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일본여행

[스크랩] 유카타 잠옷을 입다

찰라777 2017. 5. 1. 08:19

▲오사카 중심가를 흐르는 도톤보리 강


다행히 비행기 좌석은 비즈니스 석 바로 뒤쪽 맨 앞자리였다. 체크인시 승무원에게 부탁을 하였더니 배려를 해준 것. 이 좌석을 받으려면 공항에 좀 일찍 가는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주로 노약자나 유아 동반을 하는 여행자들에게 배정을 해주는 좌석이다. 그런데 늦게 체크인을 했는데도 휠체어를 이용하는 아내를 위해 특별히 배려를 해 준 것이다.

 

비행기가 이륙을 하여 정상괘도에 진입을 하자 종이컵에 물 한잔이 배달되었다. 아내는 그 사이에 잠이 들어 있었다. 여행이 주는 포만감일까? 아내는 비행기를 타고 허공으로 비스듬히 이륙을 할 때마다 콜로세움 같은 비행접시를 타고 우주로 떠나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만큼 죽도록 여행을 좋아하는 아내다.

 

진에어에서 공짜로 주는 기내식은 물 한잔뿐이다. 물 한잔을 마시고 나는 독일의 코미디언 하페 케르켈링의 화제작 <산티아고 길에서 나를 만나다>란 책을 펼쳐 들었다. 이 책은 42일 동안 600km의 산티아고 도보여행을 기록한 여행 에세이다.

 

그러나 곧 비행기가 오사카 간사이공항에 도착을 한다는 기내방송이 울렸다. 인천공항을 이륙한지 1시간여m이 비행 끝에 비행기는 비스듬히 하강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일본 오사카는 나라만 다르지 우리나라 제주도 여행이나 다름없다. 정말 가까운 나라이다. 그런데도 멀게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민족감정일 것이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켜켜이 쌓여온 민족감정이 가깝고도 멀게만 느껴지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오사카 중심가 도톤보리. 자전거들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다. 일본인들은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남북한이 통일이 되어 기차와 자동차를 타고 자유롭게 왕래를 하고, 비행기와 배를 타고 아무 걸림 없이 일본열도를 왕래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겉으로 보면 모두 한 민족처럼 보이는데, 언어가 다르고, 생각도 다르다.

 

우리에게 북한은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나라이다. 38선 이북에 살고 있는 나는 북한을 지척에 두고도 도보나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언젠가 네팔에서 온 케이피 시토울라 가족과 함께 군사분계선에 가장 가까운 GOP<태풍전망대>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불과 800m밖에 떨어지지 않는 북녘 땅을 바라보며 그는 말했다. “저기가 북한 땅이라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데요.” 그때 사실 나도 똑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육안으로 북한군 초소의 동정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북녘 땅! 새들은 자유롭게 왕래를 하지만 인간인 우리는 그곳을 갈 수가 없다. 내 생전에 걸어서 북한 땅을 밟을 날이 올 수 있을까?

 

오사카 공항에서도 우리는 휠체어 서비스를 미리 신청을 해 놓았다. 휠체어 승객은 맨 나중에 내려야 한다. 모든 승객이 다 내리고 맨 나중에 탑승구로 나가니 친절하게 생긴 여자 승무원이 휠체어를 대기 시켜놓고 있었다. 아내는 미안 한 듯 다소 어색해하며 휠체어에 앉았다.

 

허지만 휠체어 서비스를 받지 않으면 나도 아내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아내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저혈당 증세와 오래 서 있으면 다리의 부종과 어지럼증이 유발한다. 일반 출입국 창구를 이용하면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다소 미안하기는 하지만 휠체어 서비스를 받는 편이 좋다. 또한 아내는 심장장애인으로 등록이 되어 있어 휠체어 서비스를 받을 자격이 있다.

 

휠체어를 타고 가는데 어떤 신사 한 분이 탑승출구 터널 앞에서 내 이름을 크게 쓴 피켓을 들고 서 있다. 누굴까? 내가 인사를 하니 그는 아시아나 항공사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조카의 부탁을 받고 마중을 나왔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는 조카의 고향후배로 아주 절친하게 지내고 있는 사이였다. 조카는 나주 동강면이 고향인데, 조카와 그는 동강중학교 선후배 사이라고 했다.

 

아무튼, 그의 안내로 우리는 복잡한 출국장을 쉽게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출국장을 빠져 나오나 조카가 승용차를 대기시켜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고모, 그리고 고모부님!”

이거, 먼 거리까지 마중을 나오다니, 조카 덕분에 완전히 VIP대접을 받네!”

별말씀을요. 당연히 나와야지요.”

