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시카고 여행

마피아의 도시 시카고

찰라777 2017. 1. 10. 12:28

폭력과 도살의 도시 시카고

 

급성장으로 화려하게 재기한 시카고를 다른 면에서 관찰하기도 한다. 1893년 시카고를 방문한 이탈리아 주세페 자코사(Giuseppe Giacosa)는 시카고를 방문하고 이렇게 말했다. “일주일 머무는 동안 시카고에서 어둠 외에는 번 게 없다. 매연, 구름, 먼지 그리고 슬프도록 우울한 비범한 숫자의 사람들이라고 기록했다. 그는 시카고를 충격도시(The Shock City)"라고 묘사했다.


▲가축 도살과 폭력의 도시 시카고가 건축의 도시로 변하고 있으나, 그 잔해는 여기저기 남아있다. 빅버스를 타고 시내 관광을 즐기는 여행자들 

    

 

충격도시 중에서도 가장 큰 충격으로 꼽힌 것은 바로 도살장이다. 미국 중서부 초원에서 운송되어 온 소와 돼지의 도축, 포장하는 도축업은 시카고의 가장 중요한 산업 중의 하나다. 도축이 이루어지는 시내 남쪽의 스톡야드와 패킹타운은 그야말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곳이다. 업튼 싱글레어의 소설 <정글>에는 도축장 패킹타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방문객들은 살코기를 만들고 남은 쓰레기들을 처리하는 다음 층으로 내려갔다. 내장을 닦아서 소시지용 재료를 만들고 있는 방에 들어가자 코를 찌르는 듯한 악취가 몰려왔다. 그들은 코를 감싸 쥐고 얼른 다음 방으로 옮겨 갔다. 다음 방에서는 비누와 고형 유지를 만들기 위해 찌꺼기들을 모아 끓이고 있었다 …… 그것은 고도로 분업화된 노동이었다. 먼저 도살꾼이 기다리고 있다가 단칼에 소의 목을 요절냈다.그의 움직임은 너무 빨라서 하번 칼날이 번뜩였다고 느끼는 순간 이미 소는 다음 카능로 옮겨져 있었고, 그 자리엔 진홍빛 피만 낭자하게 남았다. 아무리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 삽질을 해도 그 마루바닥엔 언제나 2센티미터 정도 핏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업튼 싱글에어, 채광석 역, <정글>)






▲19세기 가축 도살의 현장 시카고 Union Stock Yard(자료 : 위키백과)


  

이처럼 화려한 시카고의 거리에는 수많은 생명의 죽음과 자연에 대한 정복을 통해 성장한 시카고의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 피비린내 나는 도축장을 메우고 있는 최하층 노동자들은 말할 것도 없이 다양한 계층의 이민 집단이다. 19~20세기 기회의 땅 시카고는 어두운 그늘을 들여다보면 노동착취의 현장이기도 했다. 인종 간의 편견은 여전히 존재했고, 암묵적으로 지켜지는 백인과 유식인종간의 선이 존재했다.



노동 조건 향상을 요구하던 시위가 불법으로 규정되어 탄압되자 경찰에 대한 폭탄 투척으로 발전한 헤이마켓 사건 이후로 시카고는 이민 노동운동의 중심지,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들의 도시로 유명해졌다.


폭탄 투척에 관련된 6인은 사형당함으로써 ‘순교자’로 등극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미국 노동사 사상 가장 급진적인 조직인 세계산업노동자(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IWW), 일명 와블리(Wobblies))가 창설된 곳도, 그 주제가를 지은 유명한 ‘노동가 작곡가’ 조 힐(Joe Hill)이 암살된 곳도 시카고다. 시카고의 급성장 이면에는 선구적 노동운동의 희생을 요구하는 어두운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었다.(참고자료 : 도시는 역사다, 도시사학회, 이영석, 민유기 외)



                           ▲조 힐이 만든 IWW 노래책            ▲암살된 뒤 노동운동의 화신이 된 조 힐


 

가장 큰 구별은 흑인과 백인 거주지의 차이에서 나타났다. 흑인 인구의 80퍼센트가 사우스 사이드의 한 거리에 집중되어 있다. 백인들은 이 거리를 검은 벨트(black Belt)'라고 불렀다. 19세기 이후부터 흑인들은 감은 벨트 안에 제한 적으로 거주하며 남자들은 도축장에서 일을 했고, 흑인 여성들은 백인의 집안일을 돌보는 하인으로 자리 잡았다. 흑인들은 가장 낮은 사다리에서 억눌리며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들은 가장 최하층의 빈민노동자들이었다.

