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죽어도 여한이 없을 지리산 상고대의 비경

찰라777 2010. 11. 15. 05:38

죽어도 여한이 없을 지리산 상고대의 비경

 

 

▲노고단 고개에서 바라본 반야봉

▲노고단에서 반야봉으로 이어진 능선에 핀 상고대절경

 

 

"아아, 너무 아름다워요! 지리산이 이리도 아름다운 줄 미쳐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여길 오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 했어요. 정말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을 아름다운 풍경이에요!"

 

남편과 함께 지리산 둘레길을 걷기 위해 왔다가 우연히 노고단에 오른 40대 중년여인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상고대를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바쁘게 살다보니 18년 만에 지리산을 찾게 되었는데 너무나 잘 온 것 같다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원더풀! 어메이징 코리아!"

 

11월 10일 아침 일찍 노고단을 오르다가 외국인 커플을 만났다. 그들은 노고단에 펼쳐진 아름다운 상고대의 절경에 "원더풀! 코리아"를 연발하며 넋을 잃은 듯 서있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지금 노고단을 오르는 길에 펼쳐진 신비한 상고대의 아름다움은 직접 보지 않고서는 무어라 표현 할 수 없다. 사진으로 보는 것은 현장의 느낌을 백만분의 1도 전달할 수 없다. 그 동안 태백산, 설악산 등의 상고대를 많이 보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지리산처럼 아름다운 상고대는 내 일생에 처음 본다.

 

 

▲설화터널을 이루고 있는 노고단 가는 길

▲푸른 창공에 상고대가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무넹기에서 노고단대피소에 이르는 탐방로에는 나뭇가지에 붙은 상고대가 나무의 모양에 따라 천의 형태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대피소로 이어지는 돌층계 탐방로를 조심스럽게 올라간다. 돌에는 얼음이 얼어 있어 미끄럽다. 탐방로 옆 조릿대 푸른 잎사귀에도 눈이 마치 펭귄 모양처럼 붙어 있다. 노고단대피소에 도착하니 처마에 고드름이 귀엽게 달려있다. 입구에는 노고단 산신할머니가 넉넉하면서도 매서운 눈초리로 탐방객을 쏘아보고 있다. 대피소에서 노고단 정상으로 이어지는 상고대의 은빛 파노라마는 과히 장관이다. 수없이 많은 잔가지에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설화가 만발해 있다. 그 설화 중간 중간에는 푸른 주목이 노고단을 지키는 파수병처럼 고개를 내밀고 있다.

 

 

 ▲조릿대에 펭귄처럼 핀 상고대

▲잔 가지에 얼어붙은 상고대

▲지리산대피소의 고드름

 

▲노고단 고개로 올라가는 상고대 터널

 

 

휴게소에는 부지런한 등산객들이 벌써 라면을 끓여 먹고 있다. 뜨거운 커피 한잔으로 몸을 녹이고 다시 노고단을 향해 설화 터널을 걷는다. 하늘을 쳐다보니 푸른 창공에 순록의 뿔 같은 설화가 기가 막히게 피어 있다. 소나무와 주목나무 잎사귀에 핀 설화도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18년 만에 지리산을 찾았다는 부부는 상기된 모습으로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낙엽송에 내려앉은 설화가 푸른 창공에 하늘거린다. 상고대는 바람이 불어도 잘 떨어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눈이 가지에 얼어붙어 있으니 녹기 전에는 그대로 있다. 저렇게 차가운 눈으로 온몸을 포박 당한 나무들이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을 보면 그저 경이롭기만 하다.

 

 

 

▲낙엽송에 상고대는 바람이 불어도 떨어지지않는다

 

 

모든 것은 때와 시기가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도 때를 놓치면 볼 수 없다. 해가 올라오자 상고대는 벌써 녹기 시작한다. 아마 노고단 정상에 다녀오면 눈이 녹기 시작하여 지금처럼 아름다운 상고대를 볼 수 없을 것이다. 노고단(1440m) 고개에 오르니 피라미드형의 돌탑과 사람두상 모습을 한 바위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돌탑의 북쪽에는 상고대가 모자이크 모양으로 붙어 있고, 남쪽에는 눈이 다 녹고 없다. 해의 방향에 따라 사물의 모습이 이렇게 달라지는 것이다. 돌탑 아래 반야봉(1732m)으로 흐르는 능선에는 말과 글로는 이루 표현할 수없는 설화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설화의 물결은 돼지령을 지나 임걸령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절경

 

 

 

▲노고단 고개의 돌탑과 주목에 핀 상고대

 

 

 

깊은 다바다 속 하얀 산호 같은 상고대의 비경

  

 

 

▲깊은 바다 속 하얀 산호처럼 보이는 상고대 비경

 

 

"아니, 웬 싸리버섯이 이리도 많지요?"

