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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항구 코친

찰라777 2014. 3. 22. 07:37
 
 

가장 인도답지 않는 인도 속의 도시 코친 항구 

 

아라비아 해를 끼고 있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항구 코친은 인도에서 가장인도답지 않은 항구도시입니다.

 

코친 시내로 접어들며 가장 눈에 띠는 것은 역시 붕붕거리며 거리를 누비는 오토릭샤입니다. 인도에 오면 상징처럼 보이는 오토릭샤를 보면 아아, 과연 내가 인도에 왔구나 하는 실감을 느끼게 됩니다. 창문이 없는 버스가 털털거리며 지나가는 군요.

 

▲마탄체리 궁전으로 가는 거리 풍경

 

여기 남인도에는 버스가 창문이 없어요. 물론 에어컨도 없답니다. 그냥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자연 에어컨 역할을 하지요.”

비가 오면 어떻게 하지요?”

비가 오면 비를 맞지요.”

호호, 과연 자연 에어컨이내요.”

 

코미디처럼 우스꽝스런 표정으로 받아넘기는 샌딥의 너스레가 귀엽게만 보이는 군요. 이럴 때는 가이드가 있는 여행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인도를 네 번째 방문하는 나로서는 오토릭샤와 거리 풍경이 제법 익숙한 풍경들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와는 완전히 낯선 풍경에 그만 흠뻑 빠지고 맙니다.

 

▲인도에 왔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 오토릭샤 

 

사실, 인도를 생각하면 더러움, 시끄러움, 복잡함, 더운 날씨, 그리고 하고 많은 신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인도여행은 어찌 생각을 하면 고행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우리가 미처 체험하지 못한 이상스러운 그 무엇이 수없이 잠재하고 있습니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내게 묻습니다. 그 고생스런 여행을 왜 하느냐고요. 잊어버리기 위해서, 재충전을 위해서, 등 여러 가지 수식어가 있기도 하지만, 여행이란 아마도 일상적인 매너리즘 속에서 졸고 있는 감정들을 일깨우는데 필요한 활력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행은 그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기 위해서 한 달, 혹은 일 년 동안을 여행을 하며 몇 가지 희귀한 감각들을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 감각들은 우리들 내면에 졸고 있는 시와 느낌들을 충동질하여 일깨우게 합니다. 그 감각이 없이는 계속 잠을 자고만 있을 신성한 느낌들이 되살아나게 하는 것이 여행이지요.

 

내가 북인도 파트나에서 델리로 가는 밤기차에서 만난 프랑스의 여인이 생각납니다.

 

인도는 참으로 이상한 나라예요. 자구만 나를 끌어들이니 말입니다.”

왜 그렇지요? 인도의 무엇이 당신을 끌어 드리지요?”

----! 한마디로 말을 하자면, 뭐랄까? 인도는 바로 ‘Strange’ 다시말 하지면 ‘Incredible!’ 하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기묘한 곳이 인도라니까요.”

하하, 과연 그렇군요.”

 

그 프랑스 여인의 말처럼 인도는 참으로 이상한 곳입니다. 다람살라의 어느 찻집에서 만난 호주의 중년신사가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그는 창가에 앉아 짜이를 홀짝홀짝 마시며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그와 눈이 마주쳐서 친해지게 되었는데 그가 나에게 한 말이 생각납니다.

 

스트레인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다 있는 것이 인도라니까.”

, 그래요? 인도를 몇 번째 여행을 하시나요?”

그게 말입니다, 이번 여행이 열 두 번 째 인데요.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올지 모르겠어요. 올수록 인도의 매력에 끌리는 것이 인도여행이라니까요. 허허.”

 

하기야 나 역시 이번이 네 번째로 오는 인도여행기도 합니다. 인도의 무엇이 좋아서 그 호주사람은 열 두 번이나 왔는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 인도의 무엇에 끌려서 덥고, 더럽고, 지저분한 인도에 네 번이나 왔는지 모르겠군요.

 

▲유대인 거리 골동품 가게에 있는 가네쉬 신. 인도에는 3억 3000만개의 신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인도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없는 것도 없다! 무엇보다도 인도에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인 힌두교란 종교가 있는가하면, 그 신의 숫자는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33000만의 신이 존재하고 있다고 하질 않습니까?

