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베트남 여행

티무엔사원과 탁꽝득스님의 소신공양

찰라777 2017. 12. 9. 11:48

소신공양을 감행하기 이전에 탁꽝득스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앞으로 넘어지면 흉한 것이니 해외로 피신해야 하며, 뒤로 쓰러지면 투쟁이 승리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당시 소신공양의 동영상을 보면 소신공양 중에 불길이 거세지자 쓰러질 듯 앞으로 기울어졌으나, 마지막 혼신의 힘을 쏟아 다시 가부좌 자세로 정좌하며, 결국은 뒤로 쓰러진다. 이건 정말 자유에 대한 갈망이 낳은 기적적인 일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인간의 근육은 구부리는 근육이 펴는 근육보다 많기 때문에, 소신되는 사체는 근육들이 수축해 자연스레 안으로 오그라들기 때문이다.

 

 

 

베트남 민주화의 본거지 티엔무사원

 

베트남 중부에 위치한 후에는 한국의 경주와 같은 고대도시이다. 후에는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1802-1945)의 수도로 전 시가지가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있다.

 

다낭을 출발하여 2시간 만에 도착한 후에에 도착하여 맨 먼저 찾아간 곳은 티엔무 사원이었다. 티엔무 사원은 베트남 불교문화의 정점이자 민주화 성지라 할 수 있다. 1601년 응우옌 왕조에 의해 건축된 티엔무사원은 후에성에서 약 3km 떨어진 흐엉강 변에 위치하고 있다.

 

사원 입구에 들어서니 빛바랜 7층 석탑이 유유히 흐르는 흐엉강을 굽어보고 있다. 높이 21m에 이르는 이 석탑은 후에시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불교의 8정도가르침을 상징하는 8각으로 되어 있다.

 

 

 

 

석탑의 각 층에는 불상이 모셔져있다. 탑의 양 옆으로는 두 개의 정자가 있는데, 그 중 하나에는 3(3,285kg)이 넘는 거대한 종이 있는데 베트남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유물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이 종소리는 10km 떨어진 거리에서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왕실연대기에 따르면, 응우예 호앙은 인근 지역을 여행하다가 빨간색과 파란색 옷을 입고 그곳에 앉아서 뺨을 문지르고 있는 천모(天姥)로 알려진 노파로부터 그곳의 전설을 들었다. 노파는 예언하기를 한 영주가 와서 그 나라의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언덕에 탑을 세울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예언을 남긴 직후 그녀는 홀연히 사라졌다. 이 소식을 듣고 호앙은 이곳에 절을 지으라고 ​​명령했다. 원래의 사원은 작게 지어졌는데 천모로 알려진 노파의 이름을 따서 절 이름도 천모사(天姥寺, 티엔무 추)라 하였다.

 

 

 

 

7층 석탑을 지나니 대자비(大慈悲)’란 현판이 걸려 있는 작은 문이 나타났다. 좁은 문을 지나니 베트남 양식의 낮은 대웅전이 나타났다. 대웅전 입구에는 거대한 향로가 놓여있다. 향로 앞에 합장 배례를 하고 대웅전에 올라서니 거대한 청동 포대화상이 호탕하게 웃고 있다. 베트남의 절에는 부처님 상 앞에 포대화상을 모시고 있다. 포대화상은 일정한 거처가 없고, 항상 긴 막대기에 포대 하나를 걸치고 다니면서 동냥을 하고, 어려운 중생을 돌봐주는 선승으로 세간에는 미륵보살의 화신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리창으로 가려진 불단에는 삼존불이 모셔져 있고, 불단 앞에는 몇 분의 신도들이 정성스럽게 기도를 올리고 있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밤색 가사를 걸친 스님 한분이 오시더니 함께 불경을 독경한다. 경내는 고요하고 정숙하다.

 

 

 

 

불교탄압과 독재에 항거한 틱꽝득 스님의 소신공양

 

대웅전을 나와 왼쪽으로 돌아가니 포석정처럼 생긴 연못이 나오고 연못 안에는 황금 잉어들이 자유분방하게 헤엄을 치고 있다. 연못을 지나니 오래된 듯한 푸른색 자동차가 차고에 놓여 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이 자동차는 이 절에 머물고 있던 틱꽝득(釋廣德/석광덕, 1897-1963611) 스님이 사이공으로 타고 가서 가부좌를 틀고 소신공양을 했던 역사적인 내용이 담긴 자동차다.

