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아프리카 종단여행

두려워하면 갇혀버린다-최악의 치안도시 케냐 나이로비에 도착하다

찰라777 2018. 10. 20. 07:16

 



조금만 조심하면 괜찮아요-케냐 레게머리 아가씨


 

나이로비로 가는 비행기는 검은 열기로 가득 찼다. 몇 명의 백인과 몇 명의 황인종들이 아프리카 원주민(흑인이라는 말 대신 원주민이라고 표시하고 싶다)들 속에 박제되어 있는 듯 드문드문 끼어 있었뿐 대부분 아프리카 원주민들이다. 그들로부터 무언가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아프리카 원주민을 만나면 일종의 형제애를 느낀다. 황색 인간이지만 검은색에 가까운 피부를 가지고 있는 탓일까? 꼭 그래서만은 아니다. 

 

 

 

 

 

오래전 나는 뉴욕의 월스트리트에서 금융공부를 하기 위해 잠시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아프리카에서 온 연수생들과 유독 친해졌다. 그들은 거부감이 없고 늘 쾌활하게 대해주어 대화를 하기에 아주 편했다. 반면에 이스라엘에서 온 연수생들은 뭔가 우월감을 은근히 나타내고 있어 접근하기 어려웠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월 트레이드 센터에서 함께 금융세미나를 며칠 동안 받는데 좌석이 지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오는 대로 아무 데나 앉게 되어 있었다. 


어느 날은 내가 좀 일찍 도착하여 어제 이스라엘 연수생이 앉았던 자리에 무심코 앉았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 인이 다가오더니 정색을 하며 어제 자기가 앉았던 자리이니 자리를 비켜주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순순히 자리를 양보했지만 생각해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허지만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온 연수생은 양보심이 많고 친절했다. 아무리 피부가 하얗터라도 검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그 사람은 검은 악인이며,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더라도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은 하얀 선인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겉으로 드러난 색깔만 보고 평가를 해서는 안 된다. 


내 옆 좌석에는 정말로 검은색 피부를 가진 아프리카 아가씨가 동석을 했다. 그녀의 키는 작았다. 곱게 따 올린 레게머리(dreadlocks :가발로 만든 아프리카 헤어스타일)를 뒤집어쓴 그녀는 마치 흑진주처럼 예뻤다. 그녀는 비행기에 탑승하자 말자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리며 뭔가를 보고 있었다. 나는 괜히 그녀에게 말을 걸고 싶어 졌다. 


"나이로비에 살고 있나요?"

"네, 나이로비에 살아요."

"저는 한국에서 왔는데 케냐로 여행을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나이로비 치안이 안 좋다고 하던데 정말로 그렇게 위험한가요?"

"다른 나라에 비하여 치안이 썩 좋다고 할 수는 없지요. 허지만 조금만 조심하면 전혀 위험하지 않아요. 밤에 사람이 뜸한 어두운 골목을 홀로 돌아다닌다든지 눈에 띄는 돌출 행동을 한다든지 그런 일만 없으면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아하 그렇군요."


그녀는 매우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또박또박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옳았다. 세계 어느 나라든지 위험은 다 도사리고 있다. 나는 훤한 대낮에 뉴욕 맨해튼 지하철 역에서 강도를 만난 적이 있었다. 페루 리마에서는 레스토랑 한가운데서 점심을 먹다가 옆에 둔 아내의 배낭을 몽땅 도둑을 맞은 적이 있었고, 볼리비아 라파스에서는 택시강도를 만나 가지고 있는 현금을 몽땅 털리기도 했다. 로마에서는 집시들의 집단 공격을 받기도 했으며,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는 스킨헤드의 표적이 되어 쫓기기도 했다. 


여러 나라를 배낭여행을 하면서 나는 크고 작은 위험을 수없이 만났다. 허지만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돌아오곤 했다. 트래블은 트러블의 연속이다(travel=trouble). 너무 두려워하면 즐거운 여행 아니라 지옥 같은 여행이 되고 만다. 사실, 가장 위험은 곳은 내 집의 침대이다. 사람은 99%가 자기 집의 침대나 병원 침대에 누워 죽지 않은가? 그러므로 여행은 마음을 열어 놓고 즐기되 레게머리 아가씨의 말처럼 방심을 하지 말고 조금만 조심을 하면 된다. 일테면 작은 접촉사고는 달게 감수를 하되, 차량이 전복되는 대형사고만 당하지 않으면 된다. 