 

그런데 더 묘한 것은 힌두교는 어떤 특정한 교조나 교리, 중앙집권적인 권위 위계조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신앙형태가 융합, 용해, 결합되면서 원시적인 물신숭배, 애니미즘, 정령숭배로부터 시작하여 주술, 제식, 다신교, 일신교, 고행주의, 신비주의, 그리고 고도로 발달된 사변적 체계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종교의 형태가 섞여있다는 것입니다.

 

힌두교는 그 어떤 종교도 배타적이지 않으며 다 관용을 베풀어 포괄 흡수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는 그래서 이 힌두의 이해 없이는 인도인들을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수많은 종교와 인종들이 인도에 몰려들지만 모두가 힌두사상에 녹아들고 말지요.

 

어떻게 보면 코친은 인도에서도 가장 인도답지 않는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힌두교 사원보다는 교회건물이 더 많이 눈에 띠고 주택도 서양식 주택이 더 많이 보입니다. 코친의 볼거리는 코친 항과 섬처럼 생긴 마탄체리에 다 몰려 있습니다. 중국식 어망을 비롯하여 유대인 거리, 성 프란시스 교회 등이 모두 이곳 마탄체리에 몰려 있습니다 

 

코친은 로마시대부터 향신료 무역이 중개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무역항이라고 합니다. 중세기까지 유럽의 상인들과 아라비아, 중국의 거상들이 드나들었고, 16세기 이후부터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 서구열강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며 침입을 하였던 곳입니다. 결국 1812년부터 영국이 단독으로 지배를 하면서부터 도시의 틀을 갖추어 나가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코친은 고대, 중세, 현대로 이어지는 다양한 역사적인 산물과 종교가 공존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마탄체리 궁전 외부

 

샌딥의 안내로 맨 먼저 찾아간 곳은 마탄체리 궁전이었습니다. 포르투갈이 코치의 지배자인 비라 께랄라바르마에게 선물한 마탄체리궁전은 후에 네덜란드가 중축을 한 후 네덜란드인의 궁전으로 사용했다고 하는 군요. 겉으로 보기에는 큰 특징은 없는 건물이지만 내부에는 17세만하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라마야나벽화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여 보여줄 수 없군요.

 

마탄체리 궁전에서 조금 더 가면 유대인 마을이 나옵니다. 이런 먼 곳에 유대인 마을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군요. 코친에 유대인이 정착을 한 연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바빌론이 예루살렘을 침공했을 때 피난을 왔을 것이라는 설과 BC11세에 향신료 무역을 하던 유대인 정착을 했을 거라는 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유대인 거리

 

처음 조성이 되었을 때에는 500여 가구 정도가 있었으나 이스라엘이 건국된 후에는 7가구정도만 남아있습니다. 현재는 유대인 마을이라기보다는 각종 골동품 가게가 거리를 메우고 있습니다.

 

대낮에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유대인 거리를 걷다가 우리는 중국식 어망이 있다는 해변으로 갔습니다. 드넓은 아라비아 해에 드리워진 고기를 잡는 큰 그물망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군요. 그 그물 사이로 거대한 화물선이 오고 가고, 그런가 하면 노를 저어 가는 작은 쪽배가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코친항 중국식 어망이 늘어 서 있는 곳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

 

이 중국식 어망은 원래 중국 광둥 성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것으로 원나라 황제인 쿠빌라이 칸이 대륙을 호령하던 시절에 코친 항까지 전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돈을 주어야만 관광용으로 작업을 할뿐입니다.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자 어부들이 손짓을 하며 오라고 부르는 군요, 그 손짓은 돈을 주면 고기를 잡는 모습을 보여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물을 당겨도 이제 고기가 잘 잡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고작 3~4마리정도 작은 물고기가 그 큰 그물에 팔딱거려 채산성이 없다는 것이지요. 다만 석양노을에 비친 거대한 그물은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어슬렁거린다고 합니다.

