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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킴여행⑥]천둥번개 치는 룸텍사원에서

찰라777 2013. 11. 29. 13:35

[시킴여행⑥]까르마빠 공식거처 룸텍사원

 

천둥번개 치는 룸텍 곰파에서...

 

▲ 까르마빠 공식거처 시킴 룸텍곰파에서 만다라를 그리고 있는 라마승들

 

깨달은 자들은 모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에서 일부러 재탄생을 한다고 한다. 한 생명의 빛이 다음 생으로 전해지고, 이 생명이 다음에로, 또 다음에로 끝없이 전해진다. 이것이 불가에서 환생이라 말하는, 일련의 재탄생을 가리키는 것이다.

 

오래 전 한 생명의 환생이 티베트에서부터 출발했다. 그의 이름은 걀와 까르마빠Gyalwa Karmapa, 즉 '깨달은 행위의 승리자'였다. 그 후로 그는 세대와 세대를 거쳐 환생을 거듭하고 있다. 그의 탄생은 1대 까르마빠 뒤쑴 켄파로부터 시작하여 현재의 17대 까르마빠 오겐 틴레 도르제Ogyen Trinley Dorje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까르마빠는 티베트의 4대 종파의 하나인 까규파Kagyu(검은 모자파)의 지도자로 달라이라마, 판첸라마에 이어 티베트 불교 3대지도자이다. 티베트의 4대 종파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닝마파(시조:파드마삼바바), 까규파(시조:틸로파), 사키아파(시조:아티샤), 겔룩파(시조:쫑카파)로 대별할 수 있다.

 

이 중에서 까규파는 마하무드라(大手印)와 나로파의 여섯 가지 교리를 중심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전으로 이어받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 가르침은 인도의 위대한 스승 틸로파(988-1069)의 가르침을 전승 받은 나로파(1016-1100)는 그의 제자 마르파(1012-1097)에게 전승되고, 마르파는 그의 제자 밀라레파(1052-1135)에게, 밀라레파는 감뽀파(1079-1153)에게 전승되었다. 감뽀파는 까규파의 가르침을 집대성하여 독립된 종파를 성립하고, 까규파의 1대 까르마빠인 뒤쑴켄파(1110-1193)에게 전승되어, 현재의 17대 까르마빠인 오겐 틴레 도르제(1985~현재)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티베트 츄르프사원(우), 검은모자를 쓴 17대 가르마빠(좌)

 

원래 까규파의 총본산은 티베트 츄르프 사원Tsumphu Gompa이다. 그러나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하여 통치를 하자 16대 까르마빠 랑중 릭뻬 도르제는 시킴 왕국으로 피신을 하여 룸텍 사원을 재건하고 그곳에 주석을 하기 시작했다. 시킴에 오는 여행자들은 이곳 까르마빠의 주석처인 룸텍 사원을 빠뜨리지 않고 꼭 방문하게 된다. 머나먼 시킴까지 와서 까르마빠의 본산인 룸텍사원은 꼭 방문을 해야 할 사원이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그곳을 방문할 채비를 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지 않은가?

 

남걀티베트학연구소에서 내려온 우리는 룸텍사원으로 가기 전에 MG광장 'Taste of Tibet'란 티베트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뚝빠, 초우면, 토마토 수프, 볶음밥 등 각자가 좋아하는 메뉴를 시켜 나누어 먹었는데 맛이 그만이었다. 그 동안 설사로 고생을 했는데 점점 시킴에 도착하여 점점 밥맛이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심을 해야 한다. 나는 되도록 오래 씹어 음식을 천천히 먹었다.

 

▲ 입맛을 돋구는 티베트 음식

 

느긋하게 점심을 먹은 후 우리 일행은 지프 1대를 렌트하여 룸텍 사원으로 출발했다. 룸텍사원은 갱톡에서 서쪽으로 24km정도 떨어진 갱톡 맞은 편 산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룸텍 사원의 정식 명칭은 룸텍 다르마 차크라 센터Rumtek Dharma Chakra Center로 티베트 불교 까규Kayua(검은 모자)종파 지도자인 17대 걀와 까르마빠( Gyalwa Karmapa)의 공식 주석처이다. 그러나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는 인도 정부는 17대 까르마빠가 룸텍곰파에 취임하는 것을 아직 허락하지 않고 있다.

