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북으로 날아가는 포성소리 들으며 김장배추를 심다

찰라777 2015. 8. 21. 21:48

어제 오후 5시경, 텃밭에서 김장배추를 심고 있는데, 갑자기 고막을 찢을 듯한 포성 소리가 바로 우리 마을 옆에서 들려왔다. 내 생애 이렇게 큰 포성 소리는 처음이다. 십여 발의 포성이 북으로 날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아내와 나는 텃밭에서 김장배추 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소나기를 맞은 배추모종이 생생하다  

 

문득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던 스피노자의 말이 생각났다. 포탄이 떨어져도 내년 한 해 동안 먹을 김장배추는 심어야 한다. 전국에 있는 지인들로부터 안부전화가 왔다. '별일 없느냐'는 안부와 함께 빨리 대피를 하지 않고 왜 지금도 연천에 있느냐며 걱정을 했다 

 

북한이 쏜 포탄이 떨어진 연천군 중면은 우리 집에서 직선거리로 20km가 채 안 되는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다. 어제는 마침 친한 친구가족이 서울에서 찾아와서 북한이 포탄을 발사한 바로 그 시간대에 중면과 매우 가깝게 인접해 있는 군남홍수조절지 앞 매운탕 집에서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고 있었다.

 

 

김장배추밭을 일구다 

 

우리는 북한이 포를 쏜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북한 도발 뉴스를 본 지인한테 먼저 전화가 와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곳 접경지역은 국군의 훈련으로 수시로 포탄 소리가 들리기 때문에 연천군 주민들은 포성소리에 면역이 되어 있다. 그러므로 아군이 쏜 포성인지, 아니면 북한이 쏜 포성인지 알 수가 없다.

 

지난번 북한으로 풍선을 날려 북한군이 총을 쏜 소식도 지인의 전화로 알 수 있었다 지난해 10월10일 남한 내 대북 단체가 연천 지역 야산에서 수십개의 풍선에 전단 100여만장을 살포한 것에 반발해 북한군이 연천 중면 삼곶리 방면으로 14.5㎜ 고사총을 발사했다. 이에 우리 군이 K-6 기관총으로 대응사격했다.

 

서부전선 중에서도 연천군 중면은 남과 북의 휴전선 거리가 가장 짧아 북한과의 군충돌이 잦은 지역이다. 또한 휴전선에서 수도 서울과도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지역이다. 당국은 중면에 거주한고 있는 지역 주민들에게 긴급 대피령을 내렸다. 그러나 연천군 미산면 소재 우리 동네에는  아직 별다른 조치가 없고 고요기만 하다. 그러나 주민들의 내면에는 불안과 차가운 긴장감이 팽배해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피해를 보는 것은 접경지역에 살고 있는 무고한 주민들이기 때문이다. 

 

멀칭을 하고 김장배추를 정성스럽게 심었다.  

 

곧 전쟁이 일어 날 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위기사태가 팽팽한 긴장감 계속되고 있지만, 우리 동네 주민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고 농사일을 하고 있다. 아내와 나도 평상시대로 행동하며 오늘 오후 늦게까지 김장배추를 정성스럽게 심었다. 멀칭을 하고, 물을 조금씩 천천히 부어주었다 

 

그리고 강선 활대로 미니하우스를 만들고 한랭사로 망사를 둘러쳤다.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므로 배추흰나비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다, 망사를 씌우지 않으면 배추밭은 배추애벌레들의 천국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하얀 면사포를 쓴 김장배추 모종 

 

배추를 다 심고 한랭사를 씌워주고 나니 배추모종에 마치 흰 면사포를 입혀준 느낌이 들어 아내와 나는 마주 보며 픽 웃고 말았다. 배추모종을 다 심고 나니 오후 430분경에는 반가운 소나기가 내렸다. 배추모종을 심은 후 적기에 내려주는 단비다. 단비를 맞은 배추모종들이 생생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다

 

 

▲김장배추를 심고나니 소나기 단비가 내렸다. 소나기 내린 임진강변은 평화롭기만 하다.

 

평화롭다! 매미와 새들은 여전히 노래를 부르고, 잠자리들이 저공비행을 한다. 벌과 나비들이 꽃을 찾아다니며 꿀을 빨면서 수분을 해주고 있다. 북한 땅에서 흘러 내려온 임진강물도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모든 산천은 그대로 인데, 그 평화로운 자연 속에 사람들만 난리를 치고 있다 

 

어떠한 경우라도 이 땅에 동족상잔의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서로 대화의 채널을 열어놓고 총 대신 대화로 풀어나가야 한다. 어떠한 경우라도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면 첫째, 전선을 지키고 있는 수 많은 젊은 목숨들이 피를 흘리고, 무고한 주민들의 피해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둘째, 한국제품에 대한 바이어들은 등을 돌리고, 투자가들은 투자자본을 빼간다. 한국수출품과 경쟁을 하던 일본, 중국, 독일 등에 바이어들을 빼앗기고 기업은 연쇄도산이 될 것이다. 셋째, 한국경제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사회는 극도로 혼란해진다. 그외에도 전쟁의 피해는 상상만 해도 끔직하지않는가? 전후 65년 동안 이룩했던 한강의 경제기적이 잿더미로 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므로 정부는 강경일변도의 대응을 자제하고 북한과 대화를 모색하여 극한 대립을 피해야 한다. 양쪽이 똑 같이 갈데까지 가버리면 서로가 동족을 죽이는 전쟁을 피할 수 없는 지구상 최대의 비극이 한반도에 다시 재현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겉으로는 걱정을 해준척하는 강대국과 수출경쟁국들은 속으로는 웃으며 이득을 챙길 기회만 노릴 것이다. 

 

 

 

가난한 사람보다 부자가 더 양보를 하지 않는가? 우리는 성숙한 아량으로 전쟁준비에 광분하고 있는 북한을 침착하고 냉정한 자세로 대화의 광장으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

 

남한과 북한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세계 유일의 단일민족이다. 다시는 단일민족끼리 총뿌리를 겨누는 무모한 전쟁은 어떻게 하든 막아야 한다. 소나기를 맞은 김장배추가 싱싱하게 고개를 들고  텃밭은 평화롭게만 보인다. 아아, 이 땅에 포성소리 들리지않는 평화로운 시대는 언제나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