 

우리는 해변을 어슬렁거리다가 걸어서 바스코 다가마의 무덤이 있다는 성 프란시스 교회로 갔습니다. 거리는 인도답지 않는 유럽식 건물들이 들어 서 있군요. 바스코 다가마는 14~15세기에 걸쳐 3차례나 아프리카 희망봉을 거쳐 인도로 항해를 한 포르투갈에 새로운 항해시대를 연 역사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포르투갈에 대 항해시대를 연 바스코 다가마의 초상과 12년 간 묻혀있었다는 성 프란시스 교회의 무덤 자리

 

그는 1502년 포르투갈의 함대사령관으로 있으면서 인도의 고아 항에 도착하여 여자와 아이들도 포함되어 있는 아랍의 배를 습격하여 승객 200~400명을 배에 감금시켜 놓고 불을 질러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 전원을 불태워 죽인 잔인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1524년 인도의 총독으로 임명된 그는 병이 들어 그해 12월 코친에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의 시신은 바로 이 성 프란시스코 교회에 12년간이나 묻혀 있다가 포르투갈로 보내졌다고 하는군요.

 

나그네의 눈에 비친 코친은 가장 인도답지 않는 인도로 보이기만 합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지배를 했던 식민지 시절 건물들이 거리에 들어서 있어 어느 유럽의 오래된 거리를 걷는 느낌이 듭니다.

 

 

▲유럽 중세풍의 거리와 레스토랑

 

이젠 배가 고프군요. 우리는 정심을 먹기 위해 성 프란시스 교회에서 중세 유럽풍의 거리를 걸어 식당으로 갔습니다. 붉은 종이꽃을 비롯하여 남국의 꽃들이 담장을 메우고 있는 거리를 걷다가 우리는 야자나무가 우거진 가정집처럼 생긴 어느 레스토랑으로 들어갔습니다. 레스토랑을 들어서자 향신료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군요! , 이제 남인도의 음식에 오감을 충족시킬 시간입니다

 

 

 

 

코친항의 중국식 어망

 

▲남인도 코친 중국식 어망

 

 

남인도 코친은 현존하는 인도의 가장 오래된 무역항이다.

께랄라 주 주요 관문으로 중세기까지 중국과 아라비아, 유럽의 상인들이 드나들었던 항구로

해변에 길게 늘어선 중국식 어망이 눈길을 끈다.

중국식 어망은 원래 중국 광동성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것으로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 칸이 대륙을 호령하던 시절에 코친 항까지 전해 졌다고 한다.

 

 

 

 

최근에는 중국식 어망을 실제 조업에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돈을 주어야 관광용으로 작업을 할 뿐이다.

20여명의 장정이 달려들어 그물을 끌어 당겨보아야

물고기는 고작 3~4마리에 물과해 채산성이 맞지안히 때문이다.

 

 

 

 

 

 

 

 

 

 

 

▲나무에 원색을 채색해 놓은 모습

 

 

마탄체리 궁전

 

포루투갈이 코친의 지배자인 비라 께랄라바르마엑 선물을 한 건축물로

1663년 후부터 네덜란드이느이 궁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내부에는 벽화와 크리쉬나 신, 양치기 소녀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사진을 찍지 못하게 통제를 하고 있다.

주변에 힌두 사원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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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탄체리 궁전 앞의힌두 사원

 

 

바스코 다가마의 무덤이 있는 성 프란시스 교회

 

포르투갈의 항해왕 바스코 다가마가 12년간 묻혀있었다는

성 프란시스 교회는 코친이 네럴란드 영향권에 있을 때에는

개신교 교회로 사용되었고

18세기 이후부터는 영국 성공회 소속 교회로 변경되어

인도 독립 전까지 남이도 본부 역할을 하였다.

 

 

 

 

 

 

 

 

 

 

 

 

 

유대인 마을

 

코친의 유대인 마을은 현재 골동품 거리로 더 유명세를 타고 있다.

코친에 유대인이 언제부터 살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BC11세기에 향신료 무역을 하던 유대인들이 정착했을 거라는 설리 전해 내려오고 있다.

처음 유대인 마을이 조성 되었을 때에는 500여 가구에 달할 만큼 규모가 컸으나

이스라엘이 건구괸 두에는 7가구 22명으로 축소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