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남인도·스리랑카·몰디브

아르주나의 고행상-석조예술의 극치

찰라777 2016. 1. 2. 06:07

깊은 고뇌에 빠진 <아르주나의 고행상>

 

 "아르주나여, 행복과 슬픔은 여름과 겨울이 오고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 감정은 감각에 의존하기 때문에 생기느니라. 인간은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인내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온갖 슬픔에서 해방될 수 있느니라. 영혼은 누구도 파괴할 수 없지만 육신은 언젠가 사라지게 되어 있다. 그러니 가책을 느끼지 말고 저들의 몸과 맞서 싸우거라."


골육상쟁의 전쟁에서 형제의 핏줄을 죽여 악을 뿌리 뽑아야 하는 운명에 처해 갈등하는 아루주나에게 비슈누의 화신 크리슈나는 주저하지 말고 맞서 싸우라고 말한다. 마말라푸람의 '위대한 언덕'에는 힌두교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의 주인공 아르주나의 고행상이 새겨져 있다.

▲아르주나의 고행상


<마하바라타>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세상에는 절대 선도 없고, 절대 악도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착하기만 한 인물도 없고, 나쁘기만 한 인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전쟁이 절정을 향해 갈수록 이러한 구분은 더욱 모호해진다. 선과 악은 상대적인 것의 반증이다. 선과 악이 모두 그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으니 그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마하바라타>는 혼돈과 무질서의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삶의 의미를 직시하고, 한 차원 더 높은 세계로 올라갈 수 있는 무한한 지혜를 알려준다. 


아르주나의 고행상을 바라보며 동족상잔 비극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해 본다. 동족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한국전쟁과 몇 천년 전에 있었던 판다바 집안의 골육상쟁과 무엇이 다를 바 있겠는가?


'강가' 강을 중심으로 천계와 현세를 조각한 걸작
 
<아르주나의 고행상>은 가로 29미터, 세로 13미터로 단일 부조로는 세계 최대로 꼽힌다. 붉은 색조의 거대한 화강암에 조각된 아르주나 고행상은 중앙의 자연 수직 균열을 중심으로 좌우에서 수많은 신과 인간, 동물들이 신을 향해 경배하는 모습으로 새겨져 있다. 작가는 중앙의 수직 균열을 중심으로 현세의 모습을 아래 화면에, 그리고 천계의 세계를 위 화면에 배치한 듯하다. 

 

▲인도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에 나오는 시바신과 관련된 장면을 새긴 아르주나 고행상


 
학자마다 견해는 다르지만, 이 작품의 전체적인 내용은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에 나오는 시바 신과 관련된 신화의 한 장면을 조각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전해 내려오는 인도 신화에 의하면 바기라타 왕이 신의 노여움을 사 재로 변해버린 선조들을 구하기 위해 수천 년에 걸친 고행을 쌓았다고 한다. 그의 피나는 고행이 신의 마음을 움직여 천상의 성스러운 '강가'강이 지상으로 흘러내려왔다고 한다. 시바 신 앞에서 한쪽 다리를 딛고 고행을 하고 있는 노인이 바로 바기라타 왕이라는 것.


작품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한가운데 자연 암석 균열을 통해 강가 강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실제로 비가 내릴 경우에는 용신이 새겨진 틈으로 빗물이 흘러내려온다. 천계 아래 좌측에는 비슈누를 모신 작은 신전이 있고, 그 옆에 삐쩍 마른 노인이 깊은 상념에 젖어 있다. 이 노인이 바로 고행을 하고 있는 아르주나다. 같은 핏줄을 죽여야만 하는 운명 처한 아르주나가 고뇌하며 깊은 상념에 젖어 있는 모습이다.

 

▲깊은 고뇌에 빠진 아루주나의 고행


비슈누 신전 바로 위 천계에서는 갈비뼈가 드러나 보이는 한 노인이 시바 신 곁에서 한쪽 발을 땅에 짚고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든 채 고행을 하고 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고행을 했는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온몸에 누더기 옷을 걸치고 수염이 길게 자라나 있다. 시바는 네 개의 팔로 각종 지물을 수지하고 있고, 한 손은 고행 중인 노인을 향해 손바닥을 펼쳐 보이고 있다. 