"마치 깊은 바다 속의 하얀 산호처럼 보여요!"

 

20대로 보이는 두 아가씨가 상고대의 모습에 감탄을 하며 하는 말이다. 키 작은 철쭉 가지에 붙어 있는 설화는 싸리버섯이나 바다 속의 하얀 산호처럼 보인다. 푸른 하늘에 뻗어있는 설화는 심해 바다 속의 하얀 산호 그대로다. 노고단 고개 아래 있는 주목나무 꼭대기에는 마치 사슴뿔처럼 생긴 설화가 눈길을 끈다. 어떤 주목은 곰이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서 있는 모습니다.

 

"바람에 너무 강하게 불어 종주를 포기해야 할 것 같아요. 노고단 정상에 단 5분을 서 있기가 힘들어요."

 

지리산 종주를 하겠다고 기염을 토하던 중년남자가 머리를 흔들며 내려간다. 이런 기후라면 지리산 종주가 힘들겠다는 것. 노고단에 이르는 계단을 오르는데 바람이 너무 세차 숨을 쉴 수가 없다. 겨우 750m의 거리가 7500m처럼 느껴진다. 노고단 정상에 이르는 마지막 계단에는 설화가 누룽지처럼 닥지닥지 붙어있다. 정상에 설치된 돌탑에도 상고대가 붙어있어 거대한 눈꽃을 이루고 있다. 돌탑의 모양이 마치 지리산을 산신령처럼 보인다.

 

 

▲노고단 정상으로 가는 계단. 바람이 세차 한걸음 걷기도 힘들다.

▲노고단 정상의 톨탑이 하얀상고대 옷을 입고 마치 산신할머니처럼 보인다.

▲노고단에서 바라본 풍경

 

 

한국의 히말라야 같은 지리산을 고이 보전해야 한다

 

드디어 노고단 정상(1507m)이다! 바람이 어찌 강하게 불던지 몸을 날려 버릴 것만 같다. 숨이 차서 버티컬 리미트(수직한계)를 느낀다. 그러나 노고단 정상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은 감동 그 자체다. 힘들지만 걸어서 여기까지 왔기 그 감동은 더 크다. 노고단 보호대에는 상고대가 강한바람이 쐐기처럼 붙어 있다. 지리산 안내표시판에도 예외없이 상고대가 크리스마스 데코레이션처럼 붙어 있다. 아름답다!

 

 

▲쐐기처럼 늘어붙은 상고대가

 

 

  

KBS 송신탑도 하얀색 일색이다. 상고대가 송신탑에 얼어붙은 것이다. 오늘따라 송신탑도 아름답게만 보인다. 통신의 편익을 위하여 불가피하게 설치되었지만 노고단에 오를 때마다 눈에 가시처럼 보였던 철탑이다. 이 아름다운 노고단에 케이블카를 설치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렇게 태곳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백색의 정상에 쇠말뚝을 박아 기계소리 요란한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 뉴스를 상기하니 갑자기 등골에 소름이 끼친다.

 

 

▲KBS 송신탑에도 하얀 상고대가 피어 아름답게 보인다.

 

▲장장 850리에 달하는 지리산은 한국의 히말라야나 다름없다.

 

 

지난 10월 1일 환경부가 자연공원법 시행령 개정안을 공포하면서부터 사실상 국립공원에 케이블카 설치를 촉진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 법안이 공포된 이후 지리산을 비롯하여 설악산, 북한산 등 전국의 명산에 케이블카 설치문제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불거지고 있다. 지리산 권을 둘러싸고 있는 4개 군, 시에서는 지역경제활성화와 자연보호라는 명목으로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케이블카 설치를 서두르고 있다.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이 쇳소리 요란한 기계 산으로 변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장장 850리에 걸쳐 있는 지리산은 한국의 히말라야와 같은 산이다. 우리민족이 반만년 동안 함께 숨 쉬며 지켜온 산이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의 이곳 저곳에 쇠말뚝을 박아서 어쩌자는 것인가? 우리는 법계사 부근에서 일제가 한민족의 정기를 차단하기 위해 박아놓은 쇠말뚝을 상기해야 한다. 일제는 우리나라 명산 곳곳에 쇠말뚝을 박아 우리민족의 정기를 끊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제 우리 스스로가 그 자리에 쇠말뚝을 박아 자승자박의 우를 범하려 하고 있다.

