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더 행복하게 살려면?

찰라777 2014. 8. 30. 09:30

20촌(村) 10도(都)의 생활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행복학 연구자 뤼트 베인호번(Ruut Veenhoven·71) 네덜란드 에라스뮈스대 명예교수는 “더 행복해지려면 사람들과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하고, 일과 자유 시간에 활동적으로 움직이라”고 충고한다. 베인호번 교수의 이 말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매우 새겨 들어야 할 말이다. 좋은 인연을 오래도록 간직하되 일에만 얽매이지 말고 혼자만의 자유시간을 온전히 즐겨야만 후회없는 인생을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 쇼윈도우

 

 

나는 지금 서울에 일주일째 머물고 있다. 지난 21일 날 연천에서 서울에 온 후로 이리 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한 달 중 20일은 연천에서 텃밭 농사를 지으며 시골생활을 한다. 그리고 10일 정도는 서울에 와서 지낸다. 말하자면 ‘20촌(村) 10도(都)’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평생을 서울에서 살아온 나는 때려야 땔 수 없는 온갖 인연들이 서울에 다 모여 있다. 그래서 1일부터 20일까지는 시골인 연천에 머물고, 21일 이후에는 서울에서 여러 가지 일을 본다. 아내의 병원, 친구들 모임, 봉사활동, 애경사 등 각종 모임과 활동을 21일 이후로 몰아서 하고 있다. 한 달에 2~3번 있는 친구들 모임도 내가 시골에 있는 점을 감안하여 넷째 주로 배려를 해주고 있다.


▲코스모스가 만발한 연천 시골집 풍경

 

 

이번 달 서울에서 지낸 일을 잠시 살펴보면, 21일 저녁에 서울 아이들 집에 도착하여 22일 날은 아내의 아산병원에 외래진찰을 하는데 동행을 하여 일을 보고 미국에서 온 오영희 선생님을 만나 저녁 식사를 하였다. 선생님은 꿀과 미국에서 가져온 양초를 선물로 전달하기 위해 일부러 분당에서 서울 아산병원까지 찾아온 것이다.  9월 14일 날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신다는 선생님은 나이보다 훨신 젊게 살아가는 멋쟁이다.

 

 

이번 귀국길에 50년 만에 찾아본 연천 왕산초등학교 방문에 그녀의 인생에 두고두고 잊지못할 아름다운 추억으로 될 것 같다고 소회를 밝히며 금가락지에서 환대를 해준 것을 영원히 잊지못하겠다고 하셨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인연 이렇게 끝없이 이어지나 보다. 나는 선생님의 건강을 기원하며 다으멩 귀국하시면 꼭 다시 한번 추억의 50년 길을 걸어보자고 제의를 했다.

 

 

23일 날은 수유리에 있는 향운사 자비공덕회 기도법회에 참석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자비공덕회에서는 이번 10월 27일 네팔에 장학금을 보내주고 있는 학교를 방문할 예정이다. 지난 2010년에 첫 방문을 했는데, 이번에 컴퓨터 모금운동을 한 결과 약 30대의 컴퓨터가 모아져 이를 전달하고 학생들을 격려할 예정으로 되어 있어 이에 대한 준비를 하느라 협의를 하고 거의 하루를 다 보내야 했다.


▲자비공덕회 남을 위해 기도하는 모임에 어느 여인이 기증한 동전 꾸러미를 올리고 감사기도를 올렸다.

 

 

 

24일 날은 조계사 총무원 회의실에 가서 ‘사티’라는 네팔영화를 관람하였다. 사티(산스크리트어: सती)는 예전에 인도에서 행해졌던 힌두교의 의식으로,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시체·옷과 함께 그의 아내도 산채로 화장하던 풍습이다. 사티에 대한 풍습은 1829년 영국식민지정부가 법률를 제정 금시시켰다.

 

 

사티는 본래 '정숙한 아내'라는 의미로 남편의 시체를 화장하는 부레 몸을 던져 순사(殉死)한 여자를 말한다.  이러한 풍습은 왕후의 순사 풍조에서 발전하여 상류 계급에서 행해졌으나, 과부의 재혼 금지 풍습에 따라 점차 일반으로 확대되었다고 한다.

네팔의 근로자들이 쉼터 마련을 위한 모금운동 모임을 가진 후 상영하는 영화인데, 네팔관광청서울사무소장 케이피 시토울나님의 초청으로 자비공덕회 지상 스님을 비롯하여 7명의 회원들이 약간의 후원금을 기부를 하고 함께 관람을 하였다. 
 