 

갱톡 MG광장에서 출발한 지프는 계곡을 건너 꼬불꼬불한 산길로 올라갔다. 갱톡 맞은 편 언덕으로 올라가자 구름에 가려진 갱톡 시가지가 어렴풋이 윤곽을 나타냈다. 그 풍경이 색다르게 보여 나는 운전사에게 차를 세월 달라고 부탁을 하고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이란 그 순간을 놓치면 영원히 다시 그 장면을 찍을 수 없기 때문이다.

 

 

▲룸텍사원으로 가며 바라본 갱톡 시내

 

마음씨 좋은 운전수는 기꺼이 차를 세워주었다. 사진을 찍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히말라야 산간에 위치한 시킴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날씨가 흐렸다가 비가 내렸다가 개이기도 했다. 

 

"정말 환상적이군! 저 히말라야의 눈 덮인 설산은 꼭 사막의 신기루 같다니까…"

 

▲ 신기루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는 칸첸중가 설산

 

눈 덮인 칸첸중가가 구름 속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그 모습이 꼭 신기루 같기도 했다. 나는 사하라 사막을 여행하며 신기루를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다. 사막 위에 아스라이 보이는 신기루는 꼭 저 설산처럼 신비하기만 했다.

 

눈 덮인 칸첸중가는 시킴을 여행 하는 내내 신기루처럼 숨바꼭질을 하듯 나타났다간 사라지곤 했다. 우리는 칸첸중가를 바라보며 다시 지프에 올라 룸텍 사원으로 향했다. 히말라야 설산은 무언가 알듯 반듯한 까들음의 영감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일주문에 해당하는 사원 대문에 도착하자 철문이 굳게 닫혀있고 군인들의 경계가 자못 삼엄했다. 경비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쳐다보더니 입장을 하는 사람 모두의 여권을 달라고 했다. 우리 팀의 여권을 거두어 건네주자 그는 나중에 나올 때에 찾아가라고 하면서 여권을 검사하고는 다섯 명의 여권을 서랍 속에 넣어 버렸다.

 

▲ 룸텍사원 정문 입구. 철문이 굳게 닫혀 있고, 군인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며 여권을 검사했다.

 

"여보, 괜찮을까요?"

"정복차림의 군인이니 믿어야하지 않겠소."

 

여행자가 여권을 함부로 맡기는 것은 매우 조심을 해야 한다. 나는 조바심이 나서 여권을 검사했으면 돌려주어야 할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지만, 그는 여권을 맡겨 두지 않으면 입장을 할 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복차림에 권총과 기관총을 맨 사람들이므로 다소 안심이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권을 맡겨두기가 어쩐지 찜찜했다.

 

몇 해 전 핀란드 헬싱키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기차를 타고 갈 때에 정복을 한 경찰들이 몇 번이나 여권을 회수해 갔다가 돌려주었던 기억을 상기시켰다. 그때에도 정복차림의 경찰이나 군인들이 여권을 회수해 갔었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절대로 사복을 한 사람들에게는 여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 여권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룸텍사원을 보지 않을 수도 없어 우리는 여권을 맡겨둔 채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 사원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군인들이 총을 들고 경비를 서고 있다.

 

하얀 룽다 깃발이 나부끼는 언덕길에는 역시 마니차가 길게 늘어 서 있었다. 길가 언덕에는 노란 꽃과 붉은 제라늄, 선인장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약 1km 정도 언덕을 올라가자 거대한 요새처럼 보이는 룸텍 사원이 나타났다. 사원 정문에는 역시 정복차림을 한 군인들이 총을 짊어진 채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었다. 군인들 옆에는 천진난만하게 생긴 젊은 라마승들이 핸드폰을 신기한 듯 만져보고 있었다.

 

 

 

 

 ▲룸텍 사원으로 가는 길

 

사원정문을 통과하니 넓은 광장이 나오고 황금색의 거대한 티베트 사원이 나타났다. 까규종파와 시킴왕국과의 인연은 상당히 오랜 전부터 맺어졌다. 원래 룸텍사원은 9대 까르마빠인 왕축 도르제가 세웠다.

