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우리강산/강원도

오대산, 천년의 숲길을 가다!

찰라777 2017. 6. 6. 19:04

"나에게는 심신의 휴식이 필요하다네.

모든 봉우리에 휴식이 있듯이

어떤 힘든 일이 끝난 다음에는

내 마음 봉우리에도 휴식이 필요하다네."


금년 봄은 심신이 여러가지로 분주했다.  아내의 중환자실 입원으로 마음이 무거워졌고, 금가락지 집 단장을 하는데 육신이 힘들었다. 집 안팎 대청소, 페인트칠, 정원 가꾸기 등. 금가락지는 남이 보기엔 한적하고 낙원처럼 보이지만 이를 가꾸고 사는 사람에겐 때로는 노동의 현장이 된다. , 나는 일상의 쉼표를 찍고 보다 한적한 곳으로 가서 나를 감추고 재충전을 할 필요가 있다.


▲오대산 비로봉으로 가는 숲길


해서, 사람은 때때로 홀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필요하다.

오후 150. 홀로 동서울터미널에서 진부 행 동해고속버스를 탔다. 버스는 한강을 따라 강북도로를 타고 암사대교를 건너갔다. 좌석은 널널하다. 하늘도 모처럼 청명하다. 홀로 여행을 떠나는 내 마음도 점점 홀가분해진다.


▲동서울터미널



수행을 위해 한적한 곳으로 들어갈 때는 과거의 큰 스승들이 명상을 하던 곳으로 가서 홀로 있는 것이 가장 좋다. 예컨대, 불교의 세계에서 가장 성스러운 고장인 인도 붓다가야는 모든 붓다들이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고, 앞으로도 그럴 곳이라고 한다.

 

그런 장소의 힘은 참으로 강해서 세속적인 사람마저도 그곳에 가면 영적인 느낌이 커져 사원을 순례하고 명상을 하려는 생각이 나게 된다. 오래전 붓다가야를 방문한 나는 그곳의 신성한 기운에 압도되었다.



마음은 그곳으로 가고 싶지만 거리상으로 너무 멀다. 그래서 붓다가야 대신 내가 가끔 찾는 곳이 오대산 월정사와 상원사에 이르는 전나무 숲이다. 그곳에 가면 고승대덕들이 수행을 했던 월정사, 상원사, 적멸보궁이 있고, 선재길에서 오대산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천년의 숲길이 있다. 그래서 나는 홀로 버스를 타고 오대산으로 가고 있다.

 

버스가 중부고속도로에 접어들자 도로 양쪽으로 녹음이 짙어진 산야가 그림처럼 펼쳐졌다. 푸른 산을 바라보자 마음도 눈도 파랗게 시원해진다. 몸과 마음이 쉬어지는 시간이다. 버스는 쉬지 않고 줄 곳 달려 강원도 평창군 장평에서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다시 출발하여 오후 4시에 진부터미널에 도착했다.


▲한적한 진부시외버스터미널



▲진부-상원사 공영버스 시간표



진부시외버스터미널은 매우 한적하다. 나는 이곳에서 월정사로 가는 공영버스를 타야 한다. 그러나 1시간 간격으로 다니는 버스는 440분이 되어야 탈 수 있다. 버스를 기다리며 나는 시외버스터미널 빈 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집을 나올 때 도농역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란 책이다. 책의 첫 페이지를 여니 이런 말이 나온다.

 

삶에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한 마음 잠시 내려놓으면 해결이 될 터인데 그 내려놓는 마음을 내기가 어렵다. 마음의 평화에 이르기 위해서는 욕망의 자유가 아니라 욕망으로부터 자유가 필요하다. 코끼리에 끌려 다니지 말고 코끼리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때 삶은 자유롭고 그 자유로부터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이 책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 승려 아잔 브라흐마가 태국의 고승 <아잔 차> 밑에서 8년 간 수행을 하면서 깨달음과 통찰을 얻어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아잔 브라흐마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장학생으로 이론물리학을 전공한 전도유망한 물리학도였다. 17세 때 그는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불교 서적을 읽던 중 자신이 이미 불교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대학 졸업 후 1년 동안 고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태국 방콕으로 가서 삭발을 하고 승려가 되었다. 하루는 친구가 아잔 차의 명성을 듣고 태국 북부에 위치한 왓농파퐁에 가서 3일만 지내보자고 그에게 말했다. 그렇게 해서 밀림 속에 위치한 왓농파퐁으로 간 그는 3일이 아니라 아잔 차의 제자가 되어 9년 동안 함께 수행을 했다.

 

책 속에는 그가 아잔 차 밑에서 수행을 하면서 얻은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코끼리라는 상징을 통해 두려움과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 분노와 용서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행복과 불행 같은 수많은 감정들 속에서도 마음을 잃지 않는 방법을 108가지의 일화들로 흥미진진하게 설명하고 있다.

 

책속으로 빠져 들어가다 보니 어느새 440분이 다 되어갔다. 나는 책을 덮고 상원사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이 지역에 사는 아주머니 몇 분이 타서 화기애애하게 정담을 나누었다. 그런데 강원도 평창은 온 도로가 공사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18년도에 개최되는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느라 도로는 물론 산야 여기저기가 파헤쳐져 상처를 입고 있다. 올림픽도 좋지만 상처 난 산야가 신음을 하고 있어 가슴이 아프다.



▲2018동계올림픽을 위한 공사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강원도 

 

월정사로 가는 길로 접어들자 곧 전나무 숲길이 나타났다. 그래도 다행히 이 길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다. 나는 월정사 입구 산채마을에서 내렸다. 신성한 전나무 숲길을 걷기 위해서다. 오후 5. 나는 <산촌>이라는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을 시켜 먹었다.

 

오대산에 나는 산나물과 된장국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스님 한분이 인라인을 타고 도로를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퍽 재미있게 보였다. 크크크나는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스님도 사람이다. 저렇게 인라인을 타고 한적한 도로를 씽씽 달리고도 싶을 게다.



중생은 천년의  숲길을 걷고 싶어서 먼길을 왔는데, 스님은 인라인을 타고 스릴을 느끼고 싶은 것일까? 하긴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산채비빔밥 한 그릇을 말끔하게 해치우고 나는 월정사 숲길로 천천히 걸어갔다. 울울창창한 천년의 숲길이 가슴 시리게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