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갑상선암에 걸리고 만 청개구리 엄마

찰라777 2013. 10. 15. 09:54

엄마의 마음처럼 깊고 오묘한 배추 속의 세계

 

 

 

 

 

 

 

엇! 배추 속에서 청개구리가 쿨쿨 잠을 자고 있군요. 참, 청승맞게 생겼군요. 얼마 전에는 문주란 속잎에 엉큼하게 쪼그리고 앉아있더니 어느새 배춧잎 속으로 옮겨왔네요. 시침이 뚝 떼고 앉아있는 폼이 정말 청승맞게 보입니다.

 

 

 

▲ 배춧잎 속에 청승맞게 웅크리고 앉아있는 청개구리

 

 

 

요즈음 매일 아침 250여 포기의 배추밭에서 배추벌레를 잡아주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농약을 일체 치지 않는 관계로 배추벌레가 창궐하고 하고 있어요. 하루라도 잡아주지 않으면 배추벌레 한마라가 금세 배추 한포기를 감쪽같이 갉아먹고 만답니다.

 

 

 

▲ 김장배추에서 잡아낸 배추벌레와 달팽이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깊고 오묘한 배춧잎 속에 갖가지 벌레와 곤충들이 서식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배추벌레는 물론, 여치, 귀뚜라미, 잠자리, 달팽이, 풀무치, 사마귀, 거미…… 별의별 벌레와 곤충들이 그 깊고 오묘한 배춧잎 속에서 먹고, 마시고 잠을 자고 있어요. 아마 농약을 쳤더라면 어디 저들이 여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 배추 속에 서식하는 달팽이, 거미, 풀무치, 배추애벌레 등

 

 

그러고 보면 배춧잎은 참으로 이 세상의 어머니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깊고 오묘한 어머니 같은 배춧잎의 세계를 어찌 이 중생이 알리요마는 김선우 시인의 <빌려줄 몸 한 채>를 보면 배춧잎의 세계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속이 꽉 찬 배추가 본디 속부터/단단하게 옹이지며 자라는 줄 알았는데/겉잎 속잎이랄 것 없이/저 벌어지고 싶은 마음대로 벌어져 자라다가/그 중 땅에 가까운 잎 몇 장이 스스로 겉잎 되어/나비에게도 몸을 주고 벌레에게도 몸을 주고……"

-김선우, '빌려줄 몸 한 채' 중에서

 

 

 

▲ 겉장을 벌레에게 내주고 옹이가 깊어가는 배추

 

 

 

▲ 벌레에게 한 몸을 내주어 구머잉 송송 뚫린 배춧잎

 

 

 

벌레들은 땅과 가장 가까운 배춧잎부터 갉아먹기 시작합니다. 이는 마치 엄마가 손발이 달도록 자식을 돌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가 배추벌레들은 점점 배춧잎 안으로 파고듭니다.

 

그렇게 배추는 배추애벌레에게 몸을 내주면서도 속이 단단해집니다. 배춧잎이 나비가 되고, 나비가 꽃가루받이를 해주어 배추가 다시 배춧잎이 되고… 그러니 배추와 나비, 배추애벌레는 모두 한 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갑상선암에 걸리고 만 청개구리 엄마

 

 

그런데 오늘은 청개구리 한 마리가 그 깊고 오묘한 배춧잎 속에 떡 비티고 앉아있군요. 녀석은 내가 배춧잎을 요리저리 젓기고 사진을 찍어도 꼼작 않고 청승맞게 앉아 있군요.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 아침 청개구리를 바라보노라니 말 안 듣는 아들 청개구리 때문에 그만 갑상선암에 걸리고 말았다는 청개구리 엄마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가을비 내리는 날 정말 지독하게 말 안 듣는 청개구리 이야기나 하면서 부침개나 부쳐 먹는 것도 괜찮겠지요?

 

 

 

▲ 배추 속잎 속에 앉아있는 청개구리

 

 

산으로 가라하면 들로 가고, 들로 가라하면 산으로 가고, 앉으라하면 일어나고, 일어나라하면 누워 자빠지고……

 

 

도무지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반항만 할 뿐 시키는 대로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아들청개구리 때문에 엄마 청개구리는 속이 숯검정처럼 타들어갔다내요. 어찌나 몸이 피곤하고 천근만근 무겁던지 엄마 청개구리는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답니다. 의사 왈~

 

 

"갑상선암입니다."

