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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도 아는 것만큼 보인다?

찰라777 2012. 9. 18. 10:22

제78차 국제펜대회가 열리는 경주에서 우리나라 펜화의 독보적인 존재인 김영택 화백의 펜화전이 23일까지 열리고 있다. 세계건축문화유산과 한국건축문화재 105점을 전시하고 있는 경주 예술의전당을 방문하고 김영택 화백으로부터 작품 설명을 직접 들었다. 김영택 화백은 '김영택 류(金榮澤 流)의 펜화 장르를 창조하여 소실되거나 도난당한 우리나라 건축문화재를 펜화로 복원해 내고 있다.

 

그는 '인간시각원근법'이란 새로운 도법으로 건축문화재의 아름다움을 복원, 기록해 내고 있다. 여러가지 고증과 자료를 수집하여 50만 번의 펜 터치로 우리 건축문화재를 복원해내고 있는 김영택 화백의 노력은 처절하리만큼 치열하다. 본 포스팅은 김영택 화백으로부터 직접 설명을 듣고 <펜화에 담은 세계건축문화재 김영택 펜화전> 도록에 수록된 <김영택 류>의 설명 내용을 인용하여 펜화에 담겨진 우리 건축문화재를 어떻게 감상 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작성해 보았다.

 

 

 

김영백 화백의 펜 끝에서 되살아나는

한국의 건축문화유산

 

 

경주역에 도착을 하니 우선 마음이 차분해졌다. 낮은 건물, 한적한 거리, 작은 산처럼 보이는 왕들의 무덤…… 그리고 불교문화의 금자탑을 이룬 석굴암과 불국사, 황룡사지, 분황사, 첨성대와 포석정……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서 배운 역사유적들이 파노라마처럼 허공에 펼쳐졌다. 신라천년의 고도 서라벌은 그렇게 다가왔다.

 

 

▲수많은 고분으로 이루어진 신란 천년의 고도 경주

 

▲토함산 석굴암에서 바라본 경주

 

 

이렇게 천년의 역사가 숨 쉬고 있는 유서 깊은 경주에서 펜 하나로 그림을 그리고, 펜 하나로 글을 쓰는 세계적인 펜 화가와 펜 글쟁이들이 모여들다니…… 그야말로 펜들의 올림픽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나는 세계 최고의 펜 고수들이 모여든 경주에 올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천만다행으로 생각한다. 최고의 <펜그림>과 <펜글씨>가 불꽃이 튀는 곳, 경주 땅에 서 있다니 정말 영광이다.

 

청정남님이 김영택 화백에게 전화를 걸자 아마 택시요금이 2만 원 정도는 나올 거라고 했다. 경주역에서 예술의전당이 그렇게 먼가? 그러나 택시운전수는 다리 밑을 숨바꼭질을 다스 몇 번 오르락내리락 하더니 왕관처럼 생긴 거대한 건물 앞에 멈추며 다 왔다고 했다. “택시요금이 3천원도 안 나왔는데요?” 청정남님이 택시요금을 내며 웃었다. “우리가 잘 못 들은 걸까?”

 

 

 

▲에밀레종을 거꾸로 엎어 놓은 형상이라는 경주예술의전당

 

 

택시에서 내리니 거대한 건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꼭 마징가 Z 같은 모양이네요?”

“하하, 그렇군. 네 눈에는 방패연처럼 보이기도 하네. 그런데 건축물 모양이 주변 풍경과 전혀 어울리지가 않아 보여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모양은 에밀레종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듯한 형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쩐지 천년고도인 주변의 분위기와 동떨어진 모양이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경주삼기팔괴(三奇八怪)의 하나인 서천과 북천이 합치는 곳에 있는 고풍스런 금장대의 수려한 풍경과는 전혀 별개의 분위기이다.

 

 

 

▲10장의 포스터와 펜화소품

 

 

곧 넘어질 듯한 가분수 모양의 건축물 안으로 들어가니 전면에 김영택 화백의 포스터 10개가 붙어 있다. 이 포스터는 이번에 전시한 인도 타지마할, 프랑스 몽생미셀, 이태리 콜로세움 등 각 나라의 세계건축문화유산 대표하는 펜화를 포스터로 만든 것이다.

