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희망의 씨앗' 네팔방문기

트래블=트러블? - 쇠울타리를 넘어서

찰라777 2014. 11. 27. 05:34

'2014희망의 씨앗' 네팔방문기④-1027일 카트만두 도착

 

 

 

트래불=트러블?

 

▲짐을 이고지고 국내선 청사로 들어가는 회원들. 트레블=트러블?

 

 

짐 미착, 클레임을 청구했지만...

 

네팔 행 대한항공 비행기는 오전 950분에 이륙했다. 점보 비행기가 만석이다. 언제 이렇게 네팔로 가는 승객들이 늘어났을까? 몇 해전만해도 직항이 없어 상하이나 방콕, 혹은 홍콩을 경유하여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는데 이제 직항이 생겨 네팔을 가기도 편해졌다.

 

휠체어를 타고 탑승을 한 아내는 항공사측의 배려로 비즈니스 석 바로 뒷자리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을 하면 가방을 앞에 두고 다리를 올려 놓을 수 있는 자리다, 고맙다! 아내는 오랫동안 앉아 있거나 서 있으면 다리가 부어오른다. 심장이식을 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혈액순환이 원활치 않은 탓이다. 그래도 죽도록 여행을 좋아 하는 아내를 집에 두고 올 수는 없었다. 경제사정이 어려운 형편이지만 여행만큼은 함께해야 한다.

 

앞자리를 분명히 두 좌석을 부탁을 했는데, 한자리만 배정이 되었다. 아내 홀로 앞자리에 앉고, 몇 칸 뒤로 가서 나는 민들레님과 같은 자리에 앉게 되었다, 아침 겸 점심으로 준 기내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한 잔 마셨다. 늦게까지 허겁지겁 체크인을 하느라 부산을 떨었던 마음이 다소 진정이 되었다.

 

▲네팔로 가는 창공에 펼쳐진 구름사진(사진제공:민들레님 http://blog.daum.net/jjrrss/15684362)

 

 

잠깐 눈을 감고 한 숨을 부치고 일어났는데 밖을 바라보니 상공에 구름이 환상적으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자연이 그려준 그림이다. 솜사탕 같은 구름 위를 비행기는 서서히 저어 갔다내가 해외여행을 하면서 보아온 구름 중에서 가장 멋진 풍경이다.

 

그 환상적인 구름사진을 여러 장 찍어댔는데, 헉! 어쩐 일인지 다 지워지고 말았다. 마음에 담으라는 것일까? 스틸 카메라에 비해 디지탈 카메라의 맹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잠시 조작을 잘못하면 이렇게 사라져 버리니 말이다. 여기 있는 사진은 민들레님 블로그에서 양해를 구하고 퍼온 사진이다. 폰카로 찍은 사진이 너무 멋지다.   

 

7시간의 비행 끝에 카트만두에 도착을 하니 오후 5시가 다 되었다. 문명의 이기는 이렇게 머나먼 네팔도 일일 생활권으로 탈바꿈을 시켜 놓고 있다. 먼 옛날 혜초 스님이 몇 해를 두고 갔던 길이다. 그런데 나는 눈 깜작할 사이에 벌써 서역만리 왕오천축국 히말라야에 닿고 있었다. 네팔은 이번 여행이 네 번째다. 무슨 인연이 있기에 자꾸만 네팔을 오지? ㅎㅎ 아마 전생에 내가 네팔에서 태어났을까? 네팔에만 오면 마음이 편해진다, 모든 시름이 내려진다.  

 

 

▲네팔 카트만두 공항 상공에서 바라본 카트만두 시내 풍경

(사진제공:민들레님 http://blog.daum.net/jjrrss/15684362)

 

 

카트만두 공항은 예나 지금이나 좁은 청사에 마중을 나온 사람들과 삐끼들로 붐볐다. 그런데 역시 짐이 문제였다. 20개의 짐 중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부쳤던 짐이 끝까지 도착을 하지 않았다마지막으로 부친 짐에는 노트북 가방 13개와 노트북 1개 그리고 어댑터, 마우스가 들어 있었다. 이 짐이 와야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켜서 컴퓨터 교실을 제대로 열어 줄수가 있다.