비닐봉지 사용하면 벌금 4만 달러에 4년 징역이라니...



아디스아바바를 출발하여 약 1시간의 비행 끝에 나이로비 조모 케냐타 국제공항에 도착을 하니 하늘이 맑고 날씨가 산뜻하였다. 마치 우리나라 전형적인 가을 날씨를 방불케 했다. 더구나 지금은 건기 철이라 태양은 작열하게 빛나고 있지만 서늘했다. 적도권에 위치한 나이로비가 한국보다 시원하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런데 해발 1,676m 고원에 위치한 나이로비는 연평균 기온이 17.9 ºC로 1년 내내 선선한 날씨다. 


비행기 트렙에서 내려 나는 레게머리를 한 아프리카 아가씨와 손을 들어 이별의 인사를 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고마워요. 아가씨." 레게머리 아가씨는 여전히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다소곳이 앞질러 걸어갔다. 엇, 그런데 저 아가씨 손에 든 비닐봉지는 괜찮은가? 괜히 걱정이 되어 아가씨가 든 비닐봉지를 보니 면세점에서 쇼핑을 한 비닐봉지다.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


 

 


 

아프리카 땅을 딛는 순간 아, 내가 정말 검은 대륙 아프리카 땅에 도착했구나 하는 진한 감동이 밀려왔다. 

함께 온 일행들도 아프리카 땅을 밟는 감동이 큰 모양이다. 병용 아우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비행기 트렙에서 손을 흔들었다. 아우의 표정은 언제나 밝고 걸림이 없다. 아이자는 귀부인처럼 멋진 포즈를 취했다. 모두들 밝은 표정이다. 'PEOPLE'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공항 셔틀버스 색깔도 산뜻하였다. 



 



여행자들은 마치 'VIP'인사처럼 손을 흔들며 비행기 트렙에서 내렸다. 트렙에서 내린 여행자들은 잠시 포즈를 취하고 비행기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비행기에서 내린 우리는 셔틀버스를 탔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도착하여 50달러를 내고 도착비자를 받았다. 출입국관리소 직원에게 여권을 내미니  "Welcome to Nairobi!" 하며 마치 형제처럼 다정하게 미소를 지으며 내 여권을 펼쳐보더니 "안-녕-하-세-요?" 한국말로 인사를 하면서 스탬프를 쾅~하고 찍어주었다. 아프리카에서 한국말을 듣다니... "감-사-합-니-다!" 나도 그에게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며 기분 좋게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했다. 나이로비에 도착한 첫 느낌이 좋았다. 


 

 

 


 

한국에서 케냐의 비닐봉지 사용금지에 대한 소식을 듣고 겁을 잔뜩 먹었던 지라 여행가방 속에 비닐봉지는 한 장도 넣지 않았다. 만약에 비닐봉지를 사용하다 걸리면 최대 4만 달러의 벌금과 4년의 징역에 처한다고 들었다. 케냐는 환경보전을 위하여 2017년 8월부터 비닐봉지의 사용, 제조, 수입금지 법을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다. 야생동물들이 비닐봉지를 뜯어먹다가 죽어가는 경우가 심각해지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규제책을 도입했다.  


유엔 환경계획에 따르면 세계는 한 해 비닐봉지 5조 장을 소비한다고 한다. 석유에서 추출한 비닐봉지가 분해되는 시간은 적어도 500년이 걸린다고 한다.  따라서 환경을 지키기 위해 비닐봉지 사용 금지라는 초강력 규제를 신설하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 이 소식을 듣고 여행가방을 쌀 때에 비닐봉지 대신 비싼 방수 파우치를 별도로 구입하여 짐을 쌌다. 내 여행가방은 엑스레이 투시에 무사통과했다. 그런데 병용 아우가 가져온 음식 박스 3개를 보더니 세관원이 열어 보려고 했다. 이 음식 박스는 우리 일행이 한 달 동안 아프리카에서 먹을 일용한 양식이었다. 아프리카 오지를 여행하는 동안 먹거리가 시원치 않아 비용도 아낄 겸 식료품점을 경영하는 병용 아우가 준비해온 각종 인스턴트식품이었다. 내가 웃으며 세관원에게 말을 건넸다. 


