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토끼 용궁에 들어갔다 온 고로쇠 물

찰라777 2012. 3. 6. 07:27

 

혜경이 엄마가 보내준 고로쇠 물

토끼 용궁에 들어갔다가 오다!

  

 

지난 2월 말 섬진강 수평리 마을 혜경이 엄마한테서 고로쇠 물을 한 통 보냈다고 전화가 왔다. 수평리 마을은 우리가 작년 말까지 살았던 동네다.

 

"아니, 그 귀한 고로쇠 물을 보내주다니 아까워서 어떻게 먹지?"

"그러게 말이요. 혜경이 엄마 서울 한번 올라오지 않는데?"

"이장에 당선이 된 뒤로 요즈음 엄청 바쁘대요."

"허허, 그렇기도 하겠네."

 

혜경이 엄마는 금년에 수평리 마을에서 이장 선거에 출마를 하여 압도적인 표로 당선이 되었다고 한다. 세 명의 후보가 출마를 하였는데, 남자가 두 명이나 출마를 하고 여자로서는 혜경이 엄마가 처음으로 이장 선거에 도전을 했다고 한다.

 

남자 중 한 사람은 전에도 이장을 8년 동안이나 했던 이장 경력이 화려한 사람이고, 또 한 남자는 40대의 젊은(시골에서는 매우 젊은 측에 들어간다) 사람인데 나도 익히 잘 아는 쟁쟁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수평리에 살 때부터 이장 선거에 한 번 도전 해 본다고 해서 아내와 나는 혜경이 엄마를 적극 지지하며 출마를 하라고 권유를 했었다. 그런데 이장 선거도 치루지 못하고 우리는 갑자기 수평리 마을을 떠나고 말았던 것.

 

1월 31일, 이장 선거결과 혜경이 엄마는 총투표자 수 30명에 16명이 혜경이 엄마를 지지하여 두 남자를 제치고 당당히 이장 선거에 당선되었다. 만약에 우리 부부가 있었더라면 18표를 얻었을 것이다.

 

혜경이 엄마가 이장에 당선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늘 마을 사람들을 위해 봉사 활동을 해온 혜경이 엄마한테 노인들이 표를 몰아준 것이다. 소식을 듣자하니 낙선이 된 남자들의 체면이 말이 아니라는 것. 동네 이장 선거에서도 여성이 압도적으로 우세 한 것을 보면 이제 우리나라에도 여성 대통령이 나올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튼 이장 일이 아니더라도 여기저기서 일을 해달라고 불러대는 사람들이 많은 데, 이제 이장 일까지 맡게 되었으니 혜경이 엄마가 이곳 최전방까지 나들이를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게 되었다. 바빠서 오지도 못하고 해서 고로쇠 물 한 통을 보냈으니 잘 먹으라는 혜경이 엄마, 아니 수평리 이장님의 따뜻한 정이 눈물이 나도록 고맙다.  

 

 

 

그런데 고로쇠 물을 보냈다는 전화를 받은 지 3일이 지났는데도 아직 도착을 하지 않아 뭔가 이상했다. 아내가 혜경이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혹시 주소를 잘못 기재한 게 아니냐고 물어보았는데 틀림없이 이곳 동이리 주소로 우체국 택배를 통해 보냈다고 했다.

  

 "고로쇠 물은 며칠 지나면 변질되고 마는데 우체국에 한 번 전화를 해보아야겠어요."

 "글쎄? 아마 틀림없이 배달사고가 난 게 아닐까?"

   

아내가 미산면 우체국으로 전화를 해보니 아직 도착이 되지 않았다고 하며 혹시 택배번호를 아느냐고 말했다. 택배번호를 알아보기 위해 혜경이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를 바빠서인지 받지 않았다. 그런데 우체국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저희가 확인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럼 택배가 도착했나요?"

"아직 이곳에는 도착을 안 했는데요. 확인을 하고 있는 중이니 다시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우체국으로부터 30여분 후에 다시 전화가 왔다.

 

"물건을 지금 받았는데요. 1시간 이내에 배달을 해드리겠습니다."