 

▲짐이 도착하지 않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일행들. 그러나 노트북 가방이 든 짐 하나가

끝내 도착하지 않았다((사진제공:민들레님 http://blog.daum.net/jjrrss/15684362)

 

 

하여간, 짐이 나오는가 하고 한 동안을 기다리다가 더먹으로 갈 국내선 비행기로 시간이 다 되어, 일단 클레임 청구를 하고 국내선 청사로 걸어갔다. 그런데 석정거사가 엉뚱한 이름으로 클레임을 청구한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화물 주인은 내이름으로 되어 있는데, 클레임 청구는 스님명으로 잘못 청구한 것이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화물을 찾는 일이 더욱 늦어졌다. 그 복잡하게 얽힌 스토리는 나중에 후술을 하겠다.  

 

쇠울타리를 넘어서...

 

국제선청사에서 국내선 공항으로 가는 것은 셔틀버스도 없기 때문에 걸어서 갈 수밖에 없었다. 보살님들은 핸디캐리어 짐을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지고 힘겹게 걸어갔다. 좁은 길을 한참을 걸어서 가야 했다. 노트북을 머리에 이고 가는 모습이 마치 경전을 지고 보살행을 하는 모습처럼 보여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진정한 수행이란 무엇인가이렇게 네팔의 어려운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등에 지고 머리에 이고 가는 것이 수행이 아니겠는가?

 

▲노트북을 머리에 이고 국내선 청사로 가는 보살님들. 마치 경전을 머리에 이고가는 모습처럼 보인다.

 

국내선 청사로 가기위해서는 쇠울타리를 넘어가야 했다. 다리가 짧은 보살님들은 그 쇠울타리를 넘기가 쉽지가 않았다. 반대쪽에서 손을 잡아주어야 겨우 넘을 수 있었다. 보살님들은 그 울타리를 힘겹게 넘어서 청사로 갔다.

 

보살님 중에는 칠십을 넘긴 분이 네 분이나 계시고, 석정거사와 상민거사를 제외하고는 거의가 60대의 노인들이다. 그러나 누구 하나 싫다는 표정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쇠울타리를 넘어갔다.

 

선재 선재라! 여래는 그대들을 보호해 주시고 염려해 주시며, 축복해 주시리라. 말 그대로 선남자 선여인들의 모습이. 우리들의 마음자리가 진실한 삶이라면 마음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우리들의 마음자리는 천지보다 먼저 있으되, 그 비롯함이 없고, 천지보다 뒤에까지 있으되 그 마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어디를 도막내어 몇 살이라고 하겠는가?   

 

 

▲쇠울타리를 넘어서... 다리가 짧은 민들레님은 도움을 받아야 겨우 넘어갈 수 있어(손을 내미는 석정거사 부친)

 

그런데 또 문제가 발생했다. 국내선 청사로 들어갈 때 핸드백을 넣은 짐이 걸렸다. 엑스레이 검사 여직원이 뭐냐고 집을 풀으라고 했다. 내가 짐을 풀며 선물용 핸드백이라고 하며 보여주었다. 그녀가 나를 쳐다보며 비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이거 장사할려고 가져 온거 아닌가요?

"아닙니다. 이건 당신네 나라 학교에 선물을 할 핸드백입니다."

"이렇게 많이요?"

"네, 우리는 버드러칼리 학교에 100명의 장학금을 후원하는 봉사단체인데요. 그 학생들의 부모님들께 선물을 할 핸드백입니다."

"그럼 나에게도 하나만 선물로 줄 수 없나요?"

"죄송합니다 .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국내선 청사로 짐을 옮기는 모습이 피난행렬처럼 보인다.

