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텃밭일기

빗속에서 캐낸 마늘

찰라777 2013. 7. 14. 07:27

 

자연의 소리를 들어 보세요!

 

 

빗속에서 캐낸 마늘

 

 

 

 

콩들의 합창

 

해땅물자연농장의 마늘만 바라보면 답답하다. 장마가 오기 전에 캐내야 하는데 아직도 캐내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홍 선생님은 아직 마늘잎이 완전히 시들지 않았으니 좀 더 기다려야 한다며 아직 마늘을 캐내지 않고 있다. 캐나다가 원산지인 이 마늘은 만종이라고 한다. 그래서 늦게 밑이 든다는 것이다.

 

어제 수리를 해놓은 논두렁이 궁금하여 조금 일직 농장에 나갔는데 아무도 없다. 빗속을 걸으며 논두렁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논두렁은 이상이 없었다. 논에 물이 없는 것을 보니 아마 밤에 물고를 터놓은 모양이다. "다행이군." 어제 홍선생님은 물을 뺄 것인가 그대로 둘 것인가를 한동안 고민에 빠져 있었다.

 

 

 

 

논두렁을 한바퀴 돌아 사과밭에 가보니 콩들의 싹이 잘 나와 있다. 콩들이 합창을 하듯 하늘을 보고 비를 맛고 있다. 그 사이에는 수많은 쑥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다른 잡초들도 많았는데 쑥들이 가장 먼저 고개를 내미는 것을 보면 쑥의 생명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1사과밭에 돋아난 콩들의새싹

 

 

빗소리를 들어보세요!

 

비가 세차게 내린다. 원두막으로 돌아온 나는 장화를 벗고 원두막 안으로 올라갔다. 다행히 바람이 불지 않아 원두막에 비는 들치지 않는다. 그러나 바닥은 젖어 있어 척척하다. 나는 천장에서 박스 하나를 꺼내 깔고 앉았다. 그래도 이 원두막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20년만에 만난 홍 선생님의 친구가 자연농사를 짓고 있는 홍 선생님을 만나 감동을 하고 선물을 한 원두막이라고 한다. 참으로 고마운 친구다. 덕분에 나도 여기서 비를 피하고 쉴 수 있지않은가. 그래서 세상은 또 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연의 고리로 연결된 세상은 악보다 선이 많다

 

아무도 없는 곳에 나 홀로 원두막에 앉아 있으니 분위기가 묘하다. 딱 명상에 들기 좋은 분위기다. 나는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자연 속으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가야금의 잦은 가락처럼 들렸다가, 빗줄기가 굵어지면 드럼 치는 소리로 변한다. 자연은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해 준다.

 

맨 아래 논은 논두렁이 튼튼하여 그대로 물이 고여 있는데, 그 논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원을 작은 원을 그리며 뿅뿅 하고 소리를 낸다. 반면에 옥수수 밭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다다다다다다다~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낸다. 원두막 처마에 떨어지는 빗물은 길게 빗금을 긋는다. 건너 편 숲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잔잔하게 마음을 가라앉힌다. 그러나 냇물에 흐르는 물은 요란하고 바쁘다.

 

아무리 들어도 자연의 소리는 소음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동안 명상에 잠겨 있는데 홍 선생님이 왔다. 그도 오자말자 논두렁과 물고를 돌아보았다. 농부는 비가 오면 항상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어제 밤늦게 와서 물고를 다 열어 놓았어요. 물에 잠겨 있으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여 벼가 분열을 잘 할 수 있지만 논두렁이 불안하여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요.”