 

 

 

 

당시 베트남은 친 가톨릭 성향의 고딘디엠 정권이 불교를 탄압하고 독재정치를 하던 시대였다. 틱꽝득 스님은 불교탄압과 독재정책 그리고 시위자를 무차별하게 학살하는 고딘디엠 정권에 저항하고자 1963611일 불교 승려들의 침묵 가두시위가 있을 당시 가부좌를 틀고 소신고양을 감행했다.

 

탁꽝득스님은 끝까지 가부좌를 풀지 않고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인간이 느끼는 고통 중 최고 순위가 작열통(몸이 불에 탈 때 늒니느 고통)인데, 온몸이 타들어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태연하게 견딘다는 것은 초인적인 인내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행위이다.

 

 

▲사진출처:나무위키(미국 저널리스트 맬컴 브라운이 촬영하여 퓰리처상을 수상하였다)

 

 

소신공양을 감행하기 이전에 스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앞으로 넘어지면 흉한 것이니 해외로 피신해야 하며, 뒤로 쓰러지면 투쟁이 승리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당시 소신공양의 동영상을 보면 소신공양 중에 불길이 거세지자 쓰러질 듯 앞으로 기울어졌으나, 마지막 혼신의 힘을 쏟아 다시 가부좌 자세로 정좌하며, 결국은 뒤로 쓰러진다. 이건 정말 자유에 대한 갈망이 낳은 기적적인 일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인간의 근육은 구부리는 근육이 펴는 근육보다 많기 때문에, 소신되는 사체는 근육들이 수축해 자연스레 안으로 오그라들기 때문이다.

 

스님은 정말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고통 속에서 최후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서 몸을 펴고 죽었다. 이 엄청난 장면에 경찰들까지도 넋을 잃고 멍하게 서서 스님을 바라보았고 주위의 승려들은 틱꽝득 스님에게 일제히 절을 올렸다.

 

소신공양이 끝난 후 그의 법체는 다시 한 번 소각로에 넣어져 8시간 동안 화장(火葬) 되나, 그의 심장은 전혀 타지 않았다고 한다. 오늘날까지도 스님의 심장만큼은 따로 남아 있는데, 심장이 숯이 되어 남았다는 얘기도 있고, 전혀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후 남베트남 정부에서 파견된 비밀경찰이 황산을 뿌려 훼손을 시도했으나 이마저도 실패하며, 금속 용기에 구리줄로 봉인하여 스웨덴 은행에 맡겨졌다가 이후 하노이 국립은행에서 소장 중이라고 한다.

 

이 소신고양 장면을 촬영한 미국의 사진작가 맬컴 브라운의 사진은 속보를 타고 전 세계로 일파만파로 전파되었다. 그 결과 인구의 90%에 달하는 불교를 탄압한 고딘디엠 정권에 민심은 더욱 분노하게 되어 사회 혼란은 가중되었다.

 

게다가 고딘디엠의 동생인 응오딘누의 마누라 "마담 누" 쩐레수언의 '바비큐'로 요약할 수 있는 정신 나간 발언은 베트남 사람들의 깊은 반항을 불러들였고, 남베트남을 지원하던 미국 정부까지 고딘디엠 정권을 완전히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불과 몇 달 후 고딘디엠 정권은 미국이 완전히 등을 돌렸다는 것을 확신한 군부의 쿠데타로 붕괴하여 처형당했다.

 

이 사건은 서양의 발달된 물질문명으로 동양을 농락할 수 있다고 여겼던 서양 세계를 전율케 만들었다. 베트남 전쟁의 미국 패배는 이미 이 순간 결정되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틱꽝득의 소신공양 이전까지 동양의 이미지는 단순히 미개하고 개화되지 않았으며 전근대적인 동네라는 인식 정도였지만, 이 일 이후 서구 지식인들은 과연 서구의 물질문명이 동양의 정신적 문화의 가치를 압도할 수 있는지에 대해 본질적으로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베트남 통일전쟁 중에 티엔무 사원은 반체제 수도승의 본거지가 되었으며 불교도들의 항거 중심이 되었다푸른색 오스틴 자동차 뒤에는 틱꽝득스님의 소신공양 사진이 거렬 있고, 처마 밑에는 스님의 트지 않는 심장 사진이 걸려 있다. 한 사람의 소신공양이 독재정권을 종식시키는 엄청난 사건이다.

 

한 사람의 위대한 정신이 나라를 구하고 무고하게 탄압 받는 사람을 구한 것이다. 대웅전 후원에는 한 송이 백련이 틱꽝득 스님의 넋처럼 애처롭게 피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