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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으로.... 나의 애마 '로시난테'

찰라777 2008. 6. 14. 05:31

 

세상의 끝으로… ①

 

나의 애마 '로시난테'

 

  

 ▲ 끝 없이 이어지는 파타고니아의 팜파스 지대. 푼타아레나스에서 우수아이라로 가는 길 

 

 

당신은 진정 쓸쓸해지고 싶은가? 당신이 진정으로 쓸쓸해질 때 어딘가 당신의 모든 것을 와락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사람은 살다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글루미 족이 되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세상을 등지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런 글루미 족에게 안성맞춤인 땅이 이 지구상에 있다. 그곳이 바로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파타고니아의 우수아이아(Ushuaia)이다.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를 여행하다보면 그 어느 곳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허무가 온 몸을 휘어 감는다. 그러나 그 황량한 팜파스의 바람 속에 며칠만 자신을 내동댕이 치다보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뭔가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것이 느껴진다.

 

그것은 바로 '아, 아직도 내가 살아 있구나!'하는 경이로움이다. 살아가다가 내 인생이 몇 번 바닥을 친다고 해도 결코 슬퍼만 할 필요는 없다. 바닥은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는 '재기의 터닝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끝은 바로 세상의 시작'이 아닌가? 그런 강한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곳이 바로 파타고니아 땅이다.

 

하여간… 우리는 푼타아레나스에서 우수아이아를 가기위해 도요타 포터를 렌트 했다. AE-96-18, 1975산 도요타, 하루 렌트 비용 30달러, 무제한 마일리지. 민박집 주인 마뉴엘이 '베리 굿 카'라고 극찬을 하면서 소개를 해준 자동차다.

 

그러나 전신에 녹을 뒤집어 쓴 포터는 발로 한번 차면 와장창 으스러져 버릴 것만 같은 고물 자동차다. 아니 파타고니아 강풍에 벌집이라도 나서 주저 앉아 버릴 것만 같은 자동차다. 자동차의 문을 닫을 때마다 그 울림으로 녹슨 껍질이 우수수 땅에 떨어져 내린다.

 

"이게 어떻게 베리 굿 카냐?"

"내가 몰고 다니는 차는 1970년산인 데, 이 차는 5년 후에 나온 1975년산이니 당연히 베리 굿 카다."

 

진지하게 우기는 마뉴엘의 이론이 틀리지는 않다. 나는 어쩐지 파타고니아 땅에 이 자동차가 어울릴 것만 같아 마뉴엘의 추천을 받아드리기로 했다. 마뉴엘은 고장이 났을 때를 대비하여 자동차를 수리하는 연장도구와 펜 벨트 하나를 챙겨주며 씩 웃는다. 이거야 정말, 병 주고 약 주고네.

 

 

나의 애마 '로시난테'

 

내가 시동을 걸고 기어를 조작 해 보았지만 잘 먹히질 않는다. 그러자 마뉴엘이 동승을 하여 시운전을 해준다. 마뉴엘은 푼타아레나스 시가지를 벗어날때가지 이렇게 하라, 저렇게해라 하면서 친절하게 운전교습(?)을 해준다. 하여간 나는 베리 굿 카에 아내와 미스터 정과 함께 우수아이아를 향해 엑셀을 힘차게 밟았다.

 

 

  ▲ 바람이 강한 파타고니아에서 의지한 나의 애마 '로시난테'(?)와 함께.

 

 

고물자동차는 일단 굴러갔다. 론리 플래닛에 의하면 푼타아레나스에서 버스로 리오 그란데까지는 8시간, 우수아이아까지는 12시간이 걸린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과연 이 고물 자동차, 아니 '베리 굿 카'가 거기까지 갈 수 있을런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나의 로시난테여, 우리를 제발 우수아이아까지 데려다 주오."

 

이건 아무리 생각을 해도 자동차를 탄 게 아니라 17세기로 돌아가 돈키호테의 애마 로시난테라도 탄 기분이다. 나는 이 자동차를 "로시난테"라고 명명하고 제발 우수아이아까지 데려다 달라고 기원을 했다. 푼타아레나스를 벗어나 9번 도로를 타고 북상을 하다가 3번 도로로 접어드니 비포장도로가 이어진다. 황량하기 그지없는 팜파스에 바람만이 윙윙 불어댄다. 마을은커녕 자동차도 구경하기 힘든 도로다. 성능 좋아보이는 캠핑카 한대가 슝~하고 지나간다.

 

 

파타고니아에서 글/사진 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