 

 

▲시바 산 앞에서 한발로 서서 고행을 하고 있는 아르주나


 
시바의 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으로 중생의 두려움과 근심을 없애주겠다는 자세다. 시바는 고행하고 있는 노인을 바라보며 '두려워 마라. 너의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는 암시를 주고 있는 것 같다. 지상에서 턱을 괴고 깊은 고뇌에 빠져 있는 노인과 천계에서 한 발만 딛고 고행을 하고 있는 노인은 동일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장구한 세월 동안 고행하는 노인의 모습을 본 사바 신은 크게 감동을 받아 노여움을 풀고 메마른 땅으로 강가 강이 흘러내리도록 해주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 본다.


우측 하단에는 실제 크기의 거대한 코끼리 가족이 강가 강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부부 코끼리로 보이는 두 마리의 거대한 코끼리가 배꼽 아래 아기 코끼리들을 품고 강가 강으로 향하는 모습이 퍽 고무적이다. 이 코끼리 상은 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각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코끼리와 함께 바위 곳곳에 새겨진 동물들은 고행을 하고 있는 아르주나를 보호하는 듯이 보인다. 

 

 

 


배불뚝이 고양이의 고행상


코끼리 앞에는 아주 재미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고양이의 고행상이 보인다. 배불뚝이 고양이가 고행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이 장면은 <마하바라타>에서 쥐들에게 닥친 슬픈 운명을 말해주는 내용이라고 한다. 고양이 앞에는 불쌍한 쥐 한 마리가 두 발을 모으고 서서 고양이에게 예배를 드리고 있다.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 더욱 재미있다.

 

 

▲아르주나의 고행을 흉내내고 있는 고행 앞에 쥐가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고 있다.

 


"아르주나가 고행을 통해 소원을 이루자 이 교활한 고양이도 소원을 이루기 위해 고행을 하며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고 해요. 그런데 고양이의 배는 앙상한 뼈만 남은 아르주나와는 달리 불룩해 보이지요. 말하자면 교활한 고양이는 진정으로 고행을 한 것이 아니고 신이 보지 않을 때는 쥐들을 잡아먹었다고 해요."


나는 이 거대한 아르주나의 고행상을 바라보며,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떠올려 본다. 바티칸 궁전 시스티나 성당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는 세상의 종말에 그리스도가 재림을 하여 전 인류를 심판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최후의 심판>은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가르침을 실행한 자는 구원을 하고, 그를 믿지 않고 그의 가르침을 실행하지 않는 자를 멸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르주나 고행상>은 강가 강을 중심으로 모든 생명체가 신에게 감사의 경배를 드리며 모여드는 모습을 담고 있다. <최후의 심판>은 절대자의 심판에 의해서 죄를 심판받는 반면, <아르주나 고행상>은 그 사람 자신이 고행하고 참회하며 본인의 죗값에 상응하는 인과 응보를 받은 후에야 비로소 용서를 받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육신은 사라졌지만 곳곳에 석공들의 영혼이 남아 있어


좌측에는 고행상과 연결된 하나의 단일 바위에 조각한 석굴사원이 눈에 띤다. 개방된 열 주로 만들어진 석굴사원은 하단에 사자상을 조각하고 있다. 그 석굴사원 위로는 거대한 바위산이 이어지고 있다. 바위산 곳곳에는 석굴사원과 미완성 조각품들이 방치되어 있다.

 

 

 


마치 우리나라 경주 남산이 전체가 마애불을 조각한 바위들로 가득차 있듯 이곳 마말라푸람에도 산 전체가 돌조각으로 가득 차 있다. 또 우연치 않게도 이곳에 새겨진 고대 조각들은 신라시대 김대성이 조각을 해 만들었던 경주 석굴암의 조성시기와 비슷하다.

 

 

 

 

 


바위산 중턱에는 크리슈나 버터 볼이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다. 크리슈나 버터 볼을 지나 정상으로 올라갔다. 산 너머에는 푸른 초원과 숲이 펼쳐져 있고 멀리 바닷속으로 붉은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산 중턱에는 영국 식민지 시대에 건설했다는 빨간 등대가고대의 석조 사원들과는는 어울리지 않게 굴뚝처럼 흉물스럽게 우뚝 서 있다.

 

 


마말라푸람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석공들이 시대를 거슬러 내려오며 대물림을 받아 현재도 돌을 조각하고 있다. 거리에는 조각 공방들이 널려 있다. 지금도 공방에서는 석공들이 끌과 정을 들고 아침부터 밤까지 돌을 쪼아 깎아내리며 조각을 하고 있다. 1300년 전 이곳에서 돌을 다듬어 조각을 했던 석공들의 육신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들의 영혼이 후손들에게 각인되어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