 

국제선 세관에서도 무사 통과를 국내선 짐 검사에서 잡다니 말이 되지않는 데다가, 선물꾸러미를 풀면 너도 나도 달라고 할 것 같아 선물을 받을 사람 수를 세워서 가져 온 것이기 줄 수가 없었다. 사실 선물이 여유분이 있으면 몇 개 주고 싶기도 했다.

 

여직원의 표정이 핸드백을 몹씨 갖고 싶어 하는 모습이다. 사루비아 핸드백은 내가 보기에도 썩 멋진 제품이다. 여자라면 갖고 싶은 핸드백이다. 그러나 장학금을 후원하고 있는 학부모님들 숫자에 맞추어 가져온 핸드백이 아닌가? 그녀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뭐? 5개의 짐은 다음 비행기로 온다고?

 

못내 아쉬워하는 그 여직원을 뒤로 하고 체크인 데스크로 갔다. 그런데 산 머너 산이다! 이번에는  국내선 비행기에 짐을 실으려고 또 중량 초과운임이 발생했다. 공항 직원은 26,000루피(약 30만원)를 요청했다.

 

"우린 당신네 나라에 봉사를 하러 온 봉사자들입니다. 이 짐은 모두 어려운 아이들에게 줄 선물입니다. 선물을 사느라 돈도 다 떨어지고 없어요, 그러니 제발 좀 할인을 해 주십시오."

"그건 어려운데요."

"그러면 5000루피만 받아요, 제발! 이 돈이 내가 가지고 있는 전부 입니다."

 

나는 한국에서 신문기사에 난 장학금 후원학새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5000루피를 내밀며 간절하게 부탁을 했다. 인천공항에서 중량 초과료를 50만원을 물고, 여기에서 또 30만원을 지불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지경이었다.  공항직원은 절대로 안 된다고 하더니 내가 계속하여 생때를 쓰자, 공항직원은 어이가 없는 듯 절반가격인 13,000루피를 달라고 했다.

 

할 수 없이 13,000루피를 부담을 하고 비행기가 이륙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탑승객이 되어 겨우 트랩에 올랐다. 인천공항에 이어 나는 이곳 네팔에서도 마지막 탑승자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13,000루피를 세이빙을 했지 않았는가? 마지막으로 미소를 지으며 잘 가라고 손을 흔드는 공항직원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고마웠다. 인간미가 있는 사람들이다. 20인용 프로펠러 비행기가 이륙을 하자 곧 히말라야의 설산이 나타났다.

 

▲에티 에어라인 프로펠러 비행기에 오르고 있는 일행들

 

▲내가 마지막으로 탑승을 하자 말자 비행기는 이륙했다. 카트만두 시내 전경

 

▲에티 에어라인 내부 

 

, 히말라야!

새벽부터 인천에서 부터 허겁지겁하며 날아왔던 복잡한 마음이 히말라야 설산을 보는 순간 모두 녹아들고 말았다. 나는 넋을 잃고 히말라야 설산을 바라보았다. 4년 전에도 이 길을 갔는데…….

 

히말라야는 여전히 나를 반겨 주고 있었다. 세계의 지붕, 네팔! 14개의 8000m 봉우리 중 8개가 네팔에 있다. 히말라야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세상의 모든 여행자들이 네팔에 와서 히말라야 설산을 보는 순간 감동에 젖어들고 만다석양 노을 속에서 히말라야는 황금빛으로 변하며 점점 어둠 속으로 묻혀가고 있었다.

 

 

▲프로펠러 비행기가 이륙하자 곧 히말라야 설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구름 너머로 멀리 히말라야 설산이 보인다.

 

 

 ▲히말하야에 지는 환상적인 일몰

 

오후 5시 반에 비나트너거르 공항에 도착을 하니 또 짐이 말썽을 부렸다. 20개의 짐 덩어리 중 5개가 도착을 하지 않고 있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비행기가 너무 작아서 다 싣지를 못하고 다음 비행기로 온다고 했다.

 

 5개의 짐 중 1개는 카트만두에서부터 도착하지 않았고, 그렇다면 4개의 짐이 미착을 한 것이다. 5개의 짐이 다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짐을 기다렸는데, 역시 4개밖에 오지 않았다. 우리는 짐을 기다리며 시간을 죽였다.