영화 관람을 한 후 오후 5시에 있는 고등학교 친구들의 ‘부부사랑’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종각역에서 1호선을 타고 종로3가역에서 수서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부부사랑 모임은 일곱 쌍의 부부가 만나는데 40년 넘게 만나 온 오래된 모임이다.

 

 

서울의 지하철은 이제 대단히 복잡해졌다. 1호선~9호선까지 거미줄처럼 땅속으로 연결되어 있는 지하철은 분당선, 시분당선, 중앙선, 경의선, 경춘선, 공항철도까지 합세하여 무척 복잡해졌다.


▲4개이 노선이 거미줄처럼 꼬여 있는 왕십리역

 

서울에서 거의 평생을 살아 온 나도 노선이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여러 개의 노선이 겹치는 왕십리역, 용산역, 종로3가역, 고속터미널역 등에서는 아차 하면 엉뚱한 방향의 노선을 타는 경우가 생긴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제대로 된 노선을 탈 수 있다. 더욱이 시골 생활을 하다가 서울에 오면 감이 잘 잡히지 않아 거꾸로 가는 지하철을 타는 경우가 종종 생기곤 한다.

 

지하철을 탈 때는 거동이 좀 불편한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노선도를 두리번거리며 살펴 본 후 방향을 잡아타게 되는데 시골 촌뜨기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어쨌든 그 날 모임은 헷갈리지 않고 수서역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다. 애란궁에라는 오리고기 집에서 일곱 쌍의 부부가 저녁을 먹으며 오래도록 회포를 풀었다.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던 애란궁 음식점 정자

 

25일 날은 청정남 님과 민들레님, 바다님이랑 함께 덕수정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이 모임은 여행에서 만난 모임이다. 덕수정은 지난주에 이집 주인장 현영님이 무거운 동전꾸러미를 가지고 연천 집을 방문을 하여 네팔 어린이들에게 보시를 하게 된 인연으로 알게 되었는데 점심을 이곳 덕수정에서 먹기로 했다.

 

 
덕수정은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인근에 있는 한정식 집으로 청국장에 고등어자반, 더덕 무침, 도토리묵 등이 푸짐하게 올라왔다. 입맛을 돋우는 반찬으로 맛나게 점심을 먹으며 우리는 여행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최근에 민들레님은 발칸반도를 다녀왔고, 바다님은 알프스 트레킹을 다녀왔다고 한다.

 

 
이 두 분은 여행을 위하여 용돈을 아끼고 모아서 1년에 한 두 번은 꼭 여행을 가곤 한다. 민들레님은 이미 금년 봄에 남인도와 스리랑카를 다녀왔고, 바다님도 터키와 이태리를 다녀왔다. 두 분은 여행을 위하여 청정남 님에게 여행계를 붓고 있을 정도다.  
 
 
바다님의 경우는 40년 가까이 교육공무원을 하다가 퇴직을 하여 연금으로 살아가는데 한 달에 100만원을 계돈으로 먼저 부어버리고 나머지 돈으로 생활을 한다고 한다. 은행에 예금을 하여도 이런저런 일로 찾아 쓰게 마련인데 계를 부어 놓으면 절대로 찾아 쓸 수 없게 되어 여행비를 마련할 수 있더라는 것.

 
 
 
 
 
 
사람은 자신의 가치 기준에 따라 살아가기 마련인데, 칠십이 넘어 홀로 살고 있는 바다님은 오직 여행만이 유일한 취미이자 그녀가 살아가는 삶의 보람을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다음 여행지를 기대하며 삶의 희망을 갖고 살아간다는 그녀가 이해가 간다.
 
 
민들레님은 이번에 자비공덕회와 함께 네팔 학교를 방문하고 부탄 성지순례에 참여할 계획을 가지고 있고, 청정남 님은 가능하다면 네팔에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고 싶다고 하였다. 아무튼 모두가 다음 여행계획을 기대하며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향기롭게만 보인다.

 
만약에... 3일간 눈을 뜰 수 있다면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함께 롯데호텔 갤러리로 가서 김영택 화백의 펜화 전을 감상했다. 김영택 화백은 오직 펜 하나로 세계의 오래된 건축물과 한국의 문화유산을 그려내는 펜화가 이다. 그림 하나를 그리는데 펜으로 50만 번의 터치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한국의 숭례문, 근정전, 프랑스의 몽셀미셀, 인도의 타지마할, 요르단의 파트라,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등 기라성 같은 세계문화유산이 그의 손끝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김화백의 그림을 몇 점 소지하고 있는 청정남님의 소개로 알게 되었는데, 김화백의 그림은 소장가치가 있는 가치 있는 그림이다. 그러나 워낙 고가여서 아무나 소장을 하기가 어려운 그림이다. 청정남이 김화백의 복사본 엽서를 사서 선물을 해주었는데, 이 엽서만 보아도 매우 가치가 있어 보였다.

