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농사는 정성이다-무씨를 파종하다

찰라777 2014. 8. 12. 05:01

8월 11일 흐림

 

무씨를 파종하다

 

 

 

 

 

 

입추가 지나고 나면서부터 갑자기 가을 날씨처럼 서늘하다. 이대로 가을이 오는 것은 아닐까? 아침저녁으로는 춥기까지 하다. 각하는 카디건을 꺼내서 걸치고 거실의 창문을 닫기까지 했다.

 

 

어제 내린 비로 충분히 해갈이 된 것 같다. 땅을 파보니 30cm 깊이까지도 촉촉하다. 아무래도 이럴 때 무시를 파종하는 것이 적격일 것 같아 전곡으로 무씨를 사러 가려고 하는데, 마침 바다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전철을 타고 소요산역에서 내렸다는 것이다. 바다님에게 버스를 타고 전곡버스정류장에서 내리라고 하고 나는 금가락지를 출발했다.

 

20여분 정도 걸려 전곡버스정류장에 갔던 바다님이 배낭을 메고 오고 있었다. 칠십을 넘은 나이답지 않게 바다님은 언제나 씩씩하다. 며칠 전에 알프스 몽블랑 트레킹을 다녀왔다고 전화가 왔었다. 13일 여정으로 알프스 트레킹을 다녀올 정도로 원기가 왕성하다.

 

 

여행으로 맺어진 인연은 참으로 언제나 신선하다. 바다님과는 네팔을 두 번, 부탄, 그리고 인도여행을 다녀왔다. 37년간 사서로 근무를 하다가 정년퇴직을 한 후 오로지 여행에 올인을 하고 있는 바다님은 보면 여행 자체가 생활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금을 저축해서 돈이 모이면 1년에 1번 내지 두 번은 꼭 여행을 떠난다. 홀로 사는 그녀는 여행이 희망이다. 그 점은 각하와 닮은꼴이다.

 

 

 

바다님과 함께 육묘상회에 가보니 벌써 김장배추 모종이 많이 나와 있다. 주인장은 계절이 빨라져서 지금 정식을 해도 빠르지 않다고 했다. 불암 3호 120포기 짜리 한 판에 9천원, 청운무 1봉지에 9천원을 주고 샀다. 무씨는 생각보다 비싸다. 허지만 내가 무씨 종자를 키우기는 어려운 일이다.

 

바다님은 마트에 들려 각하를 위해 무언가를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집으로 전화를 했더니 부침개를 해먹게 생 오징어를 사오라고 했다. 바다님은 오징어 3바리와 막걸리 세병을 샀다. 알프스 트레킹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바다님을 위해서 부침개에 막걸리 한 잔 나누며 축하라도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 모래 13일은 이근후 박사님과 오영희 선생님, 월명수, 선법성 보살님이 오기로 되어 있고, 내 친구 응규도 오기로 되어 있다. 원래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나는 그 때 마실 막걸리를 두병을 더 산 것이다.

 

 

금가락지로 돌아오는 길에 농협에 들려 퇴비 5포와 복합비료 1포를 32,000원을 주고 샀다. 퇴비가 5포가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배추와 무 등을 심으려면 부족할 것 같아서 샀는데 냄새가 지독하다. 가스가 나간 다음에 파종을 해야 할 것 같다. 화학비료는 일체 주지 않고 있는데 배추가 결구가 잘되지 않고 성장이 너무 저조하여 복합비료를 좀 주자는 아내의 강력한 주장으로 1포를 사기는 했는데 어쩐지 찜찜하다.

 

 

집에 돌아와서 일단 짐을 내려놓고 무씨부터 파종을 하기로 했다. 바다님과 차 한 잔을 나누며 잠시 알프스 여행이야기로 담소를 나누었다. 알프스는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아름다운 정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다.

 

점심 때가 되어 각하는 부추와 오징어, 감자를 섞어서 부침개를 부쳤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부침개에 막걸리 한 잔씩을 따라 놓고 바다님의 무사 귀국을 환영하며 축배를 들었다. 요즈음은 비행기 사고도 하도 자주 일어나서 해외여행을 갔다가 무사히 돌아오는 것도 큰 축복이다.

 

 

점심을 먹고는 커피 한잔씩을 들고 정자로 가서 커피타임을 가졌다. 서울에서 전철과 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와준 바디님이 고맙지 않은가. 커피를 마시고는 잠시 정자에 누워 낮잠을 잤다. 그러나 날씨가 너무 서늘해서 곧 거실로 들어왔다.

 

 

 

오후에는 소독을 한 무씨를 접시에 부어놓고 일일이 손으로 하나씩 집어서 1~2cm 간격으로 파종을 했다. 촉촉한 땅의 느낌이 제법 좋다. 땅은 일주일 전에 퇴비를 뿌리고 갈아 놓은지라 무씨만 뿌리면 된다. 이랑과 고랑을 이 타 놓았지만 무씨 파종을 위해 호미로 땅을 살짝 파서 무시를 정성스럽게 파종을 했다.

 

 

 

 

 

한 알씩 파종을 라다 보니 시간이 꽤 걸렸다. 무씨 한 알 심을 때마다 “잘 자라다오!” 하고 주문을 하며 정성을 들였다. 농사는 정성이 전부다. 파종부터 정성을 들여야 한다. 그러면 저 생명이 있는 말은 하지 않지만 무씨가 다 보고 듣고 느낀다.

 

무시 파종을 끝내고 장갑을 낀 손으로 일일이 흙을 덮어 주었다. 2cm 정도 얇게 덮어야 한다. 흙을 덮지 않으면 발아가 잘되지 않기도 하지만 새들이 쪼아 먹어버릴 수도 있다.

 

 

어제 비가 충분히 왔지만 흙을 닾은 다음에 다시 물을 뿌려 주었다. 빗물을 조로에 담아서 서서히 뿌려주니 잘 스며 든다. 최종적인 작업은 무밭에 철사를 드리우고 그 위에 모기장을 씌우는 일이다.

 

 

 

 

2.5m짜리 철사를 미리 사두었는데, 철사를 마치 어제 임진강에 걸린 무지개처럼 휘어서 아치를 만들고 그 위에 고물 모기장을 덮어씌웠다. 이렇게 해두면 나방이나 비추 흰나비가 알을 까거나 벌레가 서식하는 것을 방지하고 새들이 쪼아 먹는 것도 예방이 된다. 작업을 마치고 나니 무가 잘 자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내일은 총각무와 갓씨를 파종해야 할 것 같다. 배추는 퇴비를 준 후 며칠 지난 다음에 정식을 하기로 했다.

 

무씨 파종을 끝내고 채마밭에 가서 쇠스랑으로 땅을 팠다. 수박과 참외를 심었던 곳에 시금치를 심을 땅을 일구기로 했다. 촉촉이 젖은 땅이라 작업을 하기가 수월하다. 흙 냄새를 맡으며 땅을 파고 있는데 저녁밥상 차렸다고 바다님이 불렀다. 벌써 날이 저물고 있다. 서산에는 이미 해가 기울고 땅거미가 지고 있다. 오늘 하루도 참 긴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