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오대산 천년숲에 오거들랑 자동차의 시동을 꺼라

찰라777 2017. 7. 26. 05:24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무소의 뿔 중에서>




도대체 얼마나 오랜만인가? 홀로 걷는 월정사 천년의 전나무 숲길이홀로 오기를 잘했고, 자동차를 몰고 오지 않기를 잘했다. 더구나 평일 늦은 오후라 자동차도 사람도 눈에 띠지 않는다. 거기, 길 양쪽에는 전나무들이 나를 반기고 있을 뿐. 사람들아, 여기 오대산 천년의 숲길에 오거들랑 제발 자동차의 시동을 꺼라! 그리고 천년의 숲을 호흡하라!

 

사람은 가끔 홀로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무소의 뿔처럼 홀로 걷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네팔의 치트완 정글에서 보았던 코뿔소는 뿔이 하나였다. 강하고 우직한 코뿔소는 주로 홀로 살아간다. 부처님은 이 코뿔소에 비유하여 세상 모든 일에 집착을 버리고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가라고 말씀하셨다.


  

<숫타니파타>는 부처님의 말씀을 담은 초기 경전이다. 1,149수의 시를 70경에 정리하여 이를 5장으로 나누고 있다(법정 역, 숫타니파타 참조). 그 중 <무소의 뿔>40편의 시를 담고 있다. 나는 무소의 뿔 중에서 숲을 찾을 때 애독하는 시 몇 수를 더 인용한다.

 

숲속에서 묶여 있지 않은

사람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동반자들 속에 끼면

쉬거나 섰거나 또는 여행하는 데에도

항상 간섭을 받게 된다.

남들이 원치 않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월정사를 품고 있는 오대산은 산 전체가 불교성지다. 산 전체가 불교성지가 되는 곳은 남한에서는 오대산이 유일하다. 무릇 성지는 걸어서 가야 한다. 티베트인들은 티베트의 불교성지 라사로 가기위해 몇 천km를 오체투지 절을 하며 걸어서 간다. 그렇게 오체투지로 절을 할 수 없을지언정 최소한 걸어서라도 가는 것이 성지의 기운을 조금이라도 맛볼 수 있다. 오대산은 많은 선지식들이 깨달음을 얻은 곳이다. 이런 장소의 힘은 참으로 강해서 세속적인 사람마저도 그곳에 가면 영적인 느낌이 커져 저절로 명상에 들게 된다.


또한 이런 성지는 걸어서 갈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렇게 고요한 천년의 숲을 자동차를 타고 가면 무슨 맛을 느낄 수 있겠는가? 월정사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숲길은 최소한 일반 승용차의 통행을 금지하고 셔틀버스만이라도 운행케 하여 성스러운 성산의 기운을 받도록 배려해야 마땅하다.


나는 월정사 입구 산채마을에서 산채비빔밥 한 그릇을 비우고 전나무가 도열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갔다. 1km 정도를 걸으니 매표소가 나오고 월정사 출가학교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출가! 듣기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말이다. 어디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어야만 출가인가? 나는 지금 12일 출가의 길에 들어서고 있다. 미얀마는 일반인들도 언제나 출가를 했다가 다시 환속을 할 수 있다


 

 

매표소를 통과 하니 곧 이어서 월정사 일주문이 나타난다. 이곳에 오면 정말 머리를 깎고 출가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만큼 머물고 싶은 청정하고 고요한 숲이기 때문일까? 나는 출가하는 마음으로 합장배례하고 일주문을 들어선다. 꼭 머리만 깎아야 출가인가? 청정한 숲에 와서 잠시라도 마음속의 무명을 자르면 그것이 곧 출가정신이다.

 

일주문에는 월정대가람(月精大伽藍)’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이 편액은 당대를 대표하는 학승 탄허 스님의 친필이다. 마음 가는 대로 휘갈겨 쓴 탄허 특유의 호방한 선필이다. 적광전, 천왕문, 삼성각 등 월정사 전각의 편액은 대부분 탄허대종사의 친필이다.


 

일주문은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는 일심(一心)을 뜻한다. 부처님의 신성한 도량임을 나타내는 일주문을 통과 할 때는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서야 한다. 일주문은 승() (),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 생사윤회(生死輪回)의 중생계와 불국토를 나누는 경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나는 일주문 앞에 서서 합장 배례를 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일주문을 들어섰다.


