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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5] 자작나무 숲을 찾아서(헬싱키 세우라사라 공원)

찰라777 2005. 2. 2. 12:12

 

 
□ 자작나무 숲을 찾아서

 

 

겨울이 시작되는 헬싱키의 날씨는 10월 중순인데도 춥다. 10월부터 슬슬 시작되는 핀란드의 겨울은 이듬해 3월까지 지속된다. 반면에 백야현상을 보이는 여름은 5월부터 8월까지다.

 

원래 핀란드의 여행계획은 노르웨이 북극 트롬세에서 산타클로스 마을인 핀란드의 최 북쪽 로바니에미(Rovaniemi)를 거쳐 헬싱키로 내려오는 것이었는데, 스톡홀름을 들르는 바람에 부득이 변경을 했다. 또한 산타의 계절이 오려면 조금 더 있어야 하므로 러시아 행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였다.

 

그러나 핀란드에서 내가 가장 가고자 했던 곳은 분명 래플랜드의 자작나무 숲이다. 자작나무, 가문비나무, 소나무 등이 전국토를 창창히 덮고 있는 광활한 숲과 거울 같은 3만여 개의 깨끗한 호수는 핀란드의 최대 자랑거리다. 핀란드의 영원한 동화의 장면도 자작나무 숲이 빽빽이 들어찬 로바니에미 산타마을에 숨어있다.

 

자작나무는 흰 눈처럼 새하얀 수피와 시원스럽게 뻗어 올라간 미끈한 키가 매우 인상적이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숲 속의 여왕”으로 귀하게 대접을 받는 아름다운 나무다. 나무껍질은 글이나 그림을 그리는 종이로, 죽은 자작나무에서는 상황버섯이나 차가버섯으로, 나무에서 추출한 성분은 요즈음 인기가 있는 자일리톨 Xylitol 검으로 쓰이고 있으니 숲 속의 여왕으로 대접을 받을 만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헬싱키에 있다. 거리를 배회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태극기를 보고 너무 반가워 찾아간 한국대사관의 여직원이 이곳 헬싱키에도 자작나무 숲이 있다는 말에 우린 즉시 그곳으로 향했다. 세우라사리 Seurasaaren 야외박물관이 바로 그곳이다.

 

트램을 타고 물어물어 찾아간 세우라사리는 호수로 둘러싸여 있었다. 목조로 된 다리를 건너 섬에 도착하니 중세의 풍차, 농가, 민가 등을 모아 놓은 야외 박물관이 조정되어 있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목조 다리를 건너가는 두 노인의 모습이 전형적인 복지 국가다운 느낌을 준다.

 

 



 

 

우리는 싱그러운 숲길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섬에는 자작나무를 비롯하여 가문비나무 등이 신선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캠핑을 나온 헬싱키의 어린이들이 재잘거리는 모습 또한 평화스럽다.

 

아마 족히 3시간은 걸었으리라. 시간을 잊어버리고 걸어 다닌 숲이다. 푸른 자유다! 여행은 이처럼 우리에게 푸른 자유를 만끽하게 한다. 바이킹 호의 지린내 나는 불편한 잠자리가 없었다면, 어찌 이런 축복을 맛볼 수 있겠는가!  지린내 나는 바이킹호의 갑판에서 쭈그리고 밤을 새웠던 고통이 축복의 시간으로 보상을 받는 순간이다.

 

 



 

 

여행은 평소에 우리가 사는 주변에서는 미쳤다고 하는 행동도 눈물겹도록 자유롭게 놓아준다. 햄버거를 뜯으며 거리를 걷게 하고, 누더기를 걸치게 하며, 수염을 긴 거지같은 행색도 아랑곳을 마다한다. 체면으로 얼룩진 경계를 허물어뜨리며 모든 사람들이 미쳤다고 손가락 질 하는 모습도 달디 달게 만드는 마술사다.

 

숲 속의 자작나무처럼 한껏 푸른 자유를 만끽하다가 누군가를 위해 잘려 나간들 어찌하랴. 하찮은 것에 신경을 놓아버리게 하는 그런 여행길… 우리는 지금 세우라사리 섬의 자작나무 숲에서 그런 자유를 향유하며 숲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