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텃밭일기

콩밭에 무릎을 꿇다

찰라777 2013. 8. 17. 05:18

위대한 콩밭에 무릎을 꿇다

 

 

 

뭐니 뭐니 해도 8월이 가장 덮다. 8월의 태양은 용광로처럼 뜨겁다. 지글지글 끓는 태양이 뇌살스럽게 내리 쪼이고 지열은 후끈 후끈 달아오른다. 콩밭에 무릎을 꿇고 풀을 베어내는데 꼭 찜통 속에 들어 있는 느낌이 든다. 온 몸에 땀이 고이고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방울은 눈을 뜨지 못하게 한다.

 

홍 선생님과 나, 그리고 홍 선생님의 둘째아들 세민이랑 함께 콩밭에 풀을 베어냈다. 땀을 많이 흘리는 홍 선생님은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땀으로 흥건히 젖어있다. 바짓가랑이를 타고 내린 땀이 장화 속으로 흘러들어가 장화에서 꾸렁꾸렁 소리가 날 정도다. 이렇게 땀을 흘려야 체온이 조절되는 것이다. 땀을 별로 흘리지않는 나도 어지간히 땀에 젖어든다.

 

중학생인 세민이가 이렇게 힘든 작업을 함께 하다니 기특하기만 하다. 그 나이에 어른스럽게 콩밭에서 풀을 베어내는 모습을 보면 회갑을 넘은 내가 배울 점이 많다. 배움은 나이를 불문하고 존재하는 것이다.

 

지난 6월 중순경에 심은 콩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하고 있다. 어떠한 제초제도 주지 않고, 풀을 뽑지도 않는 이곳 자연농장에서는 풀이 너무 길면 그때그때 상황을 보아서 베어주어야 한다. 말하자면 작물이 풀보다 조금 우세하도록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름이 되면 풀을 베는 작업이 가장 큰 일이다.

 

8월 초에 이미 예초기를 이용하여 풀을 한번 베어준 적이 있다. 줄을 맞추어 심은 콩 줄 사이 공간에 난 풀을 곡예를 하듯 예초기로 베어내고, 덩굴식물이나 키가 큰 개망초 등을 1차로 잘라냈다. 이번 작업은 콩과 콩 사이에 난 풀을 낫으로 하나하나 베어주는 작업이다. 콩대를 상하면 아니 되므로 조심스럽게 낫질을 해야 한다.

 

 

그런데 콩이 워낙 키가 커버린지라 앉아서 베어낼 수가 없다. 서서 베어내거나 무릎을 꿇고 베어내야 한다. 서서 하는 작업은 한계가 있으므로 자연히 콩밭에 무릎을 꿇고 콩을 베어내게 된다. 우리에게 영양을 주는 콩 앞에 인간이 무릎을 꿇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콩은 위대하다. 그 덥고 가뭄에 심은 콩이 돋아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주어 인간에게 영양을 듬뿍 주는 콩이 위대하지 않은가?

 

콩을 너무 일찍 심으면 풀을 잡기가 더 어렵다. 그러나 콩을 너무 늦게 심으면 수확이 적어진다. 그 시기를 적정하게 맞추어야 하는데 기후를 예측할 수 없어 일정하게 맞추기가 어렵다. 콩을 심을 때 키를 넘기는 개망초를 베어 그 위에 덮어두는 것은 잡초들이 성장을 억제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 개망초 건초 사이로 콩들이 힘차게 솟아오른다. 그리고 다른 종류의 풀이 따라서 돋아난다.

 

 

지금 돋아난 풀은 주로 쑥이다. 이질풀, 메꽃, 나팔꽃, 유영초 같은 덩굴 식물이 잇따라 돋아나 콩대를 타고 올라온다. 덩굴식물은 작물에게 가장 어려운 풀이다. 콩들의 성장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잡초들이 콩보다 더 웃자라지 않게 시기를 맞추어 파종을 하고 풀을 베어주어야 하는데 그 시기를 맞추기가 어렵다. 콩이 우성이 되어 콩밭을 무성하게 덮어버리면 다른 풀들을 제압을 하게 된다. 그렇게만 되면 풀을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홍 선생님은 지금처럼 콩밭에 풀을 다루는 작업을 터득하는데도 4~5년이 걸렸다고 한다.

 

한 줄기 산들바람의 고마움이란...

 

홍 선생님이 풀을 아끼는 태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정중하다. 풀을 베어서 그 자리에 그대로 놓아둔다. 풀을 송두리채 뽑아버리면 생명이 죽어버리므로 베어내기만 하는 것이다. 풀잎에도 불성이 있다고 하질 않는가? 베 놓아둔 풀은 풀 자신, 그리고 작물에게 자양분을 공급한다.

 

그러나 콩밭에서 풀을 베어내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찜통더위 속에서 비지땀을 얼마나 쏟아내야 하는지… 무릎을 꿇고 콩밭에서 콩을 베어내는 모습이 위대한 콩님께 기도를 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보통의 인내와 끈기가 아니면 하기 어려운 작업이다.

 

우리는 한 이랑이 끝나면 그늘에 앉아 물을 마시며 잠시 동안 휴식을 취했다. 가끔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어디선가 흘러들어 온다. 이 한줄기 선들바람이 이렇게 고마울 줄이야! 역시 자연풍이 최고다. 너무 오래 쉬면 일을 하기가 싫어진다. 10분정도 쉬고 다시 콩밭으로 들어가 풀을 베어냈다.

 

 

안거(安居)에 들다

 

 

 

해땅물자연농장을 드나든 지도 벌써 넉 달이 다 되어가고 있다. 나는 이 농장에 오는 것을 수행을 하는 마음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 자연을 배우고, 풀과 작물의 성장을 몸소 체험을 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보람직한 수행이 아니겠는가? 오는 9월이 오면 5개월 동안 안거(安(안)居(거))에 접어드는 것이다.

 

안거는 승려들이 한곳에 모여 외출을 일절 금하고 수행을 하는 것을 말한다. 하안거의 기간은 보통 음력 4월 16일부터 7월 15일까지 석 달 동안 계속된다. 안거는 팔리어로 우기(Vassa)를 뜻한다. 주로 동남아시아 사원에서 매년 몬순기간에 해당하는 3개월 동안 승려들이 외출을 삼가고 명상을 하며 수도를 한다. 수행자들은 우기에 땅속에서 기어 나오는 작은 도물들을 밟지 않으려고 한다. 이 관습은 석가모니시대부터 있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은 뒤 인도 바라나시 근처의 숲속에서 안거에 들어 우기를 보냈다고 한다.

 

내가 이곳 자연농장에 거하는 동안에는 안거나 다름없다. 나는 이 5개월 동안 가급적 다른 일을 삼가고, 이곳 자연농사에만 몰두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자연농사를 배우는 것은 자연과 하나가 되는 과정이다. 콩밭에 있을 때에는 콩과 하나가되고, 고추밭 풀을 베어낼 때는 고추와 하나가 되려고 노력한다. 인간은 자연에서 돌아와 자연으로 떠나가지 않는가?

 

그러니 인간이 콩 앞에 무릎을 꿇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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