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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기에 편하고 구경거리도 많은 전곡5일장

찰라777 2017. 7. 16. 06:20


 

여보, 오늘 전곡장날인데 구경이나 갈까요?”

흐음, 오늘이 9일이니까 전곡장날이 맞네. 오랜만에 바람 좀 쏘이려 갈까?”

 

장마가 들어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던 아내가 갑갑했던지 전곡장이나 가자고 했다. 사실 우리는 텃밭에서 거의 먹을 만한 채소를 다 키우니 장에 가서 딱히 살만한 것은 별로 없다. 허지만 사람 구경하기 힘든 오지에 살다보니 때로는 사람냄새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래서 사람 구경도 할 겸 우리는 5일장이 열리는 전곡으로 갔다.

 

전곡5일장은 국도3호선 평화로 옆 공영주차장 부지(전곡읍 전곡리 295-71) 일대에서 49자가 들어가는 날에 열린다. 장터에 도착하니 장마철이라 그런지 다른 장날에 사람들이 그리 많지가 않다.


연천군은 땅의 넓이는 파주시와 비슷한데 전체 인구는 5만 명이 채 넘지 않는다. 그 중에 2만여 명이 전곡읍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휴전선을 끼고 있는 접경지역인 관계로 군부대는 많은 반면, 인구가 적고 차량통행도 많지 않아 청정한 연천은 사람이 살기는 아주 편하다.


 
또 하나의 특징은 전곡역에서 국민마트에 이르는 약 2km의 거리는 신호등이 없다. 길가 아무데나 주차를 하고, 좌회전이나 우회전도 자유롭게 한다. 그래도 빵빵거리는 차도 없다. 그래도 장날이 돌아오면 한산하기만 하던 전곡 거리도 사람과 차들이 꽤 붐비고 부산하다.



 

장터의 매력은 자연스럽고 시골스런 풍경에 있다. 상인들은 주차장 양편에 날쌔게 설치한 가판대에 상품을 진열해 놓고 오가는 손님에게 호객을 하며 물건을 팔고 있다. 진열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땅바닥에 물건을 진열해 놓거나 자동차에서 그대로 팔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은 양쪽 진열대 사이에 넓게 뚫린 길을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며 이것저것을 구경하다가 필요한 물건을 가서 비닐봉지에 주섬주섬 집어넣는다.



 

상인들은 인근 자가 농장에서 손수 기른 채소나 곡식, 자신이 손으로 직접 만든 제품을 팔기도 한다. 우직한 손글씨로 직접 쓴 가격표시나 특효약이라는 각종 선전문구도 퍽 재미있다. 맞춤법이 틀린 글씨들이 더 정겹고 재미있다.

 

우뭇가사리 2000’, ‘칼국수 냉사리 2000’, ‘개복숭아 효소 면역력 증가, 관절에 좋음’, ‘고지혈증 당뇨 혈압 독소 빼는 팥가루’, ‘모기 쫓는 구문초 2000’, ‘햇양파 3000’, ‘두 손이 자유로운 모자우산’, ‘허리가 정말 편한 등받이, 앉져보세요. 어리가 쭉 펴진다, 목이 편해진다, 요통이 사라진다, 다리가 편해진다’, ‘고기 잡는 어망, 너무 많이 잡혀 걱정입니다’ ‘뻥이요! 하며 뻥 터지는 팝콘등 정말 재미난 표현과 모습들이 많다.







 

장터의 또 다른 매력은 먹을거리에 있다. 막 튀긴 닭발, 각종 튀김요리, 장터국수, 막걸리 등 먹을거리가 풍부하다. 사람들은 여기 저기 둘러앉거나 서서 자기가 좋아하는 먹을거리를 찾아 먹는다. 장터는 만남의 장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둘러앉아서 시원한 막걸리를 한잔씩 기울이며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한다.



 

아내와 나는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장터를 구경하다가 우리 집 텃밭에서 나지 않는 다른 물건들을 샀다. 우무가사리, , 두부, 항아리 덮는 망사, 바나나 등을 샀다. 3만원어치를 산것 같다.그리고 우리는 튀김집 앞에 멈춰 섰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순 없지요.”

하하, 당연한 일 아니요?”

 

우리는 고구마튀김을 한 봉지 사들고 선채로 우직우직 씹어 먹었다. 갓 튀긴 뜨거운 고구마튀김 맛이 그만이다. 사실 장터는 이런 맛으로 온다.