“참 잘 하신 것 같습니다. 두 가지를 다 취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빗속에 갇혀 그와 나는 원두막에 앉아 차를 한 잔 마시며 화제를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옮겼다. 철학을 공부한 사람답게 그는 인생관이 확고한 것 같다. 살아온 인생에 후회가 없고, 자연농사를 짓게 된 것을 참으로 고맙게 생각을 한다고 한다. 수입이 일정치 않아 다소 불편하지만 일을 할 수 있어 즐겁고 늘 자연 속에 있으니 그 행복이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연 속에 있는 풀들과 작물과 나무를 인간과 동등한 선상으로 놓고 있다. 하찮은 풀도 인간보다 하위개념으로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는 동등한 자격으로 작물을 대하고 식물들과 늘 대화를 하며 결과물을 주는 것에 대하여 고마움을 느낀다고 한다. 거름하나 주지 않았는데 자연은 이렇게 먹을거리를 우리에게 주니 얼마나 고마운 존재냐는 것이다.

 

맨땅에 심은 마늘을 캐내는 즐거움

 

“저 마늘은 캐지 않나요? 다음 주에도 내내 비가 내린다고 하는데…

“오후에 비가 오지 않으면 마늘을 캐지요.”

 

집으로 오는 길에 삼화교에서 차를 잠시 멈추고 임진강 수위를 바라보니 그새 많이 줄어 있다. 16m 가까이 올라갔던 수위가 11m로 내려와 있다. 퍽 다행이다.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나니 비가 그쳤다.

 

 

 

 

임진강을 따라 다시 농장으로 가니 서울에서 김 선생님이 친구와 함께 와서 원두막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토요일이면 늘 마음의 힐링을 하기 위해 이 농장에 온다. 농장에 들어서면 잡념이 없어지고, 땀 흘려 일을 하고나면 일주일간의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고 한다.

 

 

우리는 마늘을 캐기 시작했다. 홍 선생님과 김 선생님이 마늘을 캐면서 잡초를 뽑고, 나는 마늘에 질퍽하게 묻은 흙을 털어서 가지런히 정리를 해 놓으면 배 선생님은 마늘을 묶어서 트럭으로 옮겼다. 네 명이 분업을 하니 손발이 척척 맞아 일이 진행이 아주 잘 되었다. 마늘은 생각보다 밑이 굵었다.

 

 

 

 

“비료를 주지 않아도 이렇게 굵다니 믿어지지 않는데요?”

“만종이라 늦게 캐내니 확실히 굵군요. 오늘 캐기를 잘했군요. 더 이상 두면 뭉그러질 것 같아요.”

 

내가 지난 5월 초 이 농장에 와서 마늘 밭에 풀을 베어내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밑이 굵게 들어 수확을 하다니 땅은 거짓말을 하지않는다. 심어서 가꾼대로 거둔다. 더구나 비료 한 줌, 농약 한방울 치지않았는데 이렇게 굵은 마늘을 캐다니 꼭 노다지를 캐내는 기분이다.

 

 

 

이 마늘씨는 원래 캐나다가 원산지라고 한다. 작년 10월 중순에 심었는데 겨울을 잘 견디고 씨가 굵어진 것이다. 그런데 나는 텃밭에 11월 초에 마늘을 심었다. 현이 할머니의 말씀이 너무 일직 심으면 싹이 돋아 겨울에 얼어버리므로 최대한 늦게 심으라고 했다. 마늘을 처음 심어보는 나는 그대로 했다. 한 접을 심어서 5접 정도를 수확을 하기는 했는데, 이 농장 마늘보다 마늘 밑이 훨씬 더 잘다.

 

홍 선생님은 10월에 심어도 전혀 문제가 없으며 심은 다음 11월경에 볏짚으로 덮어놓으면 겨울에도 뿌리가 얼지 않는다고 금년에는 나도 10월 중에 심어야겠다.

 

 

 

마늘을 다 캐고 나니 다시 비가 내렸다. 어쨌든 마늘을 수확하거 나니 마음이 후련하다. 혹시 젖은 땅속에서 뭉그러졌지나 않았을까 하고 늘 조바심을 했는데 이렇게 굵고 싱싱하니 가슴이 뿌듯하다. 더구나 비료는 물론 농약도 전혀 치지 않았는데 이처럼 수확을 하게 해준 땅이 고맙기만 하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정성을 들여 씨를 뿌리고 가꾼 대로 거두어들이는 즐거움이야말로 그 어디에 비기랴!!

 

(2013.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