 

1700년 경 시킴왕국의 쇼갈 지룸드 왕이 티베트로 성지 순례를 떠나 츄르푸 사원에서 까르마빠를 만나게 된 것이 인연이 되어 까규종파가 시킴왕국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 이후 시킴왕국에서 크게 번성하게 되었다. 티베트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지룸드 왕은 룸텍, 포당, 랄랑 세 곳에 까규파 사원을 세우고 까규파를 중심으로 티베트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  

 

▲ 까르마빠 공식거처인 룸텍사원. 앞쪽건물은 법당이고

뒤쪽은 까르마 스리 날란드 불교연구소이다.

 

그 후 16대 까르마빠가 인도로 망명을 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을 했다. 16대 까르마빠인 랑중 릭뻬 도르제는 1959년 라싸를 탈출하여 3주에 걸쳐 히말라야를 넘어 부탄으로 피신을 한 후 시킴에 도착, 4년 동안 현재의 룸텍 사원 모습으로 재건했다.

 

비가 점점 거세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비를 피해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법당은 생각보다 어두웠다. 불당을 향하여 3배를 하고 살펴보니 불당 밑에서 라마스님들이 작은 스탠드를 켜 놓고 엎드려 무언가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스님들이 만다라를 그리고 있었다.

 

스님들은 내가 가까이 가는 줄도 모르고 만다라를 그리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진지하던지 저절로 경외심이 솟아났다. 나는 만다라와 만다라를 그리고 있는 스님들께 합장을 하고 한 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만다라는 부처가 깨달음의 경지를 나타낸 것이 아닌가!

 

▲ 만다라 그리기 삼매에 젖어 있는 티베트의 라마승들

 

룸텍 사원에서 만다라를 그리는 스님들의 신성한 모습을 우연히 만나게 되다니… 이건 축복이자 행운이다. 나는 마치 까르마빠의 환생을 보는 듯 반가웠다. 함께 동행을 한 청정남 아우와 바다님도 만다라를 그리는 스님들을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며 비가 더 세차게 내렸다. 벼락 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사원에서 만다라를 그리는 스님들의 모습이 더욱 신성하게 느껴졌다. 도르제! 도르제! 도르제! 중생아, 저 천둥치는 소리를 들으며 무언가를 깨달아야 하지 않겠는가? 티베트어 도르제는 벼락을 의미한다.

 

 

 

 

▲ 천둥번개와 함께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세찬 소나기

 

법당 밖으로 나오니 번갯불이 하늘을 가르며 명멸하면서 엄청난 굉음이 천지를 진동했다. 순식간에 마당이 물바다로 변했다. 그러나 곧 비는 개었다. 하늘은 언제 비가 왔느냐는 듯 다시 맑아졌다. 제행은 무상이라, 이 세상 모든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하늘의 조화도, 번개도, 천둥도 순간에 사라져 가고 있었다.

 

법당 입구에는 아까부터 맨발을 벗은 서양여자 한사람이 바닥에 앉아 무언가 열심히 노트에 적고 있었다. 그 모습이 하도 편하게 보여 그녀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더니 그녀도 눈을 마주치며 미소를 지었다. 이심전심일까? 글을 쓰는 사람들의 마음은 천둥번개 속에서 무언가 깉은 느낌을 받고 있음에 틀림없다. 히말라야 기슭, 유서 깊은 사원에서 만난 천둥번개, 만다라를 그리고 있는 라마승들, 그리고 글을 쓰는 스위스 여류작가....

 

▲ 룸텍사원 바닥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스위스 작가

 

그녀는 스위스에 온 작가라고 했다. 그녀는 어떤 느낌으로 이 천둥번개 치는 룸텍 사원을 그려낼까? 사람의 인연이란 참으로 알 수가 없다. 언제 무엇이 되어 어딧 다시 만날지… 그녀는 나와 전생에 어떤 인연을 가졌을까?

 

인간에게 정말 환생이 있다면 나는 장래 어떤 모습으로 환생을 할까? 잠시 그런 잡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그녀의 행운을 빌며 16대 까르마빠의 유골이 안치된 황금 사리탑으로 올라갔다.<계속>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지난 2012년 5월 여행을 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