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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라의영농일기]내 영혼을 따뜻하게 해주는 땅콩의 영혼

찰라777 2012. 10. 11. 06:58

너구리야, 너구리야 이래도 넘어올래?

공들여 키운 땅콩을 수확하며 행복을 맛보다

 

땅콩 잎이 시들시들한 것을 보니 수확을 할 시기가 다가온 모양이다. 그래서 지난 6일 땅콩을 캐내기로 했다. 너구리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쳐놓은 망사 울타리를 제치고 들어가 땅콩 몇 그루를 캐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땅콩 한 그루에 이렇게나 많은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왕초보 농사꾼인 나는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 땅콩 한 그루에 이렇게 많은 땅콩열매가 열리다니.... 믿을 수가 없다.

 

 

지난 봄(4월 17일) 이웃 집 현희 할머니한테 얻어온 땅콩을 모래밭에 심고 나서, 과연 이 땅콩이 열매를 맺어줄 것인가 하며 반신반의 했었다. 그래도 모래밭을 개간하여 빈 땅이 있으니 놀리지 말고 심어본 땅콩이었는데, 이렇게 주렁주렁 열릴 줄이야!

 

거칠고 모래밖에 없는 박토에서 땅콩 알은 싹을 틔우고, 샛노란 꽃을 피워주더니 급기야 씨방줄기(자방병)를 뻗어 주었다. 그리고 실모양의 씨방줄기가 땅을 뚫고 들어가더니 이렇게 고소한 열매를 맺어준 것이다.

 

▲ 땅콩 알을 심어서 키워 온 과정 1.땅콩심기 2.땅콩싹 3. 땅콩 꽃 4.흙 복돋아주기

 

그동안 가뭄이 극심할 때 매일 물을 주고, 씨방줄기가 땅 속으로 잘 들어가라고 세 번이나 흙을 북돋아주었다. 씨방줄기가 토양까지 도착하지 않으면 열매가 실하게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농사 초짜인 나는 텃밭 가꾸기 책을 들여다 보기도 하고, 농업기술센터에 전화를 여러 차례 하면서 땅콩을 애지중지 키워 왔었다.

 

땅콩이 익어갈 무렵 땅콩 밭은 또 한 차례 너구리들로부터 호된 시련을 겪어야 했다. 너구리들이 침범하여 밤마다 땅콩 밭을 파헤쳐 까먹는 바람에 자칫 잘못하면 땅콩을 한 알도 건져내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벌써 아랫집 현희네와 이장님 집은 땅콩을 너구리들이 거의 다 시식해 버려 울상을 짓고 있었다. 

 

 ▲ 망사를 찢고 들어온 너구리의 흔적

 

나는 인터넷을 뒤지고,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여 땅콩을 너구리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비책을 세웠다. 우선 철물점에서 1m 높이의 망사울타리를 사와 땅콩 밭 사방을 둘러쳤다. 그런데 너구리는 그 질긴 망사를 이빨로 끊어서 보란 듯이 땅콩을 까먹어 버렸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망사울타리에 헌장화, 운동화, 비닐봉지를 걸어 놓고, 울타리 주변에는 인쇄냄새가 나는 신문지를 깔아두었다. 그리고 아내의 아이디어로 두 마리의 석고 토끼 인형을 너구리들이 들어옴직한 통로에 보초병처럼 세워놓았다.

 

▲ 너구리가 출입하는 통로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토끼인형

 

그게 효과가 그렇게 클 줄이야! 두 번째 방비책을 한 후부터는 너구리들이 일절 범접을 하지 않았다. 장화 덕분인지 신문지 덕분인지, 아니면 보초를 선 토끼인형 덕분인지, 하여간 너구리들은 더 이상 오지 않아 땅콩을 고스란히 보존할 수가 있었다.

 

 

▲너구리 방지를 위해 장화와 신문지 비닐봉지를 걸어놓았다.

 

아내는 토끼인형이 무서워서 너구리들이 지레 겁을 먹었을 것이라고 했다. 너구리보다 훨씬 큰 토끼인형이 두발을 허공에 떡 벌리고 앞을 향해 쏘아보고 있으니, 아마 사냥개로 오인을 했을지도 모른다. 너구리들은 개들을 무척 무서워한다고 했다. 그래서 빈 개집을 놓아두면 그 냄새를 맡고 너구리들이 줄행랑을 치기도 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 토끼인형덕분에 너구리들로부터 그나마 보존 된 땅콩.

 

 

▲땀을 흘린만큼 내 영혼을 따뜻하게 해주는 땅콩열매들

 

호미로 흙을 파고 땅콩을 뿌리 채 뽑아서 흙을 털고 죽 늘어놓으니 고소한 냄새가 풍겨왔다. 수확의 기쁨은 이런 것인가? 땅콩열매가 주렁주렁 달려나올 때마다 나는 오지게 행복한 미소를 짓곤 했다.

 

"와아, 아빠, 땅콩이 이렇게나 많이 열리다니 신기해요!"

"그러게 말이야, 나도 처음 캐보는 땅콩인데, 그저 놀랄뿐이다."

