듣자니, 마침 왕과 백성들이 많은 등불을 밝혀 연등회를 연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나도 등불을 하나 밝혀 부처님께 공양하려고 합니다."  

 
 기름집 주인은 속으로 크게 감동하여 곱절이나 많은 기름을 주었다. 여인은 진심으로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부처님께서 지나가실 길목에 등불을 밝히고 기도하였다. 

  
 '제가 가난하여 이 조그만한 등불 밖에는 부처님께 공양할 수 없사오니, 부디 이 공덕으로 오는 세상에서는 성불하여 그 지혜의 빛으로 모든 중생의 어두운 마음이 밝게 되어지이다.'  


 밤이 깊어감에 따라 다른 등불은 하나 둘 꺼져 갔으나, 가난한 여인의 등불만은 밝게 빛나며 어두운 주위를 비추고 있었다.  등불이 모두 꺼지기 전에는 부처님께서 주무시지 않을 것이므로 아난은 손으로 등불을 끄려 하였으나,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 

  
 다시 가사자락으로 또 부채로 바람을 일으켜 끄려고 하였지만, 가난한 여인의 정성으로 밝힌 등불만은 끝까지 꺼지지 않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부질없이 애쓰지 말아라. 그 등불은 가난하지만 마음이 착한 여인의 넓고 큰 서원과 정성으로 밝혀진 등불이니라. 공덕의 광명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 등불의 공덕으로 그 여인은 오는 세상에 반드시 부처를 이룰 것이다."  

 

▲라싸의 심장 조캉사원

 

 

보시란 이처럼 자비심을 내어 남에게 조건없이 재물이나 불법을 그냥 베푸는 것이다. 보시는 조건이 없어야 한다. 보시는 남을 행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기쁘게 한다. 보시는 각자가 처한 여건에 따라 여러가지 방식으로 베풀 수 있다. 재물이 있으면 있는대로, 재물이 없으면 없는 대로 육체적인 봉사를 하거나 불법을 베푸는 것이다. 

 

<가난한 여인의 등불>은 '이 공덕으로 오는 세상에서는 성불하여 그 지혜의 빛으로 모든 중생의 어두운 마음이 밝게 되어지이다.' 란 남을 위한 가절한 기도가 있었기에 꺼지지 않는 것이다. 그녀가 구걸한 동전 두 닢은 그녀가 밥을 사먹을 전 재산이다. 그녀는  자신이 수중에 가진 전 재산을 털어 기름을 사서 세상을 밝힐 지혜의 등불을 켰던 것이다.

 

 

▲가발을 쓰고 풍경을 울리며 불경을 외우고 있는 스님들

 

 

스님들은 가만히 앉아서 오직 주문을 외우고 있다. 때로는 풍경을 울리기도 하고 긴 머리가 달린 가발을 쓰기도 한다. 리더가 되는 스님이 오른팔을 들고 선창 주문을 외우면 다른 스님들이 일제히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주문을 외운다.

 

 

 

 

 

 

그 장엄한 스님들의 합창 소리 사이로 티벳 사람들은 줄을 지어 보시를 한다. 부처님오신 날 스님들은 1년 동안 쓸 용돈을 보시를 받는다고 한다. 가난하지만 자비행을 실천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과연 남을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