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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국도의 출발점에 서서

찰라777 2011. 12. 31. 10:32

 

2011년을 보내며

1번 국도의 출발점에서

 

 

“국도 1호선 목포→신의주 939km

  (판문점까지의 거리 498km)"

 

 

 

 

유달산 노적봉 밑에 가면 우리나라 국도 1호선과 2호선의 기점인 <도로원표>가 서 있다. 우리는 국도 1호선 하면 흔히 서울과 부산을 떠 올리기 쉽다. 그러나 아니다. 우리나라 국도 1호선은 목포에서 신의주까지로 그 기점은 목포가 시발점이다. 또 국도 2호선은 목포에서 부산까지로 역시 목포가 시발점이다.

 

 

국도 1호선은 조선시대부터 주요 도로로 이용되고 있었다. 서울에서 의주까지 이어지는 의주대로는 중국과 사신 왕래에 사용되는 주요 도로였다. 의주로는 책문을 넘어 베이징까지 이어진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은 목포에서 서울을 거쳐 신의주까지 도로를 정비하여 국도 1호선으로 명칭을 붙였다. 신작로라 불린 새 도로는 대부분 조선시대의 대로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목포에서 출발한 1호선 국도는 나주-전주-천안-수원-서울-파주 임진각을 거쳐 신의주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진다. 일본은 일직선으로 이어진 1번 국도를 통해서 중국으로 가는 교두보를 삼고자 했다.

 

 

 

 

나는 2011년 신묘년의 마지막 날 우리나라 1번 국도의 시발점인 목포 유달산 아래에 있는 <도로원표>를 밟고 서 있다. 그리고 나는 오늘 1번 국도의 남한 종점인 임진각(494.3km)까지 갈 예정이다.

 

 

1번 국도의 도로원표에 서서 지나온 1년을 회고해 본다. 2011년은 내 인생에 또 다른 전환점이 찾아왔다. 가장 큰 이슈는 섬진강에서 임진강으로 이사를 온 사건이다.

 

 

 

1년 반전에 나는 서울에서 지리산 섬진강으로 이사를 갔다. 수평리 빈농가를 세 들어 참으로 보람 있는 날들을 보냈다. 지리산과 섬진강에서 사계를 맞이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우리는 섬진강변에 터를 잡아 오래도록 살아보려는 장기적인 설계까지 했다.

 

 

그러나 그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갑자기 집 주인이 이사를 오게 되었고, 아직 집을 지을 준비가 덜 된 우리는 다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만 했다. 그런데 우리는 참으로 뜻하지 않는 귀인을 만나 임진강변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일이란 애쓴 다고 다 되는 아니다. 섬진강변에 터를 잡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 계약을 한 집터는 손해만 보고 해약을 해야만 했다. 모든 일은 급하게 서두르면 되는 일도 안 된다. 일이란 시일을 두고 순리대로 풀어가야만 한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하는 한해였다. 이사로 시작해서 이사로 끝나는 한해였다.

 

▲노적봉 밑에 해괴한 다산목. 부끄부끄..

 

 

나는 1번 국도의 기점에서 유달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달산 초입에 만나는 거대한 바위는 노적봉이다. 이순신장군이 임진왜란 때 군량미를 쌓아 놓은 것처럼 속여 왜적을 물리친 역사를 가진 바위다. 노적봉으로 돌아가는 데 앗! 속옷을 입지 않은 여인이 다리를 벌리고 있질 않는가!

 

 

다산목(多産木)이란 해괴한 나무다. 나무는 멀쑥한 다리를 벌리고 마치 벌거벗은 여인이 둔부를 드러내놓고 앉아있다.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는 나무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모양이다. ‘추운데 옷이나 좀 입고 앉아 있지……’

 

 

유달산은 노령산맥의 큰 줄기가 무안반도 남단에 이르러 마지막 용솟음을 친 곳이다. 국민가수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보인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적어도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필시 간첩임에 틀림없으리라.