 

▲ 땅콩열매를 따내고 있는 아내와 영이

 

마침 서울에서 큰 딸 영이가 와서 아내와 함께 땅콩 열매를 따내는 작업을 했다. 땅콩열매를 한 알 한 알 따내며 아내와 영이도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다 따내지 못한 땅콩을 뒤꼍에 옮겨놓고 토끼인형을 그 앞에 세워 두었다. 혹시 올지도 모르는 너구리들의 침범을 막기 위해서였다.

 

"토끼야, 너희들만 믿는다."

"염려 붙들어 매시라고요. 쥔장님."

  

 

▲ 밤새 땅콩 더미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보초를 서고 토끼인형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밖에 나가보니 다행히 땅콩이 무사했다. 토기인형은 땅콩을 지켜주는 파수병이다. 나비넥타이를 매고 두 눈을 부릅뜬 토끼인형이야말로 우리 집과 텃밭을 지켜주는 보초병이다. 말없이 보초를 서주는 토끼인형들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그 다음 날은 서울에서 아내 친구 두 분이 와서 땅콩을 따내는 작업을 도와주었다. 동이리 주상절리 단풍구경을 왔다가 갑자기 농부로 변신을 한 아내 친구들은 땅콩 따내는 작업을 처음 해본다며, 신기해하면서 하루 종일 땅콩을 따내는 작업을 도와주었다.

 

▲주상절리 단풍구경왔다가 하루종일 땅콩열매 따기를 도와준 아내 친구들

 

농사꾼이 따로 있는가? 이렇게 우리 집에 오면 누구나 농부로 변신하고 만다. 품삯은 땅콩 한 되, 호박 한 개, 고구마 등등 가을걷이를 바리바리 싸주는 것이다. 아내 친구들은 마치 친정에 왔다가 간 기분이 든다며 얼굴에 행복한 미소를 가득 지으며 떠나갔다.

 

땅콩을 다 따내고 보니 한가마는 족히 되어 보인다. 그 땅콩을 마루에 널어놓으니 온 집안에 고소한 땅콩 냄새가 가득 찼다. 땅콩에게도 사람 못지않은 영혼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그 땅콩의 영혼이 우리를 기쁘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 10여평 모래땅에서 수확한 땅콩. 한가마는 족히 될 것 같다.

 

쓰지 신이치가 쓴 <행복의 경제학>이란 책을 보면 '진심'과 '영혼'은 거의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고 했다. 그는 진심이 깃든 요리에 우리의 진심이 공명하고, 영혼이 깃든 음악에 우리의 영혼을 흔든다고 말한다.

 

'우리'라는 존재와 연결되어 있는 수많은 존재들은 '영혼이 있고 없음'에 따라 행복과 불행으로 갈라지며 연결되는데, 그 중에서 '영혼이 깃든' 연결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진심이 없는 연결은 오히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 

 

나는 진심으로 정성을 들여 땅콩을 키워왔다. 마치 자식을 돌 보듯이 물을 주고, 복토를 몇 번이나 하고, 너구리들로부터 보호해 주었다. 땅콩의 영혼이 내 진심을 알아주었을까? 땅콩은 나의 진심어린 보살핌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이렇게 주렁주렁 열려주었으니 말이다.

 

▲ 마루에 땅콩을 널어놓으니 온 집안에 고소한 땅콩냄새 가득하다

 

성서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영혼)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마가:36).” 사람에게는 자신의 목숨이 가장 귀중 한데도 풍요를 쫒다가 그만 제 목숨마저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는 풍요라는 보물을 찾기 위해 너무나 급히 서두르며 달려가고 있다. 풍요만을 쫒다보니 행선지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바동거리고 있는 것이다.

 

한 부자가 땅에 곡식을 심어 농사가 아주 잘 되어, 곡간을 더 많이 넓혔다. 그의 예상대로 그해 가을 풍성한 소출을 거둬들여 곡식을 곡간마다 가득 채워놓고 그날 밤 부자는 웃으면서 속삭였다.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누가:12:19).”

 

 

▲땅콩을 수확하여 따내기 위해 마루로 옮겼다.

 

그러나 콧노래를 부르던 그날 밤 그는 생명이 끊기고 하나님을 대면하게 되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오늘 밤에 내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누가 12:19).” 부자는 자기 인생이 영원할 줄로 착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모두는 머지않아 하나님이아 염라대왕 앞에 서야 할 따가 곧 다가올 것이다. 그러니 곡간에 곡식을 쌓아두고 혼자서만 먹고, 마시고, 즐거워할 것이 아니라 가까운 이웃들과 나누어 먹는 즐거움을 가져야 한다. 곡식을 창고에 가득 쌓아두기 바빠 행복을 누릴 시간을 미처 갖지 못한 채 저 세상으로 가버린다면 재물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껍질을 벗겨 놓은 땅콩이 내 영혼을 따뜻하게 해주고 있다.

 

아내는 이 땅콩을 나누어 먹을 집이 11곳이나 된다고 말했다. 이제 저 땅콩을 햇볕에 말려 지인들과 나누어 먹을 생각을 하니 절로 고소한 미소가 흘러나온다. 진심으로 땅콩을 보살피고 키워오다 보니, 땅콩의 영혼이 나를 이렇게 행복하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