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Mongolia

[8]책을 읽는 초원의 여행자들

찰라777 2006. 8. 20. 10:47

책을 읽는 초원의 여행자들

 

백미러에 잡힌 독서삼매에 젖은 64세의 프랑스 노인 .

그는 자전거 한대로 세계일주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몽골에 도착한지 3일째 되는 7월 8일 아침이다. 오늘따라 비가 억수로 세차게 내린다. 비가 너무 세차게 내려 도대체 밖으로 나갈 엄두도 내지 못한다. 번개는 칼처럼 하늘을 가르고 천둥은 온 천지를 진동시킨다. 비가 그칠 때까지 꼼짝없이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이번 여행 계획은 우선 울란바토르지역에 머물며 7월 11부터 13일까지 치러지는 나담축제를 관람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먼저 가보고자 하는 지역은 칭기즈칸의 탄생지인 헨티 아이막(우리나라 道)의 부르칸 칼둔이다. 동몽골의 초원을 휘감아 도는 케룰렌강을 따라 칭기즈칸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었던 것.

 

그러나 몽골 여행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교통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운전수가 딸린 자동차를 렌트하거나 히치하이크를 하거나, 그도 아니 되면 말을 타고 가야 한다. 히치하이크도 말을 타고 가는 것도 사실 이방인들에게는 쉽지가 않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대부분 운전수가 딸린 지프차나 벤을 여럿이 어울려서 렌트하여 여행을 떠난다.

 

이드레씨에게 헨티지역으로 갈 여행자를 수소문 해 달라고 했지만 아직까지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동부지역보다는 고비사막이나 흡수골 호수 지역으로 여행을 간다는 것.  이드레씨가 소개하는 1일 렌터카 여행비용은 여행자 수에 따라 1인당 부담비용이 달라진다. 여행자가 2명이면 68달러, 3명 44달러, 4명 39달러, 5명 36달러로 참가자 수가 많을수록 점점 낮아진다.

 

 그렇다고 아내와 단 둘이서 하루에 68달러씩 주고 단독으로 렌터카를 빌려 여행을 가기에는 비용이 너무 비싸다. 인터넷에 들어가 한인민박집과 한국에서 올 때 만났던 굿모닝 호텔 사장, 그리고 다른 게스트 하우스에 전화를 걸어 헨티 아이막 방향으로 가는 여행자를 수소문했지만 역시 없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게스트하우스에 죽치고 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

 

 

▲ 초원의 겔 앞에서 아침에 책을 읽는 프랑스 노인과  실리콘 벨리에서 온 중국인.  

 

 

비가 내리는 게스트하우스의 풍경. 여행자들은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거나 아니면 책을 읽고 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미국의 뉴저지 주에서 왔다는 사슴처럼 생긴 두 자매는 아침부터 꼼짝도 하지 않고 책을 읽는다. 배낭여행자들에게 여행과 독서는 불가분의 관계다. 여행자들은 배낭 속에 항상 몇 권의 읽을 책들을 넣어 온다. 읽을거리가 다 떨어지면 고서점에 가서 읽을 책을 사기도 한다. 

 

나도 언제부터인가 여행을 떠날 때에는 여행지와 관련된 책들을 한두 권 챙겨가지고 간다. 예컨대 남미에 갈 때에는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루이스 세풀베다의 ‘파타고니아 특급열차’, 생텍즈페리의 ‘야간비행’ 등의 소책자를 넣어가지고 갔는데, 소설 속의 무대가 현장감 있게 생생하게 살아나 책을 읽는 재미가 매우 컸다.

 

이번 몽골에 올 때에는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일본인 이노우에 야스시가 지은 ‘칭기즈칸’이란 소설책을 한권 사서 배낭에 챙겨 넣었는데, 이 책을 읽는 재미가 말이 아니다. 800년 전 칭기즈칸의 전쟁 무대가 그대로 살아서 움직이는 느낌을 받는다. 머릿속으로 상상을 하는 것과 현장에 몸을 담고 있는 것은 이처럼 다르게 다가온다.

 

언젠가 때가 오면 여행지에 가서 읽을 책들로만 배낭에 가득 채워 독서여행을 떠나겠다는 망상에 젖곤 한다. 기차에서, 비행기에서, 배에서, 아니면 비가 오는 날 이렇게 게스트하우스에 누워 읽고 싶은 책을 마음 것 읽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별미가 아니겠는가! 정말 그런 여행을 한 번 하고 싶다. 창가에 비치는 소설의 무대를 바라보며 세계의 명작들을 읽는 여행의 묘미! 얼마나 멋진 여행인가!

 

 

 

▲지독히도 책읽기를 좋아하는 프랑스 보르도에서 온 자전거 여행자

그는 67세로 전직은 포도농사를 지으며 요리사를 했다고...

 

 

창밖의 비는 그치지를 않고 계속 내린다. 게스트하우스의 조그만 응접실 의자에 앉아 칭기즈칸을 읽는데 여념이 없는데 두 명의 프랑스 노인들이 비를 흠뻑 맞은 채 자전거를 몰고 들어온다. 훤칠한 키에 안경을 쓴 노인은 흰 수염으로 온 통 얼굴을 덥여져 있고, 다른 한 노인은 스키모자처럼 생긴 빵모자를 썼는데 비에 젖은 채 웃는 모습이 꼭 어느 영화에서나 보았던 코미디언처럼 생겼다. 내가 책을 읽다 말고 손을 들며 인사를 하자 두 노인도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한 채 빙그레 웃는다. 그런데 이들이 우리와 함께 10일간 흡수골 지역으로 여행을 갈 동반자가 될 줄이야!

 

나중에 더 자세히 언급을 하겠지만 이 두 프랑스 노인은 자전거 한대로 세계를 여행하는 자전거여행 마니아들인데 그들의 독서열은 정말로 지독하다. 두 노인은 여행 중에 틈만 나면 일기를 쓰거나 독서를 했다. 그들이 자전거를 보관하기 위해 지나가자 이드레씨가 나를 부른다.

 

 

▲ 초원에서 점심을 먹은 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책을 읽거나 오수를 즐기는 초원의 여행자들

 

 

“헬로 오케이, 저 프랑스인들이 나담축제가 끝나는 7월 13일 밤부터 하라호름으로 해서 흡수골로 렌터카 여행을 하는데 함께 동반하는 것이 어떨까요? 아무래도 헨티지역은 희망자가 없을 것 같으니 말이요.”

 

이드레씨에 의하면 그들은 이미 몽골에서만 두 달 동안 3000km의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흡수골지역은 자전거로 가기에는 너무 험하기도 하여 다리도 쉴 겸 렌터카 여행을 하기로 했다는 것.

 

맙소사! 저런 중늙은이들이 그 힘든 자전거 여행을 하다니….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아내와 상의를 한 나는 그들과 함께 여행을 하기로 합의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나보다 훨씬 젊었다. 무거운 짐은 다 나르고, 자전거 한대로 세계를 여행 하고, 큼만 나면 지독히도 책을 읽고… 도대체 나이는 연수로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구구 절절히 실감이 난다.

 

 

 

 

▲이번 몽골여행시 읽었던 책

'칭기즈칸' 너무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