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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가 터지면 쑥을 비벼서 막아라?

찰라777 2015. 4. 23. 10:17

삼월심짇날 쑥버무리를 해 먹으며...

 

 

쑥쑥쑥.... 봄이 오니 여기저기서 쑥이 쑥쑥 올라온다. 사방이 쑥 천지다. 댓돌 밑에도, 텃밭에도, 잔디밭에도, 길섶에도, 논두렁 밭두렁에도 쑥대밭이다. 지난주부터 아내와 나는 쑥을 캤다. 젊은 시절에는 사내대장부가 쑥을 캔다는 것은 상상을 할 수도 없었다. 쑥은 하릴없는 아낙네들이나 캐는 것으로만 생각을 했다.

 

그런데 여기 연천 임진강변에서 나는 지금 쑥을 캐고 있다. 쑥을 캐기 위해 대문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다. 우리 집 안에 있는 쑥만 캐도 충분하다. 농약을 일체 치지 않는 이곳 금굴산 밑자락 우리 집 텃밭은 그야말로 공해 없는 쑥밭이다. 울밑에 꽃잔디 옆에도 쑥 천지다. 쑥을 캐는데 꽃잔디 향기 속에 쑥향이 가미되어 말로는 다할 수 없는 향기가 몸속으로 들어온다.

 

 

 

 

아내와 나는 텃밭이나 잔디밭에 펑퍼짐하게 앉아 따스한 봄볕을 쬐며 편한 자세로 쑥을 캤다. 칼로 쑥 뿌리 근처를 자를 때마다 특유의 향긋한 쑥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허브가 따로 없다. 쑥이 바로 봄을 대표하는 최고의 허브향이다.

   

쑥을 정말 잘 큰다. 말 그대로 쑥쑥 잘 자라는 식물이 바로 이 쑥이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잿더미로 변했을 때에도 가장 먼저 녹색을 내민 것이 쑥이었을 만큼 쑥은 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폐허로 변한 땅에 가장 먼저 뚫고 나온 것이 쑥이라고 한다.

   

 

 

쑥은 정말로 생명력이 왕성하고 질기다. 쑥 한 포기를 심어놓으면, 다음해는 주변이 금방 쑥대밭이 될 정도로 번식이 잘된다. 잡초를 죽이기 위해 제초제를 뿌렸을 때 가장 먼저 되살아나는 식물도 쑥이다.

   

누가 쑥을 잡초라고 했던가? 쑥은 우리주위에 가장 흔하면서도 봄을 대표하는 건강식품이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싸우다가 코피가 터지면 쑥을 비벼서 코에 막았다. 그러면 금방 코피가 멈춘다. 또 꼴을 베거나 낫질을 하다가 베어서 피를 흘리면 쑥을 몽근 흙에다 비벼서 상처 난 부위에 바르면 어지간한 상처는 금방 피가 멎었다.

 

   

 

 

한여름에 모기떼가 창궐하면 밭두렁 논두렁에서 쑥을 베어다가 모깃불을 지피면 모기들이 꼼짝 딸싹 못하고 물러갔다. 쑥을 말리거나 가루를 내어 쑥떡, 쑥밥, 쑥차, 쑥국, 쑥버무리도 해먹었다. 아내와 나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며 해마다 4월이면 쑥을 캐서 여러 가지 용도로 만들어 먹는다.

   

오늘(421, 음력 33)은 바로 <삼월삼짇날>이다. 삼월삼짇날은 삼()자가 중첩되는 날로 진달래 화전(花煎)을 붙여먹거나, 쑥 잎에 찹쌀가루에 섞어 쪄서 쑥떡을 만들어 먹는다

 

 

 

우리는 오늘 <쑥버무리>를 해먹기로 했다. 천지에 쑥이 널려있지만 쑥을 캐서, 다듬어 고르고, 말리는 작업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쑥은 잡초가 밀집되어 있는 곳에서 자라므로 쑥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풀이나 검불을 일일이 골라내야 한다. 캐낸 쑥 중에서 여린 쑥을 골라 쑥버무리를 만들기로 했다 

  

아내가 쑥을 고르고 씻는 사이에 나는 군남면 진상리에 있는 서울방앗간에 가서 멥쌀 반말을 빻아왔다. 방앗간에서 빻을 때에 소금과 설탕을 조금씩 넣어서 골고루 섞어 빻았다. 쑥버무리는 찹쌀보다 멥쌀이 먹기에 좋다고 했다

 

 

 

아내는 쑥을 흐르는 물에 다섯 번이나 문질러 씻었다고 한다. 그리고 채망에 건져서 물기를 쏙 빼냈다. 아내는 물기가 제거된 쑥에 쌀가루를 뿌려서 두 손으로 살살 골고루 섞었다. 바로 아내의 손맛이 쑥버무리에 가미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쑥버무리를 면포를 깐 찜통에 올려놓고 20여분 정도 익혔다. 김이 모락모락 나며 온 집안에 쑥향이 가득 찼다. 찜통 뚜껑을 열고 면포를 살짝 들어내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쑥버무리가 먹음직스럽게 드러난다.

 

 

"오늘 점심은 이 쑥버무리로 때우겠습니다."

"하하, 이보다 더 좋은 점심이 어디 있겠소?"

 

마침 서울에서 친구 응규도 아랫집 현이 할머니네 못자리 일을 거들어주기 위해 집에 와 있었다. 그가 쑥버무리를 한입 입에 넣더니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와아, 쑥 향기가 죽여주네요. 쑥버무리야 말로 봄에 먹는 최고의 보양식이야!"

 

4월은 쑥을 캐는 계절이다. 쑥은 오래 전부터 단군신화에 등장할 정도로 한국인들의 건강식품으로 애용되어 왔다. 쑥의 한방이름은 '애엽(艾葉)'으로 예부터 식용과 약용으로 다양하게 사용되어 왔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쑥은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위장과 신장의 기능을 강화해 복통 치료에 좋다고 적혀 있다.

 

 

 

쑥의 속명인 알테미시아(Artemisia)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성 이름에서 유래한다. 알테미시아는 숲과 어린이를 지키는 여신으로, 주피터의 딸 알테미스(Artemis). 종속명인 프린셉스(princeps)는 쑥 종류 가운데 가장 대표적이고 으뜸이라는 뜻이다. 왕비의 명칭인 프린세스(princess)도 동원어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쑥은 인류에게 약용이나 식용으로 이용되어 왔다(한국식물생태보감 인용). 

 

누가 쑥을 잡초라고 했든가? '가장 흔한 것이 가장 귀한 것'이라는 말은 쑥을 두고 한말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7년 된 병을 3년 묵은 쑥을 먹고 고쳤다"란 말이 있다. 이처럼 쑥의 효능은 무궁무진하다. 인터넷에 쑥의 효능을 치면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등장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다고 하는 쑥도 잘 알아서 복용을 해야 한다. 쑥의 종류만도 250여 종이나 되고 독성이 강한 것도 있다 

 

 

 

 

쑥은 마늘, 당근과 함께 3대 성인병예방식물로 꼽힌다. 그 중에서도 4월에 캐는 우리나라 쑥이 가장 효능이 좋다고 한다. 그러니 오늘도 사내대장부는 임진강변에 엎디어 1년 동안 먹을 쑥을 캔다. 1년에 단 한 번 자연이 주는 고마움을 어찌 놓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