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남자는 세여자 말을 잘들어야 출세한다?

찰라777 2013. 11. 20. 04:45

지리산으로 떠나는 1박 2일 여행②

 

 

김밥맛이 꿀맛이야!

 

11월 12일 새벽. 전화벨이 울렸다.

 

“저 천수행입니다. 지금 막 수유역에서 출발하는 첫 지하철을 탔어요.”

“아니 그렇게 빨리요. 추우신데. 사당역에 도착을 하시면 밖으로 나오지 마시고 안에서 조금만 기다리세요. 저희 들이 사당역에 도착 할 즈음 전화를 드릴게요.”

 

시계를 보니 5시 40분이다. 천수행 보살님은 5시 37분에 수유역에서 출발하는 첫차를 타신 것이다. 절에 다니시는 분들은 새벽 약속을 칼처럼 지킨다. 칠십을 넘기신 노보살님을 당초 약속은 7시에 사당역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수유역에서 사당역까지는 지하철로 약 40분이 소요된다. 그렇다면 6시 30분 이전에 사당역에 도착할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외출을 하는 여자들은 볼일이 많다. 세수를 하고 얼굴에 뭔가 찍어 발라 화장도 해야 하고… 중간에 응규부부를 싣고 서둘러 사당역으로 갔는데도 7시다. 천수행 보살님께 전화를 걸러 4번 출구로 나오시라고 했다. 그녀는 무려 30분 동안이나 지하철역에서 우리를 기다린 것이다.

 

“주책없이 너무 빨리 와서 미안해요.”

“아니요. 우리가 너무 늦어서 미안합니다.”

 

사당역을 출발하여 경부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차량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하늘은 맑고 푸르다. 가을 아침 드라이브는 상쾌하다. 기흥휴게소에 도착하니 7시 30분. 이곳에서 우리는 J부부와 S여사를 만나기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예정보다 30분 일찍 도착한 것이다.

 

이럴 땐 먼저 도착을 한 사람이 오히려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20여분 쯤 지나니 J 일행이 도착했다. 여행길에 동반자를 만난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많이 기다렸지요?”

“천만에, 우리도 방금 도착했어요.”

 

우리는 J가 준비해온 김밥에 어묵국과 라면을 시켜서 아침을 먹었다. J와 함께 여행을 갈 때에는 언제나 그녀가 김밥을 준비해 온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던가? 강남 어디에 있다는 김밥인데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있는 김밥이다.

 

“김밥 맛이 꿀맛이에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있는 김밥이라니까.”

 

김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우리는 장수IC를 벗어나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길을 떠났다. 고속도로에서는 함께 간다는 것이 어렵다. 차량이 홍수를 이루고 고속을 달리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기 때문에 서로 놓치기 십상이다.

 

요즈음 남자들은 세여자 말을 잘 들어야 출세를 한다는데...

 

 

 

고속도로에서 약속을 할 때에는 좀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자칫 잘못하면 엉뚱한 길로  빠지기 때문이다. 나는 내비게이션에 '장수읍'을 찍고 예정대로 대전에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탔다. 장수IC를 바져 나올 때쯤 J로부터 전화가 왔다. J는 내비게이션에 '장수IC'를 찍고 갔는데 회덕분기점에서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함양까지 갔다고 한다.

내비게이션이 없을 때에는 지도를 보고 전체적으로 가는 길을 체크를 했기 때문에 길이 크게 엇갈리는 경우는 오히려 드물었다. 그러나 내비게이션이 생긴 이후로는 너무 기계에 의존하다 보니 길이 엉뚱하게 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도로가 복잡해져서 내비게이션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내비게이션도 고장이 나서 엉뚱한 곳으로 길 안내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남자들은 세 여자 말을 들어야 성공을 한다는 말이 있다. 엄마, 아내 그리고 이 내비게이션에서 길 안내를 하는 '아가씨'다. 그러나 이는 틀린 말이다. 다음날 우리는 서울로 돌아올 때 정안휴게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순천만을 출발했다. 물론 두 사람 다 내비게이션에 '정안휴게소'를 찍었다


나는 순천-구례-전주-정안휴게소로 가는 길을 미리 체크를 하고 출발을 했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의 아가씨는 순천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타라고 안내를 했다. 나는 이곳 길을 잘 알기 때문에 내비게이션 아가씨의 말을 무시하고 구례로 가는 17번 도로를 탔다. 구례에서 전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타려고 하는데 J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비게이션 아가씨가 남해고속도를 타라고 해 지금 진주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 물론 그쪽으로 돌아가도 서울로 가는 길은 있겠지만 많이 돌아가는 길이다. J에게 진주에서 통영-대전간 고속도로를 타는 것을 잊지말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우리도 장수를 거쳐 통영-대전간 도로를 타고 금산 인삼랜드휴게소에서 가까스로 만났다. J는내비게이션 아가씨 말만 듣다가 엄청 헤맸다고 한다. 처음에는 순천만에서 송광사 쪽으로 길을 안내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2차선 지방도로를 타고 한참을 갔다고 한다. 그리고 주암IC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탔다는 것. 덕분에 구경은 잘 했지만 무척 당황했다는 것. 그러니 세 여자 말을 잘 들어야 출세를 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그쪽 내비게이션 아가씨는 이 동네 사람이 아닌가 보지요?"

"아마 그쪽 내비게이션 아가씨는 이 동네 사람이 아닌가 보지요?"
"호호, 그러게 말이에요. 그쪽 내비 아가씨는 구례 아가씨이고 우리 쪽은 서울 아가씨인가 봐요."

우리는 우스게 소리를 하고 웃고 말았지만 상황은 자못 심각했었다. 우리는 IT시대, 스마트 폰 시대, 내비게이션 등 최첨단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너무 기계에 의지를 하다 보니 사람이 수동적이 되고 창조성은 물론 인간성이 점점 메말라가고  있다. 아무리 최첨단 기계가 정확하고 편리하다고 할지라도 사물을 마음으로 바라보는 눈이 필요하다. 마음으로 보는 눈은 기계처럼 정확하지는 않을지라도 전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잠시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아무튼… 우리는 장수를 지나다가 장수사과를 사기로 했다. 미타암 부터님께 올릴 사과를 사고 우리가 먹을 사과도 샀다. 평균 표고 400m 이상 고지에서 재배하는 장수사과는 맛이 그만이다. 그래서 우린 지리산을 오갈 때에는 꼭 장수에서 사과를 산다. 과수원에서 막 따온 사과는 맛이 꿀맛이다.

 

사과를 싣고 고개를 넘으니 이윽고 지리산이 보인다. 내비게이션 때문에 길이 서로 엇갈려 고생을 했지만 구례 토지면에 있는 섬진강 다슬기국 집에서 일을 다시 만난 우리는 다슬기 국으로 속을 풀었다. 지리산! 언제나 어머니처럼 포근하게 안아주는 지리산은 언제 와도 아늑한 고향에 온 기분이 든다.

 

▲화엄사 입구 단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