일주문을 지나니 천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천년 된 나무들의 목소리다. 사람들은 얼마나 자연으 소리에 귀를 귀울일가? 나무조각으로 만든 천년의 목소리는 전신에 구멍이 뻥뻥 뜷려 있다. 세상의 소리를 다 듣겠다는 듯.


    

 

숲에는 1000여그루의 아름드리 전나무가 하늘을 떠 받치고 있다. 천여그루의 전나무들이 산소공장처럼 피토치드를 발산하고 있다. 왜 소나무가 아니고 전나무인가?

  

본래 이 산에도 소나무가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 오대산에는 소나무숲이 사라지고 전나무 숲이 들어서게 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고려 말 이 산에 주석한 나옹선사가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 그런데 소나무에 쌓였던 눈()이 공양 그릇에 떨어져 경건해야 할 의식을 망쳤다. 그때 산신령이 나타났다. 신령은 공양을 망친 소나무를 꾸짖고 나서 주위에 있던 전나무 9그루에게 절(월정사)을 지키게 했다. 그 뒤부터 이곳은 전나무가 숲을 이루어졌다는 전설이다.


  

아름드리 전나무들이 묵묵히 서 있다. 모두가 도를 이룬 부처님처럼 보인다. 피톤치드를 발산하며 제 할 일을 묵묵히 하고 있는 전나무는 위대하게만 보인다. 경이로운 마음으로 전나무들을 바라보며 신선한 공기를 듬뿍 마셔본다.

 

숲에는 자연 설치물들이 간간히 눈에 띈다. 천년의 숲길 초입에는 삭발기념탑 하나가 서 있다. 이 탑 밑에는 월정 단기출가자들이 삭발한 머리카락을 묻었다고 한다. 비록 단기간의 출가이지만 세속에 물든 탐진치(貪瞋痴)를 씻고자 하는 출가자들의 비장한 각오를 보는 듯하다.

 

젊은이를 위한 팡파레, 나무선-환생, 비나이다, 양떼구름, 텅빈시간, 천수천안 등 자연설치물들은 오대산선재길로 이어져 상원사 입구까지 띄엄띄엄 설치되어 있다. 오대산 천년 숲 선재길에 설치된 자연설치물들은 자연환경을 고려하여 현장에서 구한 재료들로 만들어져 있다. 그 내용은 선재동자가 구도의 길을 걸으며 만났던 53 선지식의 지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위로부터 젊은이를 위한 팡빠레, 천년의 목소리, 비나이다, 양떼구름, 텅빈시간, 환생

 

그 설치물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쓰러진 채 넘어져 있는 전나무 고목이다. 이 전나무는 지난 20061023일 밤, 폭풍에 쓰러져 고목이 된 전나무로 쓰러지기 전까지 오대산 전나무 숲에서 가장 오래된 수령 약 600년이 넘은 전나무다. 전나무고목을 바라보며 굴국진 세월을 읽는다.


 

일주문을 지나 성황각에 이르니 한무리의 중년 부부들이 정답게 이야기를 하며 숲길을 걸어온다. 선남자 선여인! 호젓한 전나무 숲길을 걷는 그들이 마치 극락세계를 거니는 것처럼 보인다


   

숲길은 곧지않고 'S'자 모양으로 휘어져 있다. 길이 완만하게 휘어진 모퉁이에 세워진 성황각은 지방의 토속신을 모신 곳으로 민간 신앙과 믿음을 수용하려는 불교의 포용력을 보연준다. 맞배지붕에 두 평 남짓한 성황각은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민간 신앙을 보여주고 있다. 성황각을 돌아서면 크고 작은 돌덩이들을 쌓아놓은 돌무더기가 나타난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돌을 주어 소원을 빌며 쌓아놓은 돌들이다.


  

천년의 숲길은 일주문에서 금강문까지 이어진다. 자작대는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하늘을 가리는 거대한 전나무를 걷다보면 세월을 잊는다. 금강교에 다다르기 직전에 두 비구니 스님이 바람처럼 다가오더니 바람처럼 사뿐사뿐 걸어간다. 그 모습에서 모든 것을 놓아버린 대자유를 느낀다