 

4층 대전시실로 올라가니 김영택 화백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초대형의 전시실에는 김화백이 지난 20여 년간 혼을 불어 넣어 펜 끝으로 녹여 그린 105점의 펜화가 생생하게 살라 숨 쉬듯 이상한 기(氣)를 발산하며 걸려 있었다.

 

 

▲사인대 앞에서 정성스럽게 친필 사인을 하고 있는 김영택 화백

 

 

▲초대형 전시장에 전시된 펜화를 감상하는 스님들

 

 

전시실 전면에는 경주 불국사를 배경으로 사인대가 설치되어 있고, 왼쪽에는 안내 데스크와 소품, 포스터가 적나라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전시회를 여러 차례 다녀보았지만 이처럼 천장이 높고 거대한 전시실에 한 작가의 그림을 전시하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거대한 전시실에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되어 살아 숨 쉬고 있는 세계건축문화 유산에 압도되어 김화백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작품을 감상하였다. 김화백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전시실에 상부하며 관람자들에게 일일이 펜화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요르단 페트라 펜화 앞에 선 김영택 화백

 

 

숙소인 현대호텔에서 전시장까지 오는 데는 택시비가 무려 2만 원이나 든다고 했다. 김화백은 전시기간 동안 객지에서 자신의 비용으로 밥을 사먹으며, 전시장으로 출퇴근을 하는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매일 전시장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정성을 쏟아 그린 펜화만큼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열과 성의를 다하고 있었다.

 

특히 이번 전시회 김화백의 펜화를 담은 도록은 마치 세계건축문화 역사를 한눈에 보는 듯 하여 관람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처음에 발행한 도록은 일찌감치 동이 나버려 추가로 도록을 인쇄를 할 정도였다고 한다.

 

 

▲관람자들이 구입한 도록에 친필 사인을 해주고 있는 김영택 화백

 

 

김화백은 도록을 산 관람자들에게 일일이 친필로 사인을 해주기도 하고 함께 기념 촬영을 하기도 했다. 필자와 청정남님도 도록을 한부씩 구입하여 김화백의 사인을 받고 기념촬영을 했다. 더구나 김화백의 펜화를 여러 점 소장하고 있는 청정남 님의 펜화 사랑은 남달라 보였다.

 

 

김화백이 새롭게 도입한 <인간시각원근법>

 

 

김화백은 펜화를 그리면서 그림의 원근법과 인간의 시각이 다른 것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서구에서 발견된 그림의 원근법은 핀홀 카메라에서 내부를 검정색으로 만든 사각상자 앞면 중앙에 작은 구멍을 뚫고, 뒷면에 우유 빛 유리를 붙인 것에서부터 개발되었다고 한다.

 

 

▲달마산을 15%정도 확대하여 달마산 입석을 강조한 해남 땅 끝 미황사

 

 

검정 보자기를 쓰고 뒷면을 보면 상자 앞 사물들이 상하좌우가 뒤집혀진 상태로 우유 빛 유리에 투영된다. 사물의 모양과 거리에 따른 크기의 비례가 정확하고, 놓인 상태가 질서 정연하게 나타나는데 이 그림을 확대하여 그리면 정확성이 100%인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넓은 풍경을 그릴 때에는 원근법대로 그리면 현장에서 본 감흥과 동떨어진 그림이 되기 쉽습니다. 카메라로 빌딩을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보면 윗부분이 좁게 보이는 반면, 사람의 눈에는 사물이 수직으로 보입니다.

 

연필을 들고 한쪽을 눈 가까이 보아도 앞과 뒤의 굵기가 비슷해 보입니다. 원근법대로라면 분명히 눈앞의 연필 굵기와 뒤끝의 굵기가 크게 차이가 나는데 말입니다. 사람의 눈도 카메라 구조와 같습니다만 뇌에서 빌딩은 수직이고, 연필은 앞뒤의 굵기가 같다고 판단을 하고 이미지를 수정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눈은 가까운 사물은 표준렌즈와 비슷하게 보이고, 먼 곳의 사물은 망원렌즈처럼 확대하여 보기 때문에 카메라나 그림의 원근법과는 사뭇 다른 영상으로 기억합니다. 중요한 사물은 크게 기억을 하기도 합니다.”

