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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도시축제에 온 라파누이-문명의 옷을 벗어버린 춤

찰라777 2009. 10. 6. 21:04

문명의 옷을 벗어버린 라파누이들의 춤

-인천도시축제 라파누이 공연을 바라보며...

 

 

▲인천도시축제에 참여한 이스터 섬 라파누이들의 공연. 16,000km나 떨어진 섬에서 날아온 라파누이들은 문명의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춤사위에 열중했다.

 

 

지금 인천에는 80일간의 '2009 인천도시축제'한창이다. 인천도시축제에 들른 나는 우연히 '라파누이'들의 귀한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여기서 라파누이들의 춤과 노래를 듣다니! 나는 무장해제를 한 듯 그들의 춤과 노래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의 공연 속에서 내 마음은 아득히 먼 문명의 오지 이스터 섬의 추억속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몇 년 전 어느 날 나는 칠레 산티아고에서 이스터 섬으로 날아갔다. 섬에서 가장 가깝다는 칠레 해안까지는 3,800km, 고갱이 환장을 했다는 타히티까지는 4,000km나 떨어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려 16,000km나 떨어져 있는 이스터 섬은 세상에서 가장 멀고도 고독한 섬이다.

 

 ▲묘한 눈으로 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이스터 섬의 모아이상(라노라라쿠 채석장) 

 

 

이스터 섬에는 '라파누이(Rapa Nui)'라고 불리는 원주민과 주민 2,000명이 살고 있다. 섬에는 900여 개의 모아이 석상 말고는 사실 아무 볼 것도 없다. 밤에는 남십자성이 빛나고 별똥별이 길게 떨어져 내리는 섬에는 파도 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섬에 도착하면서부터 사람들은 모두가 완전 무장해제 되고 만다.작은 섬에는 소음, 빌딩, 기차, 지하철도 없고, 사람 수가 적어 에덴동산에 온 느낌이 든다.

 

 

작은 섬은 자유롭다.

그리고 섬에는 축제가 있다. 노래와 춤이 있고, 웃음이 널려있다. 특히 매년 2월 초부터 2주간 열리는 타파티 페스티벌 기간 동안에는 섬 전체가 흥분의 도가니 속에 노래와 춤으로 가득 찬다. 위풍당당하게 몸통을 들어내고 묘한 모습으로 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모아이 석상 앞에서 사람들은 쏟아지는 달빛에 취하고, 노래에 취하고, 춤에 취한다. 사람들은 철썩이는 파도소리와 북소리에 흥이 도도해져 밤늦도록 춤사위를 멈출 줄 모른다.

 

 

 ▲마케마케 신을 기리는 춤을 추고 있는 라파누이의 전통 민속춤(인천도시축제)

 

 

갈대와 야자나무 이파리로 지어진 움막 앞에서 섬사람들은 너도나도 춤을 춘다. 조명이 꺼지고 여기저기에 설치된 장작들이 타오르면, 온몸에 타코나 칠을 한 사내들이 무대 위로 몸을 굴리며 원시의 춤을 추기 시작한다. 손바닥 크기 헝겊으로 하미(Hami)라고 부르는 중요한 부위만을 살짝 가린 남자들은 전신에 문신을 새겨 넣은 나체나 다름없다. 그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섬의 전설이요, 마케마케(섬의 수호신) 신화다.

 

폴리네시안 음악이 흘러나오면 풀잎으로 만든 치마로 아랫도리를 아슬아슬하게 두르고, 바나나 잎으로 겨우 가슴을 가린 여성들의 춤사위가 합세를 한다. 북소리는 점점 커지고, 성행위를 연상 시키는 관능적인 남녀의 몸놀림으로 섬은 용광로처럼 화끈하게 달아오른다. 밤을 잊은 무대는 춤추는 에덴동산을 연상케 한다. 무대 위 춤사위 흥에 참지 못한 관객들은 맨발로 뛰쳐나가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그들과 하나가 된다.

 

▲라파누이들의 폴리네시안 댄싱. 이스터 섬에서는 여자는 풀잎으로 아랫도리를, 바나나 껍질로 가슴을 가리고, 남자는 손바닥만한 헝겁으로 하미(Hamai)를 가린다(인천도시축제).

 

 

타파티 축제의 마지막 날에는 섬의 여왕으로 뽑힌 미녀와 함께 모든 사람들이 퍼레이드에 참여한다. 여기에는 관객 모두가 참여할 수 있다. 여자 관객들에게는 바나나 잎으로 만든 앞가리개와 풀잎 치마, 새의 깃털을 단 모자가 주어진다. 남자들에는 손바닥만 한 하미 가리개 하나만 준다. 타원형의 목욕통에는 붉은 진흙물과 스펀지로 라파누이 원주민이 참가관객들의 몸에 머드팩을 발라준다. 진흙이 마르면 원주민 예술가들이 현란한 바디 페인팅을 해준다.

 

거의 전라의 몸에 바디 페인팅을 한 관객들은 색다른 체험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퍼레이드속로 뛰어든다. 벗고 싶으면 다 벗어도 좋다. 에덴동산에 온 듯 해방감을 느낀 관객들은 토플리스 내지는 완전 누드로 참여해도 말리는 사람이 없다.

 

오후 5시경부터 시작된 퍼레이드는 어두워질 무렵에 끝난다. 목적지에 도달한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음악에 맞춰 정신없이 춤을 춘다. 휘영청 보름달이 떠오르고 무아지경에 빠진 사람들은 누가 주인이고, 관객인지 감각이 없어진다.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   

 

북소리인지 파도소리인지도 구분이 안 간다. 누군가 곁에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한 무아지경 속에 오직 춤만 남는다. 가식과 체면도 없다. 그곳엔 마케마케(神)도 아쿠아쿠(중생)도 모두가 하나의 영혼이 되고 만다. 춤은 하나의 도(道)다. 사람의 순수한 향기다. 인생은 한바탕 춤과 같은 것이 아닐까?

 

인간이 옷을 벗는다는 것은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을 의미한다. 순수, 편안함, 자유는 동물이나 식물처럼 네이키드로 있는 상태에서 온다. 이브가 에덴 동산에서 사과를 따먹기 전에는 아담과 이브도 벌거벗고 있지않았는가.

 

라파누이들의 공연 하나만으로도 1만 8천원의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다. 짧지만 인천도시축제에서 바라보는 라파누이들의 현란한 춤사위는 복잡한 도심 속에서 나의 존재를 잠시 잊게 해주었다. 16,000km나 떨어진 외로운 섬에서 날아와 문명이라는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춤과 노래에 열중하는 그들은 마치 에덴동산에서 날아온 사람들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천도시축제 라파누이 공연 현장에서 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