 

 

 

유달산은 산 전체가 하나의 조각품과도 같다. 갖가지 형상의 바위가 수석전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다양하게 길손을 반긴다. 고래바위, 종바위, 애기바위. 흔들바위, 남근석, 여근석…… 일등 바위로 나는 내내 심심치가 않다.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바위 길을 따라 올라가면 어느새 일등바위에 이른다. 일등바위에 서면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일등 바위를 중심으로 기암괴석이 사람의 영혼처럼 꿈틀대며 너울너울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인다.

 

 

▲삼학도에서 바라본 유달산. 높은 곳이 일등바위, 오른쪽 낮은 곳이 이등바위다.

 

 

일등 바위에는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하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오랜 옛날 사람이 죽으면 일등바위(율동바위)에서 심판을 받은 뒤, 이등바위(이동바위)로 옮겨져 대기하고 있다가, 극락세계로 가는 영혼은 세 마리의 학(삼학도)이나 고하도의 용머리를 타고 간다고 한다.

 

 

 

용궁으로 가는 영혼은 영달산(유달산)에서 조금 떨어진 거북섬(목포와 압해도 사이에 있는 섬)에 있는 거북이 등에 실려 용궁으로 간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내가 죽으면 내 영혼은 어디로 갈까? 학의 날개를 타고 갈까, 용머리를 타고 갈까? 아니면 거북이 등을 타고 갈까? ㅎㅎ, 꿈도 좋군. 극락세계나 용궁으로 갈 만큼 복을 짓지도 못하고 서리. 하기야 착각은 자유니깐……

 

 

 

멀리 서해안 고속도로의 종점인 압해대교에서 고하도 용머리를 잇는 목포대교 공사가 한창이다. 상판을 다 이은 다리 밑으로 항해를 마친 배들이 들어오고 있다. 항해에 지친 배들은 돌아온 탕자처럼 무한 사랑을 베푸는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렇다. 항구는 뱃사람들에게 어머니의 자궁처럼 편안한 곳이다.

 

 

 

 

유달산에서 내려와 삼학도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삼학도! 세 마리의 학이 떠돈다는 전설이 서린 곳. 사랑하는 무사를 기다리다가 식음을 전폐한 세 처녀가 죽어서 세 마리 학으로 환생을 했다. 그 세 마리 학이 사랑하는 무사를 찾아 유달산 주위를 돌며 구슬피 울었다.

 

 

뜻을 이룬 무사가 뒤늦게 돌아와 세 처녀를 찾았다. 그러나 세 처녀는 이미 죽어서 학으로 변해 있었다. 그를 사랑한 세 처녀가 학으로 변할 줄도 모르고, 무사는 활을 당겨 세 마리 학을 맞추어 유달산 앞바다에 떨어져 죽게 했다.

 

▲삼학도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어부와 아녀자들

 

 

그 학이 떨어진 자리에 세 개의 섬이 솟아났으니 후에 사람들은 이 섬을 삼학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에그, 바보야. 그러게 한 여자만 사랑을 할 일이지. 욕심도 많게 세 처녀를 울리다니. 이처럼 전설은 허무맹랑하지만 여행지를 기억하는데 흥미를 더해준다.

 

 

이제 나는 1번 국도를 따라 임진강으로 향한다.

신묘년을 국토의 남단, 1번 국도의 시발점에서 보내고, 2012년 새해는 임진강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할 것이다. 임진년 새해는 흑룡의 해라고 한다.

 

 

갈수록 민초들의 삶이 고달파지고 있다.

한해가 노을 속으로 저물고 있다.

새해에는 모두가 좀더 건강하고 나은 삶을 살아 갔으면 좋겠다.

점술가들은 흑룡의 해에 여러 갈래로 길흉을 점치고 있다.

나는 임진강에서 새해를 맞이하며 지나간 과거를 잊어버리고, 새해를 미리 걱정하지 않으며, 오늘 하루 작은 사과나무를 심고 싶다.

 

 

 

 

(유달산에서 바라본 낙조 : 사진 제공 목포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