 
 
▲롯테호텔에서 전시되고 있는 김영택화백 펜화 '몽셀미셀'
 
▲캄보디아 왕코르 와트
 
 
서울은 거의 모든 문화시설들이 다 보여 있다. 그래서 모처럼 서울에 오면 이렇게 가끔 그림 전시화도 보고 음악회나, 연극, 영화를 관람하기도 한다. 지난달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뭉크 전을 관람하고 이창수 사진작가의 히말라야 14좌 사진 전시회, 그리고 세종문화회관에서 정혜경 피아노 독주회를 관람할 기회를 가졌다. 가끔씩 가보는 전시회나 음악회는 우리의 정신문화를 살찌게 하는 청량제역할을 한다. 전시장을 나오면서 나는 태어난지 19개월 만에 시력과 청력을 잃어버린 헬렌 켈러의 말을 떠올렸다. 
 
 
“만약 내가 눈 뜰 수 있다면, 눈을 뜨는 첫 순간 나를 이만큼이나 가르쳐준 스승 앤 설리번을 찾아갈 것이다. ……그 다음엔 친구들을 찾아갈 것이며, 그 다음엔 들로 산으로 산보를 나가리라.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잎사귀들, 들에 핀 예쁜 꽃들과 저녁이 되면 석양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싶다. 다음날 일어나면 새벽에는 먼동이 트는 웅장한 광경을, 아침에는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을,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 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또 하루를 보낼 것이다. 마지막 날에는 일찍 큰길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아침에는 오페라하우스, 저녁에는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싶다. 어느덧 저녁이 되면 건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도시 한복판으로 걸어 나가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쇼윈도에 진열된 아름다운 물건들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눈을 감아야 할 마지막 순간, 사흘 동안이나마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신 나의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리라.
 - 헬렌 켈러, ‘사흘만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중에서
 
 
26일 날은 원래 연천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오래된 중학교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도대체 만난 지가 너무 오래되었으니 한 번 얼굴이나 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신당동의 덕수정에서 점심을 먹자고 했다. 네 명의 친구 가운데 한 친구는 연락이 안 되어 경기도 화성에서 농자를 짓고 있는 친구와 서울에 있는 친구 이렇게 셋이서 오랜만에 만나 덕수정에서 청국장으로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화성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친구는 작년에 나무에서 떨어져 오른쪽 아킬레스 건이 끊어지는 사고를 당했는데 지금도 다리가 온전치 못해 지팡이를 짚고 왔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멀리서 온 그가 고마웠다. 그는 손수 농사를 지은 들깨 잎을 한 보따리 따서 가져왔다. 농사를 짓지 않는 친구들을 위해서 가져 온 것이다. 그런데 한 친구는 연락이 두절되어 나오질 않았고, 또 한친구는 부인이 미국에 머물고 있어 가지고 가 보아야 요리를 할수도 없어 썩힐 것이 분명하므로 필요없다고 했다. 그래서 농사를 짓는 내가 그 들깨잎을 받아 들고 오게 되었다. 가져 온 성의를 보아서라도 감사히 먹야 할 것이 아닌가. 보따리를 드록 오는데 고소한 냄새가 오래된 친구의 향수처럼 향기로웠다.

 

 
이 친구들은 정말 청국장처럼 구수한 친구들이다, 세상이 다 변해도 변치 않는 우정을 지니고 있는 고구마 같은 친구들이다. 우리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늦은 오후까지 담소를 나누었다. 남자들인데도 오랜만에 만나다 보니 수다를 떨 일들이 많았다. 한 친구가 연락이 되지않아 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어느날 갑자기 다가오는 죽음
 
오후 4시쯤 덕수정에서 친구들과 헤어지려고 하는데, 광주 처제로부터 전화가 왔다. 광주에 살고 있는 큰 처남이 갑자기 복통이 나고 기절을 하여 전남대 병원에 입원을 하였는데 증세가 시상치 않아 서울로 오고 있는 중이라는 것. 큰 처남의 장남이 한양의대 의사로 있어서 한양대학병원에 거의 다 도착을 했다고 했다.

