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Greece

[그리스 16] 때 아닌 낮잠-시에스타를 쿨쿨...

찰라777 2004. 9. 7. 06:32

□ 때 아닌 낮잠, 시에스타를 쿨쿨~
즐겼던 사연....


우리는 오후 2시 30분에 트리폴리에 도착했다. 트리폴리는 펠로폰네소스 반도 중앙에 위치한 교통의 요충도시다. 그러나 올림피아로 가는 버스는 오후 6시 반에 딱 한대밖에 없었다.

“이거, 낭패네. 어떻게 시간을 죽이지?”
“좌우간 어디 카페 같은 곳에라도 들어가서 좀 쉬기로 해요.”

트리폴리에 도착하자마자 버스터미널의 화장실을 다녀온 아내의 표정은 여전히 시원치 않은 표정이었다. 트리폴리는 아무런 유적지도 볼거리도 없는 우리나라 익산이나 천안과 같은 교통도시다. 올림피아로 가는 버스표를 사들고 우린 터미널을 나왔다. 그런데 어쩐지 거리가 썰렁했다.

“거리가 왜 이리 썰렁하죠?”
“아차, 여기도 시에스타 시간이 있는 모양이로군.”
“시에스타라니요?”
“거 있잖소? 낮잠 자는 시간 말이요.”

거리가 매우 한산하고 조용했다. 상점들이 거의 문이 닫혀 진채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되어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오후 5시까지 시에스타(Siesta) 시간이라고 한다.

이런 우라질! 우린 스페인의 지방 도시를 여행하면서도 시에스타 때문에 골탕을 먹은 적이 가끔 있었다. 어떻게 시간을 보내지…. 가는 날이 장날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일게다.

그리스의 시에스타는 정책적으로 운영된다. 시에스타 시간에는 상점은 물론 관공서까지도 문을 닫는다. 이 시간 동안 소음을 유발할 경우 경찰에 체포될 수도 있다고 한다. 시에스타 시간에 타인을 방해하는 행위는 용납 될 수 없다는 것.

그러나 우리는 쉴 곳을 찾아야 했다. 좁은 거리를 돌고 돌다가 겨우 문이 열려있는 어느 카페를 발견했다. 내가 카페 문을 들어서자 그들도 쉬어야 할 시간이라고 했다. 내가 그냥 조용히 앉아있다만 가겠다고 하니 카페의 주인이 우리들의 피곤한 몰골을 가엾어라 하듯 바라보더니 웃으며 들어오라고 했다.

럭키! 럭키! 아이고, 살았구나. 카페 주인으로 보이는 그 여자는 돈을 챙겨서 나가고 대신 금발의 여자 종업원만 한 사람 남았다. 카페는 시에스타 시간답게 매우 조용하다. 오수를 즐기기에 딱인 장소! 일단 뜨거운 커피를 한잔씩 마시고나서 우리도 한가로운 오수를 즐기는 시에스타의 세계로 들어갔다.

때 아닌 낮잠을 한숨씩 딱 때리고 나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그래, 이 기분 때문에 시에스타는 필요하군.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시간을 왜 낮잠으로 죽이느냐고 하겠지만, 또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이 소롯하고 상쾌해지는 기분때문에 시에스타란게 있구나!

하여간 시에스타란 좋은거다. 우리는 마음씨 좋아 보이는 아가씨에게 뜨거운 물까지 얻어서 몇 개 남지 않는 컵 라면을 부풀려서 저녁요기를 간단히 해결했다. 러시아에서 왔다는 금발의 미녀는 시종 미소를 잃지 않으며 우릴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카페 안에는 인터넷도 있었다. 그녀는 인터넷도 그냥 무료로 쓰라고 했다. 대도시 아테네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지방도시의 푸짐한 인심에 피로가 녹아드는 것 같았다.

또한 금발의 미녀 아가씨가 웃어주는 미소는 마치 피로회복제 같았다. 그녀의 이름은 록사니아.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왔다는 그녀는 자신의 이름까지 소개하며 한동안 우리와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러시아에서 돈을 벌려고 여기까지 온 그녀도 외로운 모양이다. 그녀 또한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측은지심이 들었을까? 그녀는 우리가 카페를 떠나려고 하자 카페 문을 열고 밖에까지 나와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동변상련의 정! 세상은 외로운 사람끼리 마음이 통하는 모양이다.

시에스타 때문에 만난 우크라이나의 아가씨 록사니아. 나는 아직까지도 카페의 문에 서서 손을 흔들어 주는 록사니아의 그 맑은 미소를 잊을 수 없다. - 계속 -


(그리스 트리폴리에서 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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