 

내가 다섯 살 때였던가? 어린 시절에 어머님을 따라 처음으로 장터를 갖던 추억이 떠올랐다. 집에서 십리정도 되는 고향 장터는 어린 나에게는 어지간해서는 갈 수 없는 먼 곳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어머님께 조르고 졸라서 십리 길을 걸어서 장터를 갔다.

 

처음 가본 장터에서 나는 무엇보다도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보고 놀랐다. 발을 딛을 틈도 없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장터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두 번째는 끝없이 전시되어 있는 물건들에 놀랐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물론, 각종 농기구와 칼, 도끼, 옷감, 소고기, 돼지고기, 생선, , 곡물, 소금, 한약재 등이 끝도 갓도 없이 진열되어 있었다.



 

농산물은 주로 지역주민들이 들고 나와 팔거나 물물교환을 하고, 다른 생필품들은 아마 전국 장을 돌아다니는 보부상(이른바 장돌뱅이들)들이 팔았다. 보부상들은 봇다리를 싸들고 다니는 봇짐장수(보상)과 등에 물건을 지고 다니는 등짐장수(부상)으로 나누어졌다. 이를 합쳐서 보부상이라고 한다.

 

객주마다 지글지글 끓는 국밥, 순대에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들이 시끌벅적했다. 나는 그 때 어머님이 사준 아이스케이크를 처음 먹어 보았는데, 어찌나 달고 시원했던지 어디로 넘어갔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리고 단팥죽 한 그릇에 풀빵도 몇 개 먹었는데 입안에 살살 녹아들어가 어떻게 먹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황홀할 지경이었다.



어머님은 집에서 놓아먹인 암탉이 낳은 달걀을 모아두었다가 장에 내다 팔았다. 그 당시 돈이 될 만한 것은 달걀이 가장 손쉬웠다. 그런데 그 달걀 판돈으로 나에게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단팥죽과 풀빵도 사주셨으니 아마 다른 물건을 살 돈이 부족했으리라. 어머님이 나를 장으로 데리고 가지 않는 아유를 한참 후에서야 나는 깨닫게 되었다.

 

우리나라 5일장의 시초는 삼국시대부터 있었다고 한다. 이때는 주로 물건과 물건을 맞바꾸는 물물교환 형식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고려시대에는 매일 열리는 상설시장과 농촌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향시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 전기에는 정기적으로 장시가 열렸고, 조선 후기 들어 장시는 크게 늘어나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고 한다.




 

장시는 주로 5일마다 열렸는데, 이 장시가 매월 38, 49, 16, 510, 27장 등으로 발전하여 주변의 장날을 피해 중복이 되지 않도록 발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교통의 발달과 도시로의 인구집중이 가속화되면서 장터의 기능은 점점 쇠퇴해가고 있다. 그런데다 현대식 대형 슈퍼마켓과 이마트나, 롯데마트 등 대형 유통매장에 밀려 예스러운 장터의 모습은 점점 기능을 잃고 사라져 가고 있다.






 

전곡에도 이미 들어선 롯데마트나 국민마트 등 대형 마트들에 밀려 옛날보다 5일장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대형마트는 개성이 없고 실내에 물건을 가득 채워놓고 있어 실외에서 장을 보는 것보다는 훨씬 재미도 적다.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에 밀려 점점 사라져 가는 5일장의 멋스런 풍경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여보, 요즈음 텃밭에서 기른 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려 매일 따내는데 우리도 한번 장터에 가지고 나와 좌판을 한 번 벌려 용돈 좀 벌어볼까?"
"아이고, 아서요. 아무나 좌판을 벌이는 줄 아세요. 하루 종일 땡볕에서 좌판벌이고 있다간 병나요."
"우리 집 토마토는 완전 유기농에다 빛깔이 좋아 잘 팔릴 것도 같은데. 하하."




사실 요즈음 우리 집 텃밭에 심은 토마토가 너무 많이 열려 매일 한바구니씩 따내고 있다. 30여 그루 심은 토마토인데 완전 유기농 토마토로 우리가 먹고도 남을 양이다. 시골 장터의 진정한 매력은 아무나 자기 집에서 기른 농산물을 장터에 가지고 나와 좌판을 벌이고 팔 수 있는데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