 
평소에 무척 건강하고 병원문턱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처남이다. 부랴부랴 한양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보니 정신을 잃은 체 몇 개의 링거와 혈액주사를 맞고 있는 처남을 발견하였다. 4~5명의 의사들이 처남의 머리맡에서 뭔가 협의를 하고 간호사들이 주사기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처남은 곧 시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대장으로 연결하는 동맥이 터져 출혈이 심하다는 것. 그런데 전남대 병원에서는 단순한 음식으로 인한 배탈로 보고 3일 동안 전혀 응급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다. 복통이 심하게 나서 전남대 응급실로 갔는데 3일 동안 배탈에 대한 치료만 하고 퇴원 조치를 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택시를 타고 퇴원을 하다가 기절을 하여 택시 운전사가 다시 전남대 병원 응급실로 데려다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전남대 병원에서는 진통제만 주고 별다른 조치를 하지를 않고 방치를 했던 것.
 
 
그 동안 장내 출혈이 심해 빈혈이 악화되고 신장과 심장 기능이 저하되는 등 여러 가지 합병증이 발생하고 있었다. 한양대에서는 바로 시술을 하여 터진 동맥을 찾아내 봉합을 하고 중환자실에 입원을 하는 등 응급조치를 하여 병세가 점차 호전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죽음이란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다. 만약에 그 택시 운전사가 기절한 처남을 병원 응급실로 데려다 주지않았더라면 처남은 이승의 삶이 마감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 짧은 순간에 처남은 죽음의 문턱에서 택시 운전사의 판단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렇듯 죽음이란 우리에게 예고 없이 찾아온다. 사람의 가장 큰 착각은 "영원히 살 것 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그 영원은 매우 짧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 순간 깨어 있는 자세로 진지하게 살아가야 한다. 진지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 안에서 들려오는 영혼의 부름대로 살아가는 삶이 아닐까?
 
 
그래서 27일 날은 정말로 연천 집으로 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고향친구 응규한테 전화가 왔다. 아주 절친하게 지내고 있는 평수의 장모님이 작고를 하여 천안에서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응규와 함께 천안으로 문상을 가게 되어 연천으로 가는 날이 하루가 더 연기되었다.
 
 
우리 집에서 중앙선을 타고 용산역까진 약 50분이 걸린다. 10시에 집을 나서 오전 11시 용산역에서 응규를 만나 천안으로 가는 전철을 탔다. 천안으로 가는 전철은 급행과 완행이 있는데 급행을 타면 1시간 30분이 걸리고, 완행을 타면 2시간이 걸린다. 수도권에 전철이 건설되면서 교통이 매우 편리해졌음을 실감한다. 소요산, 춘천, 용문, 인천, 천안까지 모두 전철이 운행을 하게 되어 저렴하고 편리한 대중교통으로 1일 생활권이 가능해진 것이다.  
 
 

 

▲천안으로 가는 급행 전철에서

 

 더욱이 65세 이상은 무료로 승차를 할 수 있게 되어, 아산, 춘천, 용문 등으로 나들이를 가는데 실버 세대로 인해 새로운 생활 풍속도가 생겨나고 있다. 필자역시 작년부터 실버세대에 편입되어 “G-PASS"라는 노인 우대용 카드를 발급받았다. 처음 이 카드를 사용하던 날은 내가 정말로 노인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마음은 아직도 청춘인데… 실버카드로 무료 승차를 하게 되다니 약간 슬프기도 하고, 묘한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복지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에 대하여 고마운 생각도 들었지만, 이로 인해 지하철 공사가 적자운영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에는 뭔가 개선이 되어야 할 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의 수명이 100세 시대로 진입하는 시기에 65세는 아직 청춘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천안까지 무로로 우대를 받으며 천안역에 내려 친구의 장모님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는 천안의료원까지 갈 수 있었다. 천안의료원에서 2시 정도를 친구와 함께 지내다가 다시 서울로 오른 급행 전철을 무료로 타고 왔다. 뭐, 지금까지 세금 열심히 내고, 일도 열심히 했으니 실버우대를 당연히 받을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든다. 
 
 
이제 오늘 아침(28일)에는 정말 연천으로 가야 한다. 어제 연천 동이라 마을 이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울력을 하여 코스모스 길을 단장하고, 진입로 공사 관계로 군수님을 면담하게 되었는데 함께 동행을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가피한 내 사정으로 참석을 못하게 되어 이장님과 마을 사람들에게 무척 미안한 마음이 든다. 

 
더 행복해지려면 ...
 
