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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등산, 지리산 천왕봉

찰라777 2009. 9. 25. 09:34

기적의 등산, 지리산 천왕봉

  

무엇이 우리를 여기까지 오르게 했을까? 인간의 의지? 신의 부름? 자연의 유혹? 아니 무엇으로도 설명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어떤 끌림이다. 어쨌든 우리는 지금 지리산 천왕봉에 서 있다. 8월 2일, 한라산 백록담, 8월 27일 백두산 천지에 이어 9월 19일 지리산 천왕봉에 서 있는 감회는 남다르다. 아내와 함께 천왕봉에서 길고도 거대한 지리산 줄기를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실로 만감이 교차한다. 이를 두고 '기적의 등산'이라 하지 않으면 무엇을 기적이라 하겠는가!

(▲사진:지리산 천왕봉에서)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히말라야를 넘고, 안데스와 알프스, 로키 산맥을 넘은 바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산에 오를 때 보다도 지리산에 올라와 있는 지금의 감동이 크다. 그것은 생과 사를 넘나드는 질곡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진한 감동때문이다. 사람은 어떠한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말아야 한다.

 

작년 한해는 길고도 어두운 터널 속에서 생과 사의 갈림길에 허우적거렸던 질곡의 세월이었다. 일어서지도 배변도 보지는 못하며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아내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 마음은 무기력함 그대로였다. 인간의 육체에서 가장 중요한 심장을 바꾸어야만 살아난다는 것! 그것은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이다.

  

누군가가 생명을 버리되 죽지 않는 뛰는 심장을 주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명예로도, 힘으로도, 그 어떤 것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희망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고, 신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신은 기증자라는 천사를 내려 보내주어 아내는 심장 이식에 성공을 했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세상에서 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것은 소중한 인간의 생명이다. 실로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아내는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지금 기적의 등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심장 이식후 1년이 지난 이후 지난 7월에는 제주 올레길 240km를 걸었다. 한라산 백록담도 올라갔다. 그리고 8월에는 백두산 천지에 올랐다. 장장 2000km의 육로를 거슬러 올라가 백두산 천지에 오른 감회는 필설로는 다 할 수 없는 진한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이제 남한에서 가장 높은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서서 또 다른 감동을 맛보고 있다.

 

멀리 산 아래 흰 구름이 둥둥 떠 있고, 하늘은 푸르고 푸르다. 끝 간 데 없이 뻗어 있는 산 줄기는 광대하고 무변하다. 3개도, 5개군, 15개면에 광활하게 걸쳐 있는 지리산은 과연 명산 중의 명산이다. 우리나라 국립공원1호, 선호도 1위, 지리산은 설악산이나 한라산보다도 우리 민족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산이다. 그래서 지리산(智異山)은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는 뜻을 가지게 되었든가?

 

 

법계사를 출발하여 가파른 경사를 쉬고 또 쉬며 올라온 천왕봉은 그 어느 산정보다도 경이로워 보인다. 개선문을 지나 마지막 깔딱 고개를 넘을 때에는 기운이 한계점에 다다랐다. 그러나 아내는 포기하지 않았다. 인간의 의지는 바위를 뚫고, 산도 깎아 내린다고 하더니 지금 아내가 그렇다. 아내는 의지가 강했다. 용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용기와 의지를 가졌더라도 신의 도움이 없다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진:천왕봉에 오르는 마지막 깔딱 고개를 밧줄을 타고 올라갔다.) 

 

신은 과연 누구인가? 그것은 인간의 마음이요, 자연이다. 인간의 마음이 신에 가까이 다가가면 신은 도움을 손을 내려준다. 신의 도움을 받으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그것은 선한 일을 많이 하여 남을 자비와 사랑으로 조건 없이 돕는 일이다. 회고해 보건데 아내는 남달리 남을 돕는 자비심이 강한 여인이다. 언제나 약자 편을 들고, 도울 수 있는 한 몸을 아끼지 않고 심신을 던져서 남을 도우려고 한다. 이것은 아내 자랑이 아니다. 한 남자로서 한 여인의 마음을 바라보는 객관적인 견해다.

 

지리산은 어머니 같은 포근함을 주는 산이다. 사방을 바라보아도 푸근하게 내리 뻗은 지리산은 어머니 품처럼 아늑하게 느껴진다. 지리산 천왕봉 높은 곳에 육체는 올라있지만 마음은 한 없이 겸허하다. 겸허하지 않으면 어찌 이 산을 오를 수 있었겠는가. 오늘이 있게 해준 모든 분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마르도록 흘러서라도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지리산에 천왕봉에서 내려다 본 운해와 구름. 지리산은 언제나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한 산이다.

 

어찌 혼자만 세상을 살아 갈 수 있겠는가? 세상은 우주 만물과 어우러져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것을. 우리가 지리산에 오를 수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큰 행운이요, 행복이다. 안치환의 노래처럼 아무나 올 수도 없고, 섬진강 모래알처럼 겸허한 사람만 오를 수 있는 산을 올랐으니 말이다. 지리산에 오르게 해 주신 신에게, 우리와 연결된 모든 사람들, 자연, 이 세상의 모든 만물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끝없이 감사한 마음을 드린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 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안치환,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중에서)

 

  

(2009.9.19 지리산 천왕봉에서 글/사진 찰라)

 

 

 

 지리산 법계사에서 아침 일찍 출발

 

3개도, 5개군, 15개면에 걸쳐 있는 지리산

 

중산리 코스는 짧은 반면 매우 가파르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다!

 

초가을인데도 벌 써 붉게 물든 아름다운 단풍

 

천왕봉으로오르는 마지막 깔딲고개에서 바라본 반야봉, 흰구름이 산아래 떠 있다.

  

막 들기 시작하는 지리산의 단풍과 운해

 

 

 

 

산오이풀

 

 지리산 구절초의 아름다움

 

용담과 들국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