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아카시아 향기 속에서 올린 어떤 결혼식

찰라777 2013. 5. 28. 06:28

아카시아 향기 속에서

 

5월 26일, 일요일, 맑음

 

 

아침 8시, 차를 몰고 금가락지를 나섰다. 신록이 우거진 숲속에 5월의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아카시아 향기가 달콤하게 몰려온다. 푸른 숲속에는 아카시아 꽃이 소금을 뿌린 듯 하얗게 피어 있다. 숲에는 아카시아, 층층나무, 아그배나무, 팥배나무 꽃이 신록의 숲을 하얗게 채색을 하고 있다. 때죽나무 꽃도 작은 접시꽃처럼 어여쁘게 피어 있다.

 

 

 

 

 

 

 

 

 

 

 

 

 

 

 

 

5월에는 왜 이렇게 하얀 꽃들이 많이 피어날까? 일설에 의하면 푸른 바탕에선 벌과 나비들이 하얀색 외에는 잘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벌과 나비는 푸른색에서는 하얀색 외의 다른 색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색맹일까?

 

 

자동차를 소요산역에 파킹시키고, 8시 35분 수원행 전철을 탔다. 오늘은 주례를 보기 위해 광명시에 있는 금천구청까지 가야한다. 홀로 차를 몰고 연천에서 광명시까지 간다는 것은 심심하기도 하고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도 바람작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는 아내와 함께 차를 몰고 가려고 했는데,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다고 해서 전철을 타고 가기로 했다.

 

 

내가 주례를 서는 일은 이번으로 세 번째다. 두 번의 모두 친한 친구의 딸들에 대한 주례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청정남 님의 부탁으로 주례를 서게 되었다. 그의 형님(故)의 딸인 조카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마땅히 주례를 설 사람이 없어 날더러 주례를 좀 서 줄 수 없겠느냐는 부탁이 있기에 나는 선뜻 허락을 했다. 형님을 일직 여인 그는 조카들을 마치 친 딸처럼 보살펴 주고 있었다.

 

 

월래 말 주변도 없고, 주례를 전문적으로 보는 사람도 아닌 나에게 청정남 님이 주례를 부탁을 받게 된 것은 어찌 생각하면 영광스런 일이기도 하다. 왠지 그 사연이 가슴을 때리는 아름다움이 베여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있는 곳에 간다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소요산역에서 금천구청역까지는 꼬박 2시간이나 걸렸다. 그러나 나는 <핀드혼 농장 이야기>란 책을 재미있게 읽어서 별로 지루하지가 않았다. 스코틀랜드의 핀드혼에 있는 척박한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핀드혼 공동체를 이루어나가는 이야기는 매우 흥미진진했다.

 

 

금천구청역에서 내려 셔틀버스를 타고 <보베르 예식장>으로 갔다. 청정남 부부는 벌써 와서 하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돌아가신 형님을 대신해서 호스트 역할을 하는 그의 해맑은 모습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5층 홀에는 꽤 많은 하객들이 와 있었다. 주례사는 될 수 있는 대로 짧게 해야 한다. 우리나라 결혼식장은 어디를 가나 시끄럽다. 그러나 교회나 성당에서 올리는 결혼식은 꽤 엄숙하고 조용하다. 그곳은 환경이 부는 분위기 탓이리라. 주례석에 서 있는데 어찌나 시끄럽던지 사회자의 말이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이윽고 신랑이 입장을 하고, 면사포를 입은 어여쁜 조카딸이 천정에서 내려오자 청정남 님이 그의 형님을 대신해서 신부의 손을 잡고 입장을 했다. 그 모습이 사뭇 엄숙하고 경건했다. 하객들의 갈채 속에 신부가 다소곳이 미소를 지으며 입장을 했다. 신부의 어머님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 모습을 지켜보자니 어떤 감동과 함께 괜히 코끝이 시큰해졌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러나 결혼식장은 여전히 소음으로 가득 차서 사회자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신랑 신부 맞절을 진행해야 하는데 혼인서약을 먼저 읽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사회자의 당황한 모습을 보고 나는 곧 수정을 해서 신랑과 신부에게 맞절을 시켰다.

 

 

결혼식 진행 순서를 미리 주었더라면 이런 우를 범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러나 신랑 신부의 밝은 표정을 보니 곧 마음이 진정되었다. 혼인서약, 성혼선언이 이어 주례사는 5분을 넘기지 않고 끝냈다. 결혼식은 환호 속에서 진행되었다. 신랑이 신부를 위해서 축가를 부르기도 했다.

 

 

나는 신랑 신부와 함께 사진을 찍고 청정남 님에게 인사를 한 후 예식장을 떠났다. 오후 4시에 종각역에서 친구 응규를 만나 연천으로 오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다시 전철을 타고 소요산역에 도착하여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6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연천에서 서울을 다녀오면 꼬박 하루가 걸린다.

 

 

금굴산에서 흘러내려오는 아카시아 향기가 가슴을 진하게 적셨다. 나는 계절의 여왕 5월에 결혼식을 올린 청정남 님의 조카딸이 아카시아 향기처럼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