 
일주일 동안 직무유기를 한 채 돌보아 주지 못한 텃밭의 농작물한테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살아간다고 했지 않던가? 그런데 일주일 동안이나 내 발자국 소리를 듣지 못한 배추, 무, 고추, 가지, 콩, 고구마, 당근 등 텃밭 작물들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사람은 이 세상의 모든 것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우리가 살아있는 한 때려야 땔 수 없는 관계이다. 행복은 이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국민 전체의 행복도 높이기 위해서는 사회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문제는 해결에 긴 시간이 걸린다. 또 언제든 새로운 문제가 터져 나온다. 완벽하게 문제가 해결된 사회에서 사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행복 도를 결정하는 요소는 외부환경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스스로 행복 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 행복해지려면 사람들과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하고, 일과 자유 시간에 활동적으로 움직이라”고 충고한 베인호번 교수의 충고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내가 일주일 동안 서울에 머물며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해온 사람들을 만나고 애경사에 참여 하는 일도 내 자신이 더 행복해지려고 하는 행동이다. 베인호번 교수의 말처럼 우리가 바라는 사회문제의 해결에는 많은 시간과 제약이 따른다. 그렇다면 스스로 해결 할 수 있는 작은 관계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
 
 
나는 중환자실에 입원을 하고 있는 내 큰 처남이 빨리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가 살고 있는 연천의 동이리 마을 진입로 공사가 주민이 원하는 대로 편리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나라에서 새로운 도로를 내면서 농로가 23도로 가팔라졌는데 이를 10도 이하로 낮추어 달라는 마을가람들의 소원이다.  
 
 

 

 
그리고 우리 집 텃밭에 자라나고 있는 농작물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무척 궁금하다. 녀석들이 주인이 없는 동안 무사히 잘 자라 주었으면 좋겠는데… 빨리 가서 보고 싶다. 20촌 10도의 생활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꽤 바쁘다. 그러나 이 바쁜 과정에서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의 친분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 그리고 나는 좋은 인연과 더욱 가까운 친분을 오래도록 유지하고 살아가고 싶다.
 
 
작가 조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단 한 번이다. 하지만 제대로 산다면야 한 번으로 충분하다."고. 제대로 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 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귀울이는 삶이다. 내가 무성을 원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내 영혼의 부름에 응답하여 삶을 산다면 단 한 번 사는 인생이라고 후회없는 삶을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내 인생과 연관이 된 관계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그 관계에 끌려다니며 산다면 그 인생은 불행할 것이다. 나는 한 남편으로서, 두 딸의 아버지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형제와 친척의 한 부눈이면서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살아오고 있다.
 
그런데 이 수 없이 많은 관계 속에 살아가면서도 때로는 외롭고 쓸쓸함을 느낀다. 내가 너무 다른 사람들의 삶에 얽매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다른 사람이라는 범주는 아내를 비롯하여 자식들도 포함이 된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삶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보람있고, 행복하게 보일 수 있지만 되돌아보면 고독하고 쓸슬할 때가 많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위해서만 살아가서는 이 고독함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 온 삶은 아내와 아이들, 직장과 이웃, 친구들과의 간계 속에서 열과 성의를 다해서 살아왔다. 그것은 내 인생의 큰 사명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명이 아무리 보람이 있더라도 해결되지 않는 갈증이 내 안에 존재하고 있다. 늘 함께 살아가는 아내도, 그 누구도 핵ㄹ해 줄 수 없는 나만의 갈증이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매일 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인가? 이는 내가 죽을 때까지  풀어야 할, 아니 풀기가 어려운 화두이다.
 
연천으로 돌아가면서 지난 일주일 동안 내 삶을 뒤돌아 본다. 좋은 싫든 많은 과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나는 내 큰 처남이 하루 속히 회복이 되어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발을 절둑거리는 화성 친구도 아킬레스 건 기능이 회복이 되어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기를 바란다. 친구 장모님이 더 좋은 곳에서 태어나기를, 청정남 아우의 건강한 삶을,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시는 오여희 선생님의 건강을, 그리고 부부사랑 회원들의 행복한 삶을.... 기원해 본다. 그러면서도 나는 내 안의 갈증을 풀 수 있는 길을 찾아가고 있다.내 마음의 아득한 밑바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우리며, 나 자신을 더 사랑하려고 노력해본다.
 
 
그러 저런 생각의 편린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데... 어느새 연천이다. 들에는 벼이삭이 점점 고개를 더 수그리고, 수수가 푸른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있다. 그런들판을 가로 질러 나는 마침내 금가락지에 도착했다. 그리운 금가락지, 언제나 머물고 싶은 금가락지....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