 

이러한 넘어갈 수 없는 흑백의 선은 갈등의 폭발로 이어지게 되었다. 흑백 양측이 서로 증오심이 폭발하였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주로 백인 폭도가 흑인에게 몰려가 린치를 가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1919년 흑백 양측이 증오심은 폭발직전에 이르렀다. 그해 여름 마침내 미시건 호수에서 물놀이를 즐기던 흑인 소년이 백인구역에서 수영을 했다는 이유로 백인이 던진 돌에 맞아 익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시카고 시내 전체는 흑인과 백인 사이에 걷잡을 수 없는 폭력사태로 변하고 말았다. 폭력 사태는 4일 간 지속되었고, 양측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했다. 이 사건은 흑백간의 양극화를 초래하는 극단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때문에 흔히 시카고를 폭력의 도시로 불리기도 한다.

 

폭력의 도시라는 이미지는 20세기 초 알 카포네(Al Capone)를 중심으로 한 조직폭력단의 활약으로 더욱 굳어졌다. 뉴욕에서 옮겨온 이탈리아 이민 계통의 조직폭력단은 시카고 시내 각종 용역업과 소매업을 장악한 주변 지역으로 세력을 넓혀갔다. 도박, 매춘, 그리고 금주법 시대의 주류 제조와 유통을 장악한 이들은 불법적 사업을 폭력으로 운영하며 경쟁자를 제거하고 공권력을 장악했다.



▲케빈 코스트너, 숀 코네리 주연 언터처블스의 한장면



대중문화는 이러한 시카고의 폭력의 역사에 예술로 표현했다. 이는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 미국 영화가 유난히 범죄자, 살인 사건, 도박, 매춘 등 소재로 하는 것이 결코 우연만은 아니다. 언터쳐블스, 시카고, 도망자, 다크 나이트 등과 같은 영화는 시카고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특히 금주법이 시행되던 1930년 초 시카고는 마파아들의 전성기였다. 그 당시 대표적인 갱단의 보스인 알 카포네는 온갖 법죄를 저지르면서 절대적인 권력을 누렸다. '밤의 대통령'이란 별명을 그는 한 때 아인슈타인, 헨리 포드와 함께 시카고의 젊은이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추앙받기도 했다.


이 불멸의 갱단 알카포네를 대상으로 한 영화가 바로 '언터처블스(The Untouchables)'이다. 1987년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엔리오 모리코네 음악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케빈 코스트너와 숀 코네리가 주연으로 아카데미 음악, 의상, 미술 등 4개부문 후보에 올라 숀 코네리가 남우 주연상을 받을 정도로 흥행을 하였다.  

 

나는 이번 여행지 중 시카고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수집했다.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란 책은 시카고에서 가장 심각하게 대두되었던 흑인 차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을 펼친 첫 번째 도시가 시카고다. 이 책은 버락 오바마가 일독을 권하는 책이기도 하다. 오바마는 이 책에 대하여 이렇게 평했다. ‘용기와 신념의 이야기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공유할 보편의 가치는 무엇인지 말해주는 작품이다라고. 신흑인의 도시 시카고를 방문하기 전에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시카고 강 유람을 끝낸 우리는 시카고 대학으로 향했다. 시카고 대학은 오바마 대통령이 헌법학을 가르치며 대통령의 꿈을 키워온 명문대학이다.

 

*참고자료 : 도시는 역사다, 2011.6.1, 도시사학회, 이영석, 민유기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