"디스 아 온리 인스턴트 푸드( These are only Korean instant food)."


그가 음식 박스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오케이"하며 그냥 통과를 해주었다. 무언가 이심전심으로 텔레파시가 통했을까? 세관을 기분 좋게 무사히 통과한 우리는 호텔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세관 통과에 잔뜩 겁을 먹었었는데, 의외로 순순히 통과를 하고 나니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에서 다운타운에 위치한 호텔로 가는 길은 교통체증이 매우 심했다. 호텔까지 거리는 18km에 불과한데 교통 혼잡으로 무려 2시간이나 걸렸다. 나이로비는 세계에서 교통체증이 심한 도시 4위로 뽑혔을 정도로 차량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밀리는 차량들 사이로 행상들이 비집고 들어와 각종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빗자루와 양배추를 자르는 칼도 파는 사람이 있었다. 양배추를 자르는 시범을 보이며 버스 유리창으로 내미는 표정이 자못 진지하게 보였다. 


마사이어로 '차가운 물'이라는 뜻을 가진 나이로비는 인구 400만의 거대도시로 동아프리카의 중심적인 대도시이다. 원래 이 지역은 마사이족과 키쿠유족의 거주지였는데, 영국이 인도양의 몸바사에서 빅토리아 호수까지 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전진기지를 설치하면서 케냐의 정치, 경제, 교통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인구가 자꾸만 나이로비로 몰려드는 바람에 케냐 국토 면적의 0.11퍼센트에 불과한 면적에 케냐 인구의 10퍼센트에 가까운 사람들이 빽빽하게 뭉쳐 살고 있다 보니 도시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두려워하면 갇혀버린다


오후 5시, 우리는 비아샤라 스트리트에 위치한 '에프터40호텔(After40Hotel)'에 도착했다. 호텔에 도착하자 무장 경비원이 쇠창살로 된 호텔 정문 앞에서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었다. 그만큼 치안이 좋지 않다는 모습이다. 규모는 작지만 나이로비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는 이 호텔은  부킹 컴에서 이용후기 평점 8.2로 비교적 양호한 평을 받고 있었다. 호텔 요금은 싱글룸 60달러,  더블룸 90달러 수준으로 비교적 저렴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먼저 케냐 실링을 환전을 하기로 했다.   


환전소는 호텔에서 불과 100m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후 5시가 넘자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론리플레닛에 의하면 "나이로비에서는 어두운 밤에는 밖에 절대로 나가지 말라. 그리고 아주 짧은 거리라도 텍시를 타라."라고 주의를 주고 있다.  절대로 가방이나 카메라를 가지고 나가지 말 것, 반지, 목걸이, 액세서리 등을 걸치고 나가지 말 것, 현금이 든 지갑도 가지고 나가지 말 것, 신발은 싸구려 슬리퍼를 신고 옷도 화려한 옷을 입지 말고 허름한 옷을 입고, 홀로 돌아다니지 말고 관광객으로 눈에 띄게 행동을 하지 말라고 경고를 하고 있다. 그만큼 나이로비의 치안은 세계 최악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두려워하면 갇혀버린다. 


새는 딱딱한 껍질을 깨고 나가야 비로소 하늘을 날 수 있다. 사람은 여행을 통해서 미처 깨닫지 못한 것들을 깨치게 된다.  즐거워야 할 여행이 두려움에 덜덜 떨며 방안에만 갇혀있어야 되겠는가? 