 

 

▲비나트너거르 공항에 도착 그 와중에도 기념촬영을 했다. 

 

▲공항청사로 가는 일행들

 

 

▲비행기가 적어 5개의 짐이 도착하지 못하고 2시간 후에 다음 비행기로 왔다.

 

2시간 정도 작은 공항에서 기다리고 나서야 짐을 찾았다. 저녁 7시 30분, 짐을 찾아 밖으로 나가니 30인승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에 짐을 옮겨 싣고 겨우 한숨을 돌렸다. 그중에도 석정거사는 버스 위에 올라가 짐 개수를 확인하는 열정을 보였다. 여행은 트러블의 연속이 아닌가? 트래블=트러블!

 

 

▲버스에 올라 손수 짐을 확인하는 석정거사

 

"여러분 고생 많이 했습니다. 이제 여기기에서 1시간 30분 정도를 가면 우리의 숙소인  더먹에 도착합니다. 오늘밤은 더먹에서 자고 내일 아침 9시에 버드러컬리 학교 행사에 참석을 합니다. 이 버스에는 마이크도 없고, 에어컨도 없지만 이곳 더먹에서는 가장 시설이 좋은 고급 버스 입니다. 좀 불편하시더라도 이해를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더먹에서 제일 좋다는 특급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8시가 넘어서 더먹 숙소에 도착했다.

 

"이 호텔이 더먹에서 제일 좋은 호텔입니다. 지금 바로 먼저 저녁식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배도 곺았다. 호텔시설은 4년 전 호텔에 비하면 매우 양호했다. 4년 전에는 에어컨은 물론 없고 밤에는 모기들이 합창을 하는 방에서 잠을 설쳤으니까. 복도도 핑크색으로 칠해놓고 제법 그럴싸하게 꾸며 놓은 호텔이었다. 그런데 그놈의 방 열쇠를 한 번 열려면 젖 먹는 힘까지 열쇠고리를 잡아당겨야 했다. 몇몇 보살님들은 호텔을 직원을 불러 겨우 문을 열었다. 내 방도 낑낑거리며 열다가 결국 호텔직원을 불러 겨우 열었다

 

▲핑크빛으로 색칠을 한 더먹에서 가장 좋다는 호텔, 그러나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달바트로 저녁식사를 했다.

 

▲저녁식사를 하며 지친 일정을 달래고있다. 

 

또 한 가지는 온수가 나오지 않는 문제였다. 모두들 지친 여정을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피로를 풀고 싶은 데 온수가 나오지 않아 아우성 있었다. 호텔 매니저에게 알아보니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서 오늘밤에는 온수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내일 밤에는 온수가 나올 것이니 하루만 참아달라고 했다. 어쩌겠는가? 네팔에오면 네팔 법을 따라야지…….

 

달바트로 저녁식사를 하고 네팔 맥주도 한잔 마셨다. 별도로 방을 하나 얻어서 가져온 짐을 전부 보관하며 노트북을 확인해보니 1개가 부족했다. 13개의 가방 중에 1개가 노트북이 들어있는 것이 틀림없다. 내 일기수첩에도 분명히 13개의 가방 중에 노트북 1개가 들어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13개의 노트북 가방은 어디로 갔을까? 인천공항에서 내가 최종적으로 한진택배 박스를 구입해서 12개의 노트북은 빼서 핸드캐리어를 하도록 하고 팩킹을 했던 짐이다. 누군가가 노트북이 들어있는 가방인줄 알고 빼돌렸을까?

 

그 가방에는 어덥터와 마우스가 들어있다. 그것이 있어야 노트북을 작동해서 컴퓨터를 켤 수 있는데 걱정이다. 아무튼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하루 종일 후원행사를 해야 하니 잠을 좀 자 두어야 한다. 석정거사와 짐을 정리하고 나니 피로가 몰려왔다. 정말 긴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