 

"네? 갑상선암이요? 그런 병이 왜 생기지요?"

 

"스트레스가 원인이지요."

 

"스트레스…… 그래, 말 안 듣는 아들 녀석 때문에… 스트레스가 원인이야."

 

 

갑상선암에 걸린 엄마 청개구리는 눈이 툭 튀어나오고, 얼굴이 둥그렇게 붓고, 피부가 건조해져 점점 병이 깊어만 갔습니다. 육감적으로 죽음이 임박해져 옴을 느낀 엄마 청개구리는 말 안 듣는 아들 청개구리를 불러 놓고 마지막 유언을 했습니다.

 

 

"애야, 엄마가 죽거든 나를 저 강가에 묻어다오…"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무조건 반대로만 행동하는 아들 청개구리에게 강가에 묻어 달라하면 산에 묻어 줄 거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마지막 유언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엄마는 그 말 안 듣는 아들 청개구리 녀석을 걱정하며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 배춧잎을 들썩이며 사진을 찍어도 꿈쩍않고 앉아있는 청개구리

 

 

 

"아이고, 아이고, 흑흑흑~ 우리엄마, 날 두고 떠나시면 나는 어떡하라고……아이고, 아이고. 흑흑흑…"

 

 

그러나 아무리 후회를 해도 이미 때는 늦고 말았지요. 아들 청개구리는 슬피 울며 그때서야 엄마의 말을 듣지 않을 걸 깊이 뉘우치고서는, 엄마의 마지막 유언대로 엄마를 강가에 묻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들 청개구리는 비만내리면 엄마의 묘지가 떠내려갈까 봐 개굴개굴 슬피 운다지요.

 

"개굴 개굴 개굴 개굴 개굴……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청개구리야, 이제 울어도 소용없단다. 한번 돌아가신 엄마는 다신 이 세상에 없어. 그러니까 살아계실 때 잘 해야지. "

 

 

 

 

요즈음 말 안 듣는 아이들 때문에 엄마들이 실제로 갑상선암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지요. 어디 요즈음 아들딸들이 말 안 듣는 경우가 한 둘입니까? 다들 집집마다 말 안 듣는 청개구리는 있게 마련입니다.

 

 

말 안 듣는 아들딸, 말 안 듣는 남편, 말 안 듣는 아내, 거기다가 정말로 말 안 듣고 버릇 벗는 손주들… 요즈음 엄마들이 그 말 안 듣는 손주들 보느라 너무 힘들다고들 합니다.

 

그러니 아들 딸 장가 시집 안 간다고 속 썩이지 마시고 맘 편하게 먹는게 좋을 수도 있습니다. 말 안 듣는 손주들 때문에 아들딸들이 장가 시집 안 가는 것이 되레 효자(?)라는 말도 떠돌더군요. 세상만사 참 알 수 없다니까요.

 

 

 

▲ 눈이 툭 튀어나오고, 눈자위가 뿌숭뿌숭하게 보이는 청개구리는 갑상선암에 걸린 청개구리 엄마가 아닐까?

 

 

머지않아 겨울잠 속으로 빠져들어 갈 저 청개구리도 어쩌면 갑상선암에 걸린 엄마 청개구리처럼 생기기도 했군요. 눈이 톡 튀어나오고, 눈꺼풀이 부어오르고, 몸이 뿌숭뿌숭하게 부어오른 걸 보면 영락없이 갑상선암 증세를 나타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툭 튀어나온 왕방울 눈에 근심이 가득 고여 있는 듯합니다.

 

 

이번 가을비가 내리고 나면 날씨가 추워진다고 하네요. 밤이나 낮이나 아들딸 걱정 때문에 속이 숯검댕이처럼 타들어가는 이 세상의 엄마들이여, 오늘 만큼이라고 아들딸 걱정을 내려놓고 부침개나 부쳐 먹으며 내 인생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