 

 

▲금강산 신계사. 13동 건물들의 크기 비례를 조정하고 소나무 숲을 10%, 먼 배경 집선 봉오리를 20% 정도 확대하여 연봉 바위형태를 세밀하고 선명하게 강조하여 그린 펜화

 

 

이런 시각의 특성에 맞추어 김화백은 <인간시각원근법>이란 도법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해남 미황사, 금강산 신계사, 진천 보탑사, 합천 영암사 등을 이 도법을 적용하여 그렸다고 한다. 따라서 그림을 감상할 때에 이런 점을 인식하고 관람을 하게 되면 펜화가 세밀하고 생생하게 다가온다는 것.

 

김화백의 설명을 듣고 다시 그림을 보니 그림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사진상으로 보면 산 봉오리가 아득히 보일 텐데, 손에 잡힐듯 가까이 보인다. 전각과 소나무 숲, 그리고 뒤 배경을 이루는 금강산이 선명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불국사의 현재 모습. 나무와 보호시설에 가려 제대로 건축물 전체를 볼 수 없다.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한 후 복원해낸 김화백의 펜화. 건물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펜화에서는 불필요한 요소를 빼버리기도 하고, 위치를 이동시켜 잘 보이도록 만듭니다. 특히 문화재 앞에 세운 해설판이나 근대에 세운 보호시설 등은 아예 삭제합니다. 나무에 가려서 제대로 안 보이는 경우 나무를 줄이거나, 옆으로 옮기거나 하여 제 모습을 기록하기도 합니다.”

 

불국사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현재 불국사 앞에는 소나무와 해설판, 보호시설들이 건축물을 가리고 있어 전체적인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김화백은 이러한 요소들을 모두 제거하고 불국사의 원래 모습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시원스럽게 복원해 냈다. 실로 놀라운 상상력이다.

 

 

고증과 자료수집으로 인류문화유산을 복원

 

“문화재 복원도를 만드는데 펜화는 매우 유용한 수단입니다. 없어진 문화재도 흐릿한 사진만 있으면 당시의 건축 방법을 고증하여 상세한 모습으로 재현해 낼 수 있습니다.”

 

김화백은 도난이나 파괴로 사라진 문화재도 흐릿한 사진 한 장만 있으면 당시의 건축 방법을 고증하여 상세한 모습으로 재현해 낼 수 있다고 한다. 불국사 다보탑, 경복궁 서십자각, 광화문, 덕수궁 대안문, 서울의 4대문과 4소문 등을 모두 원형에 가깝게 되살려 그려냈다. 로마의 콜로세움과 판테옹의 오래된 도면을 구해 옛 모습대로 복원해 냈다.

 

▲불국사 다보탑 실재 사진 모습. 기단위에 난간이 없고, 탑 사면에 배치되었던 돌사자상은 일제 강점기에 약탈되어 한개의 사장상만남아있다.

 

▲김화백은 학자들의 추정과 자료의 고증에 의해 난간을 복원하고, 탑 사면에 사장상도 복원하여 건축당시의 탑으로 재현시켰다.

 

 

불국사 다보탑을 예로 들어보자. 다보탑은 1925년 경 일본인들에 의해 해체 수리되었는데, 이 때 탑 속에 있던 사리와 사리함 등 유물도 사라져 버렸다. 기단 돌계단 위에 놓여있던 4마리의 돌사자도 한 마리만 남기고 모두 일제에 의해 약탈되어 지금까지 행방을 알 수가 없다.

 

김화백은 기단 위 사방에 4마리의 돌사자를 복원하고, 사라져버린 탑 난관도 복원해 냈다. 현재 남아있는 구멍 등으로 보아 다보탑에는 분명히 난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 또한 현재 남아있는 사자상은 하나이지만 사면에 배치되어 있을 것이라는 학자들의 추정에 따라 사면에 모두 복원을 해냈다.

 

“저는 펜화의 장점을 이용해 건축문화의 아름다움을 기록하는 작품으로 인류문화유산을 지키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제 펜화를 보고 한 일본인은 ‘김영택 류’라는 평가를 하였습니다. 아직 미흡한 상태이지만 ‘김영택 류’라는 이름에 걸 맞는 작품들을 만들고 싶습니다.”