 

우리는 조카의 차를 타고 간사이공항을 빠져 나왔다. 내가 한국에서 카톡으로 전철을 타고 가겠다고 전화를 했는데도 조카는 시내에서 먼 공항까지 마중을 나오는 성의를 보여 주었다.




 

아내의 장조카인 그는 30년 전에 일본에 맨몸으로 와서 자수성가를 한 사업가다. 우리가 20년 전에 오사카에서 잠시 그를 만났을 때는 끼니도 때우기 어려울 정도로 참으로 어렵게 지내고 있었다.

 

IMF가 터진 이듬해인 1998년 봄 아내와 나는 배낭을 걸머지고 부산에서 배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 시모노세키 항구에 도착하여 JR선을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며 일본기차여행을 하고 있는 도중이었다. 나는 그 당시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내를 간병하기 위해 직장을 조기 은퇴하고 아내의 소원을 좇아 여행을 하기 시작하였다.

 

아내의 소원은 단 하나, ‘죽기 전에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었다. 여하튼 나는 그런 아내의 소원을 좇아 퇴직금을 헐어 배낭여행을 하기 시작하였다. 일본 기차여행은 아내와 내가 단 둘이서 배낭여행을 하기 시작한 첫 나라인 셈이다.


그 기차여행 도중에 우리는 오사카에 살고 있는 조카 집을 잠시 방문하였다. 당시 관광학과를 졸업한 조카는 어느 호텔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고, 그의 아내는 한국의 보따리 무역상을 대상으로 작은 무역상을 하고 있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밤낮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처절하게 살아가는 그들을 바라보며 여행을 하고 있는 우리가 사치스럽고 부끄럽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때 몇몇 보따리상은 우리와 함께 부산에서 배를 타고 시모노세키를 거쳐 오사카의 조카 집으로 오기도 했다.

 

보따리상들은 한국에서 주로 소주, 라면, 인삼, 김 등 식료품을 보따리에 싸 들고 와 일본에 팔고, 일본에서는 전자제품, 공구류 등을 들고 와 한국에 판다. 처음에는 하꼬비’(남의 물건을 일본까지 운반하는 일)부터 시작하여 경험이 쌓이면 독립하여 보따리상을 한다고 한다.

 

부산에서 시모노세키로 가는 페리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은 수십 년간 보따리상을 해오며 자식들 대학도 다 가르치고 집도 사고했다는 알뜰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비록 배 위에서 새우잠을 자고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배위에서 밤을 꼬박 새우며 힘든 여정을 보내지만 그들의 보따리에는 저마다 알뜰한 꿈과 희망이 깃들어 있었다.

 

그런 보따리상을 대상으로 무역을 해오던 조카 부부도 불굴의 정신력과 근면성으로 어려움을 딛고 경제적으로 점점 자립을 하여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조카는 오사카 중심가인 토돈보리에 인접한 곳에서 3성급 호텔을 경영하고 있을 정도로 성장을 했다. 낯선 나라 일본에서 온갖 어려움을 딛고 성장을 해온 그들이 대견했다.

 

간사이공항에서 조카의 자동차를 타고 1시간여를 달리니 곧 오사카 중심가에 위치한 조카의 호텔 나니와(Hotel Naniwa)에 도착했다. 우리는 조카가 마련해준 5층 객실에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호텔 인근에 있는 한국요리집 형부네에서 조카와 함께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조카는 일본 술중에서 도수가 낮은 츄하이를 즐겨 마신다고 하는데 술을 잘 마시지 않는 나도 마실만했다.

 


달크작작한 복숭아 맛이 나는 츄하이는 알코올 도스가 3%라고 하는데, 얼음으로 칵테일을 해서인지 마실 때는 거의 알코올 성분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 술도 몇 잔을 마시고 나니 취기가 은근히 돌았다. 츄하이를 마시며 아내와 나는 조카 부부와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우리는 밤 11시에 호텔로 돌아왔다. 정갈하게 잘 정리정돈 된 객실에는 일본식 잠옷인 유카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유카타는 기모노의 일종으로 목욕 후나 여름에 입는 일종의 욕의(浴衣). 앙증스런 작은 욕탕과 화장실이 일본답다. 아내와 나는 번갈아가며 작은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유카타로 갈아입었다.

 

하하, 유카타로 갈아입은 내 모습이 꼭 일본인 같다. 오늘은 일본인이 되어보는 거다. 아내는 곧 잠이 들었다. 그동안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아내가 아닌가? 아내에겐 역시 여행이 명약인가 보다. 그런 아내를 바라보며 잠시 상념에 젖어 있던 나도 곧 덩달아 잠속으로 빠져 들어 갔다.



출처 : 하늘 땅 여행
글쓴이 : 찰라 최오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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