나는 일행들과 함께 로비에서 만나 함께 뭉쳐서 나가기로 했다. 어디를 가나 뭉쳐야 탈이 없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밖으로 나가니 사슴처럼 가늘고 기린처럼 키가 큰 날엽한 케냐인들이 인도를 가득 매우고 있었다. 내 눈에는 모두가 마라톤 선수들처럼 보였다. 그들은 동양에서 온 이방인을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어떤 녀석은 괜히 어깨를 툭 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상관하지 않고 그냥 가던 길을 걸어갔다. 곧 가까운 거리에 있는 환전소에 도착했다. 환전소 역시 무거운 쇠창살로 된 작은 문이 겨우 사람이 한 사람 정도로 들어갈 열려 있고 내부는 어두웠다. 환율은 1달러에 90실링 정도 했다. 우리는 나이로비에서 물을 사고, 식사를 사 먹을 만큼만 환전을 했다. 


 

 

 

"형님 오늘은 아프리카에 도착한 첫날이니 영양보충도 할 겸 어디 괜찮은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좀 거하게 먹지요?"

"그게 좋겠군. 멀리 가기는 좀 위험하니 저기 바로 앞에 있는 CJ'S레스토랑으로 가는 것이 어떨까?"
"좋아요."


우리는 환전소 바로 앞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레스토랑은 깔끔하고 제법 컸다. 1층과 2층으로 되어 있는 레스토랑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각자 구미 맞는 메뉴를 주문했다. 샐러드, 피자, 파스타, 빅밀즈 등. 주문한 요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니 양도 많고 맛도 좋았다. 포도주를 한잔하고 싶었으나 레스토랑에서는 팔지 않았다. 우리는 아프리카 땅에 무사히 도착하게 된 것을 감사하며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었다. 가격은 1인당 900실링(1만 원) 정도 되었다. 케냐에서 900실링이면 큰돈이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페이스북과 트립어드바이저에서 CJ's 레스토랑은 평가가 꽤 좋은 편이었다. 앞으로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 등을 하다 보니 시간이 꽤 흘러갔다.  

 

 

 

 

 

 

 

 

 

 

저녁식사를 한 후 쌀과 물을 사기 위해 어두운 거리를 걸어 마트를 찾아갔는데 쉽게 찾지를 못해 애를 먹었다. 호텔 바로 뒤에 있는 마트를 빙빙 돌다가 찾다니. 아프리카 쌀 3kg, 물 여섯 병을 사들고 무사히 호텔에 도착했다. 아프리카 쌀은 한국에서 가져온 찹쌀과 섞어서 밥을 지어먹기 위해서 산 것이다. 앞으로 아침식사는 호텔에서 제공한  것을 먹고, 정심은 밖에서 사 먹기로 했다. 저녁식사는 한국에서 가져온 인스턴트식품과 쌀밥을 지어서 먹기로 했다. 한국에서 찹쌀을 가져왔는데 아프리카 쌀을 섞어서 밥을 해야 우리 맛에 맞는 맛이 날 것 같아 아프리카 쌀을 샀다. 


오늘은 1인 1실로 방이 배정되었다. 샤워를 하고 나니 밤이 늦었다.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프리카 땅에 무사히 도착한 것에 감사를 드리며 방바닥에 엎드려 오체투지 삼배를 올렸다. 그리고 어머니의 대륙 아프리카 땅에 온 몸으로 키스를 하며 나는 지극히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경배를 올렸다. 이마와 코, 입술, 손, 팔꿈치, 무릎, 발을 완전히 바닥에 밀착시키고 아프리카 땅 냄새를 물씬 맡았다. 


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오체투지 삼배를 올린 다음에는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금강경을 펼쳐 들고 낮은 음성으로 독송을 했다. 다이아몬드 수트라, 금강경을 1독을 하고 나니 마음이 정리가 되었다. 그래, 매사에 늘 감사하고, 낮은 자세로 겸손하고, 조그만 일에 기뻐하자!

 

 

 

 

나는 문명의 이기 비행기라는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지구의 반대편으로 날아와 아프리카 땅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이 시대에 부처나, 예수, 공자가 아프리카 땅에 도착하여 여행을 하면 어떤 생각을 할까?  


應無所住 以生其 心(응무소주 이생기심)!


어느 곳에도 마음을 멈추지 않고 마음을 비우고 분별심 없이 마음을 쓰도록 노력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