 

펜화에 대한 김영택 화백의 애정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한국 고유의 건축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

 

지난 9월 11일에는 존 랠스톤 소울(John Ralston Saul, 캐나다 소설가, 수필가) 국제펜클럽회장, 르 클레지오(Le Clezio, 프랑스 소설가), 월레 소잉카(Ouwole Soyinka, 나이지리아 극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를 비롯하여 많은 작가들이 김영택 화백의 펜화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경주 예술의전당 전시장을 찾았다.

 

최양식 경주시장의 안내로 전시장을 둘러본 그들은 김 화백의 펜촉으로 복원된 세계건축문화유산을 감상하며 살아 숨 쉬는 듯한 펜화의 정교함과 섬세함에 “원더풀”을 연발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김화백의 안내로 전시장을 돌아보고 있는 르 클레지오와 월레 소잉카 노벨상 수상자들

 

 

김화백의 설명을 들으며 예술의 전당 4층 대전시실에 전시된 그림을 모두 둘러본 그들은 김영택 화백이 직접 사인을 한 펜화 소품을 한 점씩 선물로 받았다. 김화백은 존 랠스톤 소울 회장에게는 <경주 불국사 다보탑>을, 르 클레지오에게는 <시크레퀴르 대성당>을, 월레 소잉카에게는 <경주 독락당 계정> 소품을 김화백의 사인을 담아 각각 선물했다.

 

 특히 이 장면은 국제펜대회가 열리는 천년 고도 경주에서 펜화의 거장 김영택 화백의 <펜화>와 노벨상을 수상한 <펜문자>의 거장들이 만나는 의미가 깊은 순간이었다.

 

 

▲김화백의 친필 사인이 새겨진 펜화소품을 받고 기뻐하는 노벨수상자들.

위에서부터 차례로 소잉카, 소올 국제펜클럽회장, 르 클레지오

 

 

지난 20년 동안 고증을 거쳐 담은 김화백의 경주 불국사와 다보탑, 숭례문 등 80여점에 달하는 펜화는 한국 고유의 건축문화유산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를 하고 있다.

 

김화백은 9월 8일부터 전시회가 열리는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먼 거리에서 숙소와 전시장을 오가는 불편을 감수하며 관람자들에게 펜화에 담은 세계건축문화를 열과 성정을 다하여 일일이 설명해주고 있다.

 

▲세계건축문화유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김화백의 펜화 도록이

관람자들자들 사이에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회 김화백의 펜화를 담은 도록은 마치 세계건축문화 역사를 한눈에 보는 듯하여 관람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처음에 발행한 도록은 일찌감치 매진이 되어버리고, 도록을 찾는 관람들이 많아 추가로 도록을 인쇄를 할 정도였다. 김화백은 도록에 일일이 자신의 친필로 사인을 해주기도 하고 관람자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기도 했다.

 

김화백의 펜화는 국가브랜드위원회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펜화작가로 선정 홈페이지에 수록(http://www.koreabrand.net/net/kr/book.do?kbmtSeq=1349)하였으며, 2013년 발간 중등미술교과서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펜화가로 수록될 예정이다. 이렇게 <김영택 류>의 펜화로 한국문화유산을 복원해 내는 김영택 화백은 펜화의 장점을 이용해 건축문화재의 아름다움을 기록하는 독보적인 존재이다.

 

 

▲국가브랜드위원회에 수록되어 있는 김화백의 <펜화로 만나는 한국문화유산>

 

 

김화백의 설명을 들으며 펜화 전시장을 둘러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그림도 아는 것만큼 보인다. 김화백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니 전시된 펜화들이 새로운 의미를 담고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듯 했다.

 

우리는 김영택 화백과 함께 신라의 고분이 바라보이는 별채반이라는 식당에서 야채 비빔밥을 점심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김화백은 오랜 채식가라고 한다. 마치 수행을 하는 수도자의 자세로 펜화를 그려내고 있음을 짐작케 모습이다. 점심을 한 후 우리는 김화백과 해어져 석굴암으로 행했다.

 

김화백의 펜화전은 오는 23일까지 열린다(김영택 화백 ‘펜화에 담은 세계건축문화재’ 전시회/9월 23일까지/경주 예술의전당 4층 대전시실/☎1588-4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