 

 

▲지리산은 태곳적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호해야 한다

 

 

지리산권 지자체의 케이블카 설치 논리를 살펴보면 모두가 '지역경제를 살리고, 지리산의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천편일률적인 이론이다. 걸어서 산을 오르는 것이 오히려 자연을 훼손하고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케이블카를 설치하더라도 걸어서 산을 즐겨 찾는 사람은 종전처럼 여전히 걸어서 갈 것이다. 그리고 케이블카를 타고 쇄도하는 관광객으로 산 정상은 포만 상태를 이루며 난장판이 될 것이다.

 

지리산은 주변 지자체의 전유물만이 아니다. 지리산은 대한민국 전 국민의 산이다. 반만년의 역사를 지나오는 동안 우리의 선조들이 신처럼 모시며 지켜온 산이다. 지역경제를 위해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도 케이블카 없이 지리산의 정기를 받으며 유구한 세월을 잘 살아왔지 않았는가?

 

 

 

 

 

꼭 돈을 많이 벌어서 잘 먹고 살사는 것만이 행복이 아니다. 히말라야 부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행복지수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 히말라야에는 케이블카는 없지만 세계 각국의 수많은 관광객이 히말라야를 찾는다. 미국의 국립공원에도 케이블카가 없을뿐더러 여름철에만 자동차진입을 허용하고 겨울철에는 도로를 폐쇄한다. 산도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걸어서 올 수 있는 사람만 오라는 것이다. 그래도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이 케이블카 없는 산을 찾는다. 한때 케이블카 설치 붐을 일으켰던 일본은 오히려 케이블카를 철거하는 추세에 있다.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 생각은 히말라야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 오만한 발상과 같은 것이다. 한번 훼손된 자연은 돌아칼 수 없는 환경파괴를 초래한다. 우리는 세계에서 최초로 국립공원을 지정한 미국 국립공원청의 "미션"을 곰곰이 새겨 볼 필요가 있다.

 

"국립공원국은 현 세대 및 미래세대가 즐기고, 배우며,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손상되지 않은 자연적 문화적 자원과, 국립공원 시스템의 가치를 '보존'한다."

 

(The National Park Service preserves unimpaired the natural and cultural resources and values of the National Park System for the enjoyment, education, and inspiration of this and future generations)

 

지리산은 현 세대의 전유물만이 아니다. 현 세대에 이어서 미래세대가 즐기고, 배우며, 영감을 얻어가는 영원의 산이다. 우리는 이토록 소중한 자연유산을 손상시키지 않고, 보존하도록 최선을 다하여 미래 세대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태양이 강한 빛을 발하자 상고대는 점점 녹기 시작하고 있다.

 

 

눈을 들어보니 하얀 상고대가 점점 녹아내리고 있다. 태양이 나뭇가지에 얼어붙은 눈을 하나둘 벗겨주고 있는 것이다. 나무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다시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저 나무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라야 한다. 문득 임제(臨濟)선사의 어록 한마디가 떠오른다.

 

"있는 그대로가 귀하다. 일부러 꾸미려고 하지말라."

(無事是貴人 但莫造作 무사시귀인 단막조작)

 

거리낌 없는 자연스럼움이 귀하다는 말이다. 자연스러움에 조화와 균형으 아름다움이 있다.  지금 지리산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렇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름답다. 일부러 아름답게 꾸미려고 아무리 성형수술을 한다해도 본래의 모습보다는 아름답지 못하다.

 

 

▲원더풀을 연발하며 지리산을 잧는 등산객들

 

 

노고단에서 성삼재로 내려오는데 수많은 등산객들이 꼬리를 물고 입장을 하고 있다. 좀 더 높이 오를수록 더 많이 피어 이는 상고대를 바라보는 그들의 모습은 감탄과 즐거움, 그리고 자연이 주는 어떤 영감에 취해 있는 듯 하다. 모든 사람의 마음이 자연과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오르다가 중도에 포기 하는 사람도 있다. 산은 자기가 오를 수 있는 힘만큼 오르면 된다. 꼭 정상을 정복해야 만이 능사가 아니다. 그래서 지리산 둘레길이 생기고 한라산 올레길이 생기지 않았는가?

 

히말라야야 가면 꼭 히말라야에 올라야만 즐거움과 영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과 영감을 받을 수 있다. 반만년 동안 우리들의 선조가 지키고 보존해온 지리산은 있는 그대로 "보존"하도록 관리에 힘쓰고, 태곳적 자연문화 유산을 미래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지리산을 지키고 있는 노고단 산신할머니

 

 

(2010.11. 10 상고대가 절경을 이루고 있는 지리산 노고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