"아니 어떻게 된 일이지요?"

"네, 찾아가서 자세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어쨌든 물건이 온다고 하니 반가웠다. 얼마 걸리지 않아 우체국 직원이 고로쇠 물이 든 박스를 들고 왔다.

 

 

 

 

"아니, 어떻게 해서 이렇게 늦은 거죠?"

"정말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이 물건이 다른 집으로 잘 못 배달이 되었어요."

"어떻게 그런 일이?"

"미산면에 박정희라는 분이 또 한 분 계시는데요. 이런 시골에서는 이름만 보고 그냥 배달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박정희라는 이름을 가진 할머니 댁으로 배달을 잘못하고 말았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택배 박스에 전화번호까지 적혀있는데. 어째서 그런 일이? 전화도 확인 하지 않고 배달을 하다니…."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거야 정말. 고로쇠 물은 제대로 있나요?"

"네, 그 할머니 댁에 가보았더니 뭔가 하고 궁금해서 한 병을 뜯어보았는데요. 먹지는 않고 그대로 있어요."

"허허. 참 하여간 이건 배달사고 아니요?"

"네, 죄송합니다."

 

 

 

 

 

우체국 직원은 극구 사과를 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이미 일은 벌어진 거고, 늦게라도 고로쇠 물이 도착을 하였으니 다행이라고 생각을 할 수 밖에. 박스를 뜯어보니 고로쇠 물이 든 작은 병이 4개가 들어 있었다.

 

통상 우체국 택배는 사전에 문자로 배달일정을 통보를 해온다. 그런데 아내는 기계치라서 문자를 확인을 할 줄을 모른다. 나중에 아내의 핸드폰에 문자를 확인해 보니 3월 2일 배달 예정이라는 문자까지 와 있었다.

 

문자까지 보내놓고 엉뚱한 곳으로 배달을 한 우체국 택배가 잘 이해가 가지않았다. 아무리 시골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주소와 전화번호도 확인하지않고 이름만 보고 짐작으로 택배를 배달을 할 수가 있을까? 이는 너무나 무책임한 배달사고다.

 

"이 귀한 고로쇠 물을 아까워서 어떻게 마시지요?"

 "정말? 더구나 토끼 용궁에 들어갔다 온 고로쇠 물이 아닌가!"

 

우체국 직원이 돌아간 뒤 아내와 나는 그 귀한 고로쇠 물을 컵에 따라서 한잔씩 마셨다. 혜경이 엄마의 정이 듬뿍 담긴, 약간 달콤하고 시원한 고로쇠 물이 우리들의 마음까지 촉촉히 적셔주는 것 같았다. 아내는 이 귀한 고로쇠 물을 이웃집 이장 댁과 이장님 형님 댁에 나누어 준다고 페트병에 고로쇠 수액을 나누어 따랐다. 그리고 혜경이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고로쇠 물이 드디어 도착을 했어. 그게 말이야. 동명 2인인 엉뚱한 곳으로 배달이 되었다가 지금 도착을 했어. 토끼 용궁에 들어갔다 온 고로쇠 물이라서 그런지 더 맛있네. 호호호. 귀한 것이니 이웃집과 나누어 먹어야지."

"에그, 어떻게 그런 일이 생겼지요. 하여간 그렇게라도 도착을 해서 다행이네요. 호호호. 언니네나 마시지.... 너무 적게 보내서 미안해요."

"이거도 많아. 하여간 너무 고마워. 아껴서 두고두고 잘 먹을 게."

 

엉뚱한 곳으로 잘 못 배달되는 헤프닝이 있어서인지 혜경이 엄마의 정이 듬뿍 담겨진 고로쇠 물이 더욱 귀하고 맛있게 느껴진다. 섬진강변에는 2월 초부터 고로쇠 물을 받아낸다.

 

아마 지금쯤 매화와 산수유가 봉오리 맺혀 피어나고 있을 것이다. 봄이 오면 꽃들의 천국으로 변하는 섬진강! 그 꽃길도 그립고 혜경이 엄마도 그립다! 아아, 3월이 가기 전에 